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읽었다.

초반에는 메모장까지 들고 기록을 하면서 읽어서 괜찮았는데,

어느 순간 또다시 남자 등장인물들의 이르이 헷갈려버렸다.

이러면 안되는데...........

결국 내 머리 속에 남아있는 것은 온갖 이미지뿐.

처음에 읽으면서는 언젠가 보았던 B급 액션 영화였던 [타임 캅]이 떠올랐다.

시간을 건너서 사건을 해결하려는 사람. 그리고 그가 돌아올 때마다 바껴져 있던 현실

과거는 현재의 이전 단계가 아니고 미래가 현재의 다음 단계가 아니어버린

끊임없는 성찰들. 게다가 이 책에서는 책 속의 현실들마저 뒤섞여 있다.

한마디로 읽는 내내는 경쾌했고 스릴 있었지만 엔딩은 한없이 머릿 속이 멍청해져버렸다.

한마디로 줄거리를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

하지만 이 상상력 하나로만도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이야기.

 

며칠 전 술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시간 여행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이론과 더불어 또 하나의 이론이 나왔다고,

모두에게 자기만의 역사가 있어서 만약에 시간 여행이 가능해져 미래가 바뀔 지라도

그것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띠의 역사만이 바뀌는 것이라고,

마치 이 책 속에서의 [제인 에어]처럼 외부 세상과 연락하고 자신의 운명을 바꾸지만

오히려 그들은 원본이 파괴되지 않는 이상 자신들의 세상을 유지하기에

이 책 속의 주인공보다 오히려 더 현실적이다.

P.S 초등학교 시절 삼성당에서 나왔던 세계 전집 속에서 [제인에어]를 처음 접했었고,

상당 기간 동안 그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었다 그런데 난 항상 결말이 맘에 안들었다.

어쩌면 난 로체스터가 아니라 에어가 그에게 청혼했던 목사를 따라서 인도에 가기를 정말로 고대했었다.

이 소설 속에서 바뀌기 전의 결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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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추석이 시작이다.

긴 연휴는 여유로 다가오지만

항상 맞이할 때는 까마득하게 길게 느껴지고 떠나갈 때는 아쉽기만 하다.

우선 이번 연휴의 나의 계획

9/25 토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면서 책과 인너넷과 벗함

9/26 일 저녁 공연 예매해놨음 대학로

9/27 월 아마 저녁에 엄마와 떨이를 사냥하기 위한 백화점 순례

9/28 화 오전에 외숙부 댁에 들리고-나 죽을 날 얼마 안남았다는 협박성 전화 받음-

             오후에는 [미녀와 야수] 관람

9/29 수 아무 계획 없으나 엄마의 변덕으로 인하여 성묘 갈지도 모름

그냥 어디 산사에라도 들어가서 뒹굴고만 싶은데 이상하게 한건씩 일이 있다.>.<

그래도 구리는 내가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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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rysky 2004-09-25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석 계획표 세워야 하는데 현재 시점 심하게 아무 생각이 없군요. 크응.
소요님, 구리를 잘 지켜주세요. 전 서울 마포구를 지키겠습니다. ^^

soyo12 2004-09-25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 생각없이 5일 보내는 것이 정말 좋지 않아요?
전 지금 별거 없어 보이는 저 스케줄 속에 있는 두개의 약속이 벌써 스트레스랍니다.^.~

물만두 2004-09-25 0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추석 즐겁게 보내세요...

Fithele 2004-09-25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도 계획 세워야 하는데 계속 멍하니 ;;;

어룸 2004-09-25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전 일단 TV편성표에서 엑기스만 뽑아서 리스트업해놓은 것으로 준비 끝~^^;;;;;
추석 신나고 즐겁고 알차게 보내세요~~♬

soyo12 2004-09-25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거의 계속 자면서 보냈어요. 손에는 읽다 자다하면서 아직도 못 끝낸 로이스 캐럴에 대한 시공 디스커버리를 부여잡고. 아 맞다. 뭔가 허전하다 했더니, 아직 TV 편성표를 안봤습니다.^.~
 
 전출처 : Fithele >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사 체스

계속하여 1탄을 보고 있으니 낯익은 이런저런 아이템들이 보이는군요. 크리스마스 휴가를 맞아 론과 해리가 마법사 체스를 두고, 허마이오니는 잔인하다고 핀잔을 주는데 그 체스말이...

