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가 써낸 50 내지 60편의 장편소설들을 모두 읽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 할 일은 너무 많고 인생은 너무 짧다. 다만 힘차고 다양하게 사회를 묘사한 작가라는 점에서는 발자크를 따를 자가 없다.

 - 클리프턴 패디먼

 

 * * *

 

"내 머릿속에 19세기의 사회가 들어 있소"

 

1834년에 발자크가 한스카 부인에게 보낸 편지 속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모든 것'을 소설을 통해 완벽하게 그려내려는 큰 뜻을 품었던 사람이다. 그의 웅대한 구상을 보면 톨스토이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나폴레옹과 러시아가 벌였던 전쟁을 배경으로 불멸의 거작인『전쟁과 평화』를 썼지만, 그의 초기 구상은 그 소설보다 훨씬 더 거대한 것이었다.(그는 1825년의 데까브리스뜨 반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폴레옹의 1813년 러시아 원정'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1805년에서 1812년까지를 제1부, 1825년 데까브리스뜨 반란을 제2부, 1856년 시베리아에서 돌아오기까지를 제3부로 하는 거대한 장편을 구상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전쟁과 평화』로 개작했다. 시대 배경 또한 1805년에서 1820년까지로 대폭 축소했다.)

 

발자크는 톨스토이보다 '집필 환경'이 훨씬 열악했지만 자신의 구상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풍속 연구」,「철학적 연구」,「분석적 연구」라는 세 계열에 걸쳐서 137편의 소설을 채우려고 했다니 그의 포부가 얼마나 대단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계획대로 끝마치지는 못했으나 91편까지 쓴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이 소설들을 한데 묶어 통칭하는 소설 제목이 『인간 희극』이다.

 

'한 세대의 살아 있는 벽화의 연속성'을 소설로 그려내고자 열망했던 작가는 '인물 재등장 기법'이라는 독창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 기법을 평생 즐겨 사용했다. 『인간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얼마나 될까. 대략 2,000여 명이 된다고 한다. 세익스피어가 37편의 희곡 작품을 통해 대략 1,100명의 인물을 창작했다고 하는데 발자크는 그보다 한 술 더 뜬 셈이다. 그런데 애당초 발자크가 구상했던 인물은 무려 4,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도대체 이 작가의 머리속이 어떻게 구성되었길래 그 많은 인물들을 창작하고 소설에 녹여낼 생각을 했는지 기가 막힌다.

 

발자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인간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숫자를 세다가 세월 다 보내지 않을까 싶다. 그들이 애쓴 결과가 자못 흥미롭다.

 

『인간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개 2,000여 명이 된다. 그 가운데에서 460명이 75편의 작품들에서 다시 증장하고 있다. 한편 75편 가운데에서 36편의 소설은 파리를 배경으로 한다. 또한 18편은 파리와 지방을, 21편은 파리를 완전히 벗어나서 지방과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무대로 삼고 있다. 또한 460명 가운데 167명은 직업이 없다. 이들 중에서 55명은 귀족 출신이거나 신사이며, 62명은 귀족 출신의 부인들이고, 나머지 50명은 부르주아 출신 부인들이다. 다른 293명의 직업은 다양하다. 공무원, 법률가, 군인, 교회에 관계하는 사람, 사업가, 예술가 등이다.(400-401쪽)

 

프랑스 문학에서 발자크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문학사가들의 관심사일 뿐 평범한 독자들한테까지 흥미로운 주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가 많은 작가들로부터 실로 '다양한 평가'를 받았다는 점만은 미리 알아둬도 나쁘지 않을 성싶다. 그는 몇몇 저명한 작가들로부터 '엉터리 작가'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으며, 프루스트와 같은 작가로부터는 심지어 프랑스어를 더럽힌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에게 '저질 작가'라는 오명을 씌운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꿋꿋이 살아 남았다. 『인간 희극』의 서문에서 미리 밝혔던 '나를 공평하게 평가하는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국에서 홀대받은 그는 도리어 이탈리아, 러시아, 오스트레일리아, 폴란드, 독일, 헝가리에서 훨씬 더 나은 평가와 존경을 받는다. 발자크만큼 가장 예리하고도 능숙하게, 객관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떠오르는 부르주아 사회'를 그려낸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줄곧 예술가적 신념으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발가벗겨서 독자들에게 당차게 들이댔고, 그런 진실성과 역사성이 끊임없이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것이다.

