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제게 닥쳐 올 불행은 예상치 못한다. 그저 그 불행에 대비할 수 있도록 내성을 키우는게 최선이다.  

다만 그 불행이 자신의 손으로 부지불식간에 만들어졌다면 그만큼 아픈 일도 없을 테다. 무엇보다 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만큼 저열하고 치졸했다면 말이다.  

 '난 그렇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당연한 말이다. 그런 이들을 손가락질하고 그들의 헐거운 논리를 내 치밀한 언어로 붕괴시키곤 했다. 진중권 같은 투사는 아니지만 느린 듯 투박하게 그 얄팍함을 깔아 뭉개고 나의 단독자적인 양태를 과시했다. 드러나지 않기에 그 과시욕은 더욱 빛났다.  

그런데 내가 그리했다. 그 저열함에 이틀간 곡기를 끊을 정도다. 하루는 스스로가 너무나 비참하여 흉물스러웠고 하루는 세상이 너무 무서워서 방에 웅크리고 앉아 두려움에 떨었다. 그녘에게 면목이 없음에 더더욱 하늘이 무겁고 혹 그녘이 다시금 살가운 말을 건네지 않을까란 허황된 기대를 하며 애써 마음을 눅이려 한다. 하루하루가 진창같아 허우적 대며 가만히 있어도 심신이 핍진하여 몸을 가누기 조차 힘들다. 

내가 나를 책임질 수 없음에 가슴이 너무 무겁다. 선혈이라도 한웅큼 쏟아낸 뒤 내 피로 세상을 덮어야지만 그 죄스러움이 조금은 무뎌질 것 같다. 죽을 용기도 없으면서 죽음을 바라고 직시할 용기가 없기에 눈치만 보는 미욱한 자아는 더욱 초라하다.  

지금까지 삶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된다. 지금은 형극에 갇힌 무뢰배에 값하는 마음이다. 나는 얼마나 더 나를 짓이겨야 전생의 업보를 다 씻을까. 난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 먹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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