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여’

 드라마 ‘첫사랑’에서 주정남(손현주)이 부른 노래다. 그의 사랑 찬옥 씨를 위해 불렀던 노래엔 제 사랑에 대해 투박한 고백이 담겨있다. 말 그대로 ‘사소한 그리움’이다. 형용모순이긴 하지만 그 부정교합이 오히려 진지하다.

 제가 정녕 사랑하는 대상은 주정남의 노래처럼 진정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을까. 연인은 당연 그러할 테다. 허나 영화라면 어떨까. 영화 마니아가 많으니 가능할 수도 있다. 다만 제 눈을 떼지 못하게 하고선 지나치게 탐닉하라 강요한다면 그런 눈여겨봄이 계속될지 의문이다.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러 영등포로 향했다. 영화오래보기대회에서 말이다. 참가한 건 아니고 회사에서 뭐 좀 알아보라 시켰기에 갔다. 사람은 많았고 다들 표정이 좋았다. 191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이들이다. 허투루 볼 그네들이 아니다.

 참가 사연이 기준이니 다들 나름의 절실함을 담은 글을 보냈을 테다. 어떤 이의 사소함이 누군가의 절절함을 뛰어넘는 일도 있었을 터지만 글은 글로서 제 존재를 증명 할 뿐이다. 운이 좋았다는 이가 많은 걸 보면 세상은 지극히 복불복(福不福)이다.

 일 때문에 사람을 만나도 부대낌을 좋아하는 성정이라 노동은 즐거움이다. 단체와 커플, 개인이란 세 분류로 나눠 주최 측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각자 자리한 그들이다. 단체란 세 명 이상의 참가자들로 10여 개 모둠이 다였다. 분류에 따라 분홍, 파랑, 흰 색의 옷을 입은 이들이 극장에 미만하니 시작 전부터 근사했다.

  각 열(列)마다 자리한 카메라와 200명의 진행요원은 이들의 졸음을 감시하는 파놉티콘이었다. 즐거워 보이지만 조금의 긴장이 서린 그네들의 얼굴엔 이러한 사연이 있었다.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대회였다.

 23일 낮 12시 25분에 ‘워낭소리’의 나직한 울림으로 대회는 시작됐다. 영화를 다 보진 못했지만 필름보다 근사한 사연들로 이미 몇 편의 영화가 마음에 너울댄다.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만으론 68시간을 버텨내기 힘들듯 하니 그들 각자가 어떤 방법으로 저와의 사투를 벌일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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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이 찐다. 술자리가 많아서다. 뚱뚱함이 만들어낼 질병보다 타인의 가여운 시선이 우선 걱정된다. 나는 나로서 오롯이 서기 힘들다.

 일용할 양식이 부족한 과거에는 비만은 가진 자의 사치였다. 굶어죽는 이는 많아도 비만과 연계된 질병으로 사망한 이는 드물었다. 시절이 변했다.

 다들 살빼기에 여념이 없다. 비만은 우둔함 내지는 게으름의 육체적 표식이다. 성적매력은 물론이거니와 지적수준마저 떨어져 보인다.

 상황은 매우 모순적이다. 마구 먹으라는 광고와 살 빼는 약을 선전하는 매스 미디어 사이에서 몸은 항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그네들의 인정을 받아야 제 아름다움을 긍정하며 나아갈 수 있다. 소설가 김중혁이 씨네 21에 기고했듯 스스로가 잘생겼다는 암시는 지극히 긍정적이다. 허나 타인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의해 쉬이 그릇됨으로 변질된다. 내 얼굴은 내 것이 아닌 듯하다. 이렇듯 욕망뿐 아니라 육신마저 오롯이 남의 것이다. 번잡한 세상이다.  

 



 

 

 

 

 

 

 

 

 

 

  살을 빼기로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무조건 적게 먹고 운동을 많이 하란다. 이건 엊그제 만난 PB의 재테크 조언과 별반 차이가 없다. 돈은 무조건 적게 쓰고 돈벌이를 많이 하라는 뻔한 말 말이다. 허나 쉽지 않다. 마치 공부 열심히 하면 서울대 간다는 말처럼 그럴듯하나 아득하다. 자본이 개인을 착취하는 방식은 이렇듯 단순하지만 오묘하다.

 술과 관련된 현실을 유심히 봐도 그렇다. 사회는 술을 강요한다. 현진건이 살았던 시절마냥 망국의 슬픔이 술을 권하는 게 아니라 자본의 폭력을 이겨내기 위한 환각제로 술이 필요하다. 술을 잘 먹는 이는 직장 상사가 좋아하기에 ‘인정투쟁’의 수단으로도 좋다. 술은 안주를 부르고 안주는 살을 껴안는다. 술 권하는 사회에서 살빼기는 쉽지 않다.

