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 인문학의 눈으로 본 신자유주의의 맨 얼굴
엄기호 지음 / 낮은산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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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9호선은 <골드선>이라고 한다. 

역이 만들어지는 곳마다 집값을 올려줘서 붙여진 별명이다. 유럽 선진국인 로마나 파리,뉴욕 등의 지하철에 비하면 한국의 지하철은 깨끗하고 정확하고 무엇보다 싸다.

이렇게 좋은 지하철을 이용하다보면 감사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잘 될런지 의문들이 늘어간다. 

철도가 잘 돌아가려면 누군가는 고된 일을 해야 한다.

영화로 만들어진 아사다 지로 원작 <철도원>은 철도에 평생 바친 역장의 최후를 그려낸다. 정년퇴직과 폐선이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역장은 가족도 없이 산 인생을 쓸쓸히 역에서 마감한다. 

설국 속의 애잔한 장면을 뒤로 하고 원작 소설에서 한 대목을 끄집어 내고 싶다. 도시에 나가 있는 동기 철도원은 곧 역에 새로 만들어지는 백화점에 취업하기로 내정되어 있었다.


철도는 가지고 있는 자산, 주로 토지를 이용해 개발사업자로 변신하면서 퇴직자들을 옮겨 수용한 것이다. 막상 이들이 실무를 잘 못하니 당연히 <관계관리> 중심으로 포지션하게 된다.

이들을 가리켜 <관계자산을 가진 노동자>라고 칭해보고 싶다. 

일본 철도 산업의 변화는 한국에 많은 참고 모델이 되었다.
일본에서 백화점 임원으로 퇴직간부를 보내듯이 한국의 철도들은 자회사로 대거 내보내왔다.


이번에 구의역에서 발생한 19세 청년의 죽음은 큰 아픔이지만 여기서 더 많은 생각들을 끄집어 냈으면 한다.

관계로 만들어진 자회사가 얼마나 열악하게 가치 창출을 하는 노동을 취급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사회가 저성장으로 가면서 구조조정은 일상화되어 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대립들이 나온다.

19세기의 사회적 프레임이 계급과 계층이고, 주로 자본과 노동의 대립을 주목해 보았다. 재벌은 악, 노동은 선이라는 가치관도 그 파급물이다.

하지만 현재 세상의 대립은 오히려 "관계자산을 가진 정규직 노동자"와 "관계자산이 없는 신종 프롤레타리아"이 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물어야 한다.

관계자산을 지속적으로 울궈먹는 노동자들은 창의적 파괴를 하려고 분투하는 경제의 타주체들 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가?


구체적으로 

철도노조는 과연 선일까?

최근 메트로와 도시철도의 합병은 무산되었다. 그럴때마다 철도노조는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앞세워왔다. 잘 만든 명분 하나는 오랫동안 전가의 보도처럼 쓰인다.

하지만 그 공공성이 과연 얼마나 보편적이고 공정한지를 이제 심각하게 물어야 할 떄가 되었다.


구의역 사건은 비극이지만 이어서 발생하게 된 큰 관심은 새로운 시야를 주고 있다. 

문제는 철도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보편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조선산업의 쇠퇴에도 중공업 노조들의 극단적 노동운동이 큰 기여를 했다고 하는 건 과단일까? 자식들의 고용을 필히 보장하려는 기업들이 많다. 

저성장에 얼마 남지 않은 먹거리일수록 더욱 치열하게 내 것만 챙기려는 심보다.

한국 사회는 점점 중요한 문제에 심각하게 직면해갈 떄가 되어가고 있다.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전가의 보도로 써먹던 노조는 절대선이라는 고집을 깨야만 한다. 


이 책의 제목대로 남을 돌보지 않는 "절대선"은 중세 교회나 절들이 벌였던 수취를 위한 종교놀음과 다를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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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위한삼계탕 2016-06-11 0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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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화끈거리네요.

사마천 2016-06-11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찬 감사합니다 ^^
 
인간은 필요 없다 - 인공지능 시대의 부와 노동의 미래
제리 카플란 지음, 신동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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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의 공포 이후로 인공지능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다.

인간의 미래는 <스타트렉>처럼 유유히 우주를 누비게 될 것인가? 아니면 <터미네이터> 처럼 기계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될 것인가?

저자의 답은 마지막에 나오니 우선 흐름을 살펴보자.

저자가 책을 낸 목적부터 보자면

급격히 변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엄청난 시련을 겪을 것이라고 한다.

일자리는 당연히 줄어드는데 이는 기술이 기존의 일을 파괴하고 새로운 일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간은 기술의 발전보다 느리기 떄문에 새로운 일에 적응하기 어려워서 당연히 밀려나게 된다.

