퀼트나 옷을 만들기에는 타고난 재능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손은 느려터졌고, 성질은 더러워서 대충 넘어가지를 못하니 홈질 하나 하면서도 몇번씩이나 뜯어버리는 통에 붙들고 있는 시간에 비해선 만들어놓은 물건들이 얼마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느질은 내 좋은 취미생활이 되었다.
내가 전하는 애정과 위로의 방법이 되기도 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도 꼭 나아서 여행가라며 여권지갑을 만들어 선물했었다.
언니가 사용했는지 여부는 모르겠다. 내가 연구년으로 떠나 있는 동안 언니는 여러번 비행기를 탔지만... 언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그 지갑은 새언니에게 남겨졌다.
안타까운 건.. 벌써 바늘귀에 실을 꿰는게 어려워졌다는 거.
나이가 드는 것처럼 노안이 되는 것도 인간이 어쩔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냥 좀 쓸쓸하다. ㅎㅎ
학교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떨어진 단추 달기' 수준을 넘어가는 바느질을 하지 않았다.
가사 시간에 했던 바느질은 글쎄 뭐라고 해야할까? 새가빠지게 만들었지만 절대로 입을 수 없는 촌스러운 옷들의 행진 같았다. 정말 대책없는 왕퍼프 소매 블라우스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작업했는지.. 완성하고 나서 절대로 입어본 일이 없는 그 블라우스는, 그래도 오랫동안 내 서랍장에 놓여 있었다. 대단한 업적인양 생각하다가도 입지도 못할 옷을 만드느라 그토록 오랫동안 고생했다니 쯧쯧쯧..하면서.
교과서에 적힌 대로 2밀리미터 간격으로 촘촘하고 꼼꼼하게 작업해갔더니 되려 가사선생님이 탄복할 정도였다. 웃긴 건 30년전에도 엄마가 대신 바느질을 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는 거. 바느질할 시간에 공부하라고 했단다. 우리 엄마는? 내 일을 엄마가 도와준 적은 글쎄 거의 없는 것 같다. 이게 자식 많은 집 공통점이라고 할 테지만 큰언니나 동생들은 엄마 손이 많이 거쳤던 것을 알고 있다.
6년쯤 전이었나? 옷 가격도 만만찮고 내 몸에도 안 맞고.. 차라리 옷을 만들어 입겠다며 바느질을 시작했다. 그러다 옷만드는 재미,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데서 오는 뿌듯함을 알게 되었다.
그때쯤.. 알게 된 이가 있었다. 출장갔다가 우연히 그가 연 퀼트 클래스에 참가하기도 했고, 그가 첫번째 책을 냈을 때는 내 일처럼 기뻐하면서 좋아라 했던 기억이 있다.
그가 두번째 책을 냈다. 그녀를 닮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소품들 패턴이 담긴 특별한 책.
비슷비슷한 퀼트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에 비하면 그녀의 작품들은 확실히 그녀의 이름이 오롯이 새겨진 그녀만의 것이다.
부디 이 책이 대박나서 더 이상 월세 걱정 않고 그녀가 좋아라 하는 바느질을 오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그녀가 사랑하는 그녀의 딸과 오랫동안 행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