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검색할 일이 있을 때 나는 '알라딘'을 이용한다
다른 온라인 서점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알라딘에는 다양하고 생생한 독자 서평과 함께 독자들이 자기 기준으로 뽑아놓은 독서 리스트들이 있다.
이 '리스트의 달인'들이 작성한 독서 목록을 따라가다 보면,
나와 아주 비슷한 독서 취향을 가진 이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의 기분은 좀 묘한 것이어서,
아주 어릴 때 헤어진 이란성 쌍둥이 자매와 뜻하지 않게 마주친 듯한 놀라움과 반가움과 묘한 상실감(나만의 독자성을 잃어버린 듯한) 같은 걸 맛보게 된다

어쨌든 그러저러한 경로로 따라가다가 발견한 미지의 한 작가,
시마다 마사히코
처음엔 이런 말에 끌려서 수첩에 그의 책 목록을 적어놓았다

"영원히 거짓말을 함으로써 연애나 청춘을 결코 끝나지 않게 하는 것이 소설가의 사명이며, 거기에는 체력이 필요하다. 일본 문학의 근본적인 문제는 체력 부족에 있다."
<피안 선생의 사랑> 중에서

(이 작품 <피안 선생의 사랑>에 관하여 누군가는 이런 독후감을 남겼다 :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패러디한 이 작품을 읽으면서 배꼽 잡아 웃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진지한 텍스트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정신적인 인간 관계를 육체적인 인간 관계로, 진지한 관계의 열망은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바꾸어 놓았다. 심하다, 마사히코!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에서 개로 바꾸어 놓았다. 심하다, 마사히코! 연애 박사 선생의 섹스 일기. 킬킬. 심하다, 마사히코!
너무 진지하게 살면 피곤한 일이다. 가끔은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긴장을 푸는 게 좋지. 그 동안 소세키의 <마음>이라는 텍스트에 지나치게 열중했던 것 같다. 이제 그 우울함에서 벗어났다. 시마다 마사히코 덕에 모처럼 유쾌했다. 웃으면서 살아야지.)


점점 이 작가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다

결국 어제 시마다 마사히코의 책 몇 권을 구했다
그 중의 한 권, <천국이 내려오다>의 책 표지와 작가 후기를 들춰보다 이런 구절들이 눈에 띄었다

책날개에서

시마다 마사히코 / 1961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나카노지마 중학교 2학년 때 신의 소리를 듣고 3학년 때에는 소설가가 되기를 결의하였다.......


작가 후기에서

재수없게 이 책을 읽고 만 독자들 중에는, 작가이며 등장인물 중의 한 사람인 시마다 마사히코에게 독약이라도 먹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잠시 작품의 뒷얘기를 해볼까요.
내가 이 작품에 착수한 것은 1984년 10월이었습니다. 그 전후에 <나는 모조인간>이란 작품을 썼습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가장 평가가 높았고, 나도 회심작이라고 공언하기에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이 성공에 흥분한 나는 이쯤에서 대 실패작을 남겨두리라 생각했습니다. 비평가나 신처럼 위대한 대작가에게 칭찬을 받으며 각각의 진영에 끌려들어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죠. 또 독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나는 마조히스트라서, 그들의 비판의 칼날에 난도질 당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 프로 작가는 작품을 하나의 유토피아로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한 권의 책을 읽은 독자로 하여금 잠시나마 유토피아를 즐겼다는 기분이 들도록 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들은 유토피아가 속임수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유토피아와 현실 생활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아주 뻔뻔스런 인간이라, 뫼비우스의 띠 정도 가위로 싹둑 자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자른 사람도 있고요.
유명한 사람으로는 랭보, 니체. 그들은 신이나 부처님 따위를 이용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이 원죄를 용서하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유토피아가 되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모델로 아시와라 마리오(이소설의 주인공)을 조립하였습니다.
타자의 식민지인 자기....... 이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려는 작업이야말로 유토피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국이 내려오다>는 희망의 책입니다.
...... 여성 독자에게는 2500번의 키스를, 남성 독자에게는 애교 띤 웃음을 100시간 보냅니다. 작가를 원망하는 분은 권두의 사진을 다트로 삼아 주세요.
그럼, 멍청한 독자 여러분 안녕.


