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란 무엇인가 - 최민식, 사진을 말한다
최민식 지음 / 현실문화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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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게 사회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하고 정신의 성숙함을 가져다준 불후의 걸작들은 사진의 역사뿐만 아니라 인류사에도 영구히 빛날 것이다. 사진은 곧 인종과 국경, 시대의 장벽에 구애받지 않는 국제 언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사진 언어를 통해 공간과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진실한 삶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157쪽

인생은 짧고 다시 되돌릴 수도 없다. 그 짧은 인생은 순간순간 경이로운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얼마나 알알이 소중한 시간인가. 기회는 단지 한 번 올 뿐이다. 지나가면 영원히 잡을 수 없다.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재능과 능력을 온전히 발휘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노력하다가 실패하는 쪽을 택하라. 지금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이다.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우리는 자신의 재능을 다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 길만이 우리의 삶을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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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란 무엇인가 - 최민식, 사진을 말한다
최민식 지음 / 현실문화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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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보는 눈을 한 단계 넓혀준다. 이제까지는 보기에 아름다운 사진만을 생각하였다. 사진의 구도나 색감만을 생각하고 아~ 잘 찍었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사진의 또 다른 어쩌면 더 근원적인 기능에 관해 이야기한다. 바로 포토 리얼리즘이다. 사진만이 나타낼 수 있는 극사실주의. 그래서 현실의 단순한 기록 기능을 넘어서 우리가 살고 있고 목격하는 사회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개선을 호소하는 사회적 기능으로 사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확장되게 한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몇 안 되는 사진에 관한 책들이 그야말로 사진의 잔재미를 위한 입문서라면 이 책은 거기서 한 발 더 나가 사진에 관해 생각하게 하고 고민하게 한다. 책의 후반부에는 사진계의 거장들의 사진과 지은이의 간단한 해설이 있어서 사진사를 한눈에 훑어보는 느낌이다. 교통사고나 전쟁 취재 중 죽은 사람을 제외하곤 대부분 사진가가 장수하였다는 것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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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인은 존비어 체계 속에서 언제나 존대받지 않으면 하대받아야 하는 극단의 선택을
강요 받는 까닭에 모두들 존대받는 사람이 되려고 목숨을 걸고 권력, 출세, 학벌, 권위에
매달리게 된다. 따라서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제도의 민주화가 이루어져도 사람들이
인격, 교육, 윤리, 도덕, 여유 등에 관심을 돌릴 수가 없다. 이런 까닭에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존비어 체계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가 차별과
억압이 일상화하는 삶을 벗어나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존비어 체계를 진지하게 연구해야
한다고 설득해 왔다.


#2. 한국인은 존비어체계(존비어체계는 호칭으로 구분된 상하관계에 따라 어휘, 조사,
어미 등에 차이를 두어 문장의 형태를 달리함으로써 상하관계를 한층 엄격하게 담아내는
구실을 하며, 한국어와 일본어만이 호칭체계와 더불어 존비어 체계를 갖고 있다)를 갖춘
독특한 언어를 사용하는 까닭에 모든 사물을 존비관계로 바라보려는 무의식적 인지구조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대등과 호혜 관계보다는 차별과 억압 관계를 더욱 당연하고
편안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붉은 색 포도주에 물건을 담갔다 꺼내면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드는 것처럼, 존비어체계 속에서 생각을 하다보면 모든 생각이 존비관계로
물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3. 한국어는 존비어체계로 말미암아 인간이 어휘나 문장으로 구체적인 생각을 하기
이전에 이미 언어체계 자체가 강력한 규범력을 갖고 생각과 표현을 전체적으로 끌어가는
매우 특수한 언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인은 존비어체계로 말미암아
무의식 속에 수직적 인지구조를 형성하고 모든 사물을 수직 관계로만 파악하려는 경향을
갖게 된다. 이는 영어나 중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문장을 생성한 단계에서
필요에 따라 사물을 수평 또는 수직 관계로 파악하는 것과 근본에서 차이가 있다.


#4. 언어의 차이가 삶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는 외국어를 배움으로써 인간관계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는 것에서 알 수 있다. 한 예로 수평적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오늘날의
중국인이 대학에서 서구어, 한국어, 일본어를 전공하여 언어를 습득해가는 과정에서
인간관계의 태도가 달라지는 사례를 볼 수 있다. 이들은 단지 외국어를 공부하는 데도,
언어의 특성에 따라 학년이 올라갈수록 인간관계에 대한 태도가 크게 달라짐을 털어놓고
있다.

