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役 10년째 이제야 무대가 보여"

'잠자는 숲속의 미녀' 발레리노 이원국


이원국은 '무용수' 이전에 '전환점'이다. 국내 고전 발레의 남성 무용이 '이원국 이전'과 '이원국 이후'로 나뉘기 때문이다. 평론가들은 "국내 발레사에서 '이.원.국'이란 이름 석자는 이미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남성 발레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것으로 평가받는 이원국을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그는 오는 15일까지 공연하는 국립발레단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주역을 맡았다. 남자 무용수를 한껏 강조하는 러시아의 전설적인 안무가 루돌프 누레예프 버전의 국내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릴 때 이원국의 꿈은 '축구 선수'였다. "초등학생 때 교통사고로 6개월간 입원하지 않았다면 무대가 아닌 축구장에 서 있을지도 몰라요." 발레를 만난 것은 고3 때였다. 느지막한 나이였다. 부산 동명공고에 다니던 그는 휴학 중이었다. "공업고등학교라 대학에 갈 생각도 안 하고 있었어요. 딱히 뭘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던 시절이었죠."

발레를 권한 사람은 서예가이자 한지공예 작가인 어머니였다. '너와 어울릴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오로지 어머니를 위해 학원에 등록했죠." 남자라곤 혼자뿐이었다.
"당시만해도 몸에 꽉 끼는 무용복을 입은 남자는 구경거리였죠." 크게 흥미를 못느낀 채 6개월을 다녔다. 그러다 비디오로 영국 로열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를 봤다. 그는 압도당했다. "왕자역을 맡은 앤서니 도웰의 무용은 제 혼을 빼놓았죠."

그 때부터 춤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발바닥이 까지도록 춤을 췄다. 그리고 중앙대 무용학과 88학번이 됐다. "입학할 때만 해도 전학년 통틀어 남자는 세명뿐이었어요." 오히려 기회였다. 180㎝의 키에 늘씬한 몸매, 공연마다 그는 무대에 섰다. 1993년 졸업과 함께 프로 발레단에 입단한 그는 무려 10년간 '왕자'역을 도맡았다.

이제 그는 서른일곱살이다. "순식간이죠. 마흔을 향해 달리고 있어요. 여러 모로 달라진 나를 느낍니다."
많은 변화, 그 중에서 그는 한 가지를 꼽았다.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춤을 바라보는 내 시야입니다." 예전에는 무대의 중심이 자신이었다. "'내가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야지''실수를 하지 말아야지'란 생각만 했죠." 지금은 다르다. "이젠 다른 무용수들이 눈에 들어와요. 매 순간 달라지는 무대의 중심이 보이더군요."

사소한 게 아니다. 무용수에겐 큰 깨달음이다. 그는 "연습실에 들어가는 발걸음부터 달라졌다"고 했다. 전에는 화려하게 내리꽂는 조명과 쏟아지는 갈채가 '전부'라고 믿었다.

"배역과 하나가 되는 순간의 황홀감만 좇았죠."'오늘 세상이 끝난다'는 생각만으로 춤을 췄다. 이젠 다르다. "가볍게 디디는 바닥, 몸을 풀기 위해 숙이는 허리, 연습실에서 나누는 후배들과의 대화, 이런 자잘함 속에 무용수로서의 내 삶이 있더군요."

그는 알고 있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죠." 생명력이 짧은 게 무용수다. "그때까진 무용 앞에서 한없이 깊어지고, 진지해지고 싶어요." 어느새 그의 호흡은 길어져 있었다. 15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백성호 기자 [중앙일보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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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아침마다 배달돼 오는 신문을 읽는 일이 고역이 돼 버렸다. 일단 지면이 너무 많아서(기사의 양에 비례해 질이 높아진 건 물론 아니다!), 활자 중독증이 있는 데다 주요 대목만 요령있게 '속독'을 하는 기술을 체득하지 못한 나 같은 사람에게 신문을 읽는 일은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 낭비를 각오해야 하는 고역이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신문은 제대로 읽히지 않은 채 며칠씩 수북히 쌓여 있으면서 마치 숙제가 밀려 있는 듯한 개운치 않은 느낌을 주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호기롭게 신문 따위... 하면서 외면해 버릴 수도, 또 '늙고 병든 가족'을 버리는 것 같은 기분 때문에 매몰차게 끊어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시쿤둥해하면서도 아침마다 어김없이 얼굴을 마주 대해야 하는 식구 같은 신문을 들추다가 간혹 찡한 '마음의 움직임'이 일어날 때가 있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인데, 오늘 아침 신문을 읽다가 한순간 그런 드문 마음의 스파크가 일어났다.

-- 그는 말한다.
예전에는 무대의 중심이 자신이었다. "'내가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야지''실수를 하지 말아야지'란 생각만 했죠." 지금은 다르다. "이젠 다른 무용수들이 눈에 들어와요. 매 순간 달라지는 무대의 중심이 보이더군요."

"배역과 하나가 되는 순간의 황홀감만 좇았죠."'오늘 세상이 끝난다'는 생각만으로 춤을 췄다. 이젠 다르다. "가볍게 디디는 바닥, 몸을 풀기 위해 숙이는 허리, 연습실에서 나누는 후배들과의 대화, 이런 자잘함 속에 무용수로서의 내 삶이 있더군요."


한 세계에서 그 사람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하나의 '전환점'이 된다는 무섭도록 근사한, 두렵고도 매혹적인 지점에 이른다는 것!
창작을 통해 한 세계를 만들어 내려는 사람 누구에게나 이런 욕망이 잠재돼 있을지 모른다
그 순수하게 집중된 욕망 때문에 자신이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려는,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또 다른 욕망에 시달린다
그야말로 내가 그 무엇을 욕망하는 주체가 아니라, 욕망이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다!

42.195km의 마지막 지점을 통과하는 그 한 순간을 위해 자기를 괴롭히며 억누르며 인내하며 과정을 '견디면서' 달리는 프로가 되기보다,
달리는 것,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워서', 달리고 있는 그 순간을 '음미하며' 오랫동안 달리기의 매 순간 순간을 행복해하는 아마추어 달림이로 남고 싶다는 생각......

글을 쓰는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워서, 깨어 있는 동안 기꺼이 '행복한 글쓰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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