바로 대영박물관 2층 브리튼 섹션에 전시된, 가장 오래된 완전한 조합의 체스말입니다.


딴사람들 돈내고 투어하는 거, 은근슬쩍 끼어서 설명을 들었는데 12세기던가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최초로 비숍과 나이트를 갖춘 체스말


가장 인상깊은 전시물 중 하나였습니다. 저 따분한 표정의 퀸이 재미있지 않나요? (맨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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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루이 아라공 - 미래의 노래

미래의 노래


인간만이 사랑을 가진 자이기에
자기가 품었던 꿈이 다른 사람의 손으로
자기가 불렀던 노래가 다른 사람의 입술로
자기가 걸었던 길이 다른 사람의 길로
자기의 사랑마저 다른 사람의 팔로 성취되고
자기가 뿌렸던 씨를 다른 사람들이
따게 하도록 사람들은 죽음까지도 불사한다
인간만이 내일을 위해 사는 것이다

자기의 몸을 완전히 잊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길이다
인간이란 스스로 기꺼이 나아가는 자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술을 마시도록
인간은 언제나 그 몸을 내미는 혼이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자가
또 자기 몸의 피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그 고통의 보상 따위는 추호도 구하지 않고
그리고 왔을 때처럼 빈 몸으로 나가는 것이다

인간은 분골쇄신 힘을 다하고
목표로 했던 만큼 자기를 넘어 나아간다
자기가 이르렀던 하늘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가 만들었던 불에 자기를 태우면서
와야 할 아침에 자리를 주는 밤처럼
사라져가는 자기에게는 마음도 쓰지 않고
자기의 운명과 그 심연 위에
열려진 문을 향해 기뻐하면서

탄광 속에서 또는 조선소 속에서
인간은 오직 미래를 꿈꾸고 있다
장기두기에서 왕은 궁지에 몰려 있고
이미 이쪽의 말도 잡히고 차도 잃어
완전한 전망도 희망도 상실한 채
다른 장기판 눈금의 다른 왕을 노리며
다른 장기판 위의 다른 좋을 노리며
자기를 자기의 당을 구하러 가는 것이다

살고 살리는 것 중에서 인간만이
미래를 생각해낸다
신조차도 - 시간은 신에 있어서
영원한 것을 재는 척도가 아니다
또한 척도가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신은 신성하고 불변의 것이기에
인간만이 자기의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멀리 전방을 내다보는 한 그루의 나무이다

미래란 죽음에 싸움을
가는 전장이다 이것이야말로
불행으로부터 내가 쟁취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사상이 한 걸음 한 걸음
좁혀왔던 전진기지이다
이제 최후의 힘을 짜냈던
바다의 거품이 투쟁을 밀고 나아갔던 장소에
끊임없이 밀려왔다 밀려간다 파도처럼

미래란 잡으려고 내밀었던 손에서
그 반대편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밟아 다져진 길의 맞은 편에 있는 공간이다
그 곳에서 인류로서 승리한 인간은
자기 자신의 동상을 때려부수고
자기가 꿈꾸었던 것 위에 우뚝 서서
물새를 사냥하러 갔던 사냥꾼처럼
쏘아 떨어뜨린 새의 수를 세는 것이다

미래를 생각하면서 나는 취한다
미래는 나의 술잔이다 애인이다
나의 소모기를 뒤바뀌게 한 나라이다
나는 그 비밀을 벗긴다
입술에서 연지를 벗기듯이
미래는 나의 머릿속에서 윙크하고 있다
미래는 나의 자식 나의 획득물이다
관념의 신에게 바친 예찬이다

