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 같은 독서

 

 

자신만만하고 못하고는 스스로가 처한 환경 나름인 것이다.

 - 구스타프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중에서

 

 * * *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같은 날 죽었다는 건 흥미로운 문학적 우연이다. 귀스타브 플로베르(1821∼1880)와 생몰연대가 가장 가까운 작가가 도스토예프스끼(1821∼1881)라는 사실도 '흥미'를 가지고 살피면 약간은 흥미롭다. 그러면 이 두 사람과 생몰연대가 가장 가까운 대문호는 누구였을까? 아마도 톨스토이(1828∼1910)?

 

플로베르와 톨스토이는 '간통 문학'의 대표작을 쓴 작가라는 점에서도 남다른 문학적 연관성을 갖는 듯하다. 비록 잘은 모르겠지만 숱한 문학 전공자들이『마담 보바리』(1857년)와 『안나 까레니나』(1873년)를 두고 숱한 비교 분석을 쏟아냈으리라는 점은 누구라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 싶다.(『안나 까레니나』를 '영화'로만 봤지 여태까지 '책'으로는 읽지 않은 나도 태연스레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혹시 톨스토이가 쓴『전쟁과 평화』(1869년) 속에서도『마담 보바리』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톨스토이가 워낙 플로베르의 작품을 좋아했다고 하니 그런 궁금증을 품는 사람도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 작가들 사이에 일어났던 '내밀한 교감'을 어찌 일반 독자가 시시콜콜 다 알아챌 수 있으랴만 그래도 『마담 보바리』의 다음 대목을 읽은 나로서는 두 사람 사이의 '간통 현장'을 목격한 듯한 짜릿한 흥분을 감추기 어려웠다.


과연 톨스토이는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에 나오는 그 유명한 '마차 장면'에 영향을 받아서 『전쟁과 평화』의 일부를 썼을까.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구상한 것은 1856년이었다. 플로베르가 무려 5년 동안에 걸쳐 '납덩이같은 펜과의 처절한 싸움' 끝에 마침내 『마담 보바리』의 탈고를 끝낸 게 그해 봄이었다. 톨스토이는『전쟁과 평화』의 <제1부>를 완성하는 데만 무려 6년이 걸렸다. 그 작품을 쓰기 위해 그가 모은 자료들만 하더라도 '도서관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 일단을 보여주는 편지가 그 사정을 엿보게 해 준다.

 

"나는 우수(憂愁)에 휩싸여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오직 괴로움만을 거듭하고 있을 뿐입니다. 모내기를 하기 위해 거친 땅을 깊이 갈아엎는 이 예비적 노작이 얼마나 고된 작업인지 당신으로선 상상하기도 힘들 것입니다. 이제부터 착수하려는 훌륭한 대작 가운데 나오는 여러 사람들에게 일어날 모든 사건을 구상하고 고쳐 생각하고, 그러한 여러 인물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몇백만의 관계를 고려하고, 그 가운데서 백만분의 일을 골라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런 일에 착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 A.A. 페뜨에게 보낸 편지(1864.011.1) 중에서

 

톨스토이가 『전쟁의 평화』를 쓰기 위해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책들 가운데 『마담 보바리』도 끼어 있었으리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그가 골라낸 '백만분의 일' 가운데 하나가 과연 『마담 보바리』에 나오는 다음 대목이 아니었을까 싶은 나의 합리적인 의문까지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건 아니다. 어차피 최종 판단은 언제나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 * *

 

 

파리에서는 흔히 있는 일인 걸요

 

성당 앞 광장에는 어린애가 하나 놀고 있었다.

 

「마차 한 대만 불러다오!」

 

어린애는 카트르 방 거리로 총알처럼 뛰어갔다. 그러자 그들은 한동안 얼굴을 마주한 채 어색한 기분이 되어 서 있었다.

 

「아, ……레옹! ……. 정말 …… 몰라요 …… 어쩌면 좋아요 ……!」

 

그녀는 선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건 아주 못할 짓이에요, 알아요?」

 

「뭐가 어때서요?」하고 서기는 되물었다. 「파리에서는 흔히 있는 일인 걸요!」

 

그러자 이 한마디 말이 거역할 수 없는 논거인 양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다.(353∼354쪽)

 

 

뒤이어 마차가 나타나고, 레옹과 엠마는 그 유명한 '마차 안에서의 한낮의 질주'를 벌인다. 사실 방금 인용한 문장 보다는 곧이어 이어지는 장면이 훨씬 더 압권이다. 이왕에 내친 김이니 나도 그 유명한 대목까지 인용함으로써 내 글을 조금이라도 더 내달리게 만들고 싶다.

 

 

「가시더라도 북쪽 문으로 나가주세요!」하고 아직도 문간에 서 있던 성당지기가 그들에게 소리쳤다. 「부활, 최후의 심판, 낙원, 다윗왕, 그리고 지옥불 속의 저주받은 자들을 보실 수 있으니까요」

 

「나리, 어디로 모실깝쇼?」하고 마부가 물었다.

 

「아무데라도 좋아!」하고 레옹은 엠마를 마차 안에 밀어 넣으면서 말했다.(355쪽)

 

 * 강조한 부분은 번역문을 따랐다. 곧 있을 '엠마와 레옹의 마차 안에서의 정사(情事)'를 상징하는 단어들이다.