이러한 급변속에서 인간들이 겪을 상황에 심리적,윤리적 문제를 논하고 이해를 돕기 위한 지적 토대를 갖추게 하려는 것이다.


책에는 두 명의 대부호가 나온다.

하나는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인데 또 한 명은 데이브 쇼이다.

데이브 쇼는 컴퓨터를 전공하고 금융에서 퀀트라는 정보를 이용해 돈 버는 기업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베조스가 여기서 일을 했다.

금융은 매우 정보 집약적인 산업이다. 그러니 그 정보를 남보다 더 빨리 활용하는 것으로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쇼가 개발한 초단타 매내는 금융거래시장에서 거래자들보다 한발 앞서 거래를 낚아채서 돈을 벌었다. 공정한 일일까? 어쨌든 그는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베조스가 쇼에게서 배운 핵심의 하나는 현물 보다 정보가 중요하다는 점이었다고 한다. 

금융이 아니라 책을 파는 것에도 마찬가지여서 베조스는 우선 각종 소비자 리뷰,평점 등의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가만 보면 아마존이 지금 세계 최대의 정보기술 기업의 하나가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보인다.

상품의 아마존이 아니라 정보의 아마존이 되기위해서 클라우드 서비스는 당연히 필수였고 베조스의 비전에 일찍 자리헀을 것이다.


신기술이 적용된 세계와 구세계의 차이는 몇 개가 있다.

특히 고용에서 차이가 많은데 아마존의 예로 보면 구기술에 비해 약 1/10 밖에 고용을 창출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엄청난 돈을 창업자에 몰아준다.

최근 샌프란시스코,실리콘밸리 등에서 나타나는 양극화는 바로 이러한 기술의 쏠림 현상의 결과물이다.


금융위기 이후에도 나스닥은 기술열풍이었고 덕분에 막대한 부자들이 탄생하는 이면에는 맥도날드 알바 채용 경쟁률이 1백대 일 이상으로 올라가고 있다.

여기서 하나 떠 올려볼 책이 있다. <스타벅스에서 일한 할배>이야기다. 명문대 명문집안으로 언론에서 좋은 직업을 가졌던 할아버지도 위기에 쫄딱 망해 스타벅스 알바를 구해야 했다.

과연 더 떨어지는 조건의 인간들이 쉽게 이 변화에 적응이 가능할까? 

저자는 매우 부정적이다. 

저자의 시선은 책 곳곳에서 따듯함을 보여주기는 한다.

아주 높은 조건에도 어메리칸 드림과는 아주 먼 거리의 허드렛일에서 커리어를 시작해야 하는 젊은이들을 안쓰러워하기도 한다. 또 기술직으로 열심히 수리 하고 있는 기능공을 보면서 최근에 개발되고 있는 첨단기술이 그들의 일을 단숨에 몰아내버릴 것을 예상하며 우려한다.


저자가 책 말미에 내놓는 결론은 터미네이터 보다는 스타트렉이 미래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터미네이터는 지구의 현실이다. 바로 미국의 드론 산업 덕분에 아프간과 파키스탄은 바로 그 세상이 되어벼렸다. 바로 얼마전에도 탈레반 지도자를 태운 택시기사는 드론의 폭격으로 억울한 죽음을 맞아야 했다.

그럼 앞으로는 스타트렉이 될까?

저자의 책은 안타깝게도 그 사이의 다리가 될만한 논리적 개연성은 보여주지 못한다.

하나는 직업대출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 정도.

다른 하나는 교육시스템이 과거의 도제 제도에 의함이므로 앞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 정도로는 좀 약하지 않을까?


내 의견을 첨언하자면 기술은 쓰기 나름이다. 한곳으로 몰아간다면 극단적 양극화와 공황을 가져올 수 있다. 1,2차 대전 이전의 자본주의는 엄청난 호황을 누렸지만 피케티의 표현을 빌려 보면 도금시대였다고 한다.

지금의 현실이 점점 기술의 소용처를 한 곳으로 몰아간다는 느낌이다. 미국은 고속철이 없어서 석유는 쓰고 CO2는 쏟아내면서도 우주개발계획은 세우는 사회다. 베조스도 일조하고 있는데..

우주관광 상품과 길거리를 걸어야 하는 빈민들의 대조, 터미네이터까지는 아니더라도 원더풀 월드는 아닌셈이다.