 허나 살을 빼지 않으면 둔하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미디어에서 꾸준히 말하듯 멋진 외모는 후광효과로 인해 개인의 성공에 큰 기여를 한다. 성형외과의사들의 음모든 아니든 사회는 고정된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아름답지 못한 건 ‘악(惡)’과 이어진 것 마냥, 못생긴 자에 대한 사회의 타박은 매섭다. 이렇듯 성공하기 위해선 술을 잘 먹어야 하고 또 살을 빼야 한다. 결국 술 분해 효소와 외모라는 선천적 요건이 개인의 성공에 큰 역할을 한다. 자본은 이러한 고정 변수를 가변 요소로 만들 수 있다며 개인을 유혹한다. 유흥 업계와 성형 산업의 꾸준한 호황과 다이어트 식품과 숙취 해소제 시장의 활성화는 사뭇 모순되지만 지극히 자본주의적이다.   

 타인의 신체를 규정하는 자지레한 언어폭력 속에서 개인은 항상 불안을 안고 산다. 자본주의가 불안을 먹고 산다지만 그 옮아 매는 모양새가 지극히 근천스럽다. 이 도저한 불안의 흐름 속에 다들 트레드밀을 뛰어다닐 수밖에 없다. 저보다 잘 뛰는 그들의 날렵함을 질시하고 제 느린 발을 불안해하며 쉬지 않고 뛴다. 매트릭스가 인간을 숙주로 하여 운영되듯 자본주의는 개인의 불안으로 제 몸짓을 키운다.

 고민의 끝은 간단하다. 나도 살을 빼야겠다. 여태껏 읽은 책으로 ‘노마드’에 대한 불안은 해소할 수 있었지만 추(醜)함에 대한 불안은 쉬이 떨치지 못하겠다. 자본주의적 아비투스의 치밀함에 다시금 작아지는 스스로를 느낀다. 아비투스에 대한 저항보단 살을 빼는 게 더 현명할 듯하다. 나를 합리화 하는 데 이렇듯 많은 말이 필요한건 공부가 더 필요하단 절박한 내면의 외침이다. 내일은 7시에 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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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2-21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주만에 살이 좀 찌셨나 보네요 ^^ 그래도 바싹 마른 것 보다는 좋지 않을까요?? ㅎㅎ

바밤바 2010-02-21 21:37   좋아요 0 | URL
몸무게는 정녕 조금 늘었는데 배가 통통해지고 있어요 ㅠㅠ
바람결 님은 조금 마르신 것 같던데.. 좋은 체질 이세요~ㅎ

Mephistopheles 2010-02-21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저 읽으라고 페이퍼 쓰신 거군요...^^ 아 나도 살빼야 하는데...^^


바밤바 2010-02-21 21:58   좋아요 0 | URL
저에게 메피 님은 꽃미남 이미지인데.. ㅎㅎ
통통한 꽃미남도 있기 마련이죠~ 헤헤

Mephistopheles 2010-02-21 22:58   좋아요 0 | URL
아...이젠 성형까지 해야한단 말인가요...ㅋㅋ

바밤바 2010-02-22 15:07   좋아요 0 | URL
괜찮아요~ 언제나 마음은 꽃남~ㅋ

무해한모리군 2010-02-22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입사초기에 살이 많이 쪘던듯 해요.
건강관리 잘하세요.
회사서 내 건강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ㅎㅎㅎ

바밤바 2010-02-22 15:0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내 건강은 내가 지켜야 할 듯^^;;

반딧불이 2010-02-22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부지방이 과포화 상태인 저도 찔끔...

바밤바 2010-02-23 00:59   좋아요 0 | URL
우리 같이 운동하여요~ 헤헤^^

gimssim 2010-02-24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살들이 문제이군요.
이제 두꺼운 외투를 벗어야 하니 적나라하게 드러날 살들이 사실 걱정이 됩니다.
그래요. 우리 운동합시다.
다음에 살에 대한 애기를 할 땐 정말 3틸로쯤을 빼야할 텐데 말이지요.

바밤바 2010-02-25 10:37   좋아요 0 | URL
ㅎㅎ 덜먹고 운동해야될 듯~
님도 화이팅!!^^
 

















 

사진을 올리다 보니 축제 이름이 생각났다. 하동 호박 축제였다. 큰아버지가족과 할머니, 우리 가족이 함께 했었다. 사람은 쉬이 눈에 밟히지만 꽃과 자연은 두고두고 볼 일이라 여겨 그들만 화면에 실었다. 가을이 봄처럼 따스했던 날에 나는 친척들과 나들이를 갔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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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에 찍은 사진이다. 위의 세 사진은 하동의 어느 축제에서 찍었다. 밑의 세 사진은 진양호에서 찍었다. 저번 주의 설날보다 몇 달 전의 추석이 더 지척에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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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무적으로 글을 쓴 시절이 있었다. 그런 계절엔 글만큼 나를 이해해 주는 게 없었다. 사유(思惟)가 여물어 글로 여울질 때에야 그 날 하루는 시간의 값을 하였다. 나는 글로 나를 세우고 스스로를 돌아봤다.

