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토의 경우
플루타르코스의 작품들에 대하여...

 


내 생각으로는 행운과 불운은 두 가지 최고의 권력이다.
인간의 예지가 운의 역할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철없는 소리이다.

 - 몽테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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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케로는 로마 최고의 웅변가였다. 그래서 플루타르코스가『대비열전』에서 그의 짝으로 그리스 최고의 웅변가였던 데모스테네스를 붙인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그런데 키케로는 데모스테네스와는 달리 뛰어난 웅변술뿐 아니라 수많은 저작을 남겨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가 쓴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마도 『우정에 대하여』와 『노년에 대하여』가 아닐까 싶다. 그 두 작품은 그다지 길지도 않을 뿐더러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한번쯤은 지대한 관심을 갖기 마련인 '우정'과 '노년'에 대하여 다룬 작품이어서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고전 작품이기도 하다.


그 두 작품은 키케로의 작품이기는 하나 '키케로의 순수한 창작품'으로 보기에는 약간(?) 애매한 점이 있다. 왜냐하면 두 편의 작품 모두 주된 화자(話者)가 키케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노년에 대하여』부터 살펴보면, 그 작품의 시대 배경은 B.C.150년이고, 대화 장소는 84세가 되는 대(大) 카토의 저택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에 더 큰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장로이신 마르쿠스 카토의 입을 빌리기로 했소. 장소는 카토의 저택이오. 그가 노년을 그토록 편안하게 보내는 것을 보고, 라일리우스와 스키피오가 감탄하자 카토가 그 두 사람에게 대답한다는 설정이라오.


『우정에 대하여』는 '설정'이 조금 더 복잡하다. 때는 B.C. 129년, 소(小) 스키피오의 사후 얼마 뒤 라일리우스의 저택에서의 대화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이 화제에 이야기가 미치자, 스카이볼라는 라일리우스가 우정에 대해 했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 것이오. 아프리카누스가 죽은 지 며칠 뒤에 라일리우스가 스카이볼라와 또 한 사람의 사위, 마르쿠스의 아들 가이우스 판니우스에게 해준 얘기라오. 나는 그 논의의 요점을 기억해 두었다가, 이 책에서 내 방식으로 그것을 되살린 것이오. 그들 자신을 화자로서 무대 위에 올린 것은, '나는 말했다'거나, '그는 얘기했다'는 말을 쉴 새 없이 되풀이해야 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또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눈앞에서 직접 듣는 것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서라오.


『우정에 대하여』에서는 작품의 초반부터 한꺼번에 여러 인물들이 갑자기 등장하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하나 낯설지 않은 사람이 없는 독자들로서는 적잖이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간단하게 생각하면 또 의외로 간단하기도 하다. 등장인물들만 요약하자면, '노년'을 다룬 작품은 화자가 '대(大) 카토, 라일리우스, 소(小) 스키피오'라는 것이고, '우정'을 다룬 작품은 화자가 '라일리우스, 스카이볼라, 판니우스'라는 얘기다. 두 작품에 모두 등장하는 화자는 라일리우스가 유일하다. 그는 '노년에 대하여'에서는 자신의 절친인 소(小) 스키피오와 함께 30대의 나이로 등장하지만,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시점의 대화를 담은 '우정에 대하여'에서는 그 자신만 홀로 살아 남아 있었고 대(大) 카토와 친구인 소(小) 스키피오는 어느새 고인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요약하자면 '우정에 대하여'는 라일리우스가 고인이 된 자신의 절친인 소(小) 스키피오와의 우정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사위인 두 사람(스카이볼라와 판니우스)에게 '우정에 대해 했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는 설정인 셈이다.


