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 클럽 메피스토(Mephisto) 1
척 팔라닉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파이트 클럽>

(척 팔라닉 원작, 최필원 옮김, 책세상)

(데이비드 핀처 감독, 브래드 피트, 에드워드 노튼 출연))

 


                   우주가 마음대로 되는 것이었다면
                        그렇다면 산산이 부숴 버렸을 것을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우주를
                        새로이 만들어 보았을 것을

                        오머 하이얌의 <루바이야트> 중에서
 

  
 

 

 

 

 

 

 

 

 

 


소설 <파이트 클럽>을 뒤적이는 동안도 너는 때때로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온라인 쇼핑몰을 기웃거리며 새로 발견한 상품들에 마음이 흔들리곤 했다. 지난주에 택배로 도착한 물건이 모니터 상에서 보던 것과 달라 실망한 기억을 채 지우지도 못했는데, 아직 구입을 미루고 있는 상품들에 대한 미련으로 짬이 날 때마다 '즐겨찾기'에 들어있는 쇼핑 사이트에 들르곤 한다. 너는 네가 작성한 '즐겨찾기'가 군더더기 없이 단순 명쾌한 네 자신의 '존재 증명서'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의 새로운 주민등록증. 네 영혼은 그곳에서 즐겨 머무르고, 네 시간은 그곳에서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다!
  저녁 때 9시 뉴스와 드라마 사이 채널을 돌리다가 홈쇼핑 채널에 대책 없이 눈길이 사로잡히기도 한다. 이효리의 "텐 미니츠" 리듬에 맞춰서 탱크 톱과 핫팬츠 차림의 깡마른 여자들이 런닝 머신 위를 경쾌하게 달리고 있다. 그 여자들은 행복과 환희의 미소를 공식적인 표정으로 선택하고 있다. 그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너도 하염없이 그 트레드밀 위를 달려야 할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든다. 그렇게 함께 달리다 보면 저 여자들의 미소가 너의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네 머릿속을 뿌옇게 채워 간다. 화면 속의 시계가 째깍째깍 소리도 없이 일 초 일 초 줄어드는 시간을 알려준다. 저 시계가 제로가 되기 전에 서둘러 저 행복의 대열에 끼어 들어야 할 것 같은 초조감이 든다. 저것 봐, 서두르라구! 보너스 상품과 경품 추첨의 행운까지 함께 날아가 버리기 전에.
  내일이면 거대 기업의 반열에 진입할 홈쇼핑 업체와 전국을 거미줄처럼 뒤덮고 있는 온라인 쇼핑몰과 택배 업체와 공동 구매와 특별 사은 행사와 카드 결제와 쇼핑 중독과 불면증 환자들의 세상이여, 그 미래는 영원 불멸 아니면 완전 파멸일 터!
  너는 지친 잠 속에서도 그 트레드밀 위를 달리고 있다. 꿈속에서 너는 꿈꾼다. 그만 이 헛된 욕망의 트레드밀 위에서 내려가고 싶다고. 더 이상 다른 사람들과 같은 리듬과 속도로 달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 모든 것이 달라진 새로운 세상을...... 세상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산산이 부숴 버리고 싶다고.      


 
자동차 회사의 리콜 심사관인 나(에드워드 노튼)의 유일한 즐거움은 스웨덴산 고급 가구 회사 카탈로그에 소개된 가구를 모으고, 유명 상표의 물건들을 구입하는 것. 이케아 소파와 소니 텔레비전, IBM 컴퓨터, 스타벅스 커피에 아르마니 넥타이가 가득한 출장 가방……. 그러나, 나는 일상의 무료함과 공허함 속에서 늘 새로운 탈출을 꿈꾼다. 나는 출장 때마다 비행기가 추락하기를 바라고, 암으로 죽어 가는 이들이 부럽고, 세상은 불만스럽기만 하다.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은 야행성이다. 그는 남들 다 자는 밤에 영사기사 일을 한다. 필름 한 편이 다 돌아가면 정확한 시간에 다음 필름으로 교체한다. 그는 가족 영화 상영 때 포르노 필름을 한 커트씩 끼워 넣는다. 유명 배우가 더빙한 만화영화에 타일러의 흔적이 순간 순간 번뜩이는 것이다. 타일러는 호텔의 연회 웨이터로도 일한다. 그는 요식 산업의 테러리스트였다. 디저트에 방귀를 뀌고 야채엔 재채기를 하고 버섯 수프엔 오줌을 갈긴다.

