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뉴스 보기가 겁난다는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꽤나 믿음직해 보이던 정치인이 하루 아침에 미투라는 거센 폭풍에 휩쓸려 걸레처럼 찢겨나갔다. 건실해 보이던 미소 이면에 감춰진 추악한 몰골이 만천하에 다 드러나고 말았다. 자신이 당한 피해를 간신히 세상 밖으로 힘겹게 밀어내는 듯한 가련한 피해자의 인터뷰를 보고 있자니 유력 정치인의 말도 안 되는 변명에 다시금 치가 떨릴 지경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가해자들이 미투 폭풍에 계속 까발려질지 도무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아직도 수면 아래에서 괴물처럼 몸을 숨긴 채 갖은 방법으로 피해자를 억누르고 협박하면서, 자신들의 악행이 드러날까봐 노심초사 전전긍긍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더 많이 남아 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우리나라 속담 가운데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은 때로는 너무 나약하게 들릴 때도 있다. 성폭행을 당해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파괴된 여자가 자신이 당한 끔찍한 폭행조차 세상에 알릴 수 없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그 원통함이 얼마나 뼈에 사무칠까. 나로선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오늘 저녁 뉴스를 보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대목도 바로 피해자가 TV 인터뷰에 나온 이유을 밝히는 대목에서였다. 그녀는 절규하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세상에 밝히지 않으면 도저히 '거기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고, 오늘이라도 당장 자신이 죽을 것만 같았다고 말이다. 그런 가슴아픈 절규가 어찌 이 땅에 그녀뿐이랴. 소리없는 수많은 아우성이 그녀의 가녀린 목소리 뒤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아직도 숨을 죽인 채 '사무친 원한'을 그저 가슴 속에 파묻고 고통스런 삶을 이어가야 할 피해자들이 얼마나 더 많이 남아 있을까.

 

아주 오래된 서양 신화에서조차 '성폭력 사건'은 빠지지 않았다. 한 번만 읽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성폭행 사건의 끔찍한 전말'이 '프로크네와 필로멜라의 복수'에 모두 담겨 있다. 이 이야기를 맨 처음 읽은 이후로 좀처럼 잊을 수 없어서 베껴놓은 싯구절들이 적지 않았다. 프로크네와 필로멜라의 복수  그 이야기를 이번 기회에 교훈 삼아 다시금 재정리해 보고 싶다.

 

 * * *

 

 

필로멜레와 프로크네, 윌리앙 아돌프 부그로, 1861, 퐁텐블로 성

 

 

까마득한 옛날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 판디온이라는 왕이 살고 있었다. 야만족의 무리가 바다를 건너와 이 나라를 어지럽힐 때 이웃 나라 트라키아에 살던 테레우스 왕이 원군을 이끌고 와서 적들을 패퇴시켰다. 그가 재산도 많고 군사도 많았던 터라 판디온은 그를 프로크네와 결혼시켜 자신의 편으로 삼았다.

 

결혼한 지 다섯 해가 지나자 프로크네가 남편에게 아양을 떨며 말했다. "그대가 아우를 조금이라도 사랑하신다면 내가 아우를 방문하는 것을 허락해주시든지 아니면 아우가 이리 오게 해주세요." 라고. 그래서 테레우스는 곧 함선들을 바닷물에 띄우고 직접 아테네로 향했고, 이내 장인에게 '용건'을 말한 뒤 처제를 자기와 함께 가게 해주면 빠른 시일 안에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때, 보라, 필로멜라가 화려하게 성장하고 들어왔다.

하나 그녀의 아름다움은 더 화려했다. 물의 요정들과 나무의 요정들이

숲 속을 거닐 때의 모습이라고 우리가 들었던 그런 모습이었다.

그들도 그녀처럼 세련되고 우아할 수 있다면 말이다.

소녀를 보자 테레우스는 순식간에 활활 타올랐으니,

그 모습은 마치 누군가가 익은 곡식이나 마른 풀이나

축사에 쌓아놓은 건초 더미에 불을 지를 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녀의 미모는 실제로 그럴 만도 했다. 하나 그의 경우 타고난

욕정에 더욱 자극 받은 데다, 원래 그 지방 사람들이 애욕에 약했다.