키케로가 쓴 『우정에 대하여』는 그리 긴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내 번역본(동서문화사판)에는 주석이 무려 142개나 딸려 있다. 그만큼 숱한 인물들과 사연들이 그 작품 속에 담겨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면 과연 그 짧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도 등장하는 인물은 과연 몇이나 될까, 나는 무엇보다도 갑자기 그게 궁금해서 일부러 좀 세어봤다. 꽤나 많았다. 키케로(42번째), 대(大) 카토(18번째),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케도니쿠스(14번째), 티베리우스 그라쿠스(39번째), 가이우스 그라쿠스(40번째), 코리올라누스(12번째), 테미스토클레스(7번째), 피루스(21번째). 대충 세어봐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담긴 '천하의 영웅호걸 50명' 가운데 무려 2할에 가까운 인물들이 『우정에 대하여』에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노년에 대하여』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열전'을 가진 인물은 몇이나 될까 살펴봤더니 이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이 작품의 원제가 『대(大) 카토』였던 만큼 우선 대(大) 카토(18번째)가 맨 먼저 등장한다. 이어서 테미스토클레스(7번째), 파비우스 막시무스(10번째), 피루스(21번째), 아리스티데스(17번째), 솔론(5번째), 리산드로스(23번째), 마르켈루스(16번째) 등이 화자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결국 키케로의 짧은 두 작품에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들 가운데 플루타르코스의 『대비 열전』에 자신의 독립된 '전기'를 갖고 있는 인물들만 하더라도 단순 계산으로 '플루타르코스의 영웅들' 전체 가운데 3할이 넘는다는 얘기다.(16/50=0.32)


그런데 이렇게 많은 인물들에 대해서 미리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을 갖고 있거나 책에 딸린 주석을 자세히 살펴보더라도 좀처럼 '명쾌하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인물들의 가계도'도 간혹 있기 마련이다. 그런 집안의 인물들 가운데 나의 관심을 끈 인물은 바로 대(大) 스키피오의 집안으로 입양된 소(小) 스키피오였다. 키케로의 책『노년에 대하여』에 등장했다가 『우정에 대하여』에서는 어느새 고인(故人)이 된 바로 그 인물이다. 이 인물을 둘러싼 가계도는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일부러 그림을 그려봤지만 '큰 그림'은 좀처럼 제대로(?) 그려보지 못했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책마다 '그들의 관계'를 헷갈리기 딱 좋도록 설명해 놓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속에서도 그런 '오류'를 발견할 수 있을 지경이다.


다음은 내가 이번에 작심하고 꽤나 고생해서 만들어 본 '소(小) 스키피오'를 둘러싼 가계도이다.




얼핏 보면 꽤나 복잡하게 보여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다. 사실 위의 그림도 실제로는 '과감하게 생략한 인물들'이 매우 많은 형편일 정도로 간략하게 그린 그림이다. 대(大) 스키피오만 하더라도 친부에서 조부로 거슬러 올라가면 금세 집정관을 지낸 인물이 나타나고, 친부의 형님인 백부로 건너가고 또 그 후손인 사촌으로, 또 그 아랫대로 계속 더 내려가면 그라쿠스 형제들과의 '악연'까지도 금방 이어질 정도인데, 그런 인물들은 위의 그림에서 과감히 생략했다는 얘기다.(이보다 더 자세한 가계도는 다음 주소에서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내가 이 그림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위의 그림을 일부러 따로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 http://en.wikipedia.org/wiki/Scipio-Paullus-Gracchus_family_tree )


위의 그림을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 보면 '소(小) 스키피오'가 어디쯤 있는지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바로 키케로의 『노년에 대하여』에서 대(大) 카토의 저택에서 '대(大) 카토의 이야기'를 듣던 바로 그 인물이다.

그는 아쉽게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는 따로 '열전'을 독립적으로 갖고 있지 않다. 플루타르코스가 일부러 그를 제외했을 리는 만무하다. 사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판본'만 하더라도 여럿이고, 판본마다 '영웅들의 구성'도 각양각색인 것도 사실이다. 현재 가장 널리 통용되는 판본에서도 테바이의 영웅 '에파메이논다스'와 '대(大) 스키피오'조차 빠져 있는 게 현실이니, 소(小) 스키피오가 자신의 열전이 없는 데 대해 너무 서운해 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영웅전』은 23쌍의 그리스 영웅과 로마 영웅의 전기를 기술하고 있는데, 그중 19쌍은 두 사람의 성격과 업적을 비판적으로 비교하고 있다. 그 밖에 두 명의 로마 군인 황제 갈바(Galba)와 오토(Otho)의 전기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에서 비텔리우스(Vitellius)에 이르기까지 그가 쓴 로마 황제전 중에서 남은 것이며, 아라토스(Aratos)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Artaxerxes)의 전기는 따로 씌어진 또 다른 제왕전 중에서 남은 것을 후세 학자들이 『영웅전』에 포함시킨 것이다. '람프리아스 목록'에는 레욱트라(Leuktra), 만티네이아(Mantineia)에서 스파르테군을 격파한 테바이의 영웅 에파메이논다스(Epameinondas), 제2차 포이니 전쟁(bellum Punicum) 때 카르타고 근처의 자마(Zama) 전투에서 한니발에게 결정타를 가한 대(大) 스키피오(Scipio Africanus Maior)의 전기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의 전기는 나중에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천병희 역,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의 윤리론집『수다에 관하여』<옮긴이 서문> 중에서