저자의 기본 주장인 인간이 덜 필요해진다는 건 백번 동의한다. 그렇지만 해결책은 각 국가 내지 사회가 자원을 동원해 해결하도록 남겨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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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난민 - 꿈을 이룰 수 없는 시대에 꿈을 강요당하는 젊은이들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혼다 유키 해설, 이언숙 옮김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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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희망을 단념시켜라>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다수의 청년들에게 더 이상 희망을 주려고 하지말라는 주장이다.


일본의 청년 사회학자가 2009년에 외친 이야기다.


그는 일본의 교육이 잘못되가고 특히 진로교육에서 꿈,희망 등 원하는 것으로 가라고 한 결과 낭인들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원래 예술분야가 그렇다. 소수의 성공 뒤에는 무수한 무명인들이 허탈한 가슴을 쓸어 안고 남게 된다.

그래서 차라리 솔직히 이야기해서 단념시키는 진로 교육을 시키라는 주장이다.


그의 책이 한국에 5년여 시간이 더 지나 번역되고 호응을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이 닮아가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노량진 공시생을 보면 매번 수십대 일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수만명이 모여 있다.

김훈의 <영자>에 잘 묘사된 풍경이다.


원래 이 책 <희망난민>은 피스보트라는 배를 타고 세계일주를 떠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99만엔으로 세계일주 멋지게 들리지만 싼 덕분에 여러 해프닝이 발생한다.

배안에서는 평화라는 목적성에 경도된 그룹,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단순한 목적의 그룹, 그냥 여행자 그룹 등등으로 나뉜다.

각기 다르지만 공공성이 필요한 그룹은 새로 낯선 사람들과도 어울리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소외되고 피로한 현실을 다르게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다.


이들의 사회적 배경은 프리타와 같이 경제적난민들이 많다. 경제의 부족을 사회적자본으로 보충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이런 그룹을 지켜보면서 저자는 소외자를 위해서는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피스보트>의 역할이 분명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반면 이런 소프트한 해결책 덕분에 사회에서 강자인 기업주나 지배층은 더 심하게 위로 받아 좀 나아진 청년들을 착취한다. 그러니 진정한 사회변혁에는 오히려 장애라고 한다. 마치 레닌이 빈민운동가 신부를 강력하게 경쟁자로 여기고 비판하던 논조다.


어쨌든 희망을 단념시켜라는 구호는 결코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보인다.

한국의 공시족, 과연 자신이 몇년후의 모습이 어떨지 미리 안다면 꼭 같은 길을 가야 할까 의문이 든다. 

그냥 해보자, 노력하면 된다, 넌 할 수 있다

이런게 희망이다. 

얼마전 티비를 보는데 소위 청년멘토가 와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미안하지만 난 동조못하겠다. 

이 책의 저자와 마찬가지로.


일이 안될 때는 목적이 합당한지, 방법이 적당한지 수시로 되돌아 보아야 성과를 낼 수 있다.

목적지에 대한 인식, 그리고 방법으로서 열정 이상으로 중요한 고민을 같이 해주지 않으면서 희망 뿌리기를 하는 사회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강하다.

도대체 애들 게임을 시키면서 튜터리얼은 엉망, 초기 파라미터는 게이머 수준에 따라 전혀 다르게 설정이 되었다고 비유한다.


이것도 한국의 수저 논쟁과 비슷하지 않을까?


희망이 꼭 좋은 처방인지에 대해 같이들 논의할 때가 한국도 왔다고 생각한다.

젊은 사회학자의 참신하고 도발적인 발언은 그렇게 짙은 여운을 남긴다.


청년멘토,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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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문화산책
김규현 지음 / 정신세계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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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이라는 호칭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의 뿌리는 불교에서 천상의 음악의 신 <건달파>에서 나왔다. 조선으로 들어와 고려불교를 몰락시키면서 절에서 음악사역을 하던 이들이 세상을 돌아다니며 노래하고 춤추는 공연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건달>이 된 것이라고 한다.


건달의 뿌리는 어디일까? 놀랍게도 티베트라고 한다.


티베트의 불교가 한반도에 끼친 영향은 건달만이 아니다. 

절터를 가보면 당간지주가 있다. 이는 탱화라고 걸개 그림을 세워보여주는 돌인데 이런 문화의 출발점이 티베트라고 한다. 유목민족이라 한 곳에 놔두는 불상 보다는 그림으로 만들어 옮겨 다니면서 이런 관습이 생겼다고 한다.

건달,탱화 말고도 한반도와 티베트의 유사점인 매우 많다.

미숫가루,육포,순대 등 음식도 있고 색동문양,범패 등 음악 등 일일이 열거해보니 놀라울 정도다.