 

 

그리고 마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계속 달렸다. 마부가 멈출 때마다, 마차 안에서는 "계속 가요!" 라는 대답만 들려왔다. 마차가 세 번째로 멈추었을 때도 마부는 "그냥 가라니까! 라는 더 거센 목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마부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목마름과 피로와 근심으로 거의 울상이 되어' 마차를 몰았다. 이제 마차는 이쯤에서 세우자.

 

마지막으로 남은 건 내가 '두 작가와의 교감'을 의심하는 『전쟁과 평화』속 대목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니꼴라이는 '로스토프 노백작 집안'의 맏아들이자 순박한 다혈질의 청년이다. 그는 어릴 땐 집에서 함께 자란 사촌 누이동생 쏘냐를 좋아했지만, 군대에 입대하고 '도시 생활'을 겪고 나서는 차츰 '도회지 사람'으로 변모한다. 심지어 '유부녀'를 능란하게 유혹할 정도로 점점 더 까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 점이 바로 '파리 물을 먹은 레옹'과 너무나도 닮았다. 레옹 또한 엠마를 처음 만났을 땐 순진하기 그지 없었으나 '파리 생활'을 겪은 뒤 3년 만에 나타난 모습에선 어느새 '선수'가 다 되어 있었던 것이다. 시골마을 용빌로 돌아가야 할 유부녀인 엠마를 한낮에 '마차'에 태울 생각을 할 정도로 말이다.

 

이쯤에서 톨스토이의 펜으로 그려진 '유부녀 유혹 장면'으로 넘어가 보자. 내가 '파리와 서울 사이'에서 뭔가 유사한 낌새를 발견했다면 그게 오로지 나만의 느낌일까, 나는 그게 너무나 궁금하다.

 

서울에서는 보통인데...

 

까쩨리나 뻬뜨로브나가 왈츠와 에꼬쎄즈를 타기 시작하고 댄스가 시작되자 니꼴라이는 그의 민첩한 동작으로 더욱더 이곳의 상류 사회를 매료시키고 말았다. 그는 독특하고 분방한 댄스로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니꼴라이 자신도 이날 밤의 자기 춤솜씨에 약간 놀랐다. 그는 모스크바에서는 이렇게 추어 본 일이 한 번도 없었고, 이와 같이 너무나 분방한 춤 태도는 버릇없는 악취미라고까지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모든 사람을 무엇인가 기발한 것으로, 서울에서는 보통인데 시골에 사는 자기들은 아직 모르고 있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놀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날 밤 밤새도록 니꼴라이는 현의 어느 관리의 아내이자 파란 눈의 살이 찐 귀여운 금발 미인에게 가장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남의 아내는 자기를 위해서 만들어져 있다는 신멋이 든 젊은이들의 순진한 신념으로, 니꼴라이는 이 부인으로부터 떠나지 않고 남편에 대해서도 마음을 터놓고, 그러면서도 속에 무엇인가 있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자기들, 즉 니꼴라이와 그 남편의 아내는 서로 마음이 잘 맞을 것이라는 것을 두 사람은 말로는 하지 않지만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나 남편 쪽은 그러한 신념에는 동감이 가지 않는 듯, 애써 니꼴라이에게 언짢은 태도를 취하려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니꼴라이의 사람이 좋은 순진성에는 끝이 없었기 때문에, 때로는 남편은 저도 모르게 니꼴라이의 매우 들뜬 기분에 끌려들 뻔 하기도 했다. 그러나 파티가 끝날 무렵에 아내의 얼굴이 점점 빨갛게 상기되어 생기를 띠어 가자 남편의 얼굴은 더욱더 침울하고 창백해졌다. 그것은 마치 활기의 분량이 두 사람에게는 일정하고, 그것이 아내 쪽에서 증가함에 따라서 남편 쪽에서는 줄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니꼴라이는 얼굴에 미소를 계속 띠고 안락의자에 약간 몸을 숙이고 앉아, 금발의 여인에게 몸을 가까이 하고 그녀에게 뮤즈네 비너스네 하며 겉치레의 말을 하고 있었다.

 

다리의 위치를 힘차게 바꾸기도 하고 향수 냄새를 사방에 풍기며 상대방 부인과, 자기 자신에게 꼭 맞는 승마 바지에 싸인 자기의 아름다운 다리 모양을 넋을 잃고 바라보며 니꼴라이는 금발의 여성에게, 자기는 이 보로네시에 있는 어느 여성을 유괴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분은 어떤 분이에요?"

 

"매력적이며 여신 같은 분입니다. 그분의 눈은(하고 니꼴라이는 상대 여성을 바라보았다) 파랗고, 입은 산호 같으며, 하얀 살결 ……" 그는 어깨를 보았다. "어깨나 가슴은 다이애나 여신입니다 ……."

 

남편이 두 사람한테로 다가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고 어두운 얼굴로 아내에게 물었다.

 

"아! 니끼따 이바노이치." 니꼴라이는 예의 바르게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리고 니끼따 이바노이치도 자기의 농담에 참가해 주기를 바라는 듯이, 그에게도 어떤 금발 미인을 납치하려는 계획을 들려주었다.(1293-1294쪽)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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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7-20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르게네프(1818~1883)는 플로베르보다 3년 일찍 태어나서 3년 늦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19세기 유럽 문단은 정말 ‘별들의 전쟁‘이었습니다. ^^

oren 2017-07-22 09:1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투르게네프는 플로베르보다 앞뒤로 3년씩 늘려 살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