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이 먹기 싫고

오늘 저녁이 먹기 싫고 내일 아침이 살기 싫으니
이대로 쓰러져 잠들리라
쥐도 새도 모르게 잠들어 버리리라
그러나 자고 싶어도 죽고 싶어도
누울 곳 없는 정신은 툭하면 집을 나서서
이 거리 저 골목을 기웃거리고,
살코기처럼 흥건하게 쏟아지는 불빛들.
오오 그대들 오늘도 살아계신가.
밤나무 이파리 실뱀처럼 뒤엉켜
밤꽃들 불을 켜는 네온의 집 창가에서
나는 고아처럼 바라본다.
일촉즉발의 사랑 속에서 따스하게 숨쉬는 염통들.
그름처럼 부풀어오른 애인들의 배를 베고
여자들 남자들 하염없이 평화롭게 붕붕거리지만
흐흥 뭐해서 뭐해, 별들은 매연에 취해 찔끔거리고
구슬픈 밤공기가 이별의 닐리리를 불러대는 밤거리
올 늦가을엔 새빨간 루즈를 칠하고
내년엔 실한 아들 하나 낳을까
아니면 내일부터 단식을 시작할까
그러나 돌아와 방문을 열면
응답처럼 보복처럼, 나의 기둥서방
죽음이 나보다 먼저 누워
두 눈을 멀뚱거리고 있다


詩 최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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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10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승자 시인의 시만 읽던 시절이 까마득합니다.

히피드림~ 2006-02-10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시네요.^^ 근데 플레져님은 어디서 이런 멋진 이미지들을 가져오시는 거예요? 플레져님 서재에 들어올때마다 늘 궁금하다는...^^

플레져 2006-02-10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최승자를 읽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있었나봅니다 ^^
펑크님, 인터넷 사냥과 소풍을 즐기다 낼롬 집어옵니다 ^^:;

2006-02-11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6-02-11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님 서재로 안가고 바로 댓글다는...ㅎㅎ)
저 구절을 한 줄 한 줄 타이핑했어요.
다 적고 나서 왈칵, 뭔가가 비져나오려고 해서 눌렀어요.
그냥 왈칵 할 걸 그랬나... 고마워요 ㅊㅊ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