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나의 불규칙했던 학교 생활의 기억 때문에 어머니는 내가 신통치 않은 인생을 살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모양이다.
어느 일요일 아침 어머니가 TV에서 미사 드리는 광경을 시청하고 있다. 마침 주현절이어서 사제가 설교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세 사람의 동방박사의 모험 이야기에는 별로 흥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작가 미셸 투르니에가 상상해 낸 네 번째의 동방박사 이야기는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텔레비전의 미사가 끝나고 난 다음에 그 설교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화제에 올렸다.
"그것 보세요. 내가 아주 이름 없는 존재는 아니잖아요. 일요일 설교 때 내 이름을 들먹이기도 하니까요!"
어머니의 말: "아, 분명히 알아 둬. 신부님이 작가 미셸 투르니에라고 했어."
나의 대답: "그래서요? 그건 사실 아닌가요?"
어머니의 대꾸: "그렇긴 하지. 그렇지만 괴테나 빅토르 위고였다면 작가 괴테, 작가 빅토르 위고라고 하진 않았을 거야."
물론이다. 그 '작가'라는 말이 일을 완전히 잡쳐놓은 것이다.
문학 분야에 있어서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을 구분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은 것일 수 있다.
즉, 자신이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책의 탁월한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프로페셔널의 특권이 아닐까 한다. 반대로 아마추어는 자기의 취향과 맞지 않는다 싶으면 즉시 그 책의 분명한 장점들에 대해서도 아예 장님이 되어 버린다.
우리 마을 정육점 주인 : "투르니에 씨, 나처럼 진짜 당신을 잘 아는 처지라면 당신이 쓴 책 같은 것은 안 읽어도 되는 거죠. 안 그래요?"
소설 한 권을 쓰려고 고심하면서 나는 내 두뇌를 개처럼 부린다. <엘레아자르>를 쓰면서 나는 내 두뇌에게 모세의 냄새를 맡게 해 주고서는 말한다. "자, 가서 찾아와! 찾아오라고! 모세를 찾아와!" 6개월이 지나자 그는 내게 모세를 데리고 왔다. 그 이름이 바로 <샘과 덤불숲>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나는 그에게 코브라의 냄새를 맡게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자, 가서 찾아와! 뱀의 비밀을 찾아와!" 두 달이 지난 뒤 그는 뱀의 상징인 눈꺼풀을 가져온다.
고등학교 학생들과 대화. 그 중 한 학생이 내게 묻는다. "선생님은 호모이신가요?"
내가 대답한다: "그럼, 그렇고말고. 내가 쓴 소설에는 적어도 두 사람의 호모가 등장하니까...... 그렇지만 나는 또 물신숭배자이기도 해(<물신숭배자>라는 소설을 썼거든). 내 이야기 속의 모든 인물들과 살아 있는 존재들이 다 물신숭배자들이지. 소설가란 그런 거야. 하지만 내가 글을 다 쓰고 나서 나 자신은 뭘까 하고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어. 또 내겐 그런 것이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고. 나는 배우와 비슷해. 배우는 햄릿, 네로 황제, 알세스트, 돈 후안, 파우스트 등이었지만 의상을 벗고 화장을 지우고 나면 아무도 아니거든. 내 책 <성령의 바람> 이 실패한 교훈은 바로 그런 점에 있을 거야. 그 책의 주제는 바로 미셸 투르니에인데 결국 그건 별로 알맹이가 없는 주제였던 모양이야."
--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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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따뜻하고, 부드럽고, 섬세하고, 해박하고, 정원과 여행을 사랑하며, 쓸쓸한 유머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 지금은 소설쓰기와 함께 '늙음'과 '죽음'의 길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다. 이번 책 곳곳에서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대목을 만나면서 애잔해지는 느낌.....
그의 나이 마흔 셋에 첫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을 써서 등단했고, 그 무렵부터 줄곧 파리 근교의 한적한 마을 생 레미 슈브류즈의 사제관에서 홀로 살고 있다. 작가 생활을 시작한 지난 1950년대 말 전 재산을 털어 인수한 사제관이란다.
그의 책을 읽으며 그가 40년 넘게 살아 온 그 '집'을 그려 본다. 그 집에서의 그의 시간들을. 그의 눈길이 가서 머물고 어루만지는 것들을.
미셸 투르니에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자기 밖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 자기 밖에서 마주친 사물들, 동물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비추는 거울보다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고.
나의 雜記狀에 적는다:
1. 나의 밖에 있는 것들에 자주 눈길과 마음을 돌릴 것!
사물들, 나무, 날씨, 맛과 냄새, 건물과 골목과 '공간'들.... 어떤 만남과 대화, 기억의 한 장면, 침묵 속에 묻혀 있는 것들.......
2. 섬광처럼 반짝 찾아오거나 사소하게 스쳐 지나가는 영감, 생각, 느낌들을 재빨리 적어서 잡아놓을 것! 누군가의 말처럼, 영감이란 어느 단계만 되면(내공이 깊어지면) 익숙한 습관처럼 저절로 내 머리 위에 찾아와 주는 게 아니다. 그게 찾아왔을 때 내가 글을 쓰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3. 오랫동안 어떤 질문을 품고 있으면 언젠가는 그 대답을 듣게 될 것인가?
질문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질문의 자세나 방식이 아닐까?
끈질기게 구애한다고 해서 모든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