 

"귀족은 단순히 존재함으로써 귀족일 수 있으나 부르주아지는 모든 성공과 실패의 유동성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 존재의 근거를 만들어가야 할 긴박한 사회적 투쟁 속에 휘말려 있다. 발자크는 안정되고 교양 있는 전통적인 부르주아지에 속하지 않았으며 바로 대혁명에 의해서 창출된 서민적인 부르주아지에 속하였다. 그는 수세기의 성장 끝에 비로소 19세기에 이르러 명실상부한 부르주아 세계를 표현한, 진정한 의미에서 가장 부르주아적인 작가인 동시에 이 계급의 철저한 자기 인식과 탐구 그 자체에 의하여 이 계급에 대한 최대의 비판자가 되었던 작가였다.".(405-406쪽)

 

문학계의 나폴레옹이 되려고 했던 그는 어쨌든 '고상한 문학 풍조'에 반기를 들고 '혁명'을 꾀했으나 '황제'에 오를 만큼의 위엄과는 사뭇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무한히 샘솟는 풍요로운 상상력 때문에 '작품의 구성이나 플롯의 정연한 전개'는 너무나 쉽게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이고, 지나치게 꾸며내고 과장하는 습관 탓에 '자제력'을 발휘하여 우아하고 재치있는 솜씨를 부려야 마땅할 장면에서도 허풍을 치고 속임수를 부린다는 점 때문에 '그는 남에게 학자나 철학가의 인상을 보이려고 하는 순간에 구역질나는 사기꾼이 된다'(플로베르)는 혹평까지도 듣게 된다. 그러나 그가 없었더라면 도대체 누가 당대의 사회를 구성했던 인물들을 그토록 익살맞고 재치있으면서도 사실적으로 생동감 있게 그려낼 사람이 있었겠는가. 그는 '소설을 쓴 셰익스피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묘사의 달인'이었다.

 

발자크는 작가 자신이 남들로부터 '연구 대상'이 될 만큼 흥미로운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글쓰는 일 말고도 수많은 사업을 벌였지만 판판이 망하고 큰 빚을 졌다. 그 때문에 평생 '돈 문제'에 시달렸다. 그의 작품이 그만큼 작가를 반영하는 셈이다. 그러나 그는 '돈' 때문에라도 끊임없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열정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하게 살았던 작가도 드물다. 그러나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훌륭한 전기로 만나는 게 마땅하다. 더군다나 걸출한 전기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그에 대해 '불멸의 평전'을 남겨 놓았으니, 그에 대한 얘기로 자꾸만 글줄을 늘린다고 해봐야 무슨 소용일까. 작가 얘기를 계속 쓰다 보면 그가 쓴 탁월한 작품은 계속 뒤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이쯤에서 고리오 영감 얘기로 넘어 가자.

 

고리오 영감도 『고리오 영감』이 아닌 발자크의 다른 작품에서 '다시' 여러 번 등장할까? 용케도 이 영감은 『고리오 영감』이라는 소설에만 등장한다.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나 너무 안심하긴 이르다. 다른 작품에도 등장했다가 『고리오 영감』에 '다시 등장하는 인물'이 무려 35명이나 되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다른 소설에도 끊임없이 '다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가령 은행가인 뉘싱겐은 서른한 번, 의사인 비앙숑은 스물아홉 번, 장관인 라스티냐크는 스물다섯 번이나 다른 작품에 등장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을 다 만나 보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또 그럴 수도 없다. 평생 발자크의 소설만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나 『고리오 영감』만 읽어도 발자크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재미있고 발자크의 천재성을 흠씬 느낄 수 있다. 그러나『고리오 영감』은 발자크의 작품들이 그려낸 거대한 벽화의 한 조각일 뿐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는 '엄청난 작품들을 쉬지 않고 계속 써낸' 작가였고, 그 작품들을 두루 접하지 못하는 독자들은 그의 천재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고리오 영감』은 '고전 작품'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아주 재미있는 소설이다. 그렇다고 『돈키호테』를 읽을 때처럼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까지 읽을 정도의 소설은 아니다. 이 소설의 주된 흥미는 '인생의 출구'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고리오 영감'과 '인생의 입구'에서 점점 사회 한가운데로 깊숙하게 진입하는 '라스티냐크 학생' 사이의 선명한 대비에서 주로 비롯된다. 두 사람은 과부 보케르가 운영하는 파리의 하숙집에서 함께 생활한다. 이 두 사람 말고도 그 하숙집엔 다섯 명이 더 있다. 그들은 장차 어떤 식으로든 고리오 영감과 라스티냐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하숙생들보다 훨씬 더 결정적으로 고리오 영감과 라스티냐크를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떠맡는 인물은 고리오 영감이 애지중지 키워서 귀족사회로 편입시킨 두 딸이다.

