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다니다 현장으로 들어가 살았고, 세상이 바뀐 후(?) 선후배들이 이리저리 흩어질 때도 꿋꿋하게 현장에 남아 운동가로 살고 있는 한 선배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던 적이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겠다며 운동을 하던 이들이 어느 날 정치권으로, 학계로, 돈벌이(돈벌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로 뿔뿔이 흩어질 때 어떻게 노동자들과 함께 공장을 지킬 수 있었습니까?
그 선배는 제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학교 출신들은 돌아갈 데가 너무 많았다. 그러나 우리를 믿고 함께 했던 노동자들은 돌아갈 곳이 없었다. 나를 만난 후 인생을 바꿔버린 그들을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다.
물론 제가 저렇게 거창한 명분을 떠올리며 '불매'를 얘기한 것은 아닙니다.
답답하고 속상해서 생각하다가 언젠가 나눴던 저 대화가 문득 떠올랐던 거지요.
어제는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생각이 났습니다.
애초에 제가 '불매'를 얘기할 때, 저는 해고자 '김종호'씨 한 분을 보고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의 동조나 호응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원하는 연대는 알라딘 불매였고, 그것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알라딘의 소비자였던 제가 불매에 동참한다는 것은 여러가지 불편을 동반하는 것이었지만 그 정도는 해고자 김종호씨를 생각할 때 감수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생각하는 것은 김종호씨가 여전히 해고상태라는 사실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 그가 일방적으로 해고당한 노동자라는 사실과 상시적으로 도급?파견? 노동자들의 노동력에 의존하며 기업을 운영하는 알라딘에서는 그가 제기한 의혹에 대해 명확하게 밝힌 적이 없고 저는 만족할 만한 답을 듣지 못했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서재를 닫고 사라지려던 마음을 접었습니다.
언젠가는 알라딘 서재를 접겠지만, 지금은 버티기로 했습니다.
물론 알지요. 제가 버틴다는 게 대단한 게 아니라는 것도, 이런다고 김종호씨 문제가 잘 풀릴 거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할 수 없다는 것도, 이 세상에 비정규직이 김종호씨 한 분만 계신 것도 아니라는 것도. 하지만 지금, 알라딘을 이용하던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은 계속 불매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이번 일로 많이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