  타일러가 조직한 ‘파이트 클럽’에는 규칙이 있다. 1조: 클럽에 관해 발설하지 않는다. 2조: 파이트 클럽에 대해 절대 발설하지 않는다. 3조: 상대가 뻗거나 비명을 지르면 싸움을 멈춘다. 4조: 일 대 일로만 붙는다. 5조: 한 회에 한 번만 싸운다. 6조: 상의와 신을 벗는다. 7조: 필요하면 싸움을 계속한다. 8조: 여기 처음 온 사람은 반드시 싸운다.

  파이트 클럽 회원들이 조금씩 변화한다. 예전엔 열 받으면 집 청소를 하고 가구를 닦았다. 전 같으면 보험금을 듬뿍 타서 새 콘도를 보러 다녔겠지만 이젠 다르다. 늘 다음 모임만 생각한다. 이젠 피 맛이 역겹지 않다. 싸우고 싶은 욕망, 타일러는 그 욕망을 드러냈을 뿐이다. 비명소리를 덮는 둔탁한 파열음 피를 뿜으며 내뱉는 신음. 클럽엔 생명력이 넘쳤다. 승패는 상관없었다. 말도 필요 없었다. 오순절 교회의 방언처럼 터지는 괴성, 한바탕 붙고 나면 모든 게 담담해졌다. 구원받은 그 느낌, 파이트 클럽은 타일러가 세상에 준 선물이었다.

  우린 그 누구보다 강하고 똑똑하다. 헌데 그 능력이 말살되고 있다. 주유소, 식당, 사무실에서 배운 놈들에게 착취당하며 살고 있다. 우린 광고 속의 고급 차와 옷을 사려고 억지로 일을 한다. 우린 갈 곳 없는 역사의 고아다. 2차 대전도, 세계 대공황도 못 겪었지만, 이젠 우리의 삶이 영적인 공황을 겪고 있다. TV는 환상을 심어 준다. 백만장자와 스타의 헛된 환상을… 그 꿈이 깨어질 때 우린 열을 받는다. 자, 이제 숙제를 하나 내주겠다. 생판 모르는 자에게 시비를 걸어라. 싸움을 걸어라. 이제 3분 남았다. 곧 폭발할 것이다. 여긴 대 참사를 감상할 로얄석, ‘초토 작전’ 파괴위원회는 12개 건물을 폭약으로 도배했다. 2분 후면 연쇄 폭발로 몇 동네가 쑥대밭이 될 것이다. 이 총과 폭탄과 혁명이 1분 후면 세상을 바꿀 것이다.

  우린 평범한 존재다. 고로 우린 세상의 쓰레기다! 넌 변화를 원했지만 혼자선 할 수 없었어. 그래서 상상해낸 게 나, 타일러야. 난 네게 없는 걸 다 갖췄어. 외모, 정력, 능력, 게다가 자유로움까지! 타일러는 없어. 누구나 매일 상상 속에서 변화를 꿈꾸지만 너처럼 실천하진 못해. 넌 때론 날 지켜보기도 하고 때론 네 자신이 되지. 넌 조금씩 변해가고 있어. ‘타일러 더든’으로!