 

발자크는 이 소설을 쓸 때 '창작 노트'에 미리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한다.

 

"의리 있는 사나이, 하숙집, 6백 프랑의 연금, 5만 프랑의 연금을 가진 딸들을 위해 스스로 한푼 없는 빈털터리가 된 남자, 개처럼 죽어가는 그 모습"

 

이 소설의 등장 인물은 비교적 단촐하고, 장소는 파리의 어느 골목 하숙집에서 그다지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좁다. 이야기도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그런데도 이 소설이 극히 재미있으면서도 불멸의 고전이 된 까닭은 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첫째로는 발자크 특유의 놀라운 입담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당시의 사회상'을 여러 인물들을 통해 아주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특히 '돈 문제'에 관한 한 그만큼 생생하게 그려낼 작가는 찾기도 어렵다.

 

고리오 영감이 두 딸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퍼붓는 모습은 자못 감동적이다. 그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꼭 닮았다. 그는 젊었을 때 온갖 고생을 다 겪은 후에 제면업자로 크게 성공해서 번 상당한 재산을 두 딸의 결혼지참금으로 다 쏟아 붓는다. 자신의 노후대책이라고 해봐야 겨우 먹고 살 정도의 연금이 고작이었다. 두 딸을 시집 보내고 아내와 사별한 그는 변변한 가구조차 없는 하숙방에서 생활하는 외롭고 불쌍한 노인으로 빠르게 쇠락해 간다. 그런 그에게 화려한 몸치장을 한 젊은 귀부인이 가끔씩 몰래 드나든다. 같은 하숙집에 사는 하숙생들은 그 노인네가 '돈'을 주고 그 여자들을 불러들인다고 생각한다. 나중에야 밝혀지지만 그녀들은 파리 사교계에서도 알아주는 백작 부인과 은행가인 남작 부인이자 영감의 사랑하는 두 딸이다. 그녀들은 대저택에 살고 있지만 남편 말고 따로 사귀는 정부(情夫)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그 남자들이 떠안은 거액의 빚을 갚아주기 위해서 딸들은 친정 아버지인 고리오 영감에게 끊임없이 손을 벌린다. 영감은 그런 두 딸을 위해 마지막 남은 은식기마저 우그러뜨려 내다팔아 돈을 보태준다.

 

딸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진 모든 걸 희생하고 아낌없이 내주는 부성애(父性愛)가 참으로 눈물겹다. 고리오 영감은 끝내 빈털털이로 '두 딸 조차 외면한 상태로' 쓸쓸하게 죽지만 아주 잠깐 딸들을 욕할 뿐이다. 두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대사 못지않게 감동적이지만,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리어 왕은 자신의 권력과 영지를 아양 떠는 두 딸에게 내주고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막내딸 코델리아에게는 아무 것도 주지 않고 매몰차게 대한다. 그런데 막대한 영지를 물려받은 두 딸은 이내 아버지를 배신하고 내쫒지만 정작 막내딸 코델리아는 불쌍한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는다. 두 딸에게 버림받아 황야에 버려지다시피 한 리어 왕은 일견 고리오 영감과 닮았다.