그렇듯 그는 자신의 부족과 자신의 악덕 탓에 타올랐던 것이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6권 447∼460

 

 

정욕에 눈이 멀게 된 테레우스에게 무슨 일이 더 남았겠는가. 어서 빨리 처제를 배에 태우고 떠나는 일 말고. 그가 장인에게 드리는 간청 때문에 도리어 칭찬까지 듣게 된 건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미친 사랑의 포로가 된 만큼 감행하지 못할 짓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의 가슴은 그 안에서 타고 있는 불길을 억제할 수 없었다.

이제 그는 지체되는 것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프로크네의 부탁을

열심히 되풀이하며 그녀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소원을 이루려 했다.

사랑은 그를 달변으로 만들었고, 자신의 요구가 지나치다 싶으면

그때마다 그것은 프로크네의 뜻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것도 그녀가 그렇게 시킨 양 그는 간청에 눈물을 덧붙이기까지 했다.

하늘의 신들이시여, 얼마나 많은 눈먼 밤이 인간의 가슴속을 지배하는

것입니까? 테레우스는 자신의 범죄 계획 자체에 의해 경건하다는

평을 들었고 자신의 범행으로 칭찬까지 들었던 것이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6권 465∼474

 

장인은 마침내 자신의 딸에게 그녀의 언니를 방문하도록 허락했고, 먼 길을 찾아온 사위를 대접하기 위해 푸짐한 잔치를 베풀고 나서 이튿날 사랑하는 딸과 눈물의 작별을 나누었다.

 

일단 필로멜라가 색칠한 배에 오르고 노를 저어

육지가 멀어지자 그는 "내가 이겼다! 내가 바라고

바라던 것이 나와 함께 실려가고 있다!"고 외쳤다.

야만인은 기뻐 날뛰며 마음속으로 자신의 욕망을 간신히

뒤로 미루었고, 그녀에게서 결코 눈을 떼지 않았으니,

그 모습은 마치 윱피테르의 맹금류인 독수리가 구부정한 발톱으로

산토끼를 낚아채어 높다란 곳에 있는 제 둥지를 내려놓으면

포로는 도망갈 데 없고 포획자는 제 먹이를 노려볼 때와

다르지 않았다. 어느새 여행이 끝나자, 그들은 여행에 지친

삼선들에서 내려 자신들의 해안에 상륙했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6권 511∼519

 

그 이후에 테레우스는 판디온의 딸을 태고의 숲으로 가려져 있는,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외양간으로 끌고 가서 그곳에 가두었고, 마침내 흑심을 드러낸 왕은 한낱 소녀에 불과한 그녀를 힘으로 제압했다. 이 끔찍한 성폭행 직후의 피해자의 절규와 가해자의 끔찍한 만행을 오비디우스보다 더 절절하게 묘사할 시인은 찾기 어려우리라.

 

그녀가 떨고 있는 모습은 부상당한 채 잿빛 늑대의 입에서 벗어났지만

아직 자신의 안전을 믿지 못하는 겁먹은 새끼 양이나, 또는 제 피에

깃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아직도 겁에 질려 자기를 꼭 붙잡고 있던

그 탐욕스런 발톱을 무서워하는 비둘기와 같았다.

곧 정신이 돌아오자 그녀는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를 쥐어뜯고

애도하는 사람처럼 두 팔에 타박상을 입히다가 두 손을 내밀며 말했다.

"오오, 야만인이여, 이 무슨 끔찍한 짓이오!

오오, 잔혹한 자여! 내 아버지의 지시도, 내 아버지의 경건한 눈물도,

내 언니의 사랑도, 내 처녀성도, 그대의 혼인 서약도

그대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던가요? 그대는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았어요. 나는 언니의 시앗이 되고,

그대는 이중의 남편이 되었어요! 나는 그런 벌을 맏을 만한 짓을

하지 않았어요. 배신자여, 더 저지르지 않은 범죄가 없도록

왜 내 목숨은 빼앗지 않는 거죠? 그대가 나를

난행(亂行) 하기 전에 그렇게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더라면 내 혼백은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련만! 하지만 만약

하늘의 신들께서 이 일을 보고 계시다면, 신성이란 것이 있다면,

만약 내가 없어진다고 해서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그대는 이 죗값을 치러야 할 거예요. 나 자신이 부끄러움을