일단 흥미롭다. 무엇보다 작가 후기의 마지막 인삿말이 발랄하고 귀엽다!
위악적인 그의 포즈와 버릇 없는 발언(독자를 조롱하는 듯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자기 작품에 대해 시니컬한)의 배면 심리에 강한 호기심이 인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유쾌하게 그가 보내는 2500번의 키스를 받을 것인지, 아니면 그의 사진을 다트로 삼아 창을 던지게 될지는... 좀 두고 볼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 정작 책의 내용보다 작가의 프로필이나 특이한 성향, 독특한 이력 따위에 더 호기심을 갖는 내 취향의 저변에는 어떤 심리가 깔려 있는 걸까
독자에게는 저마다 '작가에 대한' 채 발현되지 않은 '오빠 부대'의 유아적인 성향이 조금씩은 다 있는 걸까
가령 '독자와의 만남' 같은 행사에서 꼭 작가의 사인을 받고 싶어하는 심리와 일맥상통하는 것......


한 가지,
내가 이런 '위악적이고 방만한' 스타일에 끌리는 이유 중 하나는 명백히 그런 기질(자질)이 내게 결여돼 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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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파도를 타고 가다가 이런 글을 하나 발견하고, 잠시 작은 감동에 젖었다

스페인어 용법 사전의 서문(스페인어 사전은, 다른 외국어의 경우도 이런 예가 있겠지만, '단어 정의를 학문적으로 설명하는 사전'과 '용법 사전'으로 크게 나뉜다고 한다. 후자는 낱말의 정의를 더 쉽게 설명하고 예문을 많이 싣는다. 외국인들이 공부하기에는 후자가 훨씬 좋을 듯)이라는데, 이 서문을 <백년 동안의 고독>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썼다
'말의 창고'이자 '언어의 심해'인 사전의 머릿글을 국어학자가 아닌 작가가 쓰도록 하는 사회의 문화적 안목!(이래서 또 스페인은 매력적인 나라이다!)

마르케스가 쓴 이 서문은 사전의 서문으로서의 의례적인 품새보다 말에 관한 '한 편의 글'로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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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내가 다섯 살 때 육군 중령이었던 할아버지는 아라까따를 지나고 있던 서커스로 나를 데려가 동물들을 구경시켜 주었다. 가장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몸이 뒤틀리고 쓸쓸해 보이던, 무서운 엄마 같은 표정을 하고 있던 말이었다. “그건 까멜요(낙타)야.” 할아버지가 말했다. 곁을 지나가던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죄송합니다, 대령님.” 그는 말했다. “그건 드로메다리오(낙타)입니다.” 손주 앞에서 지적을 당한 할아버지의 기분이 어떠했을지 지금 나는 짐작할 수 있지만, 할아버지는 위엄있는 질문으로 이를 이겨냈다.

“차이가 뭐요?”

“모릅니다.” 그는 말했다. “그렇지만 이건 드로메다리오입니다.”

할아버지는 유식하지도 않았고 유식해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열 네 살 때 수업을 빠져나와서 카리브 해 연안에 셀 수 없이 많았던 시민전쟁 중 하나에 총을 쏘러 갔고, 그 뒤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생 동안 자신의 그런 약점을 느끼고 있었고, 이를 보충하고도 남는 날카롭고 재빠른 이해력을 지니고 있었다.

서커스에 갔던 날 오후에 할아버지는 맥이 빠진 채 집으로 돌아와 나를 사무실로 데려갔다. 할아버지의 소박한 사무실에는 커튼이 달린 책상, 선풍기, 거대한 책 딱 한 권이 꽂힌 책꽂이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린애처럼 열심히 그 책을 뒤졌고, 설명을 곱씹어 보고 그림을 비교했으며, 그 때부터 할아버지와 나는 드로메다리오와 까멜요의 차이가 무엇인지 영원히 깨닫게 되었다. (역주: 드로메다리오-단봉낙타, 까멜요-쌍봉낙타) 결국 할아버지는 내 무릎에 책을 올려놓고는 말했다.

