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챈들러의 소설을 읽고 감탄한 것은, 그 작품이 호소해 오는 리얼리티였습니다. 그는, 작가에게 살아가는 데 대한 확고한 자세가 있고, 사물을 파악하는 확실한 시점이 있으면 그 사람이 어떤 종류의 허구를 묘사해도 리얼리티는 반드시 스며 나오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문체'를 모방하기는 쉽지만 '시점'을 모방하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챈들러의 방법론 중에 'seek and find'라는 테마가 있다. 그것은, 찾아냈을 때는 찾아내려 했던 것이 이미 변질된 상태라는 것이다. 그것이 미스테리 형태로 싸여 있어서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테마는 나의 작품 세계와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챈들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터뷰 중에서

 

[하루키는 스스로, <양을 둘러싼 모험>을 어떤 사람들은 'Big Sleep'이라고 부른다고 말하며, 이 작품을 쓸 때 의도적으로 챈들러의 문체를 빌려 왔다고 고백했다.]

-- 레이먼드 챈들러, <빅 슬립>과 <하이 윈도>(박현주 옮김, 북하우스)의 해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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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를 통해 만나게 된 두 사람의 '레이먼드'가 있다
한 사람은 레이먼드 카버, 다른 한 사람은 레이먼드 챈들러
(하루키는 잘 알다시피 카버의 작품 전부를 일본어로 번역한 바 있고, 챈들러에 관해서는 위에 인용한 말처럼 그의 '하드보일드한 문체'와 '어떤 것에 대한 추적과 그 결과 밝혀 낸 어떤 것의 변질'이란 구도를 빌려 왔을 만큼 문학적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주부터 레이먼드 챈들러의 세계에 흠뻑 빠져 있다
챈들러가 만들어 낸 멋진 인물 '필립 말로'에게.......
특히 그의 쓸데없이 멋부리지 않는 냉소적이고 간결한, 그래서 한층 매력적인 화법에.......
사립 탐정인 그는 자기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한다

"전 서른 세 살이고, 대학을 다녔었고 필요하다면 아직 영국식 영어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제 일에 대해서는 딱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한때는 수사관으로 지방검사인 와일드 씨 밑에서 일했었습니다. 결혼은 하지 않았습니다. 경찰 마누라를 싫어하거든요."
"나도 마음에는 안 듭니다. 그렇지만 내가 할 일이 뭐겠습니까? 나는 사건을 맡고 있어요. 난 먹고 살기 위해서 팔아야 하는 건 팝니다. 하느님이 내게 주신 약간의 용기와 지성, 그리고 의뢰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기꺼이 괴로움을 감수하는 열성이죠."

필립 말로의 매력이란 저항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이후 거의 모든 미국 사립 탐정들은 '유사- 말로'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심지어 '챈들러레스크Chandleresq'란 용어가 있을 정도라는데, 여기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카프카에스크Kafkaesq'란 용어를 떠올리게 된다]

챈들러 소설의 묘미는 역시 '필립 말로'라는 캐릭터의 구축과 이야기의 빈틈없는 구성에 있는 것이겠지만, 내게는 그것과 함께 적절하고 독특한 비유와 뛰어난 묘사라는 특징을 가진 그의 문체에 있었다

- 뜨겁고 딱딱한 석탄빛 눈, 사이좋게 지내려면 꽤나 힘이 들 것 같은 남자의 전형적인 표정

- 천천히, 일자리를 얻지 못한 쇼걸이 마지막 남은 고급 스타킹을 사용하듯 조심스럽게

- 자신의 손을 닦는 장의사처럼 장례식을 연상시키는 집중력으로

- 시무룩한 시의회 의원만큼이나 기분이 상한 상태

- 나쁜 습관을 기르기에는 아주 좋은 이웃 같은

- 이집트 여신의 자세처럼 몸을 딱딱하게 세우고 턱은 수평으로 들고

- 잠도 푹 자고 별로 빚진 돈도 없는 남자와 같은 목소리

- 교장실에 온 불량 소녀처럼

- 온갖 비바람에도 잘 단련된 승마 기수 같은 강인함

- 수술실에서나 볼 수 있는 미소

- 작은 고드름이 부러질 때와 비슷한 메마른 딸깍 소리

- 그는 검은 눈을 아래위로 천천히 굴리더니 손톱을 불빛에 대고 하나씩 흘긋 본 다음 세심하게 손톱을 관찰했다. 할리우드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 온 대로.