벗어던지고 그대가 행한 짓을 폭로할 거예요. 그럴 기회가 주어지면

백성들에게 다가가 알릴 거예요. 만약 이 숲 속에 갇혀

지내게 된다면 나는 숲을 내 비탄으로 가득 채우고

내 치욕의 증인인 바위들을 감동시킬 거예요. 그러면 그것을

하늘이 듣고, 하늘에 신이 계시다면 신도 들으시겠지요."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6권 527∼548

 

사나운 폭군은 이 말에 화가 나기도 하고 또 두렵기도 했기 때문에 칼집에서 칼을 빼어 든 다음 그녀의 머리채를 잡더니 두 팔을 등 뒤로 비틀고 그 팔들을 꼭꼭 묶었다. 그녀가 계속 항의하고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용을 쓰자 그는 집게로 그녀의 혀를 잡고는 무자비한 칼로 잘라버렸다.

 

…… 남은 혀뿌리는 떨고 있었고,

잘린 혀는 꿈틀거리며 검은 대지에게 무엇인지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치 토막난 뱀의 꼬리가 뛰어오르듯 팔딱팔딱 뛰는 혀는 죽어가면서

안주인의 발을 찾고 있었다. 이런 악행을 저지른 뒤에도

(나로서는 믿어지지 않지만) 테레우스는 욕정을 채우기 위해

성치 않은 소녀의 몸을 몇 번씩이나 더럽혔다고 한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6권 557∼562

 

그런 짓을 저지르고 나서 테레우스가 뻔뻔스럽게도 프로크네에게 돌아갔을 때, 아내는 남편에게 아우의 행방부터 물었다. 그는 괴로운 듯 신음하면서 '그녀의 죽음'에 대해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며 믿게 하려고 눈물까지 흘렸다. 그러나 그들의 가혹한 운명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태양신이 이륙 십이, 12궁을 모두 통과하자 일 년이 지나갔다.

필로멜라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감시자가 그녀의 도주를

막고 있고, 단단한 돌로 쌓은 외양간의 담들은 튼튼했으며,

말 못하는 입은 당한 일을 알릴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고통은

사람을 매우 창조적이게 하고, 역경은 약삭빠르게 하는 법이다.

그녀는 야만족의 조잡한 베틀에다 날실을 걸고는 흰 바탕에

자줏빛 글자를 짜 넣어 자신이 당한 범행을 새기고 있었다.

그것이 완성되자 그녀는 그것을 한 시녀에게 건네주며 왕비에게

갖다 주라고 손짓으로 부탁했다. 부탁 받은 여인은 자기가

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프로크네에게 갖다 주었다.

야만적인 폭군의 아내는 그 천을 펼친 후 자신의 아우의

비참한 운명을 읽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고통이 그녀의 말문을 닫았고,

혀는 분한 마음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눈물을 흘릴 겨를도 없었다. 그녀는 정의와 불의를

가리지 않고 앞으로 내달았고, 마음속은 온통 복수의 일념뿐이었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6권 571∼586

 

그 무렵은 마침 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박쿠스 축제가 열리던 때였다. 프로크네는 축제의 밤을 틈타 포도덩굴 관을 쓰고 무구를 갖춘 채 하녀들과 급히 숲 속을 찾아가 아우를 찾아냈고, 얼떨떨해하는 아우도 박쿠스 여신도처럼 변장을 시켜서 성벽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눈물을 흘리는 아우를 보며 언니는 말을 이었다.

 

"지금은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다. 칼을 쓰거나,

칼보다 더 강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쓸 때란다.

아우야, 나는 어떤 범행이든 저지를 각오가 되어 있어.

나는 횃불로 이 왕궁을 불지르고 간악한 테레우스를

불속에 던져 넣거나, 칼로 그자의 혀를 자르고

눈을 뽑고 너에게 치욕을 안긴 사지를 절단하거나,

수천의 상처로 그자의 죄 많은 영혼을 몸에서 내쫓을 것이다!

어떤 큰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어. 하지만 그게 무엇이 될지

나는 아직 확실히 모르겠어." 프로크네가 말하고 있는 동안

이튀스가 다가왔다. 아들을 보자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난 그녀는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며 "아아, 너는 아버지를

얼마나 닮았는가!" 라고 말했다. 그녀는 여러 말 않고

속으로 조용히 분을 끓이며 끔찍한 범행을 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들이 다가와 어머니에게 인사하며

작은 팔로 목을 껴안고 소년답게 응석을 부리며

입맞추자 어머니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녀는 분노가 한풀 꺾였고, 그녀의 두 눈은

그녀의 의사와는 달리 본의 아니게 흘러내린 눈물로 젖어 있었다.

