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최인석과 정찬은 세상이 다 끝난 듯 자기 세계에 침잠해 있다.
하지만 전성태는 겉멋 부리지 않고 쉽게 좌절하지도 않으며 차분히 세상을 보며 그려가고 있다.
마흔 줄에 들어선 이 작가가 난 진실로 귀하다.
그와 함께 시대를 건너가리라.
당대의 사회사와 연관시키면 재미난 소설이긴 한데 구조상 헛점도 보인다.
거장을 이해하고 돕는 건 사탄의 무리들이다.
또한 거장은 박해 받는 예수와 비견된다.
예수가 싸웠던 대상이 사탄일진대 오히려 사탄이 거장을 돕는 존재로 그려진다.
병치가 적절치 않다.
Mikhail Bulgakov(1891-1940)
치기 어린 작품이다.
이후 바진이 얼마나 나아갔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닥 기대되지는 않는다.
숱한 죽음으로, 장밋빛 전망으로 독자의 감정만을 끌어내려 한다.
마오뚠과 묘하게 겹친다.
루쉰, 라오서보단 몇 수 아래이고.
문혁 이후 많이 변했을 성 싶다.
巴金(1904-2005)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칠 때 때마침 이 책을 읽었다.
교과서 속의 민주주의야 늘 있었겠지만 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고 이 책은 말한다.
민주화를 위해 싸운 이들이 여러 모양으로 전신하고 세상을 뜨기도 한다.
민주주의는 제 의미를 찾은 걸까?
마지막에서 두 번째 평론집이라고 저자가 말하니 섭섭할 뿐이다.
대학에서 정년퇴임하는 친구들과 함께 비평에 힘을 쏟아주길 바랐는데 말이다.
리영희의 절필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누구나 자신에게 맡겨진 역사를 살아낸다.
그 깨달음과 실천이라면 섭섭함도 참아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