중국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한국에 유학한 왕효령은 <한국 리포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중국의 외국어 대학교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돈다. 1학년 때는 똑같지만
2,3학년만 되면 서양 언어 계열을 배우는 여학생과 한국어, 일어를 배우는 여학생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서 한눈에 구별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영어를 배우는 여학생들은 명랑하고 활발하며 당당하다. 하지만 한국어와 일어를 배우는
여학생들은 부드러운 반면 수줍음이 많고 위축되어 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우리반(한국어과)이 제일 조용하고, 여자친구들의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지더니, 3학년이
되자, 세 번째 줄에 앉은 여학생의 목소리가 강단에서는 들리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다소 억지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존댓말을 사용함으로써 드디어 한국인의 수직적 구조에
편입하는 데 시간을 좀더 단축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왕효령, <한국리포트>,
가람기획)

#5. 언어 구조에 기인한 차별과 억압의 일상화는 어떤 문제점을 낳고 있는가?
첫째, 한국인은 차별과 억압이 일상화한 가운데 지역, 빈부, 직위, 성별, 학벌 등에
따른 차별과 억압을 심하게 느끼면서 억울함에 대한 한을 강하게 형성하고 있다. 한국인은
갖가지 한에 억눌려 살아가는 까닭에 조금만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곧바로 극단적인 주장과 행동으로 빠져든다. 한국인은 걸핏하면 극언과 욕설을 퍼붓고,
시비와 싸움을 벌이며, 그것도 안 되면 혼자 또는 집단으로 자살을 감행한다.

둘째, 한국인은 차별과 억압이 일상화한 가운데 억울함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차별하고 억압하는 지위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차별하고 억압하는
지위에 오르는 일을 출세라고 부르고,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말한다. 한국인이 출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면서, 극단적 이기주의에 빠져들어 법과 규범이
구실하지 못하는 가운데 무한경쟁의 논리가 판을 치고 있다. 그 결과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에 '만가에 의한 만가의 투쟁'이 더해져서 격렬한 싸움을 낳고 있다.

셋째, 한국인은 차별과 억압에 시달릴 때마다 그것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무기력한 국가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갖는다. 무기력한 국가에 대한 반감이 증폭되면서 사람들은 과거의
정권, 정책, 역사에 대한 비하, 기성 정치인에 대한 불신, 기존의 동맹국인 미국에 대한
비난 등을 일삼는다. 이와 동시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에서 진보와 개혁에 대한
열렬한 동조, 민족과 통일에 대한 낭만적 기대, 북한 체제에 대한 지나친 포용, 중국에
대한 막연한 호감 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하면서 정통성, 정책, 역사에 대한 대대적인 뒤집기를 시도한다.


#6. 한국인이 민주화를 추진하면서 꿈꾸어 왔던 행복한 사회, 즉 대등과 호혜관계가
근간을 이루는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기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차별과 억압의 일상화를
불러오는 원인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7. 존비어체계를 두고서는 진정한 시민사회를 이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인이 어떠한 삶을 바라는가에 따라 존비어체계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차등한
인간관계나 신분적 인간관계를 원하는 사람은 존비어체계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고, 대등한
인간관계나 민주적 인간관계를 원하는 사람은 존비어체계를 없애려고 할 것이다.

#8. 만약 우리가 대등한 인간관계나 민주적 인간관계를 선호하여 존비어 체계를
청산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이때 우리는 사암 정약용이 신분제도에 대해
가졌던 생각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사암은 <발고정임생원론>에서 지배층이 양반의
숫자가 계속 늘어나 세상이 어지러워진다고 크게 걱정하는 것에 대해서 "나에게
소망이 있으니, 그것은 나라 안의 모든 사람들을 양반이 되도록 하여, 나라 안에서 양반이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고 말하고 있다.


