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자신이 가서 혼자서 앉아 있을 수 있고, 그녀가 어디 있는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할 방이나 아니면 공간이, 아무 곳에라도, 있었으면 하고 꿈꾸었다.
방은 평범하고 별 특징이 없었으며, 수전이 필요로 하는 바로 그런 방이었다. 그녀는 가스 난로에 1실링을 넣고는, 음침한 창문에 등을 기대고 더러운 안락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녀는 혼자였다. 그녀는 혼자였다. 그녀는 혼자였다. 수전은 자신으로부터 압박감이 물러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전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되면 그러한 고독을 좀더 자주 가질 수 있을 것이었다. 아무도 그녀를 알지 못하고 아무도 그녀를 걱정해주지 않는, 절대적인 고독 말이다.
그녀는 이 방에서 무엇을 "하였는가?" 글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한 다음, 그녀는 창가로 다가가서, 팔을 뻗고, 미소지으며, 자신의 익명성을 소중히 여기면서, 밖을 내다보았다. 그녀는 더 이상 수전 롤링스가 아니었다. ...... 그녀는 창턱에 기대어, 거리를 내려다보았고, 거리를 지나가는 남자들과 여자들을 사랑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일식--세계 여성 단편 소설선>>, 한국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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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결혼 이후, 지난 12년 동안 단 한 순간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고, 자기 자신의 시간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이제 다시 자기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느낀다. 이유는 그것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부턴가 오전에 집을 나와 교외의 쇠락한 작은 여관의 19호실을 '자기만의 방'으로 삼기 시작했다. 그 방에서 그녀는 '혼자 있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남편과 네 아이가 있는, 아무 문제 없이 화기애애한 가정 속으로,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돌아간다.
그녀는 그 혼자만의 방, 혼자만이 존재하는 시간을 유지하기 위해 남편에게 주당 5파운드를 달라고 한다. 남편은 이유를 묻지 않고, 마치 아내에게 돈을 지불하듯이, 일요일 밤마다 5파운드를 준다.
그러나, 남편은 그 '돈의 용도'에 대해 그저 무관심한 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제 그녀의 '19호실'은 더 이상 '익명의 공간', '혼자만의 방'으로 남아 있지 못하게 돼 버렸다.
"19호실은 똑같았다. 수전은 예리하고, 섬세하게, 조사하는 시선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이 방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그녀는 곰팡이 냄새, 그리고 땀 냄새, 섹스 냄새로 가득한 딱딱한 침대에 누웠다.
수전은 녹색 공단 커버에 등을 대고 침대에 누웠지만, 다리가 추웠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는 서랍장 맨 밑에서 접힌 채로 놓여 있는 담요 한 장을 찾아내었고, 조심스럽게 다리를 덮었다. 어두운 강 속으로 천천히 떠밀려가면서, 방안으로, 폐 속으로, 머리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희미하고 부드러운 가스 소리를 들으면서, 그녀는 그곳에 누워 있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는 버지니아 울프의 페미니즘 비평서인 <자기만의 방>을 완벽하게 문학적으로 성취해 보여준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버지니아 울프와 실비아 플라스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앞으로 백 년 정도 살게 되고 우리들 각자가 연간 오백 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면,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의 습성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가 공동의 거첫방에서 약간 탈출하여 인간을 서로에 대한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리얼리티와 관련하여 본다면, 그리고, 하늘이건 나무이건, 그 밖의 무엇이건 간에 사물 자체로서 보게 된다면."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오진숙 옮김, 솔) 중에서

꼭 한 해 반 전에 나 역시 생애 최초로 '혼자만의 방'을 갖게 되었다.
그저 사방의 벽과 천장으로 닫혀 있는, 그러나 고독과 홀로 있음의 자유와 가능성으로 무한히 열려 있는 그 방에 처음 들어서던 순간의 감격스러움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그 방의 공기마저 내가 이제까지 머물던 세계의 그것과는 다른, 아주 환상적인 것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 방에서 쓸 커피 잔 하나, 휴지통 하나를 사면서도 신접살림을 준비하는 새색시처럼 마음이 연한 장미꽃 빛깔로 발갛게 달아오르곤 했었다. 아, 나만의 방, 나만의 방, 나만의 우주인 것이다!
그 방의 문을 내 열쇠로 처음 열던 날, 나는 어떤 선언처럼, 서점으로 가서 한 권의 책을 샀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요 며칠, 도리스 레싱을 읽으며, 아, 이건 바로 내 이야기이며, 내가 썼어야 했으며, 내가 너무나도 잘 쓸 수 있었던 얘기라는 걸 절절히 느꼈다. 허나 어쩌랴. 이미 레싱이 '그녀의 19호실'을, 나만의 방과 너무도 닮은 그 방을 이렇게 생생하게 그려내 버린 것을.
다시 나만의 방을, 천천히, 세심하게, 예리하게 살펴본다.
버지니아 울프나 도리스 레싱이 느끼고 보았지만 미처 말하지 못한 그 무언가가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르므로....... 휴지통이나 화장실 안이라도 뒤져 보는 수밖에.
"글을 쓰는 여성은 그 누구든지 간에 생존자이다"라는 틸리 올슨의 말을 격언으로 삼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