  (영화 <파이트 클럽>의 대사 인용)
 


  마돈나와 마이클 잭슨, 롤링 스톤즈와 스팅 등 여러 팝 스타의 뮤직 비디오와 CF에서 실력을 닦으며 성장해 온 감독 데이비드 핀처는 역설적이게도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자본과 기술 문명과 상업주의에 영혼을 저당 잡힌 현대인의 소외와 절망을 비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도발적이고 현란하면서 음울한 조롱의 어법을 지닌 '데이비드 핀처' 표의 영상으로.
  “인간은 사냥을 하도록 만들어졌지만 지금 쇼핑을 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어. 죽일 것도 없고, 싸울 것도 없고, 극복해야 할 것도 없는 우리는 거세된 세상에서 태어난 거야.”
  죽일 것도 없고, 싸울 것도 없고, 극복해야 할 것도 없고, 탐구해야 할 것도 없는 이런 거세된 세상에서 태어나는 것이 오늘의 '보통 사람'이다. 수많은 가능성은커녕 단 한 가지의 가능성도 주어지지 않은 인물, 정말 어떻게 자기 인생을 바꾸어야 할지 선택의 여지나 출구가 보이지 않는 그런 인물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현대인의 비극은 바로 그가 사는 세상이 별로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은 이미 다 구현되었고 그대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세상에 대한 관심과 희망은 고맙지만 그대는 그저 인터넷이나 접속해 주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이때 이런 무기력한 내 앞에 유령처럼 나타난 타일러는 말한다.
   "컴퓨터 시대? 신용 카드 사회? 모든 개인의 채무 기록이 폭발하면 인류는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자기 계발은 자위 행위에 불과해. 오직 폭력이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길이며, 가진 것을 모두 버려야 자유를 얻을 수 있어.”
  타일러라는 인물은 물질주의 사회로부터의 '일탈'을 소원하는 자아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주인공이 타일러를 때리는 장면은 허상으로 가득 찬 자신의 정체성에 반기를 들고 그 틀을 깨고자 하는 최초의 시도로 해석된다. 때리고 맞으면서 "폭력과 파괴를 통한 정체성 회복 "을 갈망하던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왜곡시키고 허상으로 채워놓은 물질 지상주의 사회를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
  타일러가 만들어 파는 '비누'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품'이다. 지방 흡입 시술소에서 버려진 사람의 지방으로 만들어진 고급 비누(!)가 불티나게 백화점에서 팔려나간다. 비누는 단지 그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양잿물과 비슷해서 무엇인가를 파괴하고 씻어내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폭력에 연관시켜 보면 영화 속에서 '비누'가 갖는 의미는 더욱 더 커진다. 결국 적당한 폭력은 비누와 같고, 과다한 폭력은 잿물과 같다. 파이트 클럽은 새로운 세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폭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쎄븐>에 이은 데이비드 핀처의 진정한 걸작 <파이트 클럽>은 여전히 어둡고 여전히 심오한 묵시록의 세계이다.  데이비드 핀처는 이 영화가“남자다움에 대한 우리의 혼란과 복잡함에 대한 공격, 그리고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와 소비 문화에 거세당한 한 남자의 자기 분열적인 욕망과 초월에 관한 이야기. 입 속에 총을 쑤셔넣고 살아난 그 남자는 자기의 분열 과정을 함께 해 온 연인과 같이 마천루가 즐비한 야경을 바라본다. 후기 자본주의의 상징인 신용카드사와 금융회사의 건물들이 마치 9.11의 무역센터처럼 하나둘 허물어져 내리는 그 황홀한 광경을. 그것은 모든 것이 파괴되는 순간이면서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핀처 감독은 이 영화의 마지막을 자신 있게 '해피 엔딩'이라고 말하고 있다.

  <파이트 클럽>은 이야기의 독특함과 짜임새 있는 구성뿐 아니라 개성 살린 연기, 감각적인 영상, 현란한 카메라 워킹과 편집, 디테일한 음향 효과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진짜 '영화' 그 자체라 할 만하다. 특히 두 주연 배우의 연기는 잊을 수 없는 여운을 남겨 주는데, 에드워드 노튼의 얼떨떨한 표정과 착 가라앉은 나레이션은 '나'의 분열과 혼란을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고, 반항적이고 냉소적인 브래드 피트의 연기는 절정에 다다른 카리스마를 느끼게 한다. 브래드 피트는 <가을의 전설> 류의 매끈한 역할보다는 '망가지는 역할'을 할 때 그 매력이 도드라지는 배우라는 사실을 재삼 확인시켜 준 영화이기도 하다.

