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늙어버린 소설 속 인물들, 조로한 최인호.
아직은 몰라도 될 삶의 풍문들을 이미 들어버린 소년들에게 삶이란 또한 미래란 전혀 기쁘지 않을 터이다.
그들에겐 나와 너의 육체만이 찬양의 대상일 따름이다.
이런 그가 회심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성석제의 소설에서 내가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하는 건 김화영의 지적대로 그의 소설이 철저히 무의미한 삶만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허무와 무의미는 반드시 그려져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을 맺어서는 안 된다.
분수령을 넘느냐 못 넘느냐가 그의 문학사적 위치를 달리 할 것이다.
김종광의 소설이 별반 깊이 있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왜일까?
장편 하나를 겨우 쓴 갓 서른 살의 작가가 삶의 깊이를 얻는다는 것은 분명 요원한 일일 것이다.
입담과 소재의 특이성으로는 한계가 있다.
큰 울림을 주는 소설들이다.
변두리의, 평범하다 못해 조금은 모자란 인물 군상들이 공감을 자아내기도 하고 연민을 자아내기도 한다.
김소진은 변두리와 중심 사이에 끼어 있다.
그의 소설은 그 '사이'의 충실한 보고서이다.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듯이 우리가 월남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 안에서 미국의 모습이 무척이나 잘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요즘 문학적 행적이 미리 내비치는 소설이다.
불어권에서의 이 소설에 대한 주목도 알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