빈자용의 법률이여 사라져다오
보아다오 지금까지와는 다른 축제일의 나무 열매를
나는 나 자신의 불이 된다
보아다오 갖가지 숫자와 축하의 과자를
우리들은 모든 방식을 바꾸리라
멋진 내일 어제가 사라져가듯이
계산이 기도를 이기고 그리하여
인간은 바라는 것을 손에 넣는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여자는 남자의 혼을 장식하는 채색이다
여자는 남자를 활기 있게 해주는 떠들썩하고 우렁찬 소리이다
여자가 없으면 남자는 거칠어질 뿐
나무 열매나 열매없는 핵에 불과하다
그 입에서는 거친 들바람이 나오고
그 인생은 엉망으로 헝클어지고 황폐해져
그것마저 자기의 손을 때려부셔 버린다

나는 그대에게 말한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
태어나고 사랑을 위해 태어나는 것이라고
낡은 세계의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처음에는 생이 다음에는 죽음이 바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분배될 것이다
하얀 방도 피투성이의 입맞춤도
그리하여 부부들과 우리들 세상의 봄이
오렌지 꽃처럼 지상에 흩어져 깔릴 것이다
<루이 아라공, "미래의 노래" 전문>


먼저 개인적으로 나는 루이 아라공을 참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란 말을 해두고 시작하도록 하자.
홍상수 감독의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루이 아라공을 아는 이들이 제법 늘어났다. 그렇다고 우리가 루이 아라공을 잘 아는가? 하면 그건 절대로 아니다. 예전에 "발리에서 생긴 일"이란 드라마에서 어떤 탈렌트가 "안토니오 그람시"를 인용한 덕에 갑자기 그의 책 "옥중수고"와 "헤게모니론" 뜨게 된 것처럼 루이 아라공에 대한 우리의 이해 역시 그런 방식으로 스쳐가듯 지나가고 말 것이다.

어찌보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인 김지하가 펴낸 책 "김지하의 화두"(화남출판사, 2003)란 책의 '꽃과 그늘, 그곳에 이르는 길'이란 장에 보면 루이 아라공에 대해 이런 대목이 있다. "루이아라공은 공산주의자입니다만 초현실주의자이기도 하죠. 『엘자 찬가』 아시죠? 나치에게 총살당한 자기 아내 엘자에 대한... 좋아하냐?",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럼, 너 루이아라공을 알겠구나. 프랑스 최고의 공산주의 시인 아니냐?"...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내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김지하는 이런 내용으로 전에 "말"지와 인터뷰한 적도 있다. 다음은 말지와 한 인터뷰 중 일부를 옮겨 온 것이다.
 
―80년 감옥을 나오자 정치투쟁에선 한발 물러나셨는데요, 당시엔 폭압정치를 무너뜨리는 게 절박한 시대적 요구 아니었습니까.

