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꼬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베르톨트 브레히트,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전에 고등학교 때 한참 정치에 꿈이 부풀어 있을 때, 국회의원 딸에게 편지를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대학 갓 들어가 예술이니 사상이니 미쳐 있을 때, 유명 화가의 전시회에서 심오한 질문을 해댔다. 화가는 한참 쳐다보더니 쌩까버렸다. 다시는 글 안 쓴다고 군대에 가서는 한참 뜨고 있던 여류시인에게 오밤중에 전화를 했다. 그녀가 정중히 전화를 끊었을 때, 그때도 참 부끄러웠다. 그러나 두고두고 창피한 것은 회사 들어가 처음 만난 여자 앞에서 노동자들이 불쌍하다고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 이성복 시집,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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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모르게 쉴새없이 입안에서 맴도는 돌림노래처럼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단 한 줄의 글도, 아니 단 한 마디의 말도 끌어 내지 못하고 며칠을, 몇 달을, 숱한 나날들을 그저 흘려 보낸다.
'무엇을'과 '어떻게'가 모두 오리무중이다.
내 속에서 무언가가 고이고 차서 솟아 오를 때까지, 저절로 스며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짐짓 느긋해지려 해도 그건 위로가 안 된다. 그렇게 위로해서도 안 될 일이다.

이성복의 시집을 넘겨보다, 어느 페이지에선가 '쌩까다'란 말을 만난다. 그이가 이런 말을 구사할 줄은 몰랐다. 시인도 나이가 들면서 어깨에 힘을 많이 뺀 모양이다. 어깨에 힘을 빼고 자신의 부끄러움과 상처를 얘기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단지 세월의 힘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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