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암사 뒷산에 산수유가 피었다. 산수유는 다만 아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은 보이지 않고, 꽃의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 김훈, <자전거 여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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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바로 이 무렵쯤 선암사 뒷산에 산수유가 한창 피어 있겠지......
요즘은 '봄철 관광상품'의 한 코스로 각광받고 있는 구례 산동마을에도 산수유로 온통 노란 빛이 가득할 게다
산수유는, 안개꽃이나 벚꽃이나 개망초가 그러하듯, 한 송이의 꽃으로보다는 무리를 이루어 피었을 때 존재감이 있는 그런 꽃이다
"다만 아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꽃은 보이지 않고 꽃의 기운만 파스텔처럼" 번지고 있는......
문득 내가 찾던 길이 거기 있는 듯싶었다
그림자 속에 빛이 가득한,
꽃은 보이지 않고 꽃의 기운만 사방으로 번지는....... 그런 문장, 그런 글
*** 김훈에 대한 짧은 추억
몇 해 전, 김훈이 전라도 남평이란 동리의 시골집(어느 화가가 작업실로 쓰던 공간을 빌려 주었다는)에서 혼자 몇 달을 지낼 때,
하룻밤을 그 집에서 묵은 일이 있지요
지나고 보니 그 무렵 그가 쓰고 있던 글이 바로 <칼의 노래>였더군요
앉은뱅이 책상(이라기보다는 작은 소반) 위에 놓여 있던 원고지와 빨간 몽당연필이 인상적이었지요
그는 전혀 디지털의 세계를 모른다고 합디다
(컴퓨터 자판도 칠 줄 모르고, 그 흔한 이메일도 열어 볼 줄 모른다는...... <시사저널>에서 편집국장으로 있던 시절에도 기자들의 원고는 모두 팩스로만 받아서 읽었다고 해요)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원고지에 한 줄 한 줄 연필로 써 나간다는데......
그때 책상으로 쓰던 그 작은 상 위에,
요즘은 본 적 참 오래된 2백자 원고지 묶음과 키 작은 연필 한 자루가 달빛에 잘 벼려진 칼처럼 거기 놓여 있었지요
그 날 밤 작은 카세트 라디오에서는 심수봉과 김수희의 노래가 흘러 나왔고,
어둠으로 덮인,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마당 한켠에서는 예의 그 '風輪'이 묵묵히 바람을 맞고 있었고,
나직하나 힘있는 목소리와 청년 같은 눈빛으로 주위의 공기를 압도하는 기운을 내뿜던 김훈은
'겉으로는 강해 보이나 세상과 시선과 걸음을 못 맞추는 이들이 안기 마련인 그 외로움과 상처 받기 쉬운 여린 심성'을 저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내비치고 있었지요
이러저러한 일들로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문학성과 '정치적 올바름'에 관해 논쟁거리가 됐던 그이지만,
어쩌면 그는 한번도 세상과 '화해'했던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은 풍화이며 견딤이며 또 늙음이다. 살아서 무엇을 이룬다는 일도 그 늙음과 견딤 속에서만 가능하다. 삶은 그림보다 무겁고, 그림보다 절박하고, 그림보다 힘들다. 그리고 삶은 그림보다 초라하다. 그림보다 꾀죄죄하고 그림과는 비교할 수 없이 훼손되어 있는 것이 삶의 올바른 풍경이다."
그가 보는 세상, 그가 생각하는 삶이란 그런 것이기에, 그는 굳이 그 무엇과 화해하려고 하지 않았을 듯싶습니다, 아니 애초에 '화해'라든가 '희망' 같은 건 가능하지 않은 것이겠지요, 그저 주어진 삶을 제 식으로 견디며 가는 것! 그게 그가 생각하는 삶이니까요
"말들은 좀체로 말을 듣지 않았다.
여기에 묶어내는 몇 줄의 영세한 문장들은 말을 듣지 않는 말들의 투정의 기록이다.
아마도 나는 풍경과 상처 사이에 언어의 징검다리를 놓으려는 미망을 벗어던져야 할 터이다.
그리고 그 미망 속에서 나는 한 줄 한 줄의 문장을 쓸 터이다."
(<풍경과 상처>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