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들었으나, 살아가는 동안에 근심과 재물과 인생의 향락에 사로잡혀서, 열매를 맺는 데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
내가 열매 맺지 못하게 하는 것들 - 근심, 재물, 인생의 향락. 자유로운게 하나도 없구나.
이렇게 글자가 빽빽하게 들어있는 만화를 어떻게 보지? 재미없겠다. 국민학교 다닐 때 학교 도서관에서 보았던 학습만화 시리즈 같다. 보았다가 아니라 읽었다고 해야 하나? 지식전달(?)이 주 임무였던 그 만화는 어떤 페이지는 아예 참고서 한 페이지를 옮겨 놓은듯해서 웬만한 인내심이 없으면 읽기가 곤란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 만화는 지식 전달의 부담이 없나보다. 달 여행의 우주선 속도, 무중력 상태, 가속엔진에 의한 중력 현상 등을 그냥 아무렇지 않게 쓱쓱 이야기 하고 지나간다. 데이터들이 얼마나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달 여행의 궁금증이 꽤 많이 해결된다. 자연계 대학을 졸업한 사람도 알지 못하는 과학적인 이야기를 부담 없이 읽게 하는 것이 매력적이다. 특별히 코믹하지도, 흥미진진하지도 않다. 하지만 꽤 큰 이 책을 한번에 죽 읽게 되었다.
아무 때나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 자신도 언제 빨개지는지, 왜 빨개지는지 알 수 없다. 병원에도 다녀보지만 치료되지 않고 요정을 만나 마술처럼 나아지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핸디캡을 나타내는 것 같다. 왜 나만 그럴까? 처음엔 고민도 하고, 고치려고 애써보지만 결국엔 포기하고 수용하게 된다. 그러다 나와 다르지만 같은 핸디캡을 가진 누군가를 발견하게 된다. 누구나 다 핸디캡을 갖고 있을 테니 자기 눈에 띈 핸디캡이라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그래서 공감하고 사랑하게 된다. 우리가 누구를 만나고 사랑하는 것은 상대의 장점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발견한 나와 같은 상대의 약함 때문일까? 사랑은 핸디캡의 공유인지도 모르겠다. 연필로 쓱쓱 그린 것 같은 그림들이 편안하고 유머러스하다.
가늘게 내리는 비 때문에 자전거를 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 가까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걸었습니다.
약수 담을 가방 때문에 우산을 따로 받긴 했지만
마주오는 찬바람에 감기 걸리지 않을만큼
지난 날들을 이야기 했습니다.
함께 나눌 과거가 있어 흐뭇 했습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원수는 커녕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도 너무 힘들다. 아니 가까이 있는 사람이 더 어려운 것 같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셨건만 억울하게 싫은 소리를 듣는 것 같으면 용납되지 않는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하셨는데 남이 내게 대접하는대로 앙갚음 하려는 욕구가 자꾸만 일어나고 나는 쉽게 순종한다.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오늘 하루라도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