쑤코타이의 아침.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빗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무섭게 내리는 비. 온 집이 흔들리는 것 같다.
천둥소리, 번개, 빗소리마저 거칠게 느껴진다.
지금이 우기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수코타이에서의 둘째날.
비는 말끔히 그쳤다.
간밤에 큰 비가 내린 게 맞나 싶게 조용한 세상.
세수를 하고 집을 나섰다.
짧은 아침 산보. 여행자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진 모양.
현지인들 외엔 나밖에 없다.
살랑이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맑게 울려퍼지는 새소리에 행복을 느꼈다.
아침 공양하는 스님들이 지나가신다.
한가롭게 짧은 거리를 오가다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에 들렀다.
단촐한 아침식사. Rice with fried mixed vegetables. 30밧.
망고쉐이크 한잔을 시켜 먹고 아침이 밝아오는 걸 뿌듯하게 바라본다.
late checkout을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너무나 불친전했던 아저씨가 떠올라 이내 마음을 접었다. 열심히 가방을 싸고 체크아웃을 하면서 짐을 맡겼다.
드디어 오늘 쑤코타이 역사공원을 걷는다.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다.
새로 나온 가이드북을 낑낑대며 가져왔는데(너무 두껍고 무겁다), 매표소 위치마저 엉터리다.
(여행 다녀온 후 덕분에 잘 다녀왔다는 인사와 함께 가이드북에서 잘못된 점을 몇가지 알려줬는데, 고맙다는 말은 없고 엉뚱한 얘기를 해서 황당했다. 나 같으면 고마워했을 텐데 왜 기분 나빠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하여튼.. 가이드북은 그냥 참고만 하면 될 일.)
비온 뒤라 그런지 약간은 서늘한 기운마저 감돈다.
쑤코타이 역사공원을 조성하면서 원래 이곳에 살던 이들은 모두 신시가지로 이전되었다고 한다.
역사공원은 잘 단장되어 있고, 10시가 넘어서자 관광객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한가로움을 만끽했던 것은 불과 한 시간 남짓.
뜨거운 태양 아래 이내 지치고 말았다.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나로서는 걷다 쉬다 하면서 느릿느릿 움직였다.
태국의 역사나 불교미술에 대한 이해가 높은 편은 아니라서,
또 모든 유적을 모조리 봐야 겠다는 주의가 아니라서
한가롭게 천천히 구경다닐 수 있었다.
몇 년 전 쑤코타이 역사공원을 찾았던 한 관광객이 잔인하게 살해당했던 적도 있고
아무리 멋진 유적이라 해도 외진 곳을 찾아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숙소에서 짐을 찾아 나왔다.
핏싸눌록으로 가서 치앙라이행 밤버스를 탔다.
번쩍거리는 TV, 시끄러운 음악소리..
안대를 하고 귀를 막고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