- 눈이 어찌나 날카롭게 빛나던지 칼이 스쳐 지나간 자리를 볼 수 있듯이 눈길이 스쳐 지난 자리도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몸속의 피가 집을 빌리기 위해 둘러보는 세입자처럼 다시 돌기 시작했다.

- 그의 심장은 짧고 불확실한 중얼거림과 같았다. 그의 사고는 타버린 재처럼 회색이었다.

-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이 스냅 사진에 자세를 취할 때 볼 수 있는 딱딱하고 반쯤 멍한 표정으로

- 산전수전을 너무 많이 겪어서 그걸 피하기위해 다소 지나치게 영리해진 것 같은 얼굴. 그리고 그 영리한 표정 뒤로는 여전히 산타 클로스의 존재를 믿는 작은 소녀의 순진한 표정도 숨어 있었다.

이런 문장들을 읽고 있다 보면, 저절로 그 인물들의 표정과 성격, 그들이 몸 담고 있는 공간의 공기가 어떤 것인지 '영화 보듯이' 구체적으로 눈앞에 떠오르는 듯하다!
그러므로, 챈들러에 관한 이런 평가들이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님을 인정하게 된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미국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 냈다. 그 이후로 미국을 예전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 폴 오스터

"챈들러를 '추리작가'란 틀 안에 가두는 것은 그를 너무 낮게 평가하는 것이다. 그는, 좋은 소설이 무엇인지, 좋은 묘사란 무엇인지, 매력적인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고, 흡인력 있는 스토리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아는 몇 안 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한다. 그에 대한 이런 평가가 못 마땅하다면, 책의 아무 페이지나 펴서 한 대목의 대화나, 한 문단 정도의 묘사를 읽어 보라. 이미 책을 폈다면 한두 페이지를 읽는 것만으로는 책을 덮을 수 없겠지만."
-- 임지호 (출판기획가) / 레이먼드 챈들러, <하이 윈도> 뒷표지에서


챈들러는 자신의 문학론에 관해 이런 말을 남긴 바 있다
"나의 지론은, 사람들이 비록 자기가 액션에 관심을 가진다고 믿는다고 해도 사실은 액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또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대화와 묘사를 통한 감정 창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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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그렇게 끝나 버렸지만
그 끝은 그것이 그렇게 끝난 것이라는 시작일 뿐이다
모르기 시작한다는 것은 죽어가는 것들에 대해 살아나는 것이다

이 말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만 말이 왜 이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말 속에는 숨은 무거움과 숨은 가벼움이 있다


-- '가혹한 분말'

사물들은 조용히 어둠을 맞는다
우리는 "아마 그럴 거야"라고 말하지만
사물은 "다만 그럴 뿐"이라고 말한다


-- '그리고'

아무것도 우리를 귀찮게 하는 것이 없다,
귀찮다
있어 왔던 생각
있어 왔던 말
있어 왔던 믿음
있어 왔던 우리는 다시 하고, 느끼고, 믿고,
귀찮다

아무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으니,
귀찮다


-- '귀찮다'

여행자는 '바닷가'를 거닐며 '바다'에 왔노라고 높이 소리 지른다.

...... 그러나 과거에는 아무도 바닷가를 거닐지 않았지만
해는 어둠 속에서 바다, 바다가 다시 떠오른다는 것을 아는 듯했다.


-- '기쁨과 슬픔'

우리가 잠시 합일하는 까닭은
죽음과 삶이 둘이 아니기 때문
우리가 하나가 될수 없는 건
완전히 죽지도 완전히 살지도 못하기에.
시체가 충고한다:
전부 살지 못한다!
전부 죽지 못한다!


