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릭 에너미 - Public Enemi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는 종종 그 자체보다 어떤 상황에서 관람하느냐가 큰 영향을 미치곤 한다. 그렇기에 영화에 대한 말은 나를 돌아봄과 병행해서 행해진다. 퍼블릭 에너미는 이런저런 일로 다소 핍진한 어제 보았다. 그래서인지 영화에 몰입하기 힘들었다. 과연 핍진함이 영화를 버겁게 했을까. 영화를 보고선 가열 찬 자기반성을 한다. 우선 영화의 만듦새가 아닌 내 미욱함이 영화를 읽어내지 못한 거라 여긴다.

 자신이 없어서 일 테다. 종종 누군가가 격찬하는 작품을 비뚜름하게 읽어낼 때 혼란이 찾아오곤 한다. 내 생각이 맞는 건지. 내 모자람을 감출 수 있는 기회를 생각을 드러냄으로써 놓치는 건 아닌지. 공부가 부족한건 아닌지. 아마 씨네 21의 평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대부분이 격찬을 했다. 

  
  8 차가운 도시 갱스터,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 김혜리 

  5 총격전만 잘 찍는 마이클 만 박평식 

  8 세상에서 가장 쿨한 것 중 하나는 마이클 만의 범죄영화 이동진 

  10 아마도, 올해의 영화! 이용철 

  8 도둑의 순정. 이건 갱스터 로맨스 장르 이화정 

  6 ‘내겐 너무 멋진, 나쁜 남자’의 로망 충족 혹은 나르시소스 황진미 
 

  9 진정한 남자의 향기를 느낀다 김종철 

  8 역시 마이클! 편집과 촬영으로 앙상한 서사도 커버한다 유지나

 김혜리 기자를 좋아한다. 페드로 알모바도르를 좋아하는 취향도 나와 닮은 듯하다. 사람의 마음을 두루 헤아리려는 그 마음 씀씀이도 슬겁다. 한 줄 평으로 김혜리의 생각을 읽으려 한다. 그녀는 이 영화에 미만한 남성미 속에 곁가지를 이루는 따스한 사랑에 집중한 듯하다. 헌데 감성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수긍하기 힘든 해석이다. 그들의 서로에 대한 탐닉과 집착은 충분히 어필하지 못한다. 마이클 만 감독은 이런 부분에서 서툰 듯하다. 그는 남자다. 

 박평식 평론가의 정리가 내겐 맞다. 총격전은 좋았다. 헌데 이 영화가 무얼 말하려는 지 도통 알 수 없다. 말하려는 바가 없으면 즐거워야 한다. 헌데 재밌지도 않다. 조니 뎁은 갑갑해 보이고 크리스찬 베일은 너무 무겁다. 한 사람의 삶을 그냥 옮겨 놓으려 그들 각자를 우겨 넣었다. 헌데 그 삶이 무얼 말하려는지 모르겠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마이클 만은 불친절로 관객을 밀어낸다. 그냥 누군가의 삶과 주변인에 관해 영화를 만들었을 따름이다. 

 이와 비슷한 영화가 있긴 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조디악’이다. 조디악 또한 실화를 다루었고 한 사람의 시점이 명징하다. 다소 지루하기도 하다. 헌데 조디악과 퍼블릭 에너미의 울림은 달랐다. 왜 달랐을까. 영화를 보고나서 꾸준히 제기됐던 울림이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지만 얕은 생각이나마 흩날리까 저어하며 조심스레 옮겨본다.   

 아마 시점의 차이였던 듯하다. 퍼블릭 에너미는 등장인물 개개인에 어떠한 역할을 부여한다. 그들은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개성이 영화의 전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헌데 그 개성이 와 닿지 않는다. 그만큼 서사가 성기다. 이에 반해 조디악은 그저 묵묵히 바라본다. 제이크 질렌홀의 연기는 적절하다. 두 영화 모두 영화적 재미는 덜 하지만 조디악은 제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서사를 드러낸다. 바라보는 카메라와 좀 더 훑으려는 카메라의 차이가 두 영화의 몰입도를 결정지었다. 