“이 책은 뭐든지 다 알고, 게다가 절대로 틀리지 않는 유일한 책이란다.”

그것은 국어사전이었다. 언제 어디서 나온 책인지는 신만이 아시리라. 아주 낡아 금방이라도 제본이 풀릴 듯했다. 책등에는 어깨에 우주의 천장을 올려 놓고 있는 아틀라스의 거상이 그려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말했다. “이 그림은 사전이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는 뜻이야.” 나는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지만, 첩첩이 쌓인 근 이천 페이지의 책장과 예쁜 그림들을 보고 할아버지가 얼마나 맞는 말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성당에서 나는 미사책의 크기에 감탄한 적이 있었지만 사전은 더 컸다. 그것은 마치 처음으로 전세계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말이 몇 개나 들어 있을까?” 나는 물었다.

“다 있지.” 할아버지가 말했다.

사실 그 때 나에게는 말이 필요 없었다. 나를 놀라게 하는 모든 것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네 살 때 나는 마술사 리샤르딘을 그렸다. 우리는 그 전날 밤에 극장에서 그가 자기 부인의 머리를 잘랐다가 다시 붙이는 것을 보았었다. 톱으로 목을 자르는 생생한 모습에서 시작하여 피투성이 머리를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결국은 머리가 다시 제 자리에 붙은 부인이 박수에 감사하면서 끝났다. 만화는 예전에 발명되어 있었지만, 나는 나중에 일요일 신문의 칼라 보충면에서 처음 만화를 보았다. 그 뒤로는 글을 몰랐기 때문에 대화 없이 그림으로만 된 만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전을 처음 본 날 밤에 말에 대한 큰 호기심이 내 안에서 깨어났고, 그래서 나는 나이보다 일찍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작가로서의 내 운명에 초석이 된 책과 나의 첫 만남은 이러했다.

 

어떤 음악의 거장의 말에 따르면, 매일매일 피아노 연습을 시키는 것은 비인간적인 일이고, 집에 피아노를 놓아서 아이들이 가지고 놀도록 하는 것이 맞다고 한다. 내가 국어사전을 만난 것이 이런 식이었다. 나에게 이 책은 절대로 공부할 때 쓰는 것, 부담스럽고 박식한 것이 아니라 평생 갖고 노는 장난감이었다. 특히나 한번은 ‘노랑’이라는 단어를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말은 이렇게 간단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레몬의 색’. 나는 안개에 휘말렸다. 남미에서 레몬은 초록색이기 때문이다. 가르시아 로르까의 <집시 민요집>에서 잊지 못할 다음 구절을 읽었을 때 혼란은 더욱 커졌다. ‘길 한가운데서 둥근 레몬을 잘라 물속으로 던지면서 갔다, 물이 금으로 변할 때까지’. 세월이 흐르고 한림원 사전이 -아직 레몬을 언급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런 뜻을 덧대어 수정했다. ‘금의 색깔.’ 스물 몇 살이 되어 유럽에 갔을 때에야, 비로소 그곳에서, 실제로 레몬이 노랗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때 나는 이미 옛날 사전들과 요즘 사전들을 뒤져 가며 태양 광선의 세 번째 빛깔을 인양해 내는 매혹적인 작업을 마친 참이었다. ‘라로스 사전’과 ‘복스 사전’은 ?1780년에 나온 한림원 사전과 마찬가지로- 역시 레몬과 금을 언급하고 있었고, ‘마리아 몰리네르 사전’만이 1976년에 노랑은 레몬 전체가 아니라 그 껍질만의 색임을 정확히 암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몰리네르 부인도 ‘모범 사전’의 시적 정취를 무시했다. 이 책은 1726년에 한림원에서 초판이 발행되었고, 서정적이고 소박하게 노랑색을 묘사하고 있었다. ‘이 색은 강렬할 때는 금을, 완화되면 금작화를 모방한다.’ 그러나 물론 이 모든 사전을 다 합쳐도, 1611년에 세바스띠안 데 꼬바루비아스 경이 쓴 가장 오래된 사전의 발목에도 이르지 못한다. 이 책은 노랑색을 정의하기 위해 정확성과 영감이라는 측면에서 어떤 사전보다도 멀리 나아갔다. ‘색깔들 중에 가장 불행한 색, 죽음과 긴 중병의 색깔이기에. 또한 사랑에 빠진 이들의 색.’

