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은 어떤 한정된 장소에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존재하려는 경향'을 나타내며, 원자적 사건들은 확실성 있게 한정된 시간에 한정된 방식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하려는 경향'을 나타내 보이는 편이다.
......... 원자 물리학의 모든 법칙들은 이러한 확률로 표현된다. 우리는 원자적 사건을 결코 확실성 있게 예언할 수 없다. 단지 그것이 어떻게 일어날 것 같은가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궁극적으로 이런 '확률 모형들'은 사물의 확률이 아니라 상호 연관의 확률을 나타낸다."


"물질을 뚫고 들어가 보면 볼수록 자연은 어떤 독립된 기본적인 구성체를 보여주지 않고 오히려 전체의 여러 부분들 사이에 있는 복잡한 그물의 관계로서 나타난다. 이러한 관계들은 언제나 그 본질적인 면에서 관찰자를 포함한다. 인간이라는 관찰자는 관찰되는 과정에서 마지막 연결을 이루며, 어떤 원자적 대상물의 성질도 단지 관찰자와 대상의 상호 작용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원자 물리학에서는 우리 자신을 동시에 언급하지 않고서는 자연에 관해서 결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 프리초프 카프라,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The Tao of Physics), 83-84쪽, 범양사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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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이상하게 정신이 말똥말똥 맑은 상태에서(근래에 드물게 찾아온 상태...) 이 구절을 읽고 있을 때 강렬하고 인상적인 스파크가 일었다
별다른 생각 없이 올려다본 하늘에서 허공을 가로지르며 별똥별이 떨어지듯,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섬광을 일으키며 무언가가 선연히 지나가고 있었다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존재하려는 경향'을,
확실하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하려는 경향'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이다!

이 우주의 모든 물질이, 원자가, 원자적 사건들이, 나라는 존재가!

그리고 그 물질은 근본적으로 하나의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어떤 그물의 관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나는 꼭 나여야만 했던 것도 아니며, 나 아닌 다른 그 무엇이 될 수도 있었다
이제까지 내가 통과해 온 그 그물이 아니라 다른 그물 속에서였다면......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나는 나 아닌 그 무엇으로 바꾸어질 수도 있다
나와 비슷해 보이나 전혀 다른 입자들로 바꾸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입자들은 나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다른 입자들과 연결되며, 따라서 나는 그 입자들 가운데 하나가 되는 셈이다
나라는 입자는 지금 어떤 형태로 '존재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걸까
지금 내 안에서는 어떤 입자적 사건들이 '발생하려는 경향'을 꿈틀거리고 있는 걸까

이런 '현대 물리학의 발견'은,
이 미친듯한 여름밤, 자꾸만 견고해지고 자폐적인 성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나라는 그 부동형의 입자에 묶여서 헐떡거리는 나를 훌훌 풀어 주었다

속으로 은근히 음미하고 있는 내 '잘난멋'도 온전히 내 것이 아니며, 역으로 내가 처해 있는 환경이나 관계에서 못마땅해하는 것도 다 나의 파장의 영향 아래, 상호 연관 관계 속에 있는 것이므로 나 혼자 그 그물망 밖에서 관조하며 툴툴거릴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책장을 더 넘겨 보니 이 책의 뒷부분에는 <화엄경>의 이런 구절을 옮겨 놓고 있다

"인드라 하늘에는 진주 그물이 있고, 그 그물들은 잘 정돈되어 있어 만일 사람이 어떤 하나의 진주를 보면 다른 모든 것들이 그 속에 반영되어 있는 것을 볼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이 세계 내의 각각의 대상물들은 단지 그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대상물들을 동반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실상 각각의 대상은 서로 다른 모든 것이기도 하다. '모든 티끌의 입자 속에도 무수한 부처들이 현존한다.' "

 

 

 

 

 

 

 

 

 

 

 

 

 

 

 

 

 

 

 

 

 

 

 


윌리엄 블레이크 역시 이런 지혜를 간파했던 모양이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그리고 한 송이의 들꽃에서 천국을 보기 위하여,
너의 손바닥에 무한을
그리고 하나의 시간에 영원을 간직하라."


내가 마음에 들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싫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그립기도 하다
지나왔으나 진정으로 다 살지 못했던 그물들을 돌아보는 대신에
지금 막 통과하고 있는 이 시간의 망, 관계의 망을 온몸으로 잘 지나가자고
자신에게 얘기한다
그 말은 어디서 들려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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