#9. 마찬가지로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높임말을 붙이게 되면 자연히 낮춤말이 없어지게
되어, 말이 평등해지면서 인간관계가 한층 대등하게 될 것이다. 말이 평등하지 않은 상태
에서 인간관계가 평등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음식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 배부르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차별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차별이 바로 말투의 불평등에서 비롯하는
차별이다.
-출처: 최봉영, <한국 사회의 차별과 억압>, 지식산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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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보다 오래 남는 사진 찍기
강영의 글.사진 / 북하우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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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건 따라하기 힘든 그러면서도 모두들 부러워할 선택을 했다. 그리고 멋진 결과를 얻었다. 1년이나 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으니 부자라 좋겠다는 시샘이 제일 부러웠기 때문일까? 새 자동차나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을 희생한 대가로 한 여행이라는 것을 먼저 이야기 했다.
여행지 사진이라기보다는 여행지의 사람들을 담았다. 어떻게 그들을 찍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해서 1년 동안의 사진 찍기를 통해 배운 요령(?)―사람 사진을 찍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사람과의 ‘교감’이라는 것까지 이야기 해준다. 사진 분위기도 좋고 글 솜씨도 수준급이다 는 생각을 하며 읽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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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이건은 자신이 생각한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자신의 확신을 남에게 전달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의 연기 능력은 별도로 하더라도 그는 가장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흔들리지 않는 의지는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북소리를 철저히 따르면서 성장했다.

#2. 정치를 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적을 많이 만들지만, 그는 항상 자신의 반대자들을
그의 품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어떤 일을 결정하는 데 여론 조사를 이용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에게 대다수가 그의 생각에 반대한다는 통계적 수치를 보여줄 때 마다 그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확신시킬 수 있도록 우리가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3.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열망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그의 단순한
신념은 때때로 나를 대단히 흥분시켰다. 나는 레이건이 어디 출신이고 레이건 같은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된 것을 설명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누구든지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그가 믿는 이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 정치적
견해는 대공항 때의 극심한 가난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의 정치적 신념이 바뀌었을 때 그는 지지자들을 푹 빠져 들게 하는
대단한 역량을 지닌 매혹적인 연설가가 되어 있었다. 그의 정치적 우상이었던 루스벨트
대통령이 힘 있는 목소리와 희망의 메시지로 사람들을 절망에서 빠져나오게 한 것과
똑같이 레이건은 그의 시대의 위대한 메시지를 전달했고 희망과 영감의 유산을 남겼다.

#4. 나는 사람들과 마음을 통하게 하는 천부적 재능을 가진 사람은 나를 비롯한 그의
참모들이 아니라 레이건 자신이라는 것을 장담할 수 있다. 모든 일이 잘되도록 한 것은
레이건의 신념과 결단력 그리고 개인적인 매력이었다. 우리가 레이건을 만들지 않았다.
그가 우리를 이끈 사람이었다.

#5. (그가 포드와의 대통령 지명전에서 패배하였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고령이었다.)
추종자들와 참모들의 흐느낌 속에서도, 레이건은 냉정함을 유지했고 옛 격언을 약간
바꾸어 말했다. '나는 상처를 입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누워서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한 번 싸웁시다.' 나는 사람들이 모여 있던 방 옆쪽의
자동식 문 앞에 서 있었다. 그가 그 말을 할 때, 나는 그 문을 빠져나와 빈 복도에
혼자 서서 한없이 울었다. ... 1976년의 선거 운동은 곧 먼 기억 속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돌아올 것이다.

#6. 로널드 레이건은 거의 모든 사람한테서 나쁜 점은 보지 않고 좋은 점만 보았다.
특히 자기 참모한테는 더 그랬다.

#7. 레이건은 오닐 하원 의장의 일흔 번째 생일에 오찬 형식으로 관저에 그를 초대했다.
켄 두버스타인과 나는 동일한 의상을 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걸 들었다.
그들은 둘 다 아일랜드계지만, 한 사람은 보스턴 정계에서 투쟁하며 살아남았고 한
사람은 할리우드 스타의 길을 걸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 레이건은 샴페인을 가지고
오라고 하더니 건배를 제의했다.

'팁, 만약 내가 천국으로 가는 차표를 갖고 있고 당신이 갖고 있지 않다면, 내 차표를
팔아 버리고 당신을 따라 지옥으로 가겠소.'

하원 의장은 레이건의 금욕주의를 알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을 정도로 감동했다.

#8. 한번은 레이건이 유세 비행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이크, 넬(레이건의
어머니)은 나에게 만약 네가 책 읽기를 좋아하게 되면 너는 절대로 외롭지 않을 거라고
가르쳐 주었어.'
나는 후에 이 수줍은 사람이 이 말을 금언으로 삼아 왔음을 알게
되었고, 레이건은 독서를 생활화했다.
그의 여행 가방은 시간이 나면 읽으려는 책들로 항상 꽉 차 있었다.
-출처: 마이클 디버, <미국을 연주한 드러머, 레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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