 시절이 바뀌었다. 출근으로 나를 세우고 퇴근으로 스스로를 돌아본다. 글을 쓰기엔 사유가 야위었고 마음이 지쳤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가난한 시절일수록 절실한 글을 썼던 이유를 알 듯하다. 가난한 마음에 사유가 깃들고 한가한 시간에 알차게 여문 탓이리라. 지금의 내겐 생각이 머물 자리가 없다. 가난하다.

 화두는 재테크다. 다들 돈을 벌어 집을 사라고 한다. 집을 모으기 위해선 월급의 절반을 펀드에 넣고 생활비는 최소화하란다. 그래도 집 사는 데는 10년이 넘게 걸리니 결혼을 일찍 하는 게 좋단다. 업무 차 만난 PB(Private Banker)의 조언이다. 타인의 돈을 굴려 밥벌이를 하는 이의 말이다. 허투루 들을 수 없다. 비싼 값을 치르고서야 들을 상담을 무료로 했다.

 오늘 만난 지인의 가족도 집 장만에 부산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타인에게 조금 인색한 그네들이었다. 그리 모은 돈으로 그네는 집을 사려 했다. 그렇게 집을 사면 행복해지려나. 라캉의 말처럼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삶을 짊어지고 가는 게 아닐까. 그네들의 모습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그런 씁쓸함을 표명한다손 치면, 그네는 아마도 ‘아직 배가 덜 고픈’ 사회 초년병의 미욱함을 탓할 테다. 그러면서 나 또한 언젠가 그네들처럼 살게 될 거라며 어설픈 고담준론을 버리라 나무랄 테다. 그런 이들에게 라캉은 개뼉따귀 같은 소리를 일삼는 늙은이이고 나는 그런 말을 주워섬기는 못난 놈이다.

 이전에도 그런 언어가 가진 우매함과 폭력성을 비판한 적이 있지만 한국 사회에선 나이가 깡패다. 룰만 공정하다면 ‘산파법’을 써서 그들의 나약한 자존감을 쉬이 깨트릴 수 있다. 그네가 바라마지않는 아파트란 우석훈 식으로 얘기하자면 토건 세력들이 조장한 거짓 욕망이다. 제 삶의 질을 떨어트려가며 아파트 구매에 매달릴수록 그들의 육신은 망가져가고 누군가의 배는 살찐다. 물론 나약한 개인은 이런 구조에서 더 노력하여 ‘가장 괜찮은 노예’가 되는 게 가장 근사한 방안일 수도 있다. 제 자신이 왜 사는지에 대한 고민을 덜 한다면 말이다.  

 



 

 

 

 

 

 

 

 

 

 

 나 또한 집을 살 생각이 있다. 헌데 일상의 자잘한 즐거움과 그대들과의 소소한 기쁨을 깨트리면서까지 그러한 욕망을 좇고 싶지 않다. 몇 주 전만해도 4억에 값하는 집은커녕 4000원 짜리 식단을 고르는데도 우물쭈물 한 나였다. 제 아무리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하나 내가 자리하던 배고픈 공간을 부정하며 더 높은 곳을 우러를 순 없다. 결국 나는 노마드처럼 이곳저곳 떠돌며 스스로를 가꾸어 나갈 것이다. 정주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을 테다. 떠돌이의 불안이 제 아무리 높다한들 나를 해하며 까지 안정을 누리고 싶진 않다.

 이렇듯 내게 철학이란 다 ‘먹고사니즘’의 문제였다. 타인이 평하듯 고담준론이 아닌 나를 알아가고 낮은 자존감을 세워가는 방안이었다. 몇몇 지인은 내가 철학을 언급할 때마다 젠체하는 냥 여기며 불편함을 내비치곤 한다. 헌데 내가 언급하는 철학이란 타인의 생각을 빌려 내게 말하는 스스로를 향한 다독임이다. 집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단 자신감은, 내 공부가 드러냄이 아닌 보살핌을 위했다는 방증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지켜줘야 할 인연이 생기고 난 뒤에도 이런 자신감이 굳건할지 모르겠다. 그러기에 이렇게 글을 남겨 후에 생길 모자람을 짓누르려한다.

 덧붙이자면, ‘지켜준다’는 말 참 유치하지만 그만큼 절절하다. 나를 지키기도 버거운 세상에 그이를 오롯이 감싸 안는다는 건 그 어떤 욕망보다 아름답다. 타인의 욕망을 좇는 그 미욱함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내일도 나는 회사를 간다. 날이 풀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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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2-21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고 지켜주어야할 사람이 생기시더라도 자신감을 잃지 않으시기 바래요.

바밤바 2010-02-21 15:2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
아라크네 그림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