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만 우리를 깨물고 찌르는 책들을 읽어야 할 게야. 만일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질로 두개골을 깨우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단 말인가? 자네가 쓰는 식으로, 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라고? 맙소사, 만약 책이라곤 전혀 없다면 그 또한 우리는 정히 행복할 거야.
그렇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고통을 주는 재앙 같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누군가의 죽음 같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멀리 숲 속으로 추방된 것 같은, 자살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들이지.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봍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해. 나는 그렇게 생각해."

--- 카프카가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 중 /  카프카의 편지 모음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솔)

 

"나는 오늘도 시를 태아처럼 낳고 막막한 길을 걸어간다. 나를 찢고 나올 내 시는 나의 분신이다. 분신은 늘 나를 아프게도, 믿게도 한다. 시인 된 지 올해로 사십 년이 되었다. 첫 시집은 등단한 지 십팔 년 만에 냈었는데, 시에 대한 산문집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도 카뮈처럼 '처음'이란 단어에 매혹을 느낀다. 시에는 나이도 없고 불혹도 없다. 늙지 않는 정신이 있을 뿐이다.

'포도에 씨가 있는 것처럼 내 가슴에 슬픔이 있다.
푸른 포도가 술이 되는 것처럼 나의 슬픔이여 기쁨이 되어다오.'
- 다카미 준 "

--- 천양희, <직소포에 들다>(문학동네)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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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는 정말이지 글쓰기에 '들린'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보험회사에 근무하면서 밤에만 글을 썼다는 그가 길지 않은 생애에도 세계 문학의 한 영토를 차지하는 뛰어난 '걸작'들과 이토록 많은 편지를 남긴 걸 보면, 그는 잠을 자지 않고 밤새 영혼의 불꽃을 터뜨리는, 무엇엔가 '들린 이들'만이 비밀스럽게 갖게 되는 위험한 비법이나 비방을 갖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이번에 솔에서 펴낸 카프카 전집의 마지막 권이라는 편지 모음에는 그가 친구 막스 브로트를 비롯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620편이 실려 있다(이 책의 두께는 무지막지한데, 무려 1088페이지나 된다!). 1900년에서 1924년까지 620여 통의 편지를 썼던 카프카. 이 편지의 대부분은 그의 막역한 친구이자 편집자였던 막스 브로트에게 보낸 것이었다.


나는 카프카의 '知音'이었던 막스 브로트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막스 브로트'를 검색해 보니 이렇게 쓰여 있다.

브로트 Max Brod (1884-1968)

독일 작가·시오니스트. 프라하 출생. 카프카의 친구.
프라하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으며 1902년 카프카를 만나 친교를 맺었다. 나중에는 말단 공무원과 연극 비평가로 일했다. 1912년부터 적극적인 유대 민족주의자로 활동했으며 나치스의 체코슬로바키아 점령으로 1939년 팔레스타인(이스라엘)에 망명하였다.
다방면에 걸쳐 활동하였는데 주요 저작은 3부작 <티호 브라에의 신에 이르는 길(1916)> <유대인의 왕 레우베니(1925)> <붙잡힌 갈릴레이(1948)>, <카프카와의 대화>와 논문 <이교·그리스도교·유대교(1921)>등이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친구인 카프카의 유고를 출판하여 카프카의 진가를 전세계에 알렸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그에게 자신이 죽은 뒤 미발표 원고를 없애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는 고인이 된 친구의 바람을 무시하고 1930년대에 그것들을 편집해서 출판했다.

결국 지금 우리가 카프카를 읽게 된 건 실제로 친구의 유언을 뒤엎고 그의 원고들을 책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보낸 막스 브로트 덕분인 것이다.
자신이 남긴 글들을 모두 태워 달라고 했던 카프카는 하늘나라에서 결국은 그의 이름을 달고 태어난 책들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시인 천양희는 등단한 지 십팔 년만에 첫 시집을 냈다고 한다.
나는 저 글에서 그 숫자를 보고, 몇 번이나 입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한 사람의 시인이 한 권의 시집을 갖기까지 흘러가야 했던 시간의 무게와 깊이에 대해 짐작해 보면서......


내가 쓴 한 권의 책을 갖고 싶다는 것이 어쩌면 이 생에 내가 품은 가장 큰 소망일지 모른다.
'내가 쓴 책'을 나만큼이나 기다려 주는 한 친구에게 말한다.
세상에는 좋은 책들이 너무나 많고 많지만, 정말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욕 나오는 책들도 있어. 나무에게 부끄럽고 미안하지도 않을까. 저 혼자의 만족을 위해 그런 따위를 책으로 만들어 낼 파렴치한 욕심을 부리다니,싶은 책들도 실은 적지 않아. 나는 적어도 나무에게 부끄러운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 싶어!

정말, 그 어느 때보다도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이 오월에 초록의 나무들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이 나무를 베어서 만들 종이와 그 종이에 새겨질 글자들에 대해 겸허하고도 엄정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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