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이삭줍기와 더불어 많이 알려진 그림중하나입니다.
그림을 보면 하루일을 마치고 농부 부부가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평화로운 그림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 그림에는 슬픈 얘기가 숨어있습니다. 

농부 부부가 바구니를 밭 밑에 놓고 기도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바구니가 감자 씨와 밭일 도구를 담는바구니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바구니에는 씨감자가 들어있던 게 아니라 
그들의 사랑하는 아기의 시체가 들어있었습니다.

그 시절 배고픔을 참으며, 씨감자를 심으며 겨울을 지내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겠죠. 하지만 그들의 아기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죽은 것입니다.
죽은 아기를 위해 마지막으로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만종)입니다.

그런데 왜 그림 속의 아기가 사라졌냐구요??
이 그림을 보게된 밀레의 친구가 큰 충격과 우려를 보이며 아기를 넣지 말자고 부탁을 했답니다. 그래서 밀레는 고심 끝에 아기 대신 감자를 넣어 그려 출품하게 된 것이라 합니다.

그 이후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른 채, 그저 농촌의 평화로움을 담고 있는 그림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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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5-17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그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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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la 2004-05-18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너무 좋아서 퍼갈래요~!

panda78 2004-05-18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ㅡ 드디어 마침내! *^0^* 저의 책읽는 그림이 스밀라님 서재로! 아싸!
 


가니메데스의 납치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는 가니메데스는 미소년(美少年) 이었다. 그 아름다움에 매료된 제우스는 그를 독수리를 시켜 납치케 하여 올림퍼스 산에 데려오게 한다.
그렇다면 전통적으로 미소년으로 그려져 온 가니메데스를 렘브란트는 왜 그처럼 공포에 떠는 어린애의 모습으로 그려냈을까?
     이작품에서 렘브란트는 신화(神 話)에서 테마를 취하면서도 그것을 한낱 신화적인 세계의 것으로 다루지 않고, 그것을 현실의 한장면으로 묘사하려고 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 작품을 위해, 독수리에 채여 공포에 울부짖는 어린애의 스케치를 남겨놓고 있으며, 그것을 그대로 이 그림에 살리고 있는 것이다. 렘브란트는 신화의 단순한 서술적인 묘사보다는 인간의 공포감을 보다 리얼하게 표현하려고 했으며, 그것이 특히 1630년대 중반기에 나타나는 그의 특징이기도 하다.
 

안슬로 부처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그 후 연이어 수많은 초상화의 주문이 뒤따른다. 그 주문자 중에는 학자, 성직자, 의사, 거상(巨商) 등이 끼어 있었다. 성직자 안슬로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렘브란트는 이 작품에서도 비록 집단(集團)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부부를 같이 다룬 2 인상을 그려내고 있다. 이 2인상은 이미 <토론하는 두 철학자>, <철학자와 그의 아내>(1633) 등에 서도 다루어진 것이기는 하나 화풍과 양식(樣式)에 있어서의 커다란 차이가 보여진다. 여기에서는 극적인 제스처는 자취를 감추고 있으며 당당한 품격의 안슬로와 고즈넉한 아내의 자태는 오히려 렘브란트의 시대, 즉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성하고 아늑한 부르조아적 실내화(室內畵)를 연상케 한다.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토론하는 두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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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4-05-17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벨라스케스 그림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panda78 2004-05-18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럼요! ^^ 찾으러 가야지--- *^^*
 


여자예언자 한나(렘브란트의 엄마)

 렘브란트의 모친은 라이덴의 빵 제조업자의 딸로서, 1589년에 같은 시(市)의 밀가루업자 하르멘, 즉 렘브란트의 부친과 결혼했다.

 그녀의 집안은 라이덴에서도 이름난 가톨릭 신자 가족이었으며, 렘브란트도 모친을 통해 종교적 관심을 깊이 했으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또 이 작품에 그려진 여인이 모친이라는 데에는 이론(異論)이 없으나, 그것이 여자 예언자 한나 인가에 대해서는 확증이 없다.

 어쨌든 이 작품은 라이덴 시대에 렘브란트가 도달한 고도의 유채(油菜) 기술의 숙달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골똘히 책을 읽고 있는 노부(老婦)의 얼굴이며, 책장을 누르고 있는 주름살진 손등의 가식(假飾)없는 사실적 묘사를 통해 노모의 진정한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책장에 비쳐진 광선(光線)효과는 아직도 카라바지오풍(빛을, 강조하고자 하는 한 점에 집중시켜 빛과 어둠의 대비로 강렬한 인상을 자아냄)의 것이다.

카라바지오(카라밧조, 카라바조)


세례 요한의 참수(살로메 이야기입니다. 아시죠? ^^)


요한의 목을 든 살로메

 


자화상

 렘브란트는 63년이라는 길지도 않은 생애에 약 60점에 달하는 자화상을 남겨 놓고 있다. 이 방대한 자화상을 그린 화가는 서양 회화 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으며, 굳이 비길 만한 예를 찾자면, 짧고도 비극적인 생애를 산 같은 네덜란드 출신의 반 고호이다.
 일반적으로 이처럼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들은 자기 응시의 화가,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파헤치는, 내향적이자 인간의 정신적 갈등에 남달리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화가로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렘브란트에게 있어 자화상은, 렘브란트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와 예술적 편력(遍歷)을 더듬는 이정표(里程標)가 되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에는 연대가 기입되어 있지 않으나, 다른 자화상과 비교하여 1628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며, 렘브란트의 가장 젊은 날의 초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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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17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렘블란트만큼 자신의 얼굴을 그림으로 많이 남긴 화가가 또 있을까요?
젊은 날의 렘블란트부터 노년기의 렘블란트까지....세월을 지나온 렘블란트를 그의 자화상을 통해 만날 수 있다는 것 분명 기쁜 일인 것 같아요.^^

panda78 2004-05-17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보면 그의 인생이 보이더군요. 전혀 가식없이 늙고 추해진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는 것, 절대 쉽지 않을 텐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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