-- '다른 계절'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순간이 온다
없는 순간이 온다
내 옆에 사람들이 누워 있다
가버리는 순간이 온다
내 옆에 소리가 없다
내가 들은 것은 반쯤은 죽은 소리,
반쯤은 살아서 가버렸다
.................
내가 아는 것은 짜임새 정도,
격(格)이 다시 태어났다


-- '대화'

우리는 그림을 그렸다
지구상의 모든 사물
모두에게 보여지는 유일한 것을 우리는
아직 그려내지 못한다
우리는 그림을 그렸다
단 한 가지 사물
어디에나 있는 모두의 것을 우리는
아직 그려내지 못한다


-- '벽화'

김록 시집 <광기의 다이아몬드> (열림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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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호수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시는 '이것이 바로 호수이다'라고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유를 든 사람이 누구였던가

김록, 이 낯선 시인이 보여주는 호수의 광경은 굉장하다!
그가 펼쳐 보여주는 호수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몸에,아니 머리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이런 생각,깨달음, 밝은 눈은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드는 걸까
"잘 말함은 잘 삶의 한 요소이다"라는 명제는 논리상 그 순서가 맞는 것일까

문득, 아마 '호수'라는 말 때문에 이어진 연상이겠지만, 이 시들과 별 상관 없는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호수로 가는 세 갈래 길>이란 소설이 떠오른다
한때,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나는 그만한 소설을 한 편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다

김록의 첫 시집 제목은 여기에서 따온 것이 아닐까 싶다

"뭐야, 나를 자극하자는 건가?
'자네가 가진 광기의 에메랄드는
거지의 동전만도 못해'라는 말로?"

-- 마야코프스키, '바지를 입은 구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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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셔 보라구." 라비크는 조앙에게 말했다.
그녀는 한 모금을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웨이터는 그녀를 살피고 있었다. 그녀는 깜짝 놀란 듯 라비크를 쳐다보았다.
"전 이런 것은 처음이에요"하고는 그녀는 다시 한 모금을 마셨다. "이건 마시는 게 아니라..... 그냥 숨만 들이쉬면 되는군요."
"그렇습죠, 마담." 웨이터는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 "알고 계시군요."
"라비크." 조앙이 계속했다. "당신은 위험한 짓을 하고 계세요. 이런 칼바도스를 마시고 난 후에는 다른 것은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어질 것 같아요."
"천만에! 다른 것도 마실 수 있지."
"그렇지만 언제나 이것을 생각할 거예요."
"좋지 뭘 그래. 그럼 당신은 낭만주의자가 될 거요. 칼바도스적 낭만주의자가."
"그럼 다른 것은 맛이 없어질 거 아니에요?"
"그와 반대지. 다른 것까지도 제 맛 이상의 맛이 나게 되지. 말하자면 다른 칼바도스를 동경하는 칼바도스가 된단 말이야. 그리하여 칼바도스는 절대로 일용품이 아닌 게 되거든."
조앙은 소리 내어 웃었다.
"어리석은 소리 마세요. 당신도 알고 있으면서."
"물론 어리석은 소리지. 그러나 우리들은 그 어리석은 것으로 살아가고 있거든. 사실이라는 말라빠진 빵조각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야. 그렇지 않다면 사랑이란 어떻게 되는 거지?"
"그것이 사랑하고 무슨 관계가 있어요?"
"관계가 있고말고. 그건 사랑을 영원히 존속시키는 역할을 하거든.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들은 단 한 번 연애를 할 것이며, 다음 것은 모조리 싫다고 할 것이 아니겠어? 그런데 자기가 버린 사람에 대한 동경의 찌꺼기가 새로 나타나는 인간의 머리에 둘러씌우는 후광이 되는 거야. 말하자면 전에 무엇인가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새로운 사람에게 일종의 낭만적인 빛을 더하게 되는 것이란 말이야. 이것은 경건하고도 낡아빠진 속임수이지만."