 평론으로 돌아간다. 이동진 평론가는 마이클 만의 영화가 세상에서 가장 쿨하다고 했다. 그는 종종 나와 영화 보는 관점이 부딪힌다. 이번 해석도 수긍하기 힘들다. 이동진의 글을 보면 상대적으로 탐미적 성향이 강하다. 관객에게 불친절한 영화일수록 숨겨진 해석을 말로 풀어내길 즐긴다. 박쥐에 만점을 주고 과속 스캔들에 5점을 준걸 봐도 그는 무의식적인 ‘구별짓기’를 하고 있다. 그네들과 제 자신을 가르기 위한 미학적 탐닉이 부지불식간에 그를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이명세 감독의 영화에 대해선 관점이 일치했다. 아예 서사를 배제해버린 그 황홀한 영상이 나또한 좋았다. 

 이용철 씨는 아마도 올 해의 영화가 될 거라 했다. 비록 작년에 딱히 기억나는 영화가 없다고 해도 너무 자신만만한 확신이다. 이 또한 자의식 과잉이 낳은 언어적 독단이 표출된 게 아닐까 한다. 이용철 씨의 글을 풀어내는 내 말 또한 어렵긴 하다. 허나 어려운 말은 종종 언어를 간결하게 해준다. 쉽게 풀어내기엔 손품 판지가 오래되어 그냥 저리 내버려 두련다.   

 평론가 한 명 한 명에 대한 품평을 하다 보니 글이 거칠다. 수많은 수사(修辭)가 남발된 이 글 또한 자의식 과잉과 타인을 쉽게 규정짓는 오만을 범하고 있다. 그런 것 까지 세세히 신경 쓰며 글을 쓰다보면 공리(公理)만 이야기할 듯하여 내 자신에게 아량을 베풀기로 한다. 말을 마무리하자면 퍼블릭 에너미는 스타일은 좋지만 공허한 영화다. 그 스타일 또한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 아니기에 쉬이 몰입하기 힘들다. ‘생각의 속도로 실행하라’는 책에 관한 중앙일보 서평 중 내 불민함을 지적하는 문구를 본 듯하여 그 글을 옮긴다. 두고두고 나를 살필 일이다. 

 -저자들은 똑똑하게 말하는 것과 똑똑한 것을 혼동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회의에서 남의 아이디어를 지적(知的)으로 비판하는 사람, 비관론을 펴는 사람이 똑똑하다고 인정받고 점수를 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용기를 내 실질적인 제안을 내놓는 사람들은 점차 도태되고, 조직은 영리한 반박꾼들로 채워져 행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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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1-25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느순간부터 평론가들의 평가를 안읽기 시작했다는....영화를 봤음에도 대체 뭔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바밤바 2010-01-25 14:25   좋아요 0 | URL
ㅎ 평론가가 가진 순기능도 있겠지만 대중이 평론가가 된 시대엔 그들의 말에 후한 평을 해주기 힘든 것 같네요~ 좋은 하루 되시옵소서~ㅋㅋ^^
 

 

 대부분 남자들은 소심하단 말을 제일 싫어한다. 이 말은 ‘루저’란 단어보다 더 큰 모욕을 주기도 한다. 다들 제 소심함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종종 알심을 부린다. 소심하단 낙인이 두렵기 때문이다. 허나 알고 보면 다들 좋은 사람이듯, 알고 보면 다들 소심하다. 실제 대범한 이는 잘 알고 나서도 여전히 나쁜 사람의 수와 비슷할 테다.   

 소심함은 생존의 발로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기실 소심하지 않은 사람은 사회생활하기 힘들다. 대범하단 이들은 종종 사소한 오해를 일으키고 외톨이가 되기 십상이다. 행동이 가벼우면 잔망스럽단 소릴 듣고 행동이 격하면 파쇼 소리를 듣는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은 소심하다. 그 소심함을 얼마나 잘 감추는지가 쿨한 사람이 되는지 아니면 소심한 사람이 되는지를 가름 할 테다. 아마 소심하지 않은 사람은 2퍼센트 정도 되지 않을까. 이제마의 사상의학에 의하면 태양인이 2%정도라 하니 그리 어긋난 추측은 아닐 테다.

