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릭 에너미 - Public Enemi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는 종종 그 자체보다 어떤 상황에서 관람하느냐가 큰 영향을 미치곤 한다. 그렇기에 영화에 대한 말은 나를 돌아봄과 병행해서 행해진다. 퍼블릭 에너미는 이런저런 일로 다소 핍진한 어제 보았다. 그래서인지 영화에 몰입하기 힘들었다. 과연 핍진함이 영화를 버겁게 했을까. 영화를 보고선 가열 찬 자기반성을 한다. 우선 영화의 만듦새가 아닌 내 미욱함이 영화를 읽어내지 못한 거라 여긴다.

 자신이 없어서 일 테다. 종종 누군가가 격찬하는 작품을 비뚜름하게 읽어낼 때 혼란이 찾아오곤 한다. 내 생각이 맞는 건지. 내 모자람을 감출 수 있는 기회를 생각을 드러냄으로써 놓치는 건 아닌지. 공부가 부족한건 아닌지. 아마 씨네 21의 평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대부분이 격찬을 했다. 

  
  8 차가운 도시 갱스터,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 김혜리 

  5 총격전만 잘 찍는 마이클 만 박평식 

  8 세상에서 가장 쿨한 것 중 하나는 마이클 만의 범죄영화 이동진 

  10 아마도, 올해의 영화! 이용철 

  8 도둑의 순정. 이건 갱스터 로맨스 장르 이화정 

  6 ‘내겐 너무 멋진, 나쁜 남자’의 로망 충족 혹은 나르시소스 황진미 
 

  9 진정한 남자의 향기를 느낀다 김종철 

  8 역시 마이클! 편집과 촬영으로 앙상한 서사도 커버한다 유지나

 김혜리 기자를 좋아한다. 페드로 알모바도르를 좋아하는 취향도 나와 닮은 듯하다. 사람의 마음을 두루 헤아리려는 그 마음 씀씀이도 슬겁다. 한 줄 평으로 김혜리의 생각을 읽으려 한다. 그녀는 이 영화에 미만한 남성미 속에 곁가지를 이루는 따스한 사랑에 집중한 듯하다. 헌데 감성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수긍하기 힘든 해석이다. 그들의 서로에 대한 탐닉과 집착은 충분히 어필하지 못한다. 마이클 만 감독은 이런 부분에서 서툰 듯하다. 그는 남자다. 

 박평식 평론가의 정리가 내겐 맞다. 총격전은 좋았다. 헌데 이 영화가 무얼 말하려는 지 도통 알 수 없다. 말하려는 바가 없으면 즐거워야 한다. 헌데 재밌지도 않다. 조니 뎁은 갑갑해 보이고 크리스찬 베일은 너무 무겁다. 한 사람의 삶을 그냥 옮겨 놓으려 그들 각자를 우겨 넣었다. 헌데 그 삶이 무얼 말하려는지 모르겠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마이클 만은 불친절로 관객을 밀어낸다. 그냥 누군가의 삶과 주변인에 관해 영화를 만들었을 따름이다. 

 이와 비슷한 영화가 있긴 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조디악’이다. 조디악 또한 실화를 다루었고 한 사람의 시점이 명징하다. 다소 지루하기도 하다. 헌데 조디악과 퍼블릭 에너미의 울림은 달랐다. 왜 달랐을까. 영화를 보고나서 꾸준히 제기됐던 울림이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지만 얕은 생각이나마 흩날리까 저어하며 조심스레 옮겨본다.   

 아마 시점의 차이였던 듯하다. 퍼블릭 에너미는 등장인물 개개인에 어떠한 역할을 부여한다. 그들은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개성이 영화의 전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헌데 그 개성이 와 닿지 않는다. 그만큼 서사가 성기다. 이에 반해 조디악은 그저 묵묵히 바라본다. 제이크 질렌홀의 연기는 적절하다. 두 영화 모두 영화적 재미는 덜 하지만 조디악은 제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서사를 드러낸다. 바라보는 카메라와 좀 더 훑으려는 카메라의 차이가 두 영화의 몰입도를 결정지었다. 

 평론으로 돌아간다. 이동진 평론가는 마이클 만의 영화가 세상에서 가장 쿨하다고 했다. 그는 종종 나와 영화 보는 관점이 부딪힌다. 이번 해석도 수긍하기 힘들다. 이동진의 글을 보면 상대적으로 탐미적 성향이 강하다. 관객에게 불친절한 영화일수록 숨겨진 해석을 말로 풀어내길 즐긴다. 박쥐에 만점을 주고 과속 스캔들에 5점을 준걸 봐도 그는 무의식적인 ‘구별짓기’를 하고 있다. 그네들과 제 자신을 가르기 위한 미학적 탐닉이 부지불식간에 그를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이명세 감독의 영화에 대해선 관점이 일치했다. 아예 서사를 배제해버린 그 황홀한 영상이 나또한 좋았다. 

 이용철 씨는 아마도 올 해의 영화가 될 거라 했다. 비록 작년에 딱히 기억나는 영화가 없다고 해도 너무 자신만만한 확신이다. 이 또한 자의식 과잉이 낳은 언어적 독단이 표출된 게 아닐까 한다. 이용철 씨의 글을 풀어내는 내 말 또한 어렵긴 하다. 허나 어려운 말은 종종 언어를 간결하게 해준다. 쉽게 풀어내기엔 손품 판지가 오래되어 그냥 저리 내버려 두련다.   

 평론가 한 명 한 명에 대한 품평을 하다 보니 글이 거칠다. 수많은 수사(修辭)가 남발된 이 글 또한 자의식 과잉과 타인을 쉽게 규정짓는 오만을 범하고 있다. 그런 것 까지 세세히 신경 쓰며 글을 쓰다보면 공리(公理)만 이야기할 듯하여 내 자신에게 아량을 베풀기로 한다. 말을 마무리하자면 퍼블릭 에너미는 스타일은 좋지만 공허한 영화다. 그 스타일 또한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 아니기에 쉬이 몰입하기 힘들다. ‘생각의 속도로 실행하라’는 책에 관한 중앙일보 서평 중 내 불민함을 지적하는 문구를 본 듯하여 그 글을 옮긴다. 두고두고 나를 살필 일이다. 

 -저자들은 똑똑하게 말하는 것과 똑똑한 것을 혼동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회의에서 남의 아이디어를 지적(知的)으로 비판하는 사람, 비관론을 펴는 사람이 똑똑하다고 인정받고 점수를 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용기를 내 실질적인 제안을 내놓는 사람들은 점차 도태되고, 조직은 영리한 반박꾼들로 채워져 행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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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1-25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느순간부터 평론가들의 평가를 안읽기 시작했다는....영화를 봤음에도 대체 뭔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바밤바 2010-01-25 14:25   좋아요 0 | URL
ㅎ 평론가가 가진 순기능도 있겠지만 대중이 평론가가 된 시대엔 그들의 말에 후한 평을 해주기 힘든 것 같네요~ 좋은 하루 되시옵소서~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