중국을 사이에 두어 멀리 떨어졌지만 원과 청은 티베트 불교를 국교로 숭상하다 보니 때로 더 빠르게 한반도까지 영향이 미친 셈이다.


그럼 티베트는 왜 불교가 융성하게 되었을까? 답은 이슬람의 인도 침공에 있다. 

삽시간에 이교도로 몰려 몰락하게 된 불교 승가집단이 대거 히말라야 넘어 티베트에 정착하면서 일종의 르네상스가 만들어진 셈이다. 

그래서 불교연구가들은 대승소승의 구분 보다 밀교로 통칭되는 티베트의 비중을 높게 쳐서 셋으로 나누어 불교를 분류한다.


불교의 핵심에는 인도 문화가 많이 녹아 있다.

종교 자체도 지혜를 담은 그릇이지만 특히 인도의 설화에 지혜가 많이 담겨 있다.

선녀와 나무꾼, 장화홍련 등의 스토리의 뿌리는 인도였다. 그리고 티베트에서는 이 설화를 이어받아 가공해 거대한 공연으로 만들어 계속 연출했다고 한다.

더 재미있는 건 이런 공연으로 만들어지는 수익금으로 자신들에게 가장 필요한 사회간접 자본인 계곡을 잇는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이런 일을 주도하게 된 인물은 불교 승려가 있었다. 

종교와 예술,사회사업이 희한하게 결합된 천재적 발상이다.


이렇게 하나 하나 찾아보니 티베트와 한반도가 매우 가깝게 느껴진다. 

저자 김규현 소장님은 93년부터 오랜시간 실크로드와 티베트를 직접 탐방하고 주요 사료를 번역한 티베트 전문가시다.

잘 몰랐던 인연을 일깨워주고 물질을 넘어 오래 남는 깨달음의 세계를 알려주는 구루(현인)로서 사회에 깊은 족적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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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0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30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1026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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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은 돈에 민감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돈은 그냥 벌리지 않는다. 나름 상당히 고심한 전략에 따라 만들어진다.

많은 소설을 써 낸 대작가에게 <발자크>라고 불러주는 건 경의의 표현이다.

한국의 이병주, 일본의 야마자키 도요코 등이 그러했다.

발자크는 많은 성취를 이뤘지만 평생 돈에 쫓겼고 그럼에도 다작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개발한 독특한 전략이 있다. 

바로 인물재등장 기법이다.

캐릭터 하나 하나 가공해서 무대 위에 세우는 수고를 줄이고 개성이 뚜렷하게 만들어진 창작물은 수시로 다른 작품에 드러내서 완성도를 높인다.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생산성이란 관점에서 매우 효율적인 선택이다.

김진명의 작품을 쭉 읽어가면서 <발자크>와 포개졌다.

인물들이 이름을 바꾸지만 계속 재등장한다.

정보기관의 수사관, 검사,변호인 등 법조인.

이 작품의 경우는 카지노의 바카라 기법도 재활용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건 테마다.

국제정치 속의 음모론 그 안의 사건, 원인을 찾는 탐구자.

같은 패턴의 반복이다.

인물 등장보다 더 심하게 패턴의 반복이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잘 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인은 잘 못 믿는다. 특히 정부 발표를. 진실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 생각하니 믿거나 말거나가 된다. 김진명은 정확히 이 대목을 잡아낸다.

팩션. 팩트와 픽션이 결합한 형태로 가까운 어제를 재구성해서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독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가까운 과거이다 보니 오늘과 바로 연결되고 때로 미래를 내다맞추기도 한다.

과거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예견력을 발휘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러니 더욱 독자는 몰입한다.

위험성은 있지만 이런 장사수법은 나름 효과적이다.

발자크도 당대를 탐닉했다. 그의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법정과 상가, 무도회 등 당대의 파리가 아주 잘 그려져있다. 

김진명의 소설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세월이 아주 지나 미국 CIA의 정보파일들이 다 공개된다면 김진명의 추론들이 맞았는지 확인될 것이다. 우리가 이광수나 채만식의 소설을 멀리서 보듯이 후학들이 비평 도마위에 오를 것 같다. 수십년이 지난 뒤에 별로 고칠 것이 없더라는 완결성이 보인다면 아주 좋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닐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어쩌랴. 믿거나 말거나 하는 카더라 통신이 정보투명도가 낮은 이 나라의 여론의 빈공간을 채워주는데 비하면 김진명의 소설은 그 나마 낫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점을 다시 확인하면 베스트 소설을 만들기 위한 김진명의 전략은 매우 효과적이다. 그럼에도 발자크가 부러워했을 것이지만 테마 우려먹기 까지 따라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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