“역사라는 건 항상 묻힌 부분이 드러나는 부분보다 많은 거야. 묻혀 버려야 마땅한 얘기를 자꾸 들으려고 하지 말라고. 이것만 말하지. 80년 신군부가 가장 주시하고 있던 데가 원주였어요. 난 병법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야. 칼을 먼저 뽑은 자 앞에서는 일단 물러나는 거야. 그런 싸움은 안 하는 거야. 그래서 난 당연히 우회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내 문학도 그래요. 부드러움으로 딱딱한 걸 감싸자는 얘기였어요. 한용운이 감옥에서 나와서 한 게 뭐야. 『님의 침묵』이란 게 투쟁시야? 『애린』이란 시가 당시 내가 쓸 수 있는 시였어요. 그런데 『애린』은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모델이 아니야. 미안하지만 냄새 잘 맡는 놈은 금방 알아. 루이 아라공의 『엘자 찬가』가 모델이었어요. 레지스탕스 때, 나치 치하가 얼마나 엄혹한 조건이었냐고. 걔들 문예검열이 얼마나 엄청났는데. 『엘자 찬가』는 투쟁시가 아냐. 새벽에 아내하고 숲길을 걷다가 맡는 이슬 냄새, 이슬이 떨어졌을 때 잎사귀의 진동, 그 향기, 그런 것을 노래한 시라고. 그게 무슨 최고 공산주의자의 시냐고. 그러나 당신들 젊은이들은 너무 몰라. 그 시는 자유 프랑스의 이미지, 혁명을 통과한 이후에 코뮨을 기억시키는 시라고. 우리가 가야 할 세계, 우리가 누렸던 세계, 회복해야 할 세계의 이미지들을 보내는 거라고. 부드러움의 혁명이란 게 그거라고. 당시의 레지스탕스들은 전부 필독서처럼 그걸 봤어. 레지스탕스의 힘이 그 시집으로부터 나왔던 거라고. 내가 모자라기는 하지만 왜 그런 우회를 못 보냐는 거야. 짜증나는 것밖에 없어, 되돌아보면.”

'말'지 99년 9월호에 수록된 인터뷰 내용 중 일부이다. 그의 유명한  '애린'은 루이 아라공의 "엘자 찬가"에서 영향 받았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김지하가 뭔가 착각한 것 같다. 앞서의 책을 문맥에 따라 읽다보면 그는 "엘자 찬가"의 주인공 엘자가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나치에 의해 총살당한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실제 루이 아라공의 아내 '엘자 트리올레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로도 루이 아라공과 잘 살았다. 그녀가 죽은 것은 1970년의 일이다. 아마도 김지하가 "애린"을 쓸 때 영향을 받은 시가 "엘자 찬가"가 맞기는 할지라도 그녀가 총살당한 것으로 착각을 일으킨 것 같다. 루이 아라공이 나치에 의해 총살당한 이를 위해 쓴 시는 폴 엘뤼아르도 그의 시에서 다룬 바 있는 "가브리엘 페리"란 인물이고, 시는 "가브리엘 페리의 전설"이기 때문이다.

나는 '김지하'를 욕보이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착각은 누구나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루이 아라공이 우리에게 얼마나 잘 알려져 있지 못한 시인인지 그걸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엘자의 눈

너의 눈은 한없이 깊은 심연, 내가 마시려 몸을 굽히면
이 세상 모든 태양들이 그 속에 와 비추이고
모든 절망한 사람들이 죽기 위해 그 속에 몸을 던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너의 눈은 한없이 깊어 나는 거기서 기억을 상실한다

네 눈은 새들 그림자에 거칠어진 대양
짐짓 날씨가 개면 네 눈도 변한다
여름은 천사들의 앞치마를 잘라 구름을 만들고
밀밭 위에 보이는 하늘만큼 푸른 것은 또 없다

바람이 불어 창공 위의 슬픔들을 날려버려도 소용 없어
눈물로 빛날 때 네 눈은 창공보다 더 맑아
비 내린 뒤의 하늘도 네 눈을 시새운다
깨진 유리의 틈살보다 더 푸른 빛은 없다

칠고의 어머니, 아 젖은 빛이여
일곱 개의 검이 오색의 프리즘을 꿰뚫어었다
눈물 속에 돋는 해는 더욱 감독이적이며
검은 점이 박힌 홍채는 상복을 입어 더욱 푸르다

네 눈은 불행 속에 이중의 돌파구를 열고
이를 통하여 동방 박사의 기적이 또 다시 일어난다
세 박사가 모두 뛰는 가슴 누르고 말 구유에 걸린
성모 마리아의 망토를 보았을 때의 그 기적이

5월에 이 세상 모든 노래, 모든 탄식을 부르기 위한 말에
단 하나의 입이면 족하다
수백만의 별을 담기엔 너무나 좁은 창공
성신들에게는 너의 눈이 그리고 저들의 숨은 쌍둥이 별이 필요했다

