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中
마티스는 아주 개인적인 사람으로, 피카소가 자신의 드라마 같은 삶 속에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었던 것과는 달리, 마티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이 그림이 이색적인 것은 잠옷 차림의 마티스 자신과 실내복을 입고 있는 아내가 마주보고 있는 장면을 그린 일종의 자화상이라는 점이다. 이는 부부 사이의 소외에 대한 이미지인데, 내가 보기에 마티스 자신은 이 그림이 얼마나 노골적인지 몰랐던 것 같다. 우리는 이 그림을 보편적으로 해석해서, 순탄하지 않은 결혼 생왈을 하고 있는 어떤 부부의 모습을 읽고 싶어한다.
이 그림에서 지배적으로 보이는 것은 남편이며, 아내는 낮은 위치에, 단순히 높이에서가 아니라 지위에 있어서 낮은 위치에 있다. 그녀는 의자에 갇혀 있다. 커다란 팔걸이가 그녀를 가두고 있고, 자루 같은 가운이 발을 감싸고 있다. 마치 발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남편만이 유일한 힘의 원천이기 때문에, 수동적인 그녀에게는 발이 필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편의 눈에서는 어둠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고, 비록 아내는 고개를 들고 공격적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이 소용없는 일임을 안다.
마치 길게 늘여놓은 권력 같은 남편의 형상은 영원으로 치닫겠다는 듯이 그림 밖으로까지 솟아 있는 반면, 아내는 완전히 감금되어 있다. 그는 그림의 프레임으로부터도 자유롭다. 화살처럼 꼿꼿한 그의 몸과 잠옷에 있는 하얀 선이 그것을 말해 준다. 굵은 목과 창 밖으로 보이는 세계와의 유사성까지, 그에 관한 모든 것은 권력과 연결되어 있다. 남성의 몸이 곧게 뻗은 나무라면, 여성은 동그란 연못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나마 세 개의 연못 중 전체 모양이 다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잘린 채 일부분만 보여진다.
그녀의 내향적인 포즈는 난간의 곡선과도 비슷한데, 바로 여기서 마티스는 재치있고 재미있는 표현을 하고 있다. 난간의 곡선은 '안 돼' (non)라고 말하고 있다. 마티스와 아내는 서로에게 '안 돼'라고, 침묵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입을 굳게 다물고 있으므로, 제목으로 쓰인 '대화'는 마음으로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말을 할 필요는 없다. 거부의 표시를 보이는 그들의 몸이 이미 '안 돼'라고 소리치고 있으며, 둘 사이의 거리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 사이의 거리는 육체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이미 마음이 그만큼 멀어져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분리와 서로에 대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그림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짙은 파란색과 사랑스러운 패턴이 그림 전체를 조금은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이 그림은 결국 슬픈 그림이 아니라, 강하고, 약간 익살스럽지만 진지하다. 작품 안의 모든 것이 각각 나름대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 비록 그것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음악이 '거부'를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