 소심함을 잘 포장하면 세심함이 된다. 기실 이런 섬세함이 없이는 한국 사회에서 버티기 힘들다. 서구처럼 개인주의가 발달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중종 때 조광조는 향약을 보급하며 나름 풀뿌리 공동체를 형성하려 한다. 대부분 농사일을 하며 정착 생활을 한 한반도민이다. 규약까지 더해졌으니 개인보다 공동체의 의거하여 삶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 더더욱 강화됐을 테다. 그러니 남의 눈치를 살피고 타인의 행동에 대해 품평하는 건 피에르 부르디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인의 ‘아비투스’다. 공동체의 규약을 따라야하니 주위를 엿살피는 일이 습관이 된 거다.

 또한 레비스트로스 식 관점을 빌리자면 ‘예(禮)’라는 규범이 한국인을 꽤나 옮아 맨다. 일상에 자리 잡은 예의 치밀함은 천성이 착한 이들도 종종 무뢰배로 만들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감정 노동이 일상화되었다. 결국 소심함은 천성도 있겠지만 ‘아비투스’가 강요한 한국인의 처세술이다.

 헌데 서구 문화가 유입되면서 다들 쿨한 걸 찾으며 대인배가 되려고 한다. 물론 맹자도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읊으며 대장부의 기세를 강조했다. 허나 한국의 유교는 통치 이데올로기였다. 자기수양의 도구로 활용하는 자들도 대부분이 선비였다.  이렇듯 군자를 찬양하지만 소인배를 양산했던 건 지난 세기의 과오다. 결국 쿨한 사람을 찬양하는 데는 한국 문화의 무의식을 극복하고 서구의 가치를 좇으려는 ‘옥시덴탈리즘’이 없는 지 살펴 볼 일이다.

 이제 소심하다란 말을 하기 전에 소심할 수밖에 없는 문화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소심이 병인야 하여 우물쭈물하는 많은 사람들도 저를 탓할게 아니라 한국인의 아비투스를 탓해야 한다. 이렇듯 소심하다는 타박은 남자를 위축되게도 하지만 우리 사회를 잘 드러내는 하나의 지표다. 소심한 남자는 세심한 거고 생존을 위한 투쟁이 일상화돼 있는 사람이다. 도닥여주지는 못할망정 헌걸차지 못한 기상을 꾸짖는 것은 스스로의 미욱함을 드러내는 제 살 깎아먹기다. 소심한 거. 비난받을 게 아니라 가여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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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1-22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이런 얘기들이 들리죠.

A여자 : 혈액형이 A형이죠?
B남자 : 예. 어떻게 아셨어요?
A여자 : 소심해보여서요..
B남자 : ..............

웃기자고 한 애기가 아니라 은근히 저런 말투 자주 튀어들 나오더군요..^^

바밤바 2010-01-23 17:37   좋아요 0 | URL
ㅎ A형이라서 소심한게 아니라 A형을 소심하다고 규정짓다보니 다들 그리된듯~ㅎ

하이드 2010-01-22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심한건 소심한거죠. 뭘 그렇게 꿀을 바르고 그러시나요. ^^
남보고 소심하다고 하는건 칭찬이 아니고, 내가 소심했다 싶은건 후회죠, 보통은.

바밤바 2010-01-23 17:38   좋아요 0 | URL
소심하단 말이 사소한 폭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적어봤어요~ㅎ
헌데 하이드 님은 원래 소심하지 않은 사람이란 게 블로그에서 느껴지네요~ㅋ

하이드 2010-02-03 16:21   좋아요 0 | URL
이렇게 말하는 저는 세심함이 없는거죠. ㅎㅎ

저도 소심했어요. 근데, 소심한건 많이 없어졌는데, 소심함을 느끼는 그런 감정이 무뎌진 것 같아, 그건 맘에 안들어요. '맘에 안 드는 소심함'이지만, 그래도 내 감정. 인데, 무뎌지는건, 감정의 컬러가 무채색이 되어 가는건 좀 쓸쓸하니깐요.