 

그러나 리어 왕의 비극이 막내딸 코델리아의 죽음에 이르러 절정과 동시에 파국에 이르렀다면, 고리오 영감은 스스로 아낌없이 두 딸들을 위해 도움을 주면서도, 그런 도움을 줄 능력이 고갈되는 걸 도리어 안타까워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딸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그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워 한다는 점에서 리어 왕 보다는 훨씬 덜 비극적이다. 그러나 두 딸들이 '파리 사교계'에서 너무나 자주 일어났던 '익숙한 패턴'에 따라 '파멸'로 치닫는 동안, 고리오 영감의 삶 또한 서서히 막바지에 이르는데, 이 과정에서 두 딸이 끝내 아버지의 마지막 간절한 소원인 '죽기 전에 꼭 한 번' 두 딸을 보고 싶은 마음을 끝끝내 외면한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백작 부인과 남작 부인인 두 딸이 아버지의 마지막 부름에 응하지 못한 이유 또한 그 중간에 낀 인물인 학생 라스티냐크가 볼 때는 너무나 어이없으면서도 지극히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큰 딸은 정부(情夫)와 함께 저지른 대형 사고가 들통나는 바람에 남편으로부터 '외부인 접견 금지'를 당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 딸은 자신의 크나큰 목표였던 '더 큰 사교모임'에 진출하기 위해 기필코 그날 밤 초대장을 받은 '무도회'에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감기'에 걸려 몸이 몹시 불편하기도 했고.

 

고리오 영감과 두 딸과의 관계가 이 소설의 밑바닥을 흐르는 주조저음(主調低音)이라면, 시골 출신의 대학생인 라스티냐크는 이제 막 인생의 출발점에 서서 꿈에 부풀어 '파리 생활'을 배우느라 몹시 바쁜 학생이라는 점에서 고리오 영감과는 사뭇 대조적인 울림을 준다. 시골에서 얼마 안 되는 밭뙈기를 붙이는 부모님이 보내 주는 빠듯한 돈으로는 보케르 아줌마에게 하숙비를 내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훗날의 '성공'을 위해 지금 당장은 밤을 새워서라도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지만 '파리 사교계'의 화려한 모습을 슬쩍 엿보게 된 이 청년은 그만 마음이 세차게 흔들려 곧장 그리로 뛰어들고픈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온갖 수소문을 다해 집안의 친척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파리의 부유한 주택가에 사는 먼 친척인 '자작 부인'에게 찾아간다. 그는 대저택에 출입할 때 마땅히 타고 가야 할 '이륜 마차'는 커녕, 마부에게 줄 몇 푼 안 되는 '택시비'마저도 아껴야 할 형편이다. 사교계에 드나들 때 갖춰야 할 맞춤복이나 구두나 장갑을 마련할 비용은 꿈도 꾸기 어렵다. 그래서 그는 고향의 부모님 앞으로 '눈물 겨운' 편지를 쓴다. 이유는 제발 묻지 마시고 최대한으로 돈을 마련해서 보내주시라고 말이다. 나중에 기필코 성공해서 꼭 되갚아 드리겠노라는 철석같은 약속과 함께.

 

마침내 어머니와 두 누이동생으로부터 거금 1,200프랑과 350프랑이 보태져서 그의 주머니에 미끄러져 떨어지자 그가 보인 반응이 놀랍다. 발자크의 천재적 재능은 바로 이런 곳에서 유감없이 번쩍인다.

 

그의 내부에서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즉 그는 모든 것을 원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제멋대로 모든 것을 갈망했다. 그는 쾌활하고 너그러우며 감정이 풍부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는 날개가 없던 새가 크게 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뼈다귀 하나를 훔쳐낸 개처럼, 돈 없는 이 학생은 한 가닥의 쾌락을 꽉 붇잡았다. ……

 

파리 전부가 그의 것이었다. 모든 게 빛나고 번쩍이며 이글거리면서 불타는 나이이다! 남자이건 여자이건 간에 젊은 사람 아니고는 아무도 맛볼 수 없는 기쁨과 힘이 넘쳐흐르는 나이!  빛과 격렬한 격정마저도 모든 기쁨을 열 배로 만들어줄 수 있는 나이! 센 강 왼쪽 언덕배기와 생 자크 거리로부터 생 페르 거리 사이를 지나다녀 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 파리 여성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사랑을 구걸하려고 달려올 텐데!> (133∼134쪽)

 

청년 라스티냐크가 '인생의 출발점'에서 겪는 고뇌와 방황은 시골에서 도회지로 '청운의 꿈'을 안고 진학했던 많은 일반 독자들에게 자신들의 '젊은 날의 초상'을 되돌아 보게 만드는 것임에 틀림없다. 나 또한 그렇게 읽었다. 시골에서 한 해 동안 땀흘려 농사 지어서 버는 돈이라는 건 전세계 어디서나 액수가 뻔하다. 그런 사정을 빤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4년간 등록금 전액 면제'를 받고 대학을 다녔어도 '비밀 과외'를 해서 하숙비에 보태야 했다. 그런데 촌놈이 서울에 올라와 보니 서울은 정말 거대하고도 휘황찬란했다.