에리히 레마르크, <개선문>( 홍경호 옮김, 범우사), 199 - 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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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이 대목은 술을 매개로 한 가장 아름다운 대사 중 하나이다
<개선문>은 어찌 보면 칼바도스란 술에 보내는 송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소설이 시작되면서부터 끝날 때까지, 그리고 주요 대목마다 인물들은 칼바도스를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거나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말하는 대신에 술을 마신다

언젠가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읽고 일찌감치 소설가가 되기를 포기했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내가 처음 <개선문>을 만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삼중당 문고판'을 통해서였다(이 대목에서 문득 장정일의 '삼중당 문고'라는 시가 떠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까......)
그 무렵은 내가 감히 소설가를 꿈꾸던 시절도 아니었으므로, 글쓰기를 포기하고 말고 할 건 아니었고, 다만 내게도 <개선문>의 음울하고 나직하게 가라앉은 그 분위기와 라비크와 조앙 마두라는 개성적인 두 주인공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깊은 인상을 남겨 놓았다
그리고 이만큼의 세월이 흐른 뒤, 다시 <개선문>을 읽었다, 천천히, 칼바도스의 맛을 음미하듯, 아껴 가며......
어제 드디어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오래 가슴에 품어 온 연인을 떠나 보내듯이 허전하면서도 무언가로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나는 라비크, 이 남자에게 완전히 감정이입되면서 매료당했다
이제 와서 내 인생의 이상형이라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 그는 정말 나의 '이상형'이라고 할 만했다
겉보기로는 냉소적이고 적당히 퇴폐적이고 관계에 대해 차갑고 무책임한 듯하지만, 가슴속에는 '진짜'와 '완전함'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있는 사람, 그런 진실과 완전한 관계가 현실 속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에 스스로 먼저 제 가슴에 상처를 내고 문을 닫아 버리는 사람......

 

라비크와 조앙 마두

이토록 잊을 수 없이 강렬한 인물을 만들어 낸 것만으로, 이 소설의 다른 결함들은(그런 게 있다면) 깨끗이 묻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라비크 식으로 말하자면 "한번 이런 인물들과 조우하고 나면 다른 것까지도 제 맛 이상을 내게 되는" 셈인 것이다, 그런 '기막힌 순간'을 한번 맛보고 나면 소설은 더 이상 한낱 소설이 아닌, 다른 소설을 동경하게 되는 칼바도스적 소설이 되는 것이다

헌데, 이번에 <개선문>을 다시 읽으며 내게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나는 오랫동안 <개선문>을 떠올릴 때마다, 라비크와 조앙 마두라는 인물의 매혹적인 아우라를 아련히 기억하면서, 이런 삽화를 겹쳐 떠올리곤 했었는데.... 그 기억의 한 갈피가 완전히 착오였다는 걸 이번에 확인받은 것이다

일 년 전쯤 쓴 작품에 이런 구절이 있다

"혼자 있을 때면 하릴없이 그저 국어 사전의 첫 장부터 차례대로 넘겨보며 낱말 풀이를 읽어 나가는 취미를 가진 사람처럼, 누구였더라, 레마르크의 <개선문>에 그런 인물이 나왔던 것 같은데, 어찌 된 까닭인지 그 소설의 상세한 대목들은 희미해져 버렸어도 그 사전 읽기 취미와 '조앙 마두'라는 여자의 이름만은 지금까지 선명하게 내게 남아 있는데, 어쨌든 그렇게 사전의 책장을 넘기며 자신과 대면하는, 아니 자신을 잠시 벗어나는 습관을 가진 사람처럼, 나는 곧잘 시계 소리를 들으며 한참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누워 있곤 한다. 시계 소리 저편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내게 말을 걸어오는 누군가의 깊은 목소리를 기다리며......"