바밤바 2010-02-06 17:16   좋아요 0 | URL
일주일 동안 회사생활 해보니까 세심한 사람은 견디기 힘들 더이다.
부러 무딘척 하고 말을 아끼니 둔하고 소심한 이미지로 비치는 듯. ㅎ
하이드 님 글 항상 좋은거 같아요. 하이드 님 화이팅!!^^

페크pek0501 2010-01-31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소심한 사람을 낮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소심함의 다른 말은 신중함이거든요.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신중해져서 생각을 많이 하다보면 소심해져요. 또 소심해져서 망설이게 되어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 신중해지죠. 차라리 소심하지 않아서 생각 없이 막 구는 사람들을 경계합니다.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소심하지 않아서 길거리에 쓰레기를 겁없이 버리고 소심하지 않아서 식당에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큰 소리로 말하고 그런 사람들... ㅋ.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내용도 좋지만 생각을 다양하게 이끌어낼 수 있는 글이라서 더 좋은 글입니다.

바밤바 2010-01-31 18:1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소심한 사람들의 마음씀씀이가 세상을 더 슬겁게 하는 것 같아요. 소심한 사람도 행복한 사회가 됐으면 하네요~^^
 


예전에 조금 알던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살갑지도 돈독하지도 않았던 사이이기에 의외였다. 그는 그냥 생각나서 전화했다며 이런 저런 얘기를 늘여 놓는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동창이고 대학도 같이 나왔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다.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진 않았지만 나를 찾아준 고마움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내 일상이며 삶의 진행 방향 따위 말이다.

난 순진하게 정말 안부전화인 줄 알았다. 부러 사람의 말을 비틀어 들을 이유가 없기에 그렇다. 갑자기 그는 고등학교 때 우리반 담임 전화번호를 물었다. 순간, 이게 전화 용건이었구나 싶었다. 약간 섭섭하면서도 화가 났다. 지인이 사립고등학교 선생을 하려고 하는데 우리 담임 샘의 도움이 필요했나 보다. 번호를 모른다고 하니 그런 것도 모르냐며 타박을 가하더니 선소리만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찜찜했다.

고 3때 담임선생님은 나를 무척 아꼈다. 공부를 잘해서만은 아니었다. 맹랑하면서도 또박또박 할 말을 하는 영특함 덕이었다. 한 때, 담임 샘은 우리 반 분위기를 쇄신하겠다며 단체 삭발을 명한 적이 있었다. 담임은 별명은 저승사자였다.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라 정말 그분은 화가 날 때면 아이들을 초주검으로 만들곤 했다. 다들 삭발을 할 수밖에 없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허나 난 그 부당함을 참을 수 없었다. 배에 힘을 주고선 선생님께 따지러 갔다.

반장을 대동하고 갔지만 기실 말은 내가 다했다. 왜 삭발이 부당한지, 분위기 쇄신은커녕 사기저하를 낳는 다는 실효성 측면까지 이야기하며 꾸준히 선생님을 쏘아 붙였다. 옆에 있던 학주(학년주임)는 혀에 비단을 감았냐며 내 유려한 말솜씨를 칭찬했다. 덕분에 삭발은 면하게 됐지만 삭발령 전면 백지화는 불가능했다. 결국 단체로 스포츠머리를 한다는 타협점에 이르렀다. 단, 협상안을 도출한 나부터 머리를 짧게 깎아야 했다. 친구들은 그런 수정안이나마 다행이라 여겼고 담임 샘은 그 후로 나를 더더욱 아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후배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길 좋아하시며 나를 추어올리곤 한 덴다.