 

이렇게 무분별한 조사를 통해 나는, 무거운 의미를 나르는 이 사전들이 글을 잘 쓰기 위해 가장 중요한 말의 한 차원을 붙들려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말의 주관적 의미이다. 아무도 이것을 5세 이하의 아이들이나 100세 이하의 작가들만큼 잘 알지 못한다. 맛과 소리와 냄새가 가장 쉬운 예이다. 아주 여러 해 전에 나는 한밤중에 뜰에 묶인 새끼양 때문에 잠을 깼다. 새끼양은 잔인할 정도로 규칙적인 쇠소리로 울고 있었다. 내 동생들 중 하나가 그 탄식이 지닌 균형에 매료되어 어둠 속에서 말했다. “꼭 등대 같아.” 오래된 약초로 끓인 탕약의 맛은 뚜렷이 성 금요일 행렬의 맛이었다. 예전에 쿠바에서 ‘쿠바 리브레’를 대신할 목적으로 만든 탄산음료를 체 게바라가 시음했을 때, 그는 티브이 카메라 앞에서 망설임 없이 말했다. “바퀴벌레 맛입니다.” 나중에 사석에서 한 말은 더욱 명백했다. “똥 맛이야.” 우리는 얼마나 많이 창문 맛 커피, 궤짝 맛 빵, 옷깃 맛 쌀, 재봉틀 맛 국을 먹었던가? 한 친구는 식당에서 셰리주로 요리한 굉장한 콩팥 요리를 맛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자 맛이 나.” 타는 듯한 여름 로마에서 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모차르트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었었다.

이런 종류의 연상은 좋은 소설가와 그렇지 않은 소설가 사이의 차이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모든 말과 모든 구절에서, 대답 하나에 대한 단순한 강조 안에는 작가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의도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이는 읽는 시간과 장소, 누가 그것을 읽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임에 틀림없다. 모든 작가는 자신에게 가능한 만큼 글을 쓰기에, 이 우연으로 가득찬 작업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작가가 가진 도구를 잘 다루는 것뿐이 아니다. 또 다른 큰 어려움은, 지금까지 글을 쓰기 위해 발명된 유일한 방법인 한 글자 뒤에 다른 글자를 붙인다는 방법 안에 얼마나 많은 마음을 집어넣는가이다.

 

시의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전은 물론 없지만 아마 존재해야만 할 것이다. 정녕 잊을 수 없는 마리아 몰리네르 부인은 이를 염두에 두고서 거의 전례 없는 일을 자기 자신에게 약속했다. 그녀는 스페인어 용법 사전을 혼자서, 자기 집에서 자기 손으로 직접 쓴 것이다. 도서관 사서 일,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진짜 일이라고 생각하던 양말 깁기가 끝나고 남는 시간에 그녀는 글을 썼다. 그녀가 정말로 원하던 것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날아가 버리기 시작하는 단어들을 붙잡는 것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말했다. “무엇보다도 신문에서 보이는 단어들이 중요해요. 거기서 살아 있는 언어, 사용되고 있는 말, 현재에 발맞춰 만들어져야 하는 말들이 나오니까요.” 사실, 이 신화적인 사람이 착수한 일은 삶과의 경주이자 삶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는 영원히 계속되는 작업이다. 왜냐하면 말은 학교에서 학자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거리에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전의 저자들은 말들을 거의 언제나 너무 늦게 채집해서 알파벳 순서에 맞춰 박제로 만들고, 이 순간 종종 말들은 그 말이 생겨났을 때와는 의미가 달라져 있다.