아름다운 그림에 도취한 어린애의 벌어진 눈도
너의 눈보다는 크지 못해
나는 네가 큰 눈을 뜰 때 혹시 거짓말을 하는가 싶어
차라리 소나기가 야생의 꽃을 벌린다 하리라

네 눈은 벌레들이 격렬한 사랑을 벌이는 이 라벤더 꽃
그 속엔 번갯불이 숨어 있는가
나는 많은 유성의 그물에 걸렸다
8월의 한중턱 바다에서 죽는 한 수부처럼

나는 우라늄 광석에서 이 라디움을 뽑아냈다
나는 이 금단의 불에 손가락을 태웠다
아, 백 번도 넘게 찾았다 되잃은 낙원이여
네 눈은 나의 페루 나의 골콩드 나의 인도 제국

어느 날 저녁 세계는 해적들이 불태운
암초에 걸려 깨졌다
그러나 나는 바다 위에 영롱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엘자의 눈 엘자의 눈 엘자의 눈


앞서 김지하 이야기를 했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이 시는 단순히 그의 아내이자 사랑, 영감의 원천이었던 '엘자'에 대한 그의 연모를 담은 시가 아니다.

루이 아라공(Louis Aragon, 1897 - 1932)은 프랑스 초현실주의를 주도한 시인이었다. 그는 시인이자 소설가였고, 무엇보다 진보적인 행동가이기도 했다. 그는 1927년 공산당에 입당했는데, 이후 그는 프랑스 공산당의 문학과 예술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초현실주의와 미래파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에서 예술가들은 실패한 부르주아 혁명의 퇴폐와 허무에 깊이 상처받고 있었다. 이런 상처에서 싹튼 두 부류의 예술 사조가 미래파와 초현실주의라 할 수 있다. 미래파의 예술가들은 니체의 영향 아래 기성 부르주아 체제를 그들의 폭력적인(?) 시도들을 을 통해 전복할 수 있다 믿었고, 전쟁을 열렬히 환영하며 자원입대했다. 그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맛본 것은 환멸이었다.

이에 비해 초현실주의는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출현한 20세기 미술운동 사상 가장 조직적인 운동이었다. 루이 아라공은 원래 의학을 공부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군의관으로 참전했고, 전후인 1919년 브루통 등과 함께 전위적인 잡지 "문학"을 창간하며 다다이즘 운동에 참가했다.이들은 이전의 다다와 결별하면서(브루통, 엘뤼아르, 아라공, 페레 등) 비논리적인 리얼리티의 초현실적 세계를 개발하고자 했다. 그 방법으로 이들이 채택한 것은 오토마티즘 기술법, 몽환 상태와 꿈의 이미지의 양성 등 여러 기법을 실험했다. 아라공은 그의 처녀시집 "축화 Feu de joie"(1920), 소설 "아니세 또는 파노라마 Anicet ou le panorama"(1921)를 발표했다. 브르통이 초현실주의 운동을 시작하자 아라공 역시 그에 가담한다. 이 무렵 그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될 소설 "파리의 농부 Le Paysan de Paris"(1926)와 평론 "문체론La Trait"을 썼다.

