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거
이 경 임
그녀들이 내 안에서 하루를 산 만큼
그녀들 안에서 나는 또하루를 산다
그녀들이 탕진한 나의 향기만큼
그녀들의 향기를 나는 탕진한다
언제부터 우리들은
서로의 몸 속에 기생해 왔던 것일까
아무래도 좋다, 이제 그녀들도
나와 함께 늙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녀들의 자애로운 포주이듯
그녀들은 나의 순결한 숙주들이다
그녀들과 몸을 섞어보지 못한 불운한 남자들은
그녀들을 단지,
슬픔, 환멸,
혹은 죽음, 허무, 권태라고들 부른다
몸이 없는 남자들만 그녀들을
관념적이라고 비난한다
이제 나는 늙은 항아리
그녀들은 꽃잎이고, 독한 술이고,
바람이고, 피아노 같은 구름이다
내 안에 고요한 동심원들을 그리는
무수한 빗방울들이다
이제 나는 낡은 유곽,
그녀들과 나란히 누워
밤새 서로의 어둠을 탕진하는 것이다
-- 오늘 저녁, 문득 이경임 시집 <부드러운 감옥>(문학과지성 시인선)이 내게로 왔다. 세상의 모든 우연한 만남이 그렇듯이, 아마도 내 안의 어떤 기운이 그 시집을 불러온 것인지 모른다. 알라딘에서 만난 '그녀들'에게 이 시를 드리고 싶다. 이즈음 나의 '부드러운 감옥'인, 깊은 우물처럼 그윽한 향기와 그늘을 지니고 있는 서재의 그녀들에게.......
For My Fallen Angel . . . My Dying Br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