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콩나물 다듬기
성 미 정
나는 콩나물 다듬는 일을 좋아한다
어디서든 이 일만은 내가 독차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가리에 붙은 껍질을 벗겨내고
잔뿌리를 다듬는 게 고작인 이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콩나물 다듬기가 좋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이 일을
내가 좋아한다는 게 좋고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이 일이
내게도 잘 맞는다는 게
때론 안심이 될 정도다
그러니까 콩나물 다듬기는 매우 단순하지만
이 일을 즐기는 나의 심리는
결코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콩나물을 다듬어야
나의 콩나물 다듬기도
남의 콩나물 다듬기처럼 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당분간 콩나물 다듬기는
내가 독차지해야 할 것 같다
-- 성미정 시집 <사랑은 야채 같은 것>( 민음사)

콩나물 다듬기와 같은 일상의 표나지 않는 노고들이 있다
누군가가 움직여 주지 않으면, 수고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 일상의 부분들...
나의 시월은 그런 시간들에 보내지고 있다
이 시간들이 無用하다고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
빨래를 개키면서, 걸레를 빨면서, 마루를 닦으면서, 냉장고 안의 시든 야채를 버리면서,
락스 푼 물로 화장실을 청소하면서.....
투명한 바람처럼 나를 스쳐 지나가는 시간의 깃털을 느낀다
문득 <천국보다 낯선>의 그녀처럼 커다란 사각 트렁크를 들고 먼 길을 떠나고 싶어지는 마음을
'나의 콩나물'을 다듬으며 애써 붙들어 앉힌다
창 밖으로 오늘 몫의 가을 햇살이 환하고 쓸쓸하게 저물어 간다
"그러니까 콩나물 다듬기는 매우 단순하지만
이 일을 즐기는 나의 심리는
결코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 1984)
Directed by Jim Jarmus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