그러나 초현실주의는 혁명은 아니었다. 그들 자신은 초현실주의가 혁명에 관여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위험을 회피하고자 했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파시스트들을 증오했으나 현실적으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서야 이들은 현실 참여라는 앙가주망의 길을 걷게 된다. 루이 아라공 역시 이 무렵부터 자신의 사상과 초현실주의의 교의 사이에서 번민하기 시작한다. 그의 고민은 1928년 여름 스스로 자살을 시도할 만큼 절박한 것이었다. 그에게 구원은 동방에서 날아들었다. 같은 해 가을 그는 신생 소비에트 공화국의 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를 만나고, 이때 그의 처제였던 엘자 트리올레트를 만나게 된다. 살바도르 달리에게 갈라가 그러했던 것처럼, 엘뤼아르에게 뉘쉬가 그러했던 것처럼, 아라공에겐 엘자가 운명의 여인이었다. 그는 엘자를 만나고 얼마 뒤 그녀와 결혼한다. 그리고 2년 뒤 그녀와 함께 소련을 방문하고, 그가 찾아 헤매던 사상을 발견한다. 그는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아라공은 아내 엘자로부터 끊임없는 영감을 받았다. 그러나 초현실주의 운동 그룹과는 계속 마찰을 일으켜야 했다. 결국 그는 1933년에는 정치 참여 문제로 초현실주의자들과 결별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는 나치에 저항하여 독일에 선전포고하지만, 참혹한 패배를 경험한다. 아라공은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며 "단장Le Crve-cœur"(1941), "엘자의 눈 Les Yeux d’Elsa"(1942), "프랑스의 기상나팔 La Diane franaise"(1944) 등 그의 대표작들을 써 나간다. 전쟁이 끝나고 아라공은 계속해서 프랑스 공산당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그는 1945년 프랑스 공산당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도, 1953년부터 72년까지 "레트르 프랑세즈"를 편집했다.

프랑스 68 혁명을 맞이할 무렵 그의 나이는 71세였지만, 그는 노구를 이끌고 대학생들의 파리 시위에 함께 동참했다. 그는 여전히 시대의 가장 전위에 섰다. 그는1957년 레닌 평화상을, 1981년에는 프랑스의 최고 훈장인 레종 도뇌르를 받았다. 그는 평생을 시대의 가장 앞선 부분, 가장 첨예한 현장에 서 있었고, 그러려고 했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철저히 공산주의의 이념에 따르기만 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종종 그의 모든 작품에서 공산주의적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의 사상이 비록 공산주의였다 할지라도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와 결별한 이후에도 온갖 미학적 실험들을 멈추지 않았다.

초현실주의 시인들은 시에서 이성적인 요소들을 제거해 버리고자 했다. 유럽의 합리주의 문명이 도달한 정점에서 그들은 합리주의를 배척하려 들었다. 이때 그들이 채택한 오토마티즘(自動 記述法)은 그들의 무의식을 통해 인간의 진실을 드러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이 운동은 단지 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음악, 미술 그리고 가장 이성적이라 할 수 있는 산문 부분에까지 확대된다. 초현실주의 운동은 프로이트적인 영향력 아래 있었다. 그러나 자아를 배제하고, 무의식의 진실을 드러낸다는 것이 과연 아무런 지향을 갖지 않는 것이었을까? 일정한 지향을 갖는다는 것은 역시 의식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지향을 갖지 않는 다는 것은 인간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해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현실주의운동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자체의 모순을 지니고 있었다. 많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초현실주의의 교의에 실망해 떠나게 된 것도 그로 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루이 아라공은 그렇게 다시 본래의 시 세계로 돌아왔다.

아무리 예술가들이 절대적인 자유를 추구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자유는 물고기가 물 속에서 누리는 자유일 수밖에 없고, 새가 대기를 가로지르는 자유이다. 예술은 이런 조건의 구속 아래 놓인다. 아무리 자유롭게 시를 쓴다고 해도 문학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 구속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예술가들은 마찬가지로 역사의 확장이란 시대의 한계 속에 놓인다. 루이 아라공의 시 "미래의 노래" 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부분, 우리나라에서 특별히 유명세를 치르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여자는 남자의 혼을 장식하는 채색이다
여자는 남자를 활기 있게 해주는 떠들썩하고 우렁찬 소리이다
여자가 없으면 남자는 거칠어질 뿐
나무 열매나 열매없는 핵에 불과하다
그 입에서는 거친 들바람이 나오고
그 인생은 엉망으로 헝클어지고 황폐해져
그것마저 자기의 손을 때려부셔 버린다