헌데 아무리 책장을 넘겨봐도 라비크는 호텔 방에서 혼자 있을 때 사전 따위를 읽어 나가는 취미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인물은 누구란 말인가......
안개가 잘 끼는 낯선 도시(파리로 기억하는데)에 이방인으로 와 있는 한 남자가 허름한 호텔방에서 밤마다 혼자 '사전 읽기'로 시간을 죽여 가는 풍경...... 그런 남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이 <개선문>이 아니라면....... 난 저 문장들을 다시 고쳐 써야 한다, 그것도 뒷맛이 씁쓸한 일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나의 잘못된 기억, 그렇게 각인된 오류의 실체가 궁금하고 궁금하다

누가 나의 잘못된 기억의 한 갈피를 바로잡아 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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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3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레혼 2004-10-24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한데, 어쩌죠? 딱히 보여 드릴 만한 게 없어서.......
 

"왕자役 10년째 이제야 무대가 보여"

'잠자는 숲속의 미녀' 발레리노 이원국


이원국은 '무용수' 이전에 '전환점'이다. 국내 고전 발레의 남성 무용이 '이원국 이전'과 '이원국 이후'로 나뉘기 때문이다. 평론가들은 "국내 발레사에서 '이.원.국'이란 이름 석자는 이미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남성 발레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것으로 평가받는 이원국을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그는 오는 15일까지 공연하는 국립발레단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주역을 맡았다. 남자 무용수를 한껏 강조하는 러시아의 전설적인 안무가 루돌프 누레예프 버전의 국내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릴 때 이원국의 꿈은 '축구 선수'였다. "초등학생 때 교통사고로 6개월간 입원하지 않았다면 무대가 아닌 축구장에 서 있을지도 몰라요." 발레를 만난 것은 고3 때였다. 느지막한 나이였다. 부산 동명공고에 다니던 그는 휴학 중이었다. "공업고등학교라 대학에 갈 생각도 안 하고 있었어요. 딱히 뭘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던 시절이었죠."

발레를 권한 사람은 서예가이자 한지공예 작가인 어머니였다. '너와 어울릴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오로지 어머니를 위해 학원에 등록했죠." 남자라곤 혼자뿐이었다.
"당시만해도 몸에 꽉 끼는 무용복을 입은 남자는 구경거리였죠." 크게 흥미를 못느낀 채 6개월을 다녔다. 그러다 비디오로 영국 로열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를 봤다. 그는 압도당했다. "왕자역을 맡은 앤서니 도웰의 무용은 제 혼을 빼놓았죠."

그 때부터 춤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발바닥이 까지도록 춤을 췄다. 그리고 중앙대 무용학과 88학번이 됐다. "입학할 때만 해도 전학년 통틀어 남자는 세명뿐이었어요." 오히려 기회였다. 180㎝의 키에 늘씬한 몸매, 공연마다 그는 무대에 섰다. 1993년 졸업과 함께 프로 발레단에 입단한 그는 무려 10년간 '왕자'역을 도맡았다.

이제 그는 서른일곱살이다. "순식간이죠. 마흔을 향해 달리고 있어요. 여러 모로 달라진 나를 느낍니다."
많은 변화, 그 중에서 그는 한 가지를 꼽았다.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춤을 바라보는 내 시야입니다." 예전에는 무대의 중심이 자신이었다. "'내가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야지''실수를 하지 말아야지'란 생각만 했죠." 지금은 다르다. "이젠 다른 무용수들이 눈에 들어와요. 매 순간 달라지는 무대의 중심이 보이더군요."

사소한 게 아니다. 무용수에겐 큰 깨달음이다. 그는 "연습실에 들어가는 발걸음부터 달라졌다"고 했다. 전에는 화려하게 내리꽂는 조명과 쏟아지는 갈채가 '전부'라고 믿었다.

"배역과 하나가 되는 순간의 황홀감만 좇았죠."'오늘 세상이 끝난다'는 생각만으로 춤을 췄다. 이젠 다르다. "가볍게 디디는 바닥, 몸을 풀기 위해 숙이는 허리, 연습실에서 나누는 후배들과의 대화, 이런 자잘함 속에 무용수로서의 내 삶이 있더군요."