실제로 모든 사전은 출판되기 이전에 이미 효력을 잃기 시작하고, 저자들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망각을 향해 가는 그들의 작업 속에서 말들을 살려내지 못한다. 그러나 마리아 몰리네르는 최소한 이 작업이 용법 사전에 있어서만큼은, 아니면 사무실에 앉아 말들이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거리로 이들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덜 실망스러운 것임을 보여주었다. 지금 막 내 손 안에 도착한, 아직도 소나무와 신선한 잉크 냄새가 나는 이 사전이 그렇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 사전의 수명은 수많은 다른 사전들보다 조금 더 길어질 수도 있으리라. 다섯 살 이후의 아이들이 갖고 놀도록 만들어진, 또한 좋은 작가들이 -운이 좀 좋다면- 100살까지 갖고 놀 사전보다 쓸모있고 고귀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 제때 알려지기만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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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혼 2004-09-03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런 감탄사를 발해 주시다니요, 저도 어디에선가 옮겨온 글인걸요, 좋은 것을 같이 나누는 건 분명 기쁜 일이네요... 서로, 종종, 그런 기쁨을 맛볼 수 있기를!

urblue 2004-09-03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져갑니다. (__)

에레혼 2004-09-03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 방에서 만나게 되어 반가워요. 가져가실 만하다니, 저도 기쁘네요. 유어블루님의 아이콘(사진)이 무척 매혹적이네요.

로드무비 2004-09-03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르고 블루님 방에서 추천 눌렀어요.
블루님이 야단치셔서 화들짝 놀라서 왔습니다.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에레혼 2004-09-03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반갑습니다. 야단맞고 오셨군요 ^^. 전 이미 님의 방 구경 잘하고 있었는걸요, 인사도 없이, 조용히... 다음에 마실 갈 때는 당당히(?) 초인종 누를게요. 코멘트에 관한 글 읽고 저도 뜨끔했어요. 슬그머니, 말없이, 구경만 하고 잘 다니는 타입이거든요, 제가^^

2005-01-16 0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선암사 뒷산에 산수유가 피었다. 산수유는 다만 아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은 보이지 않고, 꽃의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 김훈, <자전거 여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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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바로 이 무렵쯤 선암사 뒷산에 산수유가 한창 피어 있겠지......
요즘은 '봄철 관광상품'의 한 코스로 각광받고 있는 구례 산동마을에도 산수유로 온통 노란 빛이 가득할 게다
산수유는, 안개꽃이나 벚꽃이나 개망초가 그러하듯, 한 송이의 꽃으로보다는 무리를 이루어 피었을 때 존재감이 있는 그런 꽃이다
"다만 아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꽃은 보이지 않고 꽃의 기운만 파스텔처럼" 번지고 있는......


문득 내가 찾던 길이 거기 있는 듯싶었다

그림자 속에 빛이 가득한,
꽃은 보이지 않고 꽃의 기운만 사방으로 번지는....... 그런 문장, 그런 글

 

 


*** 김훈에 대한 짧은 추억

몇 해 전, 김훈이 전라도 남평이란 동리의 시골집(어느 화가가 작업실로 쓰던 공간을 빌려 주었다는)에서 혼자 몇 달을 지낼 때,
하룻밤을 그 집에서 묵은 일이 있지요
지나고 보니 그 무렵 그가 쓰고 있던 글이 바로 <칼의 노래>였더군요

앉은뱅이 책상(이라기보다는 작은 소반) 위에 놓여 있던 원고지와 빨간 몽당연필이 인상적이었지요
그는 전혀 디지털의 세계를 모른다고 합디다
(컴퓨터 자판도 칠 줄 모르고, 그 흔한 이메일도 열어 볼 줄 모른다는...... <시사저널>에서 편집국장으로 있던 시절에도 기자들의 원고는 모두 팩스로만 받아서 읽었다고 해요)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원고지에 한 줄 한 줄 연필로 써 나간다는데......
그때 책상으로 쓰던 그 작은 상 위에,
요즘은 본 적 참 오래된 2백자 원고지 묶음과 키 작은 연필 한 자루가 달빛에 잘 벼려진 칼처럼 거기 놓여 있었지요

그 날 밤 작은 카세트 라디오에서는 심수봉과 김수희의 노래가 흘러 나왔고,
어둠으로 덮인,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마당 한켠에서는 예의 그 '風輪'이 묵묵히 바람을 맞고 있었고,
나직하나 힘있는 목소리와 청년 같은 눈빛으로 주위의 공기를 압도하는 기운을 내뿜던 김훈은
'겉으로는 강해 보이나 세상과 시선과 걸음을 못 맞추는 이들이 안기 마련인 그 외로움과 상처 받기 쉬운 여린 심성'을 저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내비치고 있었지요

