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 같은 독서

 



탄핵을 코앞에 둔 까닭일까? 책 속 구절들도 예사롭게 읽히지 않는다. 한 줄의 문장을 읽고, 그 문장에 연관된 다른 책을 떠올리고, 거기서 다시 또다른 책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게 다 '대통령 탄핵'을 코앞에 둔 '썩어빠진 나라'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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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나 나폴리가 공화국이 되기에는

 

마키아벨리처럼 사려 깊은 사람들은 밀라노나 나폴리가 공화국이 되기에는 너무 '부패'했음을 잘 알고 있었다.


- 야콥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제1부 인공물로서의 국가, <5. 전제정치의 대항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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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속들이 썩어버렸기 때문


로마의 실례만큼 이 점에 꼭 맞는 것은 달리 없을 것이다. 타르키니우스 가를 멸망시킨 뒤 로마는 곧바로 자유를 획득하여 이를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카이사르나 가이우스 칼리굴라, 그리고 네로가 죽고 카이사르의 혈통이 완전히 절멸한 뒤에 로마는 자유를 유지하기는 커녕 그에 한 발도 접근할 수 없었다. 같은 도시를 무대로 해서 같은 조건 아래 생긴 일인데도 결과가 아주 정반대로 되어 버린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즉 타르키니우스 시대에는 로마인이 아직 그다지 타락해 있지 않았던 데 비해, 카이사르 시대에는 속속들이 썩어 있었다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타르키니우스 시대에는 로마의 민중으로 하여금 국왕의 압제 정치를 물리치고자 굳게 결의시키는 대신, '로마에서는 앞으로 어떤 왕도 통치할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민중에게 맹세시키는 일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 시대가 되자 전 오리엔트의 지지를 배경으로 가진 브루투스의 권력이나 가혹함을 가지고도 로마 민중을 분기시켜서 자유를 지키게 할 수는 없었다. 이 브루투스는 초대 브루투스를 본받아서 로마 민중에게 자유를 되돌려주려고 노력한 인물이다. 이처럼 자유를 회복하는 일에 성공하지 못한 것은 그때까지 가이우스 마리우스 일파가 민중에게 심어 놓은 타락한 풍조 때문이다. 그리고 마리우스의 평민당 수령이 된 카이사르는 교묘하게 민중의 눈을 가려 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목에 칼을 쓰고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이상과 같은 로마의 실례에 대해서는 다른 어떤 예를 꺼낸다 해도 맞설 수 없는 것이지만 나는 이 점을 둘러싸고 현대의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생생한 실례를 열거해 보고자 한다. 즉 천지가 뒤집힐 대소동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밀라노나 나폴리가 두 번 다시 자유를 손아귀에 넣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두 국민은 속속들이 썩어 버렸기 때문이다.

 

 


밀라노의 참주였던 필립포 비스콘티가 죽자 밀라노는 자유를 회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자유를 유지해 나갈 역량도 없거니와 방법도 알지 못했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그간의 사정에 대해 수긍이 갈 것이다. 그러므로 로마에서는 왕 제도가 금방 타락해서 추방되는 바람에 국왕의 부패한 양상이 로마의 골수에까지 밸 여유가 없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다행한 일이었다. 이런 부패와 타락은 로마에 대해 혼란을 초래했으나, 그래도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단단했기 때문에 공화국은 전화위복이 될 수 있었다.

 

 


이제 결론을 내릴 단계가 되었다. 민중들만 건전하면 어떤 소동이나 내분이 일어난다 해도 국가 자체가 손상되는 일은 없다. 하지만 민중이 부패했을 경우에는 법률이 잘 정비되어 있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최고 권력을 가진 한 인물이 나서서 민중이 건전한 사회의 부활을 위해 법률을 성실하게 지키게끔 만들지 않는 한 전혀 가망이 없다.

 

 


왜냐하면 그다지 길지 않은 인간의 생명을 가지고서는 장기간을 통해 심어져 온 도시의 부패한 풍조를 올바른 길로 되돌리기에는 도저히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즉 장수하여 오랜 세월에 걸쳐서 정무를 보살필 수 있는가, 아니면 우연히 2대를 계속해서 명군이 나타나 뛰어난 통치를 하게 되지 않는 한, 지금 말한 것처럼 지배자가 죽으면 곧바로 파멸로 되돌아가게 마련이다. 비록 말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또한 숱한 유혈의 희생을 치러서 성립된 국가라 할지라도 재기하지 못할 것이다. 즉 부패라든가 자유로운 정치 형태를 유지해 나가지 못한다는 것은, 원인을 밝히면 그 국가 속에 배어 있는 불평등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평등을 되찾게 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비상 수단을 취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과감한 개조법을 몇몇 사람이 알고 사용하면 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 상세히 말하기로 하겠다.

 


 - 마키아벨리, 『로마사론』,

   제1권 제7장 <퇴폐한 민중은 해방된다 하더라도 자유를 유지해 나가기가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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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는 없다! 그는 공적(公敵)이다.


군주권이 절대적이었고 일체의 법적인 속박에서 자유로웠듯이 그 대적자들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보카치오는 다음처럼 노골적으로 얘기한다. "폭군을 왕이라고, 군주라고 부르면서 나의 왕으로 모시듯 충성을 바쳐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그는 공적(公敵)이다. 나는 그에게 대적하여 무기, 모반 간첩, 복병, 술수, 그 어느 것도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은 신성하고 불가피한 일이다. 폭군의 피보다 더 유쾌한 희생은 없다."