그는 알고 있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죠." 생명력이 짧은 게 무용수다. "그때까진 무용 앞에서 한없이 깊어지고, 진지해지고 싶어요." 어느새 그의 호흡은 길어져 있었다. 15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백성호 기자 [중앙일보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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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아침마다 배달돼 오는 신문을 읽는 일이 고역이 돼 버렸다. 일단 지면이 너무 많아서(기사의 양에 비례해 질이 높아진 건 물론 아니다!), 활자 중독증이 있는 데다 주요 대목만 요령있게 '속독'을 하는 기술을 체득하지 못한 나 같은 사람에게 신문을 읽는 일은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 낭비를 각오해야 하는 고역이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신문은 제대로 읽히지 않은 채 며칠씩 수북히 쌓여 있으면서 마치 숙제가 밀려 있는 듯한 개운치 않은 느낌을 주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호기롭게 신문 따위... 하면서 외면해 버릴 수도, 또 '늙고 병든 가족'을 버리는 것 같은 기분 때문에 매몰차게 끊어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시쿤둥해하면서도 아침마다 어김없이 얼굴을 마주 대해야 하는 식구 같은 신문을 들추다가 간혹 찡한 '마음의 움직임'이 일어날 때가 있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인데, 오늘 아침 신문을 읽다가 한순간 그런 드문 마음의 스파크가 일어났다.

-- 그는 말한다.
예전에는 무대의 중심이 자신이었다. "'내가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야지''실수를 하지 말아야지'란 생각만 했죠." 지금은 다르다. "이젠 다른 무용수들이 눈에 들어와요. 매 순간 달라지는 무대의 중심이 보이더군요."

"배역과 하나가 되는 순간의 황홀감만 좇았죠."'오늘 세상이 끝난다'는 생각만으로 춤을 췄다. 이젠 다르다. "가볍게 디디는 바닥, 몸을 풀기 위해 숙이는 허리, 연습실에서 나누는 후배들과의 대화, 이런 자잘함 속에 무용수로서의 내 삶이 있더군요."


한 세계에서 그 사람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하나의 '전환점'이 된다는 무섭도록 근사한, 두렵고도 매혹적인 지점에 이른다는 것!
창작을 통해 한 세계를 만들어 내려는 사람 누구에게나 이런 욕망이 잠재돼 있을지 모른다
그 순수하게 집중된 욕망 때문에 자신이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려는,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또 다른 욕망에 시달린다
그야말로 내가 그 무엇을 욕망하는 주체가 아니라, 욕망이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다!

42.195km의 마지막 지점을 통과하는 그 한 순간을 위해 자기를 괴롭히며 억누르며 인내하며 과정을 '견디면서' 달리는 프로가 되기보다,
달리는 것,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워서', 달리고 있는 그 순간을 '음미하며' 오랫동안 달리기의 매 순간 순간을 행복해하는 아마추어 달림이로 남고 싶다는 생각......

글을 쓰는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워서, 깨어 있는 동안 기꺼이 '행복한 글쓰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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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만 우리를 깨물고 찌르는 책들을 읽어야 할 게야. 만일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질로 두개골을 깨우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단 말인가? 자네가 쓰는 식으로, 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라고? 맙소사, 만약 책이라곤 전혀 없다면 그 또한 우리는 정히 행복할 거야.
그렇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고통을 주는 재앙 같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누군가의 죽음 같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멀리 숲 속으로 추방된 것 같은, 자살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들이지.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봍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해. 나는 그렇게 생각해."

--- 카프카가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 중 /  카프카의 편지 모음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솔)

 

"나는 오늘도 시를 태아처럼 낳고 막막한 길을 걸어간다. 나를 찢고 나올 내 시는 나의 분신이다. 분신은 늘 나를 아프게도, 믿게도 한다. 시인 된 지 올해로 사십 년이 되었다. 첫 시집은 등단한 지 십팔 년 만에 냈었는데, 시에 대한 산문집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도 카뮈처럼 '처음'이란 단어에 매혹을 느낀다. 시에는 나이도 없고 불혹도 없다. 늙지 않는 정신이 있을 뿐이다.