한편, 소(小) 스키피오가 『노년에 대하여』에서 대(大) 카토의 저택에 갔다고 했는데, 이 그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자신의 누나(아이밀리아)의 시아버지(대 카토) 댁에 갔던 셈이다. 그때는 하필 B.C. 150년이어서 누나의 남편이자 자신의 매형은 이미 죽고 없던 때였다.(대 카토의 아들은 B.C. 152년에 사망했고, 대 카토는 그보다 3년 후인 B.C. 149년에 죽었다. 먼 훗날 로마 공화정 말기에 카이사르의 정적으로 맹활약했던 소 카토는 대 카토의 고손자뻘 되는데, 대 카토가 80대에 뒤늦게 새장가를 들어서 낳은 아들의 증손자가 바로 소 카토였다. 대 카토가 늦장가를 든 일화 또한『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담긴 이야기 가운데 손에 꼽힐 정도로 흥미롭고 널리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어쨌든 위의 그림만 봐서는 소(小) 스키피오를 둘러싼 '가문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활약을 했고, 그들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복잡다양하게 얽혀 있는지를 모두 파악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여기서 다시금 소(小) 스키피오에 대해서 '그림을 다시 풀어서 말로 요약해 보면' 이렇다.

① 그 자신은 '카르타고의 최후의 정복자'이자, '누만티아의 파괴자'로 불릴 만큼 뛰어난 군인이었다.
② 친부(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는 알렉산드로스 이후 헬라스를 오랫동안 지배했던 '마케도니아 왕국'을 영원히 끝장낸 '피드나 전투'를 대승으로 이끈 '마케도니아의 정복자'였다.
③ 친조부(루키우스 파울루스)는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 '칸나에 전투'에서 한니발 장군에 패해 전사했다.
④ 양조부(大스키피오)는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 '자마 전투' 승리의 주역이었다.
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도 나란히 등장하는 '그라쿠스 형제'는 자신의 아내(샘프로니아)의 남동생들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카르타고의 영웅 한니발에게 연전연패를 거듭하던 로마군이 마침내 아프리카 본토로 진군해서 '자마 전투'를 통해 대승을 거두며 '카르타고의 항복'을 이끌어낸 대(大) 스키피오는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① 그는 자신의 아버지(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와 큰아버지(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칼부스)를 모두 B.C. 211년에 한니발의 군대와의 전쟁터에서 한꺼번에 잃었으며, 장차 자신의 장인이 될 사람이었던 루키우스 파울루스까지도 B.C. 216년 '칸나에 전투'에서 한니발에 패해 전사당하는 아픔을 지녔다.
② '마케도니아의 정복자'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는 처남이었고, 호민관으로 유명했던 '그라쿠스 형제'의 아버지인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자신의 사위였다. 소(小) 스키피오는 자신의 병약한 아들(장남)의 양자였다.

이쯤에서 내가 위의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도록 이끌었던『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속의 문장을 잠깐 인용해 보겠다.

칸나이 전투에서 전사한 루키우스 파울루스는 뛰어난 용기와 신중함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그는 전쟁을 시작하려는 동료들에게 반대하다가 마지못해 전투에 참여한다. 그러나 전투가 한창 치열할 때 동료들이 자신을 위험한 곳에 내버려 두고 달아나자 혼자서 적과 끝까지 싸우다가 장렬히 죽음을 맞는다. 그에게는 아이밀리아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스키피오 장군과 결혼해서 아들을 하나 낳는다. 그가 바로 이제 이야기하려는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이다.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중에서