 

대학에 다니기 위해 상경한 첫날 저녁에 '명동'으로 '시내 구경'을 나갔는데 롯데쇼핑센터에서 번쩍거리는 불빛에 정신이 아득했고, 명동 일대의 고층 빌딩들을 쳐다보느라 고개를 한참이나 뒤로 젖혔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영화를 보러 시내의 영화관만 들어가 봐도 화면이 초대형에다 돌비 사운드 시스템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향이 죽여줬다. 어쩌다 시내에서 직접 보게 된 여배우들은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다웠다. 내가 잠시 과외를 했던 중학생의 집도 저택 수준이었다. 아이를 가르칠 때 항상 과일을 내주시던 학생의 어머님은 TV 연속극에서나 봐왔던 사모님 같았다. 80년대 초반이나 지금이나 그 집안이 아직도 한국에서 여전히 손에 꼽히는 재벌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라스티냐크도 시골에서 상경하여 '파리 생활'을 익히느라 바빴다. 그가 머무는 하숙집엔 수백만 프랑을 유산으로 물려받을 가능성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처녀인 빅토린 양도 있었다. 그녀는 평소에 은근히 라스티냐크에게 호감어린 눈길을 자주 보내온 터였다. 보케르 아줌마네 하숙집에서 지내는 가장 독특한 인물인 보트랭이 어느 날 라스티냐크에게 '은밀한 거래'를 제안한다. 빅토린 양이 '수백만 프랑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그녀의 오빠를 제거해 줄 테니 나중에 그녀와 결혼해서 갑부가 되고 나면 자신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라스티냐크는 보트랭의 제안에 몹시 마음이 흔들리지만 용케 자신의 신념이나 도덕관념을 지켜내면서 보트랭의 제안에 굴복하지 않고 견뎌낸다. 보트랭이 제안의 말미에 라스티냐크에게 '한 수' 가르치는 기분으로 들려주는 '세상 사는 이치'는 다음과 같다.

 

인간이란 전부냐 아니면 전무냐, 어느 한쪽이지. 단 푸아레라고 불릴 때는 전무이지. 그런 놈은 빈대 새끼처럼 짓이겨 놓지. 그야말로 납작해져 냄새를 풍기겠지. 하지만 인간도 자네를 닮은 경우에는 하나님이지. 이젠 인간 가죽을 쓴 기계가 아니고 아름다운 감정이 약동하는 하나의 무대라네. 그리고 나는 그런 감정으로만 살고 있네. 하지만 감정은 사상 속에 있는 세계가 아닐까? 고리오 영감을 보게나. 그의 두 딸은 노인에게 우주 전체이지. 그녀들은 실이지. 그 실로 노인은 만물에 파고들 수가 있지. 자, 그런데, 인간을 깊이 파고들어 가본 내겐 단 하나의 현실적 감정만이 존재하네. 즉 남자와 남자 사이의 우정이지. 」

 

보트랭의 '인생 강의'는 여러 날에 걸쳐 라스티냐크를 계속 흔들어 댄다. 파리에서 출세하는 법, 좋은 자리가 오만 개밖에 없는 사정, 파리 사회를 이루는 계층 구조, 파리에 도사린 온갖 지옥 같은 함정들까지도 보트랭은 훤히 꿰고 있다. 라스티냐크가 뛰어들고 싶은 백 가지 직업에서 재빨리 성공하는 사람이 열 명쯤 있다면 바로 그 사람들을 '도둑놈'으로 부른다는 말까지, 그의 강의는 참으로 친절한 데가 있다.