하나 일단 지나친 모정으로 자신의 결심이 흔들린다고 느끼자

그녀는 다시 아들에게서 아우의 얼굴 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둘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왜 한 명은 사랑스런 말을

건넬 수 있는데, 다른 한 명은 혀를 잘리고 아무 말도 못하는 거지?

왜 그는 어머니라고 부르는데, 그녀는 언니라고 부르지 못하지?

판디온의 딸이여, 대체 어떤 남편과 결혼했는가? 너는 못난 자식이야!

테레우스 같은 남편에게 성실하다는 것은 범죄야!"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6권 611∼635

 

복수심에 불타는 프로크네는 이튀스를 높다란 궁전의 외딴 곳으로 끌고 갔다. 이내 "어머니! 어머니" 라고 비명을 지르며 애원하고 매달리는 아들을 그녀는 칼로 쳤다. 

 

 

그러고도 그녀는 얼굴조차 돌리지 않았다. 소년에게는 이 한 번의

가격으로도 충분했을 터인데 필로멜라가 칼로 그의 목을 잘랐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 그의 사지를 해체했다.

이어서 그 중 일부는 청동 솥에서 부글부글 끓었고,

일부는 꼬챙이에 꿰여 지글지글 소리를 냈다.

방 안에는 피가 냇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이어서 아내가 아무 영문도 모르는 테레우스를 이 잔치에 초대하며,

자기 고국의 풍속에 따른 신성한 잔치로 남편만이 참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시종들과 하인들을 따돌렸던 것이다.

테레우스는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왕좌 위에 높다랗게 앉아

혼자 식사를 하며 제 살로 제 뱃속을 채웠다. 그리고 그는 완전히

마음이 눈멀어 "이튀스를 이리 불러주시오!" 라고 말했다.

그러자 프로크네는 자신의 잔인한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안겨준 파국을 맨 먼저 알리고 싶어서

"그대가 찾는 사람은 안에 있잖아요!" 라고 말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가 재차 묻고 부르자 필로멜라가 자신이 미쳐서

살해한 소년의 피를 머리에 뒤집어쓴 그대로 튀어나오더니

핏방울이 뚝뚝 듣는 이튀스의 머리를 그의 아버지의 얼굴에다

내던졌다. 그녀는 이때처럼 자신의 혀가 말할 수 있기를, 알맞은 말로

자신의 희열을 표현할 수 있기를 더 바란 적은 없었을 것이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6권 642∼660

 

이 끔찍한 '피의 복수극'을 그린 그림이 스페인의 어느 미술관에 걸려 있다. 문득 올 초에 스페인으로 훌쩍 여행을 떠났던 아내와 딸이 이 그림까지 돌아봤는지 자못 궁금하다. 스페인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가 이름난 미술관과 박물관을 실컷 둘러보는 일이었다고 하니 말이다.(특히 '프라도 미술관'에 대해서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책까지 빌려봤던 걸로 알고 있다. 언젠가 스페인 마드리드에 가실 분들은 이 그림을 놓치지 마시길!)

 

 

아들 이튀스의 머리를 마주한 테레우스, 루벤스, 1636~1638년,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제 자식의 고기'를 심킨 트라키아의 왕이 그 이후로 어떤 '광란의 몸짓'을 보여줬는지, 그가 분노에 휩싸여 칼을 빼든 채 얼마나 빠른 걸음으로 판디온의 두 딸을 뒤쫓았는지에 대해서도 오비디우스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간다. 시인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들 가운데 한 명은 숲으로 향했고, 다른 한 명은 지붕 밑으로 날아들었는데, 그들에겐 어느새 날개가 돋아 났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그들의 가슴에서는 살인 행위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았고, 그들의 깃털은 피로 얼룩져 있다고 한다.(그리스 시인들에 따르면 프로크네는 나이팅게일이 되었고 필로멜라는 제비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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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멜라 이야기'는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 에도 등장한다. 그 대목만 소개하면 이렇다.

 

그 고풍의 벽난로 위에는

마치 숲 풍경이 내다보이는 창처럼

저 무지한 왕에게 그처럼 무참히 능욕당한

필로멜라의 변신 그림이 걸려 있다.

나이팅게일은 맑은 목청으로

온 황야를 채우지만,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그 짓을 계속한다.

