책 머리에





나는 늘 일기를 쓴다. 밤에만 쓰는 것이 아니고 하루에 두 번 세 번 쓸 때도 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 기도를 하듯 나는 오직 일기장에 매달린다.
때로 지난 일기들을 훑어보는데 그럴 때면 꼭 쓰레기 하치장을 보는 것 같다.
무엇이 이렇게도 조잡스러운가 하고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나라는 인간의 그릇이 한눈에 보여지는 것 같다.
그런 중에도 몇 개의 신선한 생각들이 주워올려질 때가 있다.
어마 이런 생각들은 참 좋다, 이것을 잊고 있었구나 하고 뒤늦게 중요표를 달아 놓는다.
중요표 외에도 밤에 꾼 꿈에는 ☆표, 소설 단상은 새 (그리기) 표를 달아 놓는다.
그런데 쓰레기 하치장과 같은 단어의 나열들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하나의 방향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좀더 자기를 열어 보려는 노력이다. 과거나 현재에 고착되어 버리는 자신을 그곳에서 보기 때문이다.
의식을 바꾸어 자신을 미지와 연결시킨다는 일은 참 힘이 든다.
무엇인가 자꾸 반복될 뿐 새롭게 피어나지지가  않는다.
이것을 아마 불교에서는 윤회고리라고 하는 것이리라.
앞으로 얼마나 일기를 쓰게 될까 때로 구체적으로 생각해본다.
20년 정도?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수명은 한계가 있고 지난 시절이 짧다고 여겨지나 외람되지만 이미 많이 살았기 때문이다.
일기의 마지막에는 구원이 있어야 할 거락 생각한다.
존재를 구하다, 현실을 구하다, 구원이란 단어가 자칫 때묻어 보일 수도 있으나 때묻지 않고 오직 영롱한 빛을 발하게 하기 위해 삶을 탐구해갈 것이다.
그리고 그 탐구가 앞으로 내가 써야 할, 쓰고 싶은 소설의 방향이라고 막막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다.





1995년 9월 저자  (김채원 자선대표작품집, 달의 몰락,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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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1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여우 2004-12-01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영은과 둘도 없는 친구이죠..한참 그 두사람의 우정을 부러워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지금은 저도 그런 둘도 없는 친구가 있답니다.^^

플레져 2004-12-01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좋으시겠어요 ^^ 저두 그런 친구가 있어요. 우린 너무 행복한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