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하늘이 새하얀것을 보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가다 서다를 반복해서 두시간이 걸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두정거장 앞두고 버스 운전사 아저씨는 승객들에게 여기서라도 서현역으로 돌아가서 전철을 타는 것이 빠를거같다고 충고하셨다. 마치 피난민처럼 한 줄로 줄을 서서 우산을 들고 서현역으로 되돌아갔다. 얼마나 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철역을 들어서자 환승이 안 되고 새롭게 900원이 찍히는 것으로 보아서 30분은 넘게 걸렸을것이다.
전철이라고 뽀족한 수가 있는게 아니어서 11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승객은 꽉차서 2대를 보내고 3대째 겨우 탔다. 이미 시계보는 건 포기한 상태...12시가 넘자 사무실에서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고 문자가 오고.. 어디서 내렸는지도 모르겠지만 무작정 내려서 반대편 전철을 타고 집으로...
전철역에서 다시 마을 버스로 갈아탔지만 언덕배기인 우리 집을 마을 버스가 올라갈리 만무해 3정거장을 다시 걸어서 집에 오니 2시가 넘었다.점심을 대충 먹고 오전에 놀러나간 아들놈이 3시가 되어도 올 생각을 안해 다시 주섬주섬 챙겨입고 우산들고 아파트 놀이터 순례를 시작했다.
열선이 깔린 오르막길들은 눈이 그치자 조금씩 녹아가고 있었고, 경비실 직원들과 관리실 아저씨들은 모두 나와서 제설작업에 여념이 없으셨다. 그런 분들덕분에 아파트 동과 동 사이가 길이 나고 쓰레기통 까지의 길도 생기고 있었다.
아이를 찾으러 온동네 놀이터를 다 뒤지면서 동네를 구석구석 다녔지만, 눈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는 주민들과 아이들이랑 눈싸움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집앞 눈을 쓰는 주민은 딱 두사람만을 보았다. 어떤 아저씨와 아들만이 본인들의 아파트 앞을 쓸면서 길을 내고 있었을 뿐이다. 카메라를 들고 나와 눈 쌓인 나무를 털면서 눈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은 수많이 보았지만....
아이 찾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올라가던 중 아파트 후문에서 다시 눈 치우는 관리실 사람들을 만났다. 어떤 여자분도 같이 눈을 치우고 있었고, 눈 푸는 장비도 하나가 비어 있길래 냉큼 들고 밀었다. 한 15분 쯤 치우고 나니 입구쪽 눈은 대충 치워졌다. 같이 눈을 치우던 여자분이 나에게 주민 이시냐고 물어서 요 앞동에 산다고 했더니 몇호시냐고 담부터 특별대우 해주시겠단다. 관리실에서는 여직원까지 나와서 눈을 치우고 있었던 것이다. 민망해져서 사람들이 눈사진 찍는거만 하지말고 눈도 좀 같이 치우면 좋겠지요라고 했더니 아저씨들까지 막 웃으셨다.
물론 아이와 좋은 추억을 위해 같이 눈싸움도 하고 사진도 찍고 내리막에서 눈썰매도 타고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집앞 눈이라도 한번쯤 같이 치우는게 더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집앞 눈이나 치운다고 찻길 눈이 어떻게 되는거 아니며 옆동네 눈은 어떻게 할거냐 물으시며 그보다 먼저 왜 폭설이 내렸는지 엘니뇨 현상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던가 아니면 용인시의 제설 작업의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를 생각해보라고 묻는다면 거기까지는 평범한 소시민인 내가 대안을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평범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앞 눈이나 쓰는 것이니까...경비원 총각들이나 관리실 아저씨들이 그런 일 하라고 월급받는건데 왜 눈구경하고 즐거야할 주민이 눈을 쓸어야 하냐고 화내신다면 것도 할말 없다.
한참을 뛰어놀다 집에 들어온 아이에게 다음부터는 친구들이랑 놀지만 말고 아저씨들 눈치우시는거 도와드리라고 , 너희들 그정도 할 만큼 컸다고 ,왜 그 아저씨들만 눈치우냐고 우리가 사는 집인데 우리가 치워야지 라고 야단치는 걸로 4시간동안의 행방불명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