그런 보살핌과 기대가 묵직이 가슴을 누른 적이 몇 번 있었다. 세속적으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마음의 채찍질 말이다. 허나 세속적 출세를 바라기엔 그런 우직한 싸움을 하기 싫었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공부에 탐닉했다. 덕분에 지금은 어디에도 적을 두지 않는 노마드가 되었다.

지인의 전화는 선생님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내 사소한 미안함을 건드렸다. 근 3년 만에 전화와선 제 잇속만 챙기고 냉큼 전화를 끊어버린 그 심상한 결례도 괘씸했다. 지인에게 우리 담임을 만나도 내 얘길 하지 말라는 문자를 보냈지만 10시간 째 답이 없다. 생각할수록 그 무례함이 언짢고 그의 전화를 선의로 해석했던 내 미욱함이 원망스럽다.

강준만은 ‘전화의 역사’에서 안부전화를 꾸준히 하는 건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수단이라 하였다. 소식도 없던 이가 제 앞가림이 급하여 정보만 캐내고 내빼는 전화를 받고 나니 그 말이 더 와 닿는다. 오히려 처음부터 용건을 직접 이야기했으면 어땠을까. 생각나서 전화했단 허울 좋은 겉치장이 아닐 날것의 언어 말이다. 게다가 내 근황을 알리지 말라는 문자에 회신이 없으니 그 겉치장이 더더욱 역겨워 보인다. 덕분에 내 노마드적인 삶에 대해 다시금 회의(懷疑)가 든다. 정겨운 추억이 현실을 초라하게 만드는 걸 보면 내 자존감은 그리 탄탄하지 않은가 보다. 오늘 밤은 어제보다 더욱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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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1-23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시는 글 읽을 때마다 왠지 바밤바님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보게 하는 것 같네요.
음.. 어쩌면 바밤바님의 음악이나 음반의 선호도도 예측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춥습니다. 건강하세요!!

바밤바 2010-01-23 17:39   좋아요 0 | URL
일기를 써서 그런거 같네요~ ㅎ
기분이 나쁘면 왜 나쁜지 글로 풀어내야 감정의 실체를 직시할 수 있는 듯하여 부지불식간에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ㅎ
오늘은 좀 따스하네요~ 바람결님 화이팅!ㅋ
 


귀촉도(歸蜀途)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어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색인 육날 메투리.

은장도(銀粧刀)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은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구비구비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참아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미당의 시를 읽을 때면 난 정작으로 서럽다. 그의 모진 삶이 서럽고 그의 승한 재주가 서럽다. 허나 시조를 읊듯, 정갈한 운율이 넘실대면 모국어가 그리도 자랑스럽다. 그 말의 맛이 씹어도 씹어도 질리지 않을 듯하다.

시와 삶은 달랐다. 미당의 삶은 구접스러웠다. ‘종천순일자’라 제 자신을 감싼 그 야윈 말이 더 가여워 보인다. 글이 황홀해도 삶이 비루하니 그 찬란함이 옛 왕조의 기억마냥 아득하고 멀어만 보인다.

내가 처하지 않았던 시대고 내가 부딪히지 않았던 현실이다. 후세라는 이유로 그를 타박하기엔 내 행동 또한 말처럼 무겁지 않고 글처럼 올곧지 못하다. 뒤에 태어났다는 축복을 알지 못한 채 그를 꾸짖는 준엄함에만 몰두한다면, 나 또한 던적스런 삶이요 사람이다.

시인은 필시 연약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에 그토록 타인을 잘 헤아리고 그 마음을 흩트려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육사나 윤동주의 올곧음은 찬양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기실 그들의 시는 울림 자체가 미진한 편이다. 섬세한 언어 감각이 여린 마음에서 솟아난다 할 때 미당의 나약함은 시재(詩才)의 반대급부로 내려진 천형이다.