플루타르코스의 설명을 그대로 따르자면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의 아버지는 대(大) 스키피오가 된다. 그리고 자신의 누나인 아이밀리아는 어머니가 되고, 자신의 아버지는 외할아버지가 되고 만다. 아무리 뛰어난 플루타르코스라고 하더라도 이건 뭔가 '설명'이 단단히 잘못 되었다는 걸 누구나 '그림'을 통해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어디를 찾아보더라도 '스키피오 장군과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가 父子之間'이 되는 '이런 이상한 관계'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문장 때문에 나는 인터넷을 한참 뒤지다가 결국 저 그림을 직접 그리게 되었다. 저 그림을 그리는 동안 키케로가 쓴 『노년에 대하여』와 『우정에 대하여』를 다시 살펴봤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 책의 뒤에 딸린 200쪽에 가까운 <키케로의 생애와 사상>도 다시 한번 살펴봤는데, 거기서도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와 대(大) 스키피오와의 관계'를 아주 헷갈리기 딱 좋도록 기술해 놓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는 누이를 통해 대 스키피오와 동서지간이 되었으나, 대 스키피오의 장남은 병약하여 공무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친구인 파울루스의 아들이자 자신의 사촌이기도 한 사람과 양자 결연을 맺었다. 그가 아이밀리우스 가문에서 코르넬리우스 가문의 스키피오 집안에 들어간 푸블리우스, 즉 소 스키피오이다. 소 스키피오는 B.C. 185년 무렵에 태어나 B.C. 168에 친아버지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를 따라 그리스에서 싸우고, B.C. 151년에는 군단 부관으로서 스페인 원정에 지원하여 큰 공을 세웠다. 젊은 무인으로서 명성이 높아지고 있던 B.C. 150년에 그가 대 카토의 저택을 방문하여 '노년에 대하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이 책의 설정이다. 명예로운 공직의 사다리를 건너뛰어, 보통 43살로 되어 있는 나이가 되기 전에 집정관에 선출된 것은 그 뒤인 B.C. 147년, 그리고 제3차 포에니 전쟁의 지휘권을 얻어 대 카토의 예언대로 카르타고를 멸망시키는 것은 B.C. 146년이다.(485쪽)

 - 『아우렐리우스 명상록/키케로 인생론』, <키케로의 생애와 사상> 중에서

스키피오 가문과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에 얽힌 복잡한 '집안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더라도 충분하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이야기를 꼭 덧붙이고 싶은 게 있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는 왜 그토록 훌륭한 자식들을 낳아준 자신의 첫 번째 아내와 이혼했을까? 그에 얽힌 대목을 조금 더 인용해 보자.

아이밀리우스의 첫 번째 아내는 집정관을 지냈던 마소의 딸 파피리아였다. 아이밀리우스는 파피리아와 꽤 오랫동안 살다가 이혼을 하고 말았다. 그녀는 아이밀리우스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들이 바로 그 유명한 스키피오와 파비우스 막시무스였다. 파울루스가 무엇 때문에 이혼을 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내와 이혼한 다른 로마인들 이야기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어떤 로마인이 이혼한 사람에게 물었다.

"부인이 정숙하지 않아서요? 아름답지 않아서? 아니면 자식을 못 낳았소?"

그러자 이혼한 로마인은 자신의 신발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이 신발은 멋지지 않소? 새것 아니오? 그러나 이것이 내 발 어디를 아프게 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단 말이오. 뚜렷한 허물이 있어도 이혼하지 않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남들은 알 수 없는 성격과 습관 차이가 쌓이고 쌓여 이혼하는 부부들도 있는 법이오."

아이밀리우스는 파피리아와 이혼한 뒤 두 번째 아내를 맞았다. 그리고 전처가 낳은 두 아들은 로마에서 가장 귀하고 훌륭한 가문에 양자로 보냈다. 큰아들은 다섯 번이나 집정관을 지냈던 파비우스 막시무스 가문에 양자로 들어갔고, 둘째 아들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집안 양자가 되어 스키피오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Ⅰ』,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왕 앞의 페루세우스 왕>

1802년, 장 프랑수아 피에르 페롱, 부다페스트 미술관



한편, 소(小) 스키피오의 친아버지였던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는 '마케도니아의 정복자'로 가장 큰 전공을 세웠는데, 그가 피드나 전투에서 대결했던 마케도니아의 마지막 왕 페루세우스와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에 얽힌 이야기도 몹시 흥미롭다. 페르세우스가 얼마나 자기 목숨을 구차하게 애걸복걸했으면 후세 사람들이 저런 그림을 그려 '교훈'을 삼았을까 싶다.(이 이야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건 물론 국회의 '탄핵 심판'으로도 모자라 끝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까지 받겠다고 구차하게 끝끝내 버티는 박대통령 때문임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페르세우스는 아이밀리우스를 만나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아이밀리우스는 큰 불행을 당한 왕의 슬픔을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며 부하들과 함께 그를 맞았다. 페르세우스는 그를 보자 비굴하게 땅에 엎드리더니 그의 다리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이 초라한 모습을 본 아이밀리우스는 슬픈 얼굴로 말했다.


