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검색할 일이 있을 때 나는 '알라딘'을 이용한다
다른 온라인 서점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알라딘에는 다양하고 생생한 독자 서평과 함께 독자들이 자기 기준으로 뽑아놓은 독서 리스트들이 있다.
이 '리스트의 달인'들이 작성한 독서 목록을 따라가다 보면,
나와 아주 비슷한 독서 취향을 가진 이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의 기분은 좀 묘한 것이어서,
아주 어릴 때 헤어진 이란성 쌍둥이 자매와 뜻하지 않게 마주친 듯한 놀라움과 반가움과 묘한 상실감(나만의 독자성을 잃어버린 듯한) 같은 걸 맛보게 된다
어쨌든 그러저러한 경로로 따라가다가 발견한 미지의 한 작가,
시마다 마사히코
처음엔 이런 말에 끌려서 수첩에 그의 책 목록을 적어놓았다
"영원히 거짓말을 함으로써 연애나 청춘을 결코 끝나지 않게 하는 것이 소설가의 사명이며, 거기에는 체력이 필요하다. 일본 문학의 근본적인 문제는 체력 부족에 있다."
<피안 선생의 사랑> 중에서
(이 작품 <피안 선생의 사랑>에 관하여 누군가는 이런 독후감을 남겼다 :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패러디한 이 작품을 읽으면서 배꼽 잡아 웃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진지한 텍스트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정신적인 인간 관계를 육체적인 인간 관계로, 진지한 관계의 열망은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바꾸어 놓았다. 심하다, 마사히코!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에서 개로 바꾸어 놓았다. 심하다, 마사히코! 연애 박사 선생의 섹스 일기. 킬킬. 심하다, 마사히코!
너무 진지하게 살면 피곤한 일이다. 가끔은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긴장을 푸는 게 좋지. 그 동안 소세키의 <마음>이라는 텍스트에 지나치게 열중했던 것 같다. 이제 그 우울함에서 벗어났다. 시마다 마사히코 덕에 모처럼 유쾌했다. 웃으면서 살아야지.)
점점 이 작가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다
결국 어제 시마다 마사히코의 책 몇 권을 구했다
그 중의 한 권, <천국이 내려오다>의 책 표지와 작가 후기를 들춰보다 이런 구절들이 눈에 띄었다
책날개에서
시마다 마사히코 / 1961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나카노지마 중학교 2학년 때 신의 소리를 듣고 3학년 때에는 소설가가 되기를 결의하였다.......

작가 후기에서
재수없게 이 책을 읽고 만 독자들 중에는, 작가이며 등장인물 중의 한 사람인 시마다 마사히코에게 독약이라도 먹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잠시 작품의 뒷얘기를 해볼까요.
내가 이 작품에 착수한 것은 1984년 10월이었습니다. 그 전후에 <나는 모조인간>이란 작품을 썼습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가장 평가가 높았고, 나도 회심작이라고 공언하기에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이 성공에 흥분한 나는 이쯤에서 대 실패작을 남겨두리라 생각했습니다. 비평가나 신처럼 위대한 대작가에게 칭찬을 받으며 각각의 진영에 끌려들어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죠. 또 독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나는 마조히스트라서, 그들의 비판의 칼날에 난도질 당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 프로 작가는 작품을 하나의 유토피아로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한 권의 책을 읽은 독자로 하여금 잠시나마 유토피아를 즐겼다는 기분이 들도록 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들은 유토피아가 속임수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유토피아와 현실 생활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아주 뻔뻔스런 인간이라, 뫼비우스의 띠 정도 가위로 싹둑 자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자른 사람도 있고요.
유명한 사람으로는 랭보, 니체. 그들은 신이나 부처님 따위를 이용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이 원죄를 용서하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유토피아가 되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모델로 아시와라 마리오(이소설의 주인공)을 조립하였습니다.
타자의 식민지인 자기....... 이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려는 작업이야말로 유토피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국이 내려오다>는 희망의 책입니다.
...... 여성 독자에게는 2500번의 키스를, 남성 독자에게는 애교 띤 웃음을 100시간 보냅니다. 작가를 원망하는 분은 권두의 사진을 다트로 삼아 주세요.
그럼, 멍청한 독자 여러분 안녕.
일단 흥미롭다. 무엇보다 작가 후기의 마지막 인삿말이 발랄하고 귀엽다!
위악적인 그의 포즈와 버릇 없는 발언(독자를 조롱하는 듯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자기 작품에 대해 시니컬한)의 배면 심리에 강한 호기심이 인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유쾌하게 그가 보내는 2500번의 키스를 받을 것인지, 아니면 그의 사진을 다트로 삼아 창을 던지게 될지는... 좀 두고 볼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 정작 책의 내용보다 작가의 프로필이나 특이한 성향, 독특한 이력 따위에 더 호기심을 갖는 내 취향의 저변에는 어떤 심리가 깔려 있는 걸까
독자에게는 저마다 '작가에 대한' 채 발현되지 않은 '오빠 부대'의 유아적인 성향이 조금씩은 다 있는 걸까
가령 '독자와의 만남' 같은 행사에서 꼭 작가의 사인을 받고 싶어하는 심리와 일맥상통하는 것......
한 가지,
내가 이런 '위악적이고 방만한' 스타일에 끌리는 이유 중 하나는 명백히 그런 기질(자질)이 내게 결여돼 있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