시대를 잘 만났다면 시성(詩聖)으로 추앙받고 만수무강하며 고이고이 살았을 그네다. 그렇기에 조선 왕조의 미욱함이 안타깝고 사대부의 썩은 정신이 원망스럽다. 일제의 옮아 맴이 너무도 치밀했던 그 시절에 붓을 꺾기보단 붓으로 제 자신을 겹겹이 변명했던 그 나약함이 새삼 남의 일 같지 않다. 이렇듯 마음이 혼란한 걸 보면 나 또한 오늘 사소한 비겁함을 행했나 보다. 일상의 잗다란 비겁함을 감내하기 버겁기에 나 또한 미당을 쉬이 탓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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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01-20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걸까요?
시인은 필시 연약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그렇다면 시를 '읽는' 사람도 그럴까, 잠시 생각해보다 갑니다.

바밤바 2010-01-20 21:24   좋아요 0 | URL
말을 자아내는 것과 말에 공감하는 것에는 다른 차원의 심력이 소진되겠죠.
결국 타인을 헤아리는 건 자신을 돌아볾에서 나온다고 보기에 저 또한 부러 강하려 하지만 기실 연약할지 모르겠네요~
좋은 밤 되세요^^

비로그인 2010-01-20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중세시대 어렴풋한 숲속에 서려있는 안개가 보이던 날씨였는데요. 면접은 잘 보신거죠?

오늘은 조금 놓고 편하게 푹 쉬세요..

바밤바 2010-01-20 21:42   좋아요 0 | URL
면접은 항상 잘 본답니다 ^^;;
오늘은 장길산을 읽어야 겠네요. 요즘 추노를 보는 데 장길산을 읽으며 머릿 속에 그렸던 장면이 영상화된 부분이 많더군요~ ㅎ
 


요즘 티아라가 좋아졌다. 보핍보핍을 외칠 때 마다 그 앙증스러움이 마음을 사뭇 설레게 한다.

티아라는 다소 특이하게 데뷔를 했다. ‘라디오 스타’를 통해서다. 덕분에 나는 그들 각자를 알 수 있었다. 워낙 즐겨보는 프로였기에 티아라에 대해선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파격적 데뷔에는 소속사의 힘이 작용했을 테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프로그램이기에 그러한 파격은 사소한 ‘비틂’ 정도로 보였다.

그 후 티아라는 많은 욕을 먹었다. 라이브 실력 때문이었다. 전영록 딸인 전보람 또한 낙하산 멤버라며 구설에 올랐다. 산뜻한 데뷔에 비해 이후의 여정은 고난의 행군이었다. 나 또한 티아라를 잊어가고 있었다. 헌데 엠비시 가요대상을 보며 다시금 그 애들이 가슴에 여울지게 됐다.

닉쿤을 비롯, 아이돌 남성 멤버들이 어떤 여성 그룹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무대가 있었다. 남자 아이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귀여웠다. 원곡을 부른 여성 아이돌은 더욱 귀여울 것 같았다. 알고 보니 티아라의 노래였다. 그 후 티아라의 동영상을 찾아보고 그들의 춤을 따라 하기도 했다. 여친이 생기면 그 고양이 모자도 선물해줘야겠단 야무진 다짐도 했다.

티아라는 이렇게 잘나갔다. 허나 지난주 뮤직뱅크에서 가인과 조권에게 1위를 뺏긴 티아라를 보고선 다소 울적했다. 1위를 못해서라기 보단 앵콜곡을 듣지 못해서였다. 소녀시대는 각자의 개성이 뚜렸해졌지만 다소 식상하다. 원더걸스는 미국에 갔다. 애프터스쿨은 멤버 개개인의 인지도가 약할뿐더러 ‘유이’라는 멤버에 지나치게 관심이 쏠려있다. 이제 대세는 카라와 티아라다. 카라의 니콜도 좋아라하니 두 여성 그룹이 빛나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호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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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1-21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그래도 아직 카라가 좋습니다...^^

바밤바 2010-01-21 17:47   좋아요 0 | URL
사실 이 글 쓰면 메피님이 젤 먼저 댓글 달 것 같았어요~ ㅎㅎ
움히히히. 티아라 파이팅!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