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보다는 시에 대한 안목이 저자는 낫다.
이 책에서도 시 비평이 더 두드러져 보이고.
중등 교과서 체계에 대한 비판은 끝이 없겠지만, 제대로 가르쳐보자는 게 국어교육과에 속한 저자의 바람일텐데 그 바람에 동감한다.
똥례의 무구함은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위악과 위선 사이의 어디쯤에 사는 우리들인데, 둘 다 무구함과는 거리가 머니 말이다.
무구는 때가 없다는 게 본래 뜻일텐데, 똥 같은 현실도 그에게는 때가 아닌 게 된다.
전후 문학이랄 수 있는데, 편자가 서정주를 좋아하다보니 김동리를 위시해 작가들이 별반 다르지 않다.
선우휘는 풍문으로 알던 것 보다는 낫다.
그가 시대에 '반역'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최서해의 <홍염>이 좋았다.
신경향파 소설을 부족함으로 보는 게 문학사의 주류된 시각이지만 최서해의 소설은 사람의 마음을 움찔하게도 하고, 움직이기도 한다.
최서해(1901-1932)
미완의 소설.
그러나 별다른 호기심이 당기지 않는다.
왜냐면 끝내 읽을 수 없는 이야기들도 별다른 내용이 없을테니까.
<사양>에 비한다면 이 단편들은 너저분하다는 생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