이와 관련한 사건들의 전모를 여기에서 다 얘기할 필요는 없겠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론』의 저 유명한 장에서, 고대 그리스의 참주 시대에서 시작하여 고금의 모반사건을 다루면서 그것들을 다양한 특성과 결과에 따라 냉철하게 평가해놓았다.(120∼121쪽)


- 야콥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제1부 인공물로서의 국가, <5. 전제정치의 대항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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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안녕의 본보기로 시민들이 세우다


메디치 일가를 몰아내려 했고 실제로 여러 차례 몰아낸 피렌체 시민들은 폭군 살해를 일반인이 인정하는 이상으로 생각했다. 1494년 메디치 일가가 도주하자 사람들은 그 궁에서 도나텔로의 청동 군상인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든 유딧」상을 들고 나와 지금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이 서 있는 시노리아 궁 앞에 갖다 놓고 '국가 안녕의 본보기로 시민들이 세우다. 1495년'이라는 제명을 붙였다. 피렌체 시민들은 특히 로마제국을 배신한 죄로 단테의 작품에서 카시우스와 유다스 이스카리오(예수의 제자 유다를 가리킨다-옮긴이)와 함께 지옥의 나락에 빠진 것으로 묘사된 브루투스를 이상으로 삼았다.(124쪽)

 


- 야콥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제1부 인공물로서의 국가, <5. 전제정치의 대항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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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뒤에 좋은 일들은 모두 브루투스 공으로 돌리고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조상은 유니우스 브루투스이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타르퀴니우스를 쫓아내고 왕정을 몰락시킴으로, 로마인들은 그가 칼을 빼들고 선 동상을 카피톨리움에 있는 왕들 동상 사이에 세웠다. 성격이 지나치게 강직한 그는 남들과 타협하지 않았으며 학문으로도 그런 성격을 누그러뜨리기는커녕 오히려 독재자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독재자와 공모한 자기 아들들까지 모두 사형시켰다.

 


그러나 이제부터 쓰려는 브루투스는 성격이 유순한 데다가 철학과 학문을 갈고닦아 더할 나위 없이 조화롭고 훌륭한 인격을 갖춘 인물이다. 그는 이러한 성품으로 나랏일에 헌신했으며, 그 때문에 사람들은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뒤에 좋은 일들은 모두 브루투스 공으로 돌리고, 나쁘거나 잔인한 일들은 브루투스의 친척이자 친구인 카시우스 잘못으로 돌렸다. 그만큼 카시우스는 정직함이나 동기의 순수함에서 브루투스를 따라가지 못했다.(1772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Ⅲ』, <마르쿠스 브루투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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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까닭은 카이사르에게 아첨하는 이들의 경솔한 행동 때문


카시우스는 어릴 때부터 독재자에 대한 증오심을 품고 있었다. 그는 어릴 때 술라의 아들 파우스투스와 같은 학교에 다녔는데, 어느 날 파우스투스가 아이들 앞에서 자기 아버지 권력을 내세워 한 껏 자랑을 늘어놓자 카시우스는 갑자기 그에게 달려가 뺨을 갈겼다. 이 일로 파우스투스 친척들은 카시우스의 잘못을 철저히 조사해 법으로 처리해야 한다며 난리를 피웠으나 폼페이우스는 이들을 가로막으며 두 아이를 함께 불러서 이 문제를 조사하려 했다. 그때 카시우스는 파우스투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 파우스투스! 다시 한 번 지껼여 봐. 똑같이 때려줄 테니까."

 

 


이 이야기만으로도 카시우스가 얼마나 날카로운 성미를 가졌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브루투스가 카이사르 암살 음모를 꾸미게 된 까닭은 카시우스와는 좀 다르다. 그와 가까운 친구들과 시민들이 끊임없이 그를 설득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익명의 편지들이 그에게 쏟아졌던 것이다. 어떤 시민은 옛날에 왕정을 뒤엎었던 유니우스 브루투스 동상에 이런 글을 새기기도 했다.

 

 


"브루투스, 지금도 살아 계셨더라면!"

 

 


"브루투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해요."

 


그리고 법무관인 브루투스가 법정에 나갈 때면, 그의 자리에는 다음 같은 글이 적힌 쪽지들이 수북하게 쌓였다.

 


"브루투스, 아직도 잠자고 있는가?"

 

 


"당신이 진정한 브루투스인가?"

 


하지만 브루투스가 카이사를 암살하기로 마음먹게 된 결정적 까닭은 카이사르에게 아첨하는 이들의 경솔한 행동 때문이었다. 그들은 민중의 이름을 빌려 카이사르에게 온갖 영광을 주려 했고, 한밤에 몰래 카이사르 동상 위에 왕관을 씌워놓아, 집정관을 넘어서 왕으로 내세우려 했다. 그러나 이런 행동들은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는데, 이것은 카이사르 전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1778∼1779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Ⅲ』, <마르쿠스 브루투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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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04 16: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국도 우리나라가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부패가 심각한 사실을 아는데도, 성조기와 태극기를 들고 있는 박사모 회원들이 부끄럽습니다. 박사모가 최순실이 인권 침해를 받는다면서 유엔에게 호소한답니다. 이제는 그들을 비웃고, 욕할 힘도 없어요.

oren 2017-03-04 17:36   좋아요 0 | URL
나라를 부끄럽게 만드는 줄도 모르고 도리어 나라를 구한다고 태극기까지 흔들고 외치고 있으니 이런 희비극도 없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