"가엾은 분, 운명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을 텐데 어찌 그 기회마저 저버리는 것이오? 이런 모습을 보면 당신의 불행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되고, 지금 처지가 불행하다기보다 지난날 영광이 과분하다 여기게 될 것이오. 당신은 지금 로마의 적답게 행동해야 할 텐데 오히려 이렇게 초라한 모습을 보여, 나의 승리까지 가치 없게 만들고 있소. 어떤 괴로움에 처해도 용기 있게 행동하는 사람은 적에게서도 존경을 받는 법이오. 그러나 로마인은 아무리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비굴한 사람은 경멸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손을 내밀어 페르세우스를 부축해 일으켜 투베로에게 인도했다. 그리고 가족과 젊은 장군들을 막사로 불렀다. 아이밀리우스는 운명과 세상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간이 행운을 누릴 만한 자격이 있다고 자신만만해하거나, 국가와 도시 또는 왕국을 정복했다고 우쭐대는 것이 과연 마땅한 행동일까? 예를 들어 행운이 주는 승리라는 것 또한 불확실한 인간의 일들 가운데 하나이며 영원히 이어질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운명의 뒤바뀜을 목격한 군인은 인간의 나역함을 깨닫고 그 무엇도 영원하거나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우리가 어떻게 자만할 수 있겠는가? 남을 정복하고 나면 운명이 매우 두려운 존재임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는 법이네. 만물이 얼마나 빨리 변하며 저마다 운명이 돌고 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가장 기쁜 순간에도 슬퍼지기 마련이네. 최고의 권세를 자랑하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계자가 한 시간 만에 짓밟히는 것을 보았을 때, 또 한때 수천 수만 병사들 호위를 받던 왕이 어느새 적으로부터 양식을 받아먹는 처지가 된 것을 봤을 때 우리라고 해서 이 권력을 영원토록 누리리라 자신할 수 있을까? 그러니 헛된 자만과 어리석은 자부심을 버리고 겸손한 태도로 미래를 대비하자. 신께서 우리의 행운에 반해 내리실지도 모르는 것에 늘 준비하도록 하자."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Ⅰ』,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페르세우스 왕은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 다운 떳떳한 모습이라곤 도무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으리만치 비굴한 자세로 끝끝내 구차한 목숨을 계속 이어간 끝에 기어이 로마까지 끌려갔다. 그리고 거기서 '사흘에 걸쳐 이어진 개선식'에 자신까지 덧보태 장식하는 굴욕을 맛보게 된다. 자신이 빼앗긴 엄청난 전리품과 나이어린 왕자 둘과 공주 하나와 함께. 다 자업자득인 셈이었다.


페르세우스는 행렬이 시작되기 전에 아이밀리우스에게 사람을 보내, 제발 자신을 행렬에 내보내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아이밀리우스는 페르세우스의 비겁한 태도와 목숨에 대한 애착을 비웃으며 대답했다.


"선택은 언제나 그의 손에 있었으니, 지금이라도 원한다면 그렇게 하라."


치욕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겁이 많은 페르세우스는 그럴 용기조차 없었다. 비겁한 그는 마침내 전리품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Ⅰ』,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이야기가 한참이나 길어졌다. 내가 마지막으로 보태고 싶은 이야기는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의 두 번째 아내로부터 얻은 두 아들 이야기'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내가 그렸던 저 위의 그림에서도 빼놓지 않았다.

아이밀리우스에게는 아들이 넷 있었는데, 처음 아내에게서 얻은 두 아들은 저마다 스키피오와 파비우스 집안에 양자로 들어갔다. 그리고 두 번째 부인에게서 낳은 두 아들은 아이밀리우스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 아이가 개선식을 올리기 닷새 전에 열네 살 나이로 죽었고, 열두 살인 작은아이도 개선식이 끝난 지 사흘 뒤에 죽었다. 로마 사람들은 가혹한 운명의 섭리에 몸서리를 치며 그의 슬픔을 함께 나누었다. 운명의 신은 기쁨에 넘친 이 집안에 뛰어들어, 승리와 개선의 노래 속에 눈물과 비애를 섞어놓았다.

