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다, 이 만큼 '문학적'인 우리 시대의 비평가가 또 있을지.
또한 모르겠다.
인간다움과 자유로움의 소중함을 이토록 지키고자 하는 이 시대의 비평가가 또 있을지.
요사이의 평문은 방황 끝에 얻은 것이라 더욱 값지게 다가온다.
묘하게도 감옥에 갇힌 그람시와 김남주를 동시에 만났다.
아이처럼 떼를 쓰는 그람시에 비해 우리의 남주는 얼마나 올된가?
이 시대는 어디로 가는가?
그의 무덤에 가 시 자락이나마 되새겨 볼 일이다.
사진들은 5.18 민주묘지에 있는 김남주의 묘소이다.
김남주(1946-1994)
주인공이 겪는 심리적 갈등이 잘 다가오지 않는다.
그리 괴로워하지 않는다.
재즈음악처럼 흐느적댄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분명 모더니즘의 변종이다.
핀천의 사회관에는 공감하지만 두루뭉술함은 못마땅하다.
Thomas Ruggles Pynchon(1937-)
연애 소설이다.
시공을 뛰어 넘자는 데 이런 사랑으로는 어림 없다.
통속 소설이란 혹평을 받을 만도 하다.
콜레라의 창궐이 잘 보이지 않으니 통속으로 기울 수 밖에.
옥석은 가려야 한다.
헉 핀은 어른들의 거짓과 위선에 경악한다.
그러나 사실 이 이야기 속에서 가장 많은 거짓말을 하는 이는 바로 그이다.
물론 무엇을 위한 거짓인가는 분명히 따져야 할 것이다.
어쩌면 미국은 거짓말의 나라일지도 모르겠다.
Mark Twain(1835-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