나는 그대에게 말한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
태어나고 사랑을 위해 태어나는 것이라고
낡은 세계의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처음에는 생이 다음에는 죽음이 바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분배될 것이다
하얀 방도 피투성이의 입맞춤도
그리하여 부부들과 우리들 세상의 봄이
오렌지 꽃처럼 지상에 흩어져 깔릴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여자는 남자의 혼을 장식하는 채색이다" 물론 루이 아라공이 여성을 비하하기 위해 저런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 자신에게 있어 저 말은 의심할 여지 없는 진실일 것이다. "여자는 남자를 활기 있게 해주는 떠들썩하고 우렁찬 소리이다/ 여자가 없으면 남자는 거칠어질 뿐/ 나무 열매나 열매없는 핵에 불과하다"라고 말한다. 여성찬가라 해도 좋을 법하지만, 이 시에서 여성은 주체가 아니란 문제를 지닌다. 시인이 남성인 것은 좋지만, 시적 화자마저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을 "혼을 장식하는 채색", "남자를 활기 있게 해주는" 부수적인 존재로 격하시켜 버린다. 여성이 남성의 미래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저 말에 동의한다. "예술가와 모델", "미술과 누드" 과 같은 말을 떠올릴 때 우리는 저 말들을 자동적으로 다음과 같이 인식한다. "예술가=미술=남성, 모델=누드=여성"이라고 말이다. 종종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남성들 모두에게 여성은 그저 섹스 상대로서의 여성 아니면 구원의 여성이 된다. 여성을 저렇게 인식하는 것은 이미 죽은 루이 아라공 만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남성(세상)은 언제까지 여성을 저렇게 창녀 혹은 성녀의 이미지로 치장해야만 여성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일까? 예술가들은 누구나 근본적으로 나르시시스트(narcissist)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남성 일반들도 모두 그렇다는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나르시시스트: 자기도취형의 사람. 자부심이 강한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이런 경우엔 뭐라 말을 해야 하는가? 글쎄, 나로서도 대략 난감하다. 그래서 여성학자 정희진의 글을 옮겨 본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여자는 남자의 영혼을 장식하는 컬러 물감이다. 여자가 없으면 남자의 인생은 엉망으로 헝클어지고 황폐해져….” 초현실주의에서 좌파로 돌아선 프랑스 시인 루이 아라공의 <미래의 시>의 한 구절,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낯설지 않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여전히 주인공은 남자다. 여성은 설명하는 주체가 아니라 설명 대상일 뿐이다. 여성은 남성 문명의 선후에 있을 뿐, 현재를 사는 같은 시민이 아니다. 남성에 대한 기대는 격려를 동반하지만, 여성에 대한 기대는 비난으로 이어진다. 여성이 원하는 것은, 여성이 인류의 미래이고 대안이라는 높은 도덕적 기대가 아니라 동시대에서 차별 받지 않는 것이다. 정말 여자가 남자의 미래라면, 지금 모든 권력을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에게 이양해야 하지 않나 그리고, 남자의 인생은 남자가 알아서 해야 한다. 남자의 미래는 남자의 과거다. 피해자에게 해결사의 역할을 요구하지 말라.


루이 아라공이 제 아무리 여성을 인류의 미래, 세상의 미래라 상찬한다 할지라도 문제는 여전히 현실 속에 고스란히 남는다. 남자들이 제 아무리 "남자는 여자를 위해/ 태어나고 사랑을 위해 태어나는 것이라고/ 낡은 세계의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라고 떠든다 할지라도 지금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 시대에 차별당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내가 이 시를 가지고 자, 보라! 루이 아라공은 남녀차별주의자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루이 아라공 입장에서 보자면 그에게 여성인 엘자가 구원이자, 그의 미래였던 것임에는 틀림없는 진실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시인 신현림은 아라공의 시 "호텔 혹은 모텔의 지퍼를 열면"이란 시를 두고 "진지한 사랑의 모습"이라 말한다.

