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국의 수없는 문헌을 살펴보먼서도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조동일)의 글을 살피지 않는 저자의 행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리 시각에 의한' 외국 문학 연구가 꽤 오래 전부터 이루어져 왔는데도 말이다.
우리 시각이란 말이 무색하다.
이 정도면 텍스트에 대한 가히 뭇매질이다.
도르프만의 문학을 체계적으로 살펴 본 건 아니지만 여기까지 이르렀다는 건 놀라움이다.
헤쳐모임이 가히 장관이다.
그러나 성욕을 라틴 아메리카적인 것이라 말하는 데에는 고개를 젓게 한다.
우찌무라의 무교회주의는 깊이 고민해 볼 사항이다.
그는 신학보다는 개인의 종교적 체험에 우선을 두었고 모두가 그까지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개인에 대한 믿음은 당대의 군국주의에 대한 반작용일 수도 있겠다.
그 맥락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할까?
<중국소설사략>을 읽지 못했으니 비교하지 못한다.
아쉬움이다.
외국 문학 연구자로서 갖는 자의식은 득과 실을 동시에 갖게 한다.
루쉰을 넘어서고자 하나, 쉽지 않음을 앎은 물론이다.
넘어서고자 하나 닮아감만이 보임은 왜인가?
인상 비평이 주가 된다.
번뜻한 생각들이 눈에 띈다.
이후 어느 만큼 견실한 구조를 구축했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루쉰에 대한 연모를 보며 사대의 낌새를 느끼는 건 왜일까?
대국주의가 제국주의에 가려 안 보이는 건 아닐까?
竹內好(1910-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