  1996년에 발표한 소설 <파이트 클럽>을 통해 인상적인 '도플갱어'를 창조해 낸 작가 척 팔라닉은 컨테이너 열차의 디젤 엔진 수리공으로 일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파이트 클럽>은 첫 번째 소설 <인비저블 몬스터>가 너무 파격적이고 논쟁적이란 이유로 출간을 거부당하자 출판업자들에게 보복할 생각으로 씌어진 작품이라는데, 이 소설로 자신의 존재를 분명하고도 널리 알리게 된 셈이다. 그 뒤 몇 편의 소설을 통해 시종일관 긴박감으로 몸서리치게 하는 어투와 광기, 엉큼하고 신랄한 풍자와 잔인하고 냉소적인 시선은 척 팔라닉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그는 영화 <파이트 클럽>을 통해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된 브래드 피트의 섹시한 입술이 부러워 실제로 입술의 볼륨을 높여주는 기구를 구입할 정도로 괴짜라고 한다.

  광고를 통해 성장했으면서 소비 문화에 길들여진 현대인을 냉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 세계에서 손꼽히는 스타 배우 커플이자 부자인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타일러 더든' 역, 자신의 원작 영화에 출연한 배우의 섹시한 입술을 부러워해 입술 볼륨을 키워주는 기구를 사들이는 작가, 그리고 <파이트 클럽>과 만나는 동안에도 홈쇼핑 채널과 온라인 쇼핑몰을 기웃거리며 멋진 상품들에 쉽게 매혹 당하는 너...... 여전히 멈출 줄 모르는  욕망의 트레드밀 위를 달리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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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혼 2004-09-03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이트 클럽>, 정말 좋은 영화이지요. 저는 소설보다 영화가 한 수 위라는 느낌이었어요. 오히려 영화가 원작의 이미지와 메시지를 더 잘 담아내고 있다고 할까요. 강렬한 영상과 울림이, 브래드 피트의 그 비아냥거리는 표정이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근데, 시아님, 이 야밤에 산책 중이신가요? 알라딘의 숲길을......

urblue 2004-09-03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저도 무척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소설을 볼까 하다 척 팔라닉의 다른 작품 <서바이벌>을 골라들었는데, 좀 실~망 했답니다.
책이 아니라 DVD를 구입해야 겠습니다.

2004-09-07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레혼 2004-09-07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실은 아침에 이 답글을 봤지만, 뭐라고 답해야 좋을지 몰라 좀 묵혀 두었습니다.
욕망... 거대 자본의 음모... 멈출 수 없는 쇼핑... 존재의 증명 또는 위안
저도 늘 그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대며, 현기증을 느끼고 있답니다.
이 욕망이 진정한 내 것인지, 학습되거나 누군가를 따라하는 것인지도 의심할 여력도 없이,
머릿속이 붕붕거리면서도 멈추질 못합니다.
실은 이 서재를 만들고 나서도, 처음의 순진한 기대와는 다르게, 형태는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욕망에 또 쫓기고 있는 자신을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습니다......

2004-09-16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못 봤어요..보고 싶네요. 그리고 저 두 번째 사진..영화 속 장면 일 테지요..강렬합니다.

에레혼 2004-09-16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나님, 여기도 들르셨군요
보고 싶다는 그 욕망이 무색하지 않을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브래드 피트, 이 영화에서 '진짜 괜찮은 배우'라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요
가을 밤에 보기에는 너무 가슴을 싸하게 만들려나......

프레이야 2004-09-16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인사드려요. 참나님 서재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리뷰 정말 멋집니다.
은밀한 생, 도 그렇구요. 좀 가져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