이러저러한 일들로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문학성과 '정치적 올바름'에 관해 논쟁거리가 됐던 그이지만,
어쩌면 그는 한번도 세상과 '화해'했던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은 풍화이며 견딤이며 또 늙음이다. 살아서 무엇을 이룬다는 일도 그 늙음과 견딤 속에서만 가능하다. 삶은 그림보다 무겁고, 그림보다 절박하고, 그림보다 힘들다. 그리고 삶은 그림보다 초라하다. 그림보다 꾀죄죄하고 그림과는 비교할 수 없이 훼손되어 있는 것이 삶의 올바른 풍경이다."

그가 보는 세상, 그가 생각하는 삶이란 그런 것이기에, 그는 굳이 그 무엇과 화해하려고 하지 않았을 듯싶습니다, 아니 애초에 '화해'라든가 '희망' 같은 건 가능하지 않은 것이겠지요, 그저 주어진 삶을 제 식으로 견디며 가는 것! 그게 그가 생각하는 삶이니까요

 

"말들은 좀체로 말을 듣지 않았다.
여기에 묶어내는 몇 줄의 영세한 문장들은 말을 듣지 않는 말들의 투정의 기록이다.
아마도 나는 풍경과 상처 사이에 언어의 징검다리를 놓으려는 미망을 벗어던져야 할 터이다.
그리고 그 미망 속에서 나는 한 줄 한 줄의 문장을 쓸 터이다."

(<풍경과 상처>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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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나의 불규칙했던 학교 생활의 기억 때문에 어머니는 내가 신통치 않은 인생을 살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모양이다.
어느 일요일 아침 어머니가 TV에서 미사 드리는 광경을 시청하고 있다. 마침 주현절이어서 사제가 설교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세 사람의 동방박사의 모험 이야기에는 별로 흥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작가 미셸 투르니에가 상상해 낸 네 번째의 동방박사 이야기는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텔레비전의 미사가 끝나고 난 다음에 그 설교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화제에 올렸다.
"그것 보세요. 내가 아주 이름 없는 존재는 아니잖아요. 일요일 설교 때 내 이름을 들먹이기도 하니까요!"
어머니의 말: "아, 분명히 알아 둬. 신부님이 작가 미셸 투르니에라고 했어."
나의 대답: "그래서요? 그건 사실 아닌가요?"
어머니의 대꾸: "그렇긴 하지. 그렇지만 괴테나 빅토르 위고였다면 작가 괴테, 작가 빅토르 위고라고 하진 않았을 거야."
물론이다. 그 '작가'라는 말이 일을 완전히 잡쳐놓은 것이다.


문학 분야에 있어서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을 구분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은 것일 수 있다.
즉, 자신이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책의 탁월한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프로페셔널의 특권이 아닐까 한다. 반대로 아마추어는 자기의 취향과 맞지 않는다 싶으면 즉시 그 책의 분명한 장점들에 대해서도 아예 장님이 되어 버린다.


우리 마을 정육점 주인 : "투르니에 씨, 나처럼 진짜 당신을 잘 아는 처지라면 당신이 쓴 책 같은 것은 안 읽어도 되는 거죠. 안 그래요?"


소설 한 권을 쓰려고 고심하면서 나는 내 두뇌를 개처럼 부린다. <엘레아자르>를 쓰면서 나는 내 두뇌에게 모세의 냄새를 맡게 해 주고서는 말한다. "자, 가서 찾아와! 찾아오라고! 모세를 찾아와!" 6개월이 지나자 그는 내게 모세를 데리고 왔다. 그 이름이 바로 <샘과 덤불숲>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나는 그에게 코브라의 냄새를 맡게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자, 가서 찾아와! 뱀의 비밀을 찾아와!" 두 달이 지난 뒤 그는 뱀의 상징인 눈꺼풀을 가져온다.


