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르소는 거짓말하는 것을 거부한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 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서문에서
"사람들은 나를 빼놓은 채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참여도 시키지 않고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나의 의견은 물어 보지도 않은 채 나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때때로 나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로막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누가 피고입니까? 피고라는 것은 중요한 겁니다. 내게도 할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해보면, 할 이야기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는 했다. 나는 내 행동을 그다지 뉘우치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노발대발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의외였다. 그에게 나는 다정스럽게, 거의 애정을 기울여, 내가 참말로 무엇을 뉘우치는 일이란 한번도 없었다고 설명을 해주고 싶었다. 나는 항상 나에게 일어날 일, 오늘의 일 또는 내일의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이다."
"판결문이 열 일곱 시가 아니라 스무 시에 낭독되었다는 사실, 그 판결문이 전혀 다를 수도 있었다는 사실, 그것이 속옷을 갈아입는 인간들에 의하여 결정되었다는 사실, 그것이 프랑스 국민(혹은 독일 국민, 중국 국민)의 이름으로라는 지극히 모호한 관념에 의거하여 언도되었다는 사실, 그러한 모든 것은 그같은 결정에서 그 진지성을 많이 깎아 내리는 것이라고 내게는 생각되었다."
"그때,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내 속에서 그 무엇인가가 툭 터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목이 터지도록 고함치기 시작했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기도를 하지 말라고 말했다. ...... 너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너에게는 없지 않느냐? 나는 보기에는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언제나 또 옳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을 했다. 그러니 어떻단 말인가?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내가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저 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 온 것만 같다.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그 까닭을 알고 있다. 너도 그 까닭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 온 이 부조리한 생애 전체에 걸쳐,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쳐서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 카뮈, <이방인>(김화영 옮김,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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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정서적으로, 감정이입해서 하는 책읽기는 자의적인 이해와 해석을 하기 쉬운, 즉 誤讀의 함정에 빠지는 한 길이겠지만, 오늘은 <이방인>이 새롭게, 예언적이고 암시적인 문장으로 읽힌다. 왜일까....... 그 이유를... 나는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