그러나 아이밀리우스는 용기란 마케도니아군을 쳐부수는 데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불행을 견디는 데도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불행보다는 행운을 더 많이 가졌다고 생각해, 자기 개인 슬픔을 나라의 영광으로 감추려고 했다. 그는 큰아들 장례를 치른 뒤 곧 개선식을 거행했고, 개선식이 끝난 다음 또 작은아들이 죽자 시민들을 모아놓고 연설했다. 그는 위로받아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바로 그의 불행을 함께 슬퍼해주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예전부터 인간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믿을 수 없고 변덕스러운 운명의 여신만은 언제나 두려워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쟁을 치르는 동안 신이 부드러운 바람처럼 순조롭게 그가 하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을 보고, 곧 불운한 일이 닥치거나 처지가 뒤바뀔 것임을 미리 짐작했다는 것이다. 그가 이어서 말했다.

"나는 브룬디시움을 떠난 지 하루 만에 이오니아 해를 건너 코르키라에 도착했고, 닷새 만에 델포이에서 제사를 드렸으며, 다시 닷새 만에 마케도니아에 도착했소. 그리고 제사를 지낸 다음 곧 전투를 시작해 겨우 보름 만에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두었소. 나는 이토록 큰 행운이 오래 이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소. 모든 일이 내게만 유리하게 돌아가고 적의 위협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오. 내 운명이 곧 뒤바뀌리라 걱정하기 시작한 것은, 적의 대군을 무찌르고 전리품들과 함께 왕까지 포로로 잡아 배에 태웠을 때였소. 그런데 우리는 모두 무사히 돌아왔고, 온 나라는 기쁨과 찬사로 가득했소. 그러나 운명의 신이 큰 은혜를 베푼 다음에는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요구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여전히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소. 그리고 기어이 내 집안에 이런 커다란 불행이 생기고 말았소. 개선식을 하는 동안 나는 두 아들을 잇따라 무덤으로 보낸 것이오. 그러나 이제는 더 불행이 찾아올까봐 두려워하지 않소. 오히려 마음이 놓이오. 내 성공에 대한 값은 이제 충분히 치렀으니 말이오. 인간의 운명은 정복자도 희생자와 마찬가지로 하루 앞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여신은 보여주었소. 나에게 정복당한 페르세우스에게는 아직도 자식들이 남아 있지만, 나는 자식들을 모두 잃었다는 것만 다를 뿐이오."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Ⅰ』,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올 한해 우리나라가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국가적 불행 또한 수백 년 뒤에 태어날 사람들에게도 길이 전해질 만큼 미증유의 대사건으로 역사의 기록에 남을 것임에 틀림없다. 부디 이 사건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들이 먼 훗날을 생각해서라도 더이상 뻔뻔스럽고도 구차한 모습을 보이지 말았으면 싶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의 '촛불의 위대한 승리'까지 초라하게 만드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올 한 해 온 국민이 이만큼 큰 충격과 불행을 겪었으니만큼 이제 앞으로는 당분간 이보다 더 큰 불행이 찾아오지 않으리라 믿어도 좋을 듯하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우리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피눈물이 나도록 비싼 값을 치르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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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구두' 이야기는 『몽테뉴 수상록』에도 나온다. 몽테뉴가 가장 사랑했던 작가가 플루타르코스였던 만큼 몽테뉴의 책 속에서 플루타르코스의 영향을 받은 문장들을 마주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몽테뉴 수상록』은 사실 플루타르코스의 『윤리론집』을 모방해서 쓴 책이었다.


예쁜 구두에 발 벗겨진 것은 남이 보지 못한다

옛말에 나오듯, 예쁜 구두에 발 벗겨진 것⑵은 남이 보지 못한다는 식으로, 그대 가정의 평화로운 질서를 꾸며 보이느라고 얼마나 힘이 드는가. 아마도 그 살림을 유지하기에 너무 큰 희생을 치르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1050쪽)

⑵ 플루타르크의 이야기, 한 로마 인이 예쁜 아이까지 낳아 준 미모의 아내를 내쫓았다고 친구들이 책망하자 "이 구두는 새롭고 예쁘지 않은가? 그러나 그 때문에 내 발이 벗겨진 것을 그대들 중에는 아는 사람이 없네"라고 대답하였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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