고등학교 학생들과 대화. 그 중 한 학생이 내게 묻는다. "선생님은 호모이신가요?"
내가 대답한다: "그럼, 그렇고말고. 내가 쓴 소설에는 적어도 두 사람의 호모가 등장하니까...... 그렇지만 나는 또 물신숭배자이기도 해(<물신숭배자>라는 소설을 썼거든). 내 이야기 속의 모든 인물들과 살아 있는 존재들이 다 물신숭배자들이지. 소설가란 그런 거야. 하지만 내가 글을 다 쓰고 나서 나 자신은 뭘까 하고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어. 또 내겐 그런 것이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고. 나는 배우와 비슷해. 배우는 햄릿, 네로 황제, 알세스트, 돈 후안, 파우스트 등이었지만 의상을 벗고 화장을 지우고 나면 아무도 아니거든. 내 책 <성령의 바람> 이 실패한 교훈은 바로 그런 점에 있을 거야. 그 책의 주제는 바로 미셸 투르니에인데 결국 그건 별로 알맹이가 없는 주제였던 모양이야."


--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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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따뜻하고, 부드럽고, 섬세하고, 해박하고, 정원과 여행을 사랑하며, 쓸쓸한 유머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 지금은 소설쓰기와 함께 '늙음'과 '죽음'의 길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다. 이번 책 곳곳에서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대목을 만나면서 애잔해지는 느낌.....
그의 나이 마흔 셋에 첫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을 써서 등단했고, 그 무렵부터 줄곧 파리 근교의 한적한 마을 생 레미 슈브류즈의 사제관에서 홀로 살고 있다. 작가 생활을 시작한 지난 1950년대 말 전 재산을 털어 인수한 사제관이란다.
그의 책을 읽으며 그가 40년 넘게 살아 온 그 '집'을 그려 본다. 그 집에서의 그의 시간들을. 그의 눈길이 가서 머물고 어루만지는 것들을.

미셸 투르니에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자기 밖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 자기 밖에서 마주친 사물들, 동물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비추는 거울보다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고.


나의 雜記狀에 적는다:

1. 나의 밖에 있는 것들에 자주 눈길과 마음을 돌릴 것!
사물들, 나무, 날씨, 맛과 냄새, 건물과 골목과 '공간'들.... 어떤 만남과 대화, 기억의 한 장면, 침묵 속에 묻혀 있는 것들.......

2. 섬광처럼 반짝 찾아오거나 사소하게 스쳐 지나가는 영감, 생각, 느낌들을 재빨리 적어서 잡아놓을 것! 누군가의 말처럼, 영감이란 어느 단계만 되면(내공이 깊어지면) 익숙한 습관처럼 저절로 내 머리 위에 찾아와 주는 게 아니다. 그게 찾아왔을 때 내가 글을 쓰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3. 오랫동안 어떤 질문을 품고 있으면 언젠가는 그 대답을 듣게 될 것인가?
질문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질문의 자세나 방식이 아닐까?
끈질기게 구애한다고 해서 모든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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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혼 2004-09-03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의 실시간 대화 같네요, 어쩐지 이 시간에 서재에 들어와 보고 싶더라니... 어떤 기운이 저를 이끌었나 봅니다. 저도 투르니에의 저 사진, 참 좋아합니다. 잘 익은 영혼의 풍경 같은...... <흡혈귀의 비상>도 읽어 보셨나요?
 

