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온 세 명의 농업 노동자가 있다.

이들은 눈발이 날리는 날에도 얼음보다 더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가 미나리를 채취했다.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많은 채소들도 이처럼 많은 농업노동자들의 수고로움 덕분이다.


이들은 울산과 기장의 미나리밭에서 새벽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일주일에 토요일 하루가 그들에게 보장된 유일한 휴일이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국의 많은 노동자들처럼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다는 책임감과 보람으로 힘든 노동일을 견뎌냈다.


언젠가부터 사장부부는 임금을 체불하기 시작했다.

이번 농사가 끝나면 목돈으로 주겠다, 이번에는 돈이 많이 남질 않아서.. 다음 수확철에는 꼭 주겠다, 땅을 팔면 주겠다... 사장의 말은 매번 바뀌었지만 수천만원의 체불임금이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주겠지, 꼭 주겠지, 준다고 했으니 이번에는... 


올해 2월, 마침내 미나리 농사가 끝나고 중국 노동자들은 임금을 받는대로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온 가족이 모여 설 명절을 함께 보낼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사장은 밀린 임금을 해결해주지 않았다. 찬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체불임금을 달라고 요구했다. 사장은 숙소에서 나가라며 수도를 끊어버렸다. 


땅이 팔렸느냐고 계속 물었다.

사장은 더이상 땅이 팔리면 주겠다는 말도 하지 않고 '돈이 없다. 모른다'는 말만 계속했다.

결국 노동청에 체불임금건을 진정 접수하였다. 

사장은 체불임금은 없다며, 600만원을 줄 테니 합의하자고 했다.

3명의 체불임금은 모두 합해 7천만원. 도저히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의 금액이 아니었다.


사장은 경찰에 업무방해로 신고했다. 

처음 출동했던 경찰들은 임금체불건을 확인하고는 "돈 받고 귀국하라"며 돌아갔다.

뒤이어 다른 경찰들이 왔다. 이들은 노동자들의 임금체불 상황을 다 듣고 난 후에 "안심해라, 우리가 임금 받도록 도와주겠다. 그동안 보호해줄테니 같이 가자. 임금 다 받기 전에 귀국 안시키고 우리가 보호해주겠다"고 했다. 경찰의 말을 믿고 그들이 안내하는 대로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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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서울 중구 삼일대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노동청으로부터 노동조합 설립 신고 필증을 받은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 노조위원장(왼쪽 둘째)과 조합원들이 기뻐하고 있다. 이로써 이주노조는 2005년 4월24일 출범 선언을 한 지 10여 년 만에 합법노조가 됐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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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야 동지가 저토록 환하게 웃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너무나 당연한 요구가 무참히 묵살되고 지난한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오랜 투쟁의 성과이고, 오랜 기다림의 결과였다.


노동자가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기본적인 권리인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기까지,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은 10년 이상을 싸워야했다.

초창기 한국의 이주노조 위원장들은 차례차례 표적단속이 되어 추방되어야 했고,

가족의 장례에 참석했다 끝내 입국하지 못하고 본국으로 되돌아가야했던 노조위원장도 있었다.

여권도 없이 종이 쪼가리 한장만 손에 쥔 채 본국으로 돌려보내진 노조위원장도 있었음을 기억한다.


그들도 오늘의 성과를 기뻐할까?

그들의 지난 시간의 땀과 눈물, 분노와 투쟁이 오늘의 결과를 낳았음을 잊지 말자.


이주노조 합법화는 겨우 시작일 뿐.

앞으로 우리 앞에 또 무슨 일들이 벌어질지 조금은 두렵지만.. 함께 하는 동지들이 있으니 다시 힘을 내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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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인터넷을 떠돌던, 한겨레에 보도된 한 결혼정보업체의 탈북여성 비하 광고를 보며 나는 
몇 년 전 베트남 국제결혼 르포에서 한국남성을 왕자님으로 묘사했던 조선일보 기사가 생각났다. 당시 많은 베트남 이주여성들과 유학생들이 "베트남 여성은 상품이 아니다"라며 반대 집회를 열고 분노했던 것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나보다 약한,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을 깔보고 무시하는 것. 
그들이 나와 똑같은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절대로 이런 광고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사회의 인종주의는 종종 '순혈'과 혼혈'을 들먹인다. 

한국처럼 외국의 침략을 많이 당한 나라에서 도대체 누가 '순혈'인가? 

순혈의 기준이 뭔가? 

순혈은 좋은 것인고 혼혈은 나쁜 것인가?


그리고 오늘 인터넷을 떠도는 또 다른 업체의 광고지를 봤다.

전신주에 붙어 있는 이 광고,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라며 이주여성과의 결혼을 부추기던 광고를 봤을 때와 비슷한 분노가 치밀었다.


이주여성도, 탈북여성도 사고 파는 상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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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7-03 0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미친
 

*(사)이주민과함께가 매월 발행하는 소식지 <더불어 사는 삶> 7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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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은 소박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강산이. 한국 국적을 가진 아이지만 아버지의 고향으로 가서 살다가 돌아와 다시 한국어를 처음부터 익혀야 하는 아이를 위해 필요한 일을 하자는 것. 그래서 한국어를 가르쳐 줄 자원활동가를 소개해줬고, ‘말귀를 못 알아먹는아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학교를 설득하여 아이가 집 근처에 있는 학교로 편입할 수 있도록 도왔다. 2년 전의 일이다.


  지금 우리 곁에는 다양한 이주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살고 있고, 이들 가운데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다. 태어난 곳도, 국적도, 처한 상황이나 어려움도 제각각 다르지만 혼자서 해결하기에는 벅차다. 다문화인권교육센터에서는 이주배경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어려움을 듣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가족과 상담을 진행한 후에 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진행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소풍모임을 시작했다.

이주배경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지지하는 모임, ‘소풍에는 이 아이들이 더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도록 마음을 낸 사람들이 모였다. 어떤 이는 일주일에 한 번씩 부족한 학교공부를 도와주거나 국어공부를 돕고, 어떤 이는 한 달에 한 번씩 아이들의 그림 지도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우리는 소풍을 간다. 5월에는 해운대로, 6월에는 인도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점심을 나눠 먹었고, 7월에는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의 소원대로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했다.


  한 달에 한 번 소풍가는 것에서 시작된 이 작은 모임이 이주배경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작은 버팀목이 되었으면 좋겠다. 태어난 땅이 낯설어진 아이들에게, 새로 온 낯선 땅에서 비틀거리는 아이들에게 소풍전날의 설레임과 기쁨이 되고 싶다.


*'강산'은 아이의 본명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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