 

이제 자네가 결론을 끌어내 보게! 인생이란 지금까지 얘기한 그대로야. 인생이란 부엌보다 더 아름답지 않으면서도, 썩은 냄새는 더 나는 거라네. 인생의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으려면 손을 더럽혀야 하네. 다만 손 씻을 줄만 알면 되지. 우리 세대의 모든 윤리가 거기에 있네. …… 나는 세상을 알고 있네.(149쪽)

 

다시 고리오 영감으로 되돌아 오자. 완전한 빈털터이가 된 노인의 장례를 치를 인물은 이제 라스티냐크 밖에는 없었다. 해가 질 무렵에서야 간신히 페르 라셰즈의 묘지에 시신은 안장되었다. 아주 헐값으로 사들인 극빈자용 관을 덮으려고 흙을 몇 삽 퍼서 던지던 두 명의 매장꾼이 라스티냐크에게 돈을 요구했지만, 그의 주머니에는 돈이 한 푼도 없었다. 하숙집에서 영구차가 떠날 때부터 동행했던 사람은 하숙집 심부름꾼인 크리스토프 밖에 없었다. 라스티냐크는 그에게 일 프랑을 빌렸다. 그는 너무나 슬퍼서 발작을 일으킬 정도가 되었다. 그가 매장을 마치고 센 강의 두 기슭을 따라서 꾸불꾸불 누워 있는, 등불들이 빛나기 시작하는 파리를 내려다보면서 하는 말이 이 소설의 결말이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내가 오래 전에 대학을 다니던 무렵이 불현듯 다시 떠올랐다. 1학년이었는지 2학년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하여튼 여름방학이 끝나갈 때였다. 시골 고향에서 낮에는 농사일을 거들고 밤에는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맘껏 술을 마시며 놀던 방학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상경하기 위해 하루 종일 걸리는 버스를 탔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어느새 거대한 도시가 어둠에 휩싸여 있었고, 한강을 따라 온갖 불빛들이 거대한 띠를 이루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시골 고향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에 나는 그만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몸을 고쳐 앉았다. "여기가 바로 서울이군,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속으로 떠올린 혼잣말 속에는 '대결'의 뜻도 아예 없지는 않았으리라.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속에서 그토록 오래된 희미한 기억과 풍경과 다짐들을 다시 찾아낼 줄이야.

 

 * *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7-15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의 글을 읽으니까 아직 안 읽은 발자크의 작품들이 보고 싶어집니다. ^^

oren 2017-07-15 12:23   좋아요 0 | URL
발자크의 작품들 가운데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책들이 의외로 그리 많지 않더군요. 발자크와 관련된 이런 저런 리뷰와 페이퍼들을 찾아 읽다가 ‘발자크를 유난히 애정하시는‘ cyrus 님의 글도 여럿 구경했습니다. 덕분에 많은 참고가 되었고요^^

꼬마요정 2017-07-15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리오 영감 내용만 대충 알아서 안 읽을까 했는데, 꼭 읽어야겠습니다. 발자크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 줄 몰랐어요. 츠바이크의 평전도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oren 2017-07-15 12:40   좋아요 0 | URL
츠바이크의 평전 가운데 아마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발자크 평전‘인 모양입니다. 저도 아직 읽어보진 못했습니다만, 츠바이크라면 믿음이 확 가는 전기작가이니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 싶습니다. 발자크를 읽으면서 가장 자주 떠올리는 단어는 아마도 ‘돈‘일 꺼에요. ˝돈이 바로 인생이야˝(315쪽), ˝잉여 인간˝(370쪽)이라는 유명한 문구들도 인상적이고요. 방금 경제학 서적에서 간신히 ‘다시‘ 찾아낸 ‘발자크‘를 재미삼아 덧붙여 봅니다.

* * *

스프라그의 인용과 번역이 정확하다면, 호레이스(Horace)는 그들의 자세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벌어라; 할 수 있다면 정직하게 돈을 벌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벌어라.˝ 남해회사 거품에 대한 조나단 스위프트의 언급도 이와 마찬가지로 냉소적이다:

돈, 돈을 계속 벌어라.
그리고 나서 혹시 미덕이 스스로 따라오겠다고 하면, 그리 하라.

발자크는 마지막 한 방이라고 부를 만한 말을 남겼다: ˝가장 미덕 있다는 상인들이 당신 앞에서 가장 노골적인 자세로 부도덕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말을 들려줄 것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나쁜 일에서 잇속을 챙겨 나온다.˝

- 찰스 p. 킨들버거,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