< 회상: 그 장소, 그 사람들> 중에서


비, 내리 엿새 동안의 비 그리고 안개.
나는 런던의 한 선술집에서 서머셋 몸과 함께 앉아 있었다. 나는 나의 처녀작 소설 <자랑스러운 구토제>가 평론가들로부터 냉대를 받아 무척 풀이 죽어 있었다. 유일하게 호의를 보인 것은 <타임>이었는데, 그나마 마지막 문장 때문에 잡치고 말았다. 그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내 책에 대해, "서구 문학에서 이만큼 고집스럽고 진부한 표현으로 독기를 뿜어낸 책은 없었다"라고 평하고 있었다.
서머셋 몸은 그 구절이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고 날 위로하였다. 하지만 자필 증정본에는 그 내용을 써먹지 않는 게 좋겠다고 덧붙였다. 올드 브림톤 길을 걷고 있을 때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내가 그에게 내 우산을 건네자 그는 자신의 우산이 있는데도 얼른 받아들였다. 서머셋 몸이 두 개의 우산을 받고 가는 동안 나는 그 옆에서 계속 뛰어야만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비평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되네. 내 첫번째 단편 소설도 어떤 비평가한테 극도로 비난을 받았지. 나는 끙끙 앓던 끝에 그에게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퍼부어댔어. 그러던 어느 날 내 소설을 다시 읽어 보고는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지. 그 소설은 사실 천박하고 구성도 형편없었어. 어쨌거나 나는 그 평론가의 혹평을 잊지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몇 년 후 독일 공군이 런던을 야간 폭격할 때, 그 비평가의 집에 조명을 비춰 줬지."
걸어가던 서머셋 몸은 세번째 우산을 사기 위해 잠시 멈춰 섰다. 그는 세번째 우산을 펼치고는 말을 이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선 말이야, 기회를 잡아야 하네. 그리고 바보스럽게 보이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지. 나는 <면도날>을 썼을 당시 종이로 만든 모자를 쓰고 있었네. <비Rain>의 초고에서는 사디 톰슨이 원래 앵무새였지. 우린 찾아야 해.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해야지. <인간의 굴레>를 처음 쓰려고 했을 때, 내 머릿속에 들어 있던 것은 오로지 접속사 '그리고'뿐이었지. 나는 '그리고'가 들어가 있는 소설은 재밌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나머지 내용이야 저절로 구체화되기 마련이지."
그때 강풍이 불더니 그를 들어서 빌딩에 쿵 처박았다. 그는 낄낄 웃었다. 그때 서머셋 몸은 풋내기 작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조언을 한마디 했다.
"의문문의 끝에는 물음표를 붙이게. 그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알면 아마 놀라 자빠질걸!"

-- 우디 앨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쓰레기 같은 세상>(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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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문득 손길이 가서 펼쳐든 우디 알렌 소설집(아니, 지금 다시 책 표지를 보니 '창작 산문집'이라고 되어 있다)을 읽다가, 나도 이 글 속의 서머셋 몸처럼 혼자 낄낄 웃었다.
아, 영락없는 우디 알렌 표 작품!
까만 뿔테 안경을 쓴 키 작은 유태인 사내가 빠른 말투로 속사포처럼 얘기를 풀어내는 모습이 바로 눈앞에 그려지지 않는가.
건축가들은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의 어딘가에 은밀히 자신만의 표식을 남긴다고 한다. 마치 화가들이 그림을 완성한 뒤 한 귀퉁이에 서명을 하거나 낙관을 찍듯이.
어느 장르이든 자기 작품에 자신만의 표식을 남기는 것, 누가 봐도 한눈에 그의 작품인지 알아볼 수 있게 '도장'을 찍는 것, 멋진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닌 듯하다.
우디 알렌은 언제나 우디 알렌 식의 어법과 재치와 냉소와 웃음 섞인 페이소스로 가득찬 세계를 만들어 낸다.
"인생은 두 가지 범주로 나뉘어 있다. 끔찍한 삶과 비참한 삶. 끔찍한 삶이란, 말하자면 장님이거나 불구이거나.....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비참한 삶에 속한다. 그러니까 살아가면서 당신이 비참한 쪽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얘기하던 <애니 홀>의 앨비는 바로 우디 알렌의 자화상이다.

한때 내게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하는 동기를 불러일으켰던 건, 우스운 생각이었지만, 언젠가 우디 알렌과 만나서 직접 대화(?)를 해보고 싶은 욕망이었다(상상이니까 제멋대로 날개를 펼칠 수 있는 법!)...... 뭐, '한때 법적인 딸이었던' 순이와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됐는지 따위의 사적인 질문은 놔두고,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기막힌 생각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오는 건지 그것이 궁금했던 것이다.

우디 알렌을 만나는 일은 요원한 채, 여전히 그의 영화를 보면서 혼자 낄낄거리곤 하는 요즘은 미셸 투르니에를 생각하면서, 하루에 한 단어씩 불어 공부를 한다...... 꼭 그가 아니더라도, 프랑스말로 쓰여진 소설을 소리 내서 한번 읽어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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