'포도에 씨가 있는 것처럼 내 가슴에 슬픔이 있다.
푸른 포도가 술이 되는 것처럼 나의 슬픔이여 기쁨이 되어다오.'
- 다카미 준 "

--- 천양희, <직소포에 들다>(문학동네)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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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는 정말이지 글쓰기에 '들린'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보험회사에 근무하면서 밤에만 글을 썼다는 그가 길지 않은 생애에도 세계 문학의 한 영토를 차지하는 뛰어난 '걸작'들과 이토록 많은 편지를 남긴 걸 보면, 그는 잠을 자지 않고 밤새 영혼의 불꽃을 터뜨리는, 무엇엔가 '들린 이들'만이 비밀스럽게 갖게 되는 위험한 비법이나 비방을 갖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이번에 솔에서 펴낸 카프카 전집의 마지막 권이라는 편지 모음에는 그가 친구 막스 브로트를 비롯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620편이 실려 있다(이 책의 두께는 무지막지한데, 무려 1088페이지나 된다!). 1900년에서 1924년까지 620여 통의 편지를 썼던 카프카. 이 편지의 대부분은 그의 막역한 친구이자 편집자였던 막스 브로트에게 보낸 것이었다.


나는 카프카의 '知音'이었던 막스 브로트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막스 브로트'를 검색해 보니 이렇게 쓰여 있다.

브로트 Max Brod (1884-1968)

독일 작가·시오니스트. 프라하 출생. 카프카의 친구.
프라하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으며 1902년 카프카를 만나 친교를 맺었다. 나중에는 말단 공무원과 연극 비평가로 일했다. 1912년부터 적극적인 유대 민족주의자로 활동했으며 나치스의 체코슬로바키아 점령으로 1939년 팔레스타인(이스라엘)에 망명하였다.
다방면에 걸쳐 활동하였는데 주요 저작은 3부작 <티호 브라에의 신에 이르는 길(1916)> <유대인의 왕 레우베니(1925)> <붙잡힌 갈릴레이(1948)>, <카프카와의 대화>와 논문 <이교·그리스도교·유대교(1921)>등이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친구인 카프카의 유고를 출판하여 카프카의 진가를 전세계에 알렸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그에게 자신이 죽은 뒤 미발표 원고를 없애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는 고인이 된 친구의 바람을 무시하고 1930년대에 그것들을 편집해서 출판했다.

결국 지금 우리가 카프카를 읽게 된 건 실제로 친구의 유언을 뒤엎고 그의 원고들을 책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보낸 막스 브로트 덕분인 것이다.
자신이 남긴 글들을 모두 태워 달라고 했던 카프카는 하늘나라에서 결국은 그의 이름을 달고 태어난 책들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시인 천양희는 등단한 지 십팔 년만에 첫 시집을 냈다고 한다.
나는 저 글에서 그 숫자를 보고, 몇 번이나 입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한 사람의 시인이 한 권의 시집을 갖기까지 흘러가야 했던 시간의 무게와 깊이에 대해 짐작해 보면서......


내가 쓴 한 권의 책을 갖고 싶다는 것이 어쩌면 이 생에 내가 품은 가장 큰 소망일지 모른다.
'내가 쓴 책'을 나만큼이나 기다려 주는 한 친구에게 말한다.
세상에는 좋은 책들이 너무나 많고 많지만, 정말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욕 나오는 책들도 있어. 나무에게 부끄럽고 미안하지도 않을까. 저 혼자의 만족을 위해 그런 따위를 책으로 만들어 낼 파렴치한 욕심을 부리다니,싶은 책들도 실은 적지 않아. 나는 적어도 나무에게 부끄러운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 싶어!

정말, 그 어느 때보다도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이 오월에 초록의 나무들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이 나무를 베어서 만들 종이와 그 종이에 새겨질 글자들에 대해 겸허하고도 엄정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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