호텔의 지퍼를 열면 어제 밤 그대가 찾은 308호실이 보인다
침대 벽에 온통 거울로 뒤덮인 방이
누구랑 갔는지는 접어두고
거울에 듬뿍 담긴 그대 몸과 애인 몸이 싸우고 있다
훌러덩 다 벗고서
유리처럼 미끄럽고 투명한 몸이 깨질 것만 같아 두려웠다
나는 진짜 싸우는지 알았다

호텔은 때로 투우장처럼 보인다
<신현림의 "사랑에 대한 몇가지 생각" 중에서 재인용>

"다만 어떤 사랑의 이야기든 근사했으면 좋겠다. 결국 지나고 보면 원치 않은 일을 저질렀다 해도 좀더 당당했으면 좋겠고 잘못한 일이라면 철저히 시인하고 사과할 줄 안다면 그 누구라도 용서할 수 있으리. 그것이 설사 불륜이라도 진실했다면 사람들은 돌을 던지지 않으리라. /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진실된 사랑이 갖고 있는 고귀한 가치는 사라질 수 없다는 생각이다. "

나는 루이 아라공의 이 시 "미래의 노래"도 분명 진실한 사랑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루이 아라공의 이 시가 지금 공격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보다 더욱더 명확하다. 그것은 이 시가 아직도 해방되지 못한 여성들에게 읽히고 있기 때문이다. 루이 아라공의 이 시가 최소한의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아직 그의 진실만 가지고는 부족한 시대라는 것이다.

인간만이 사랑을 가진 자이기에
자기가 품었던 꿈이 다른 사람의 손으로
자기가 불렀던 노래가 다른 사람의 입술로
자기가 걸었던 길이 다른 사람의 길로
자기의 사랑마저 다른 사람의 팔로 성취되고
자기가 뿌렸던 씨를 다른 사람들이
따게 하도록 사람들은 죽음까지도 불사한다
인간만이 내일을 위해 사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루이 아라공의 이 시를 좋아한다. 아직 성취되지 못한 혁명을 노래했기에 마지막 부분의 일부 표현들이 여전히 목구멍의 가시처럼 걸리기는 하지만, 미래의 구원이 그런 여성성에서 올 것이라는 사실을 나 역시 믿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초현실주의자들, 미래파들이 부르주아 혁명의 한계를 느꼈다면, 나는 남성 세상의 한계를 여실히 절감하고 있기에 여성들에게 미래를 걸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어서 권력을 이양하자!

* 이번 추석부터 말이다. 앉아서 놀고 먹는 남자들이 없어야 겠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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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핸폰을 구입했습니다.
요즘 광고를 본듯한 이 핸폰으로 구입했습니다.

기계에 별로 돈 들이고 싶지 않아 망설였지만,

그래도 전화국에 있는 모델 중에 가장 마음에 들어서

구입했지요.^.^

그런데 전화국의 답답한 판매원을 보다보니

왠지 불안해서 지금 화가 많이 나있습니다.

게다가 오늘 해지해주기로 한 대리점에서는 해지를 안해주고,

어딘가에 항의를 해야할까만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선 벨소리는 기주 왕자님껄 하나 받아놨는데.

그리고는 승우의 목소리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뮤지컬 친구들에게 전화오면 그걸로 받으려구요. 그런데 쉽지가 않네요.

음, 저와 같은 기계치가 그걸 하겠다고 하니 큰일이지요.

내일 친구에게 징징거려서 하나 보내달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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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9-24 0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soyo12 2004-09-24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 아침 마실 나오셨나봐요. ^.~

어룸 2004-09-24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멋져욧~~! >ㅂ< 이런것이 바로 전화위복이로구만요!!
오래오래 예쁘게 잘 쓰세요♬

groove 2004-09-24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예쁘군요 축하드립니다.

sweetmagic 2004-09-24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뽀요 ~ 저도 새로 사야 할것 같은데~~ ㅎㅎ

soyo12 2004-09-25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전화비 청구서는 생각 안하고 살려고 합니다. ㅋㅋ
기분 좋아요. 다만 예뻐서 자꾸 집착이 생기고 불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