그 울음은 더러운 귀에 "젹 젹" 소리로 들릴 뿐.

 

고대에 실제로 있었던 '성폭행 사건' 가운데에는 '루크리스의 강간'도 한번쯤 살펴볼 만하다. 이 사건 때문에 '로마의 역사'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이 유명한 역사적 사건은 로마 최대의 역사가였던 리비우스의 『로마사』에도 기록되어 있고, 『변신』을 쓴 시인인 오비디우스의 작품 『로마 달력』제2권에도 실려 있는데,  아무래도 그보다는 영국의 시인 셰익스피어가 새롭게 설화시로 창작한 『루크리스의 강간』이 더 유명하지 싶다.

 

로마의 역사를 뒤바꾼 ‘성폭행 사건‘을 둘러싼 내밀한 심리 묘사가 압권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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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8-03-06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단에는 고작 한두 사람쯤만 이름이 나왔을 뿐입니다..

oren 2018-03-06 09:48   좋아요 0 | URL
정말 그런 듯싶어요. 문단을 비롯한 문화계뿐 아니라 교육계와 종교계 등 수많은 분야에서 숱한 악행들이 저질러진 게 아닌가 싶어요. 어떻게 그런 몹쓸 사람들이 그토록 고상한 분야에서 버젓이 고개를 들고 남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건지, 그게 더 끔찍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3-06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부모에게 먹이는 잔혹한 복수는 ‘아트레우스-티에스테스‘ 이야기 속에서도 확인되는 것 같습니다. 동생에게 아내를 빼앗긴 아트레우스의 복수가 끔찍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 같네요. 매우 잔혹한 복수이지만, 복수자들의 내면을 들여다 본다면 이들을 잔인하다고만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사회에 미치는 충격이 매우 크네요. 사회에 던진 큰 파장만큼 우리 모두의 생활 여러 곳에서 작은 변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보게 됩니다.

oren 2018-03-07 00:12   좋아요 1 | URL
일명 ‘펠롭스家의 저주‘라고도 불리는 아트레우스 가문의 이야기는 수많은 고대 그리스 문학 작품에서 너무나 자주 나와서,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리 낯설지 않은 것 같습니다.

펠롭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가서 힙포다메이아와 결혼하는데,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그녀의 아버지인 엘리스 왕 오이노마오스와 ‘전차 경주‘를 해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데, 펠롭스는 오이노마오스의 마부를 매수해서 경주 때 바퀴가 빠져 왕이 전차에서 떨어져 죽게 만들지요. 그런데 펠롭스는 마부에게 약속한 보수를 주기는커녕 도리어 그를 바다에 던져 죽이고 말지요. 그리하여 이 유명한 ‘펠롭스 가문의 저주‘가 시작되더군요.

펠롭스의 두 아들 가운데 아트레우스가 뮈케네의 왕으로 있을 때 아우인 튀에스테스가 아트레우스의 아내 아에로페를 유혹하다 발각되어 추방되고, 나중에 아트레우스는 서로 화해하자면서 튀에스테스를 불러놓고는 그의 두 아들을 죽여 그 고기로 음식을 장만하고 잔치를 벌이지요. 그 내막을 알게 된 튀에스테스는 아트레우스 가문을 ‘저주‘하고요.

튀에스테스가 모르고 자신의 친딸과 교합하여 태어난 자식이 아이기스토스인데, 그는 나중에 ‘트로이아 전쟁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의 情夫가 되어 아가멤논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차지하게 되지요.(아가멤논은 아트레우스의 아들이니 아이기스토스와는 서로 ‘4촌‘ 사이였던 셈이죠.)

훗날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와 딸 엘렉트라가 결국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다시 뮈케네로 돌아 오고, 부정을 저지른 어머니인 클뤼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를 죽이고 ‘죄를 씻기 위해‘ 아폴론의 명령에 따라 머나먼 타우로이 족의 나라(지금의 크림 반도)로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가지러 가지요. 거기서 죽은 줄만 알았던 이피게네이아를 만나고요.

이 ‘펠롭스家의 저주‘ 이야기는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스』 3부작, 에우리피데스의 『오레스테스』,『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엘렉트라』,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에서 계속 등장하고, 오비디우스의 『변신』과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도 끊임없이 반복해서 나오는 이야기여서 나중엔 저절로 익숙해지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