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는 모든 것이 영원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붉은돼지 님의 이 글을 읽으니 저 또한 불현듯 바로 저기로, 말하자면 '에게'로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네요. 저도 그동안 이런 저런 책들을 읽으면서 가끔씩 '아토스'라는 지명을 만나왔던 터라 그 지명이 그리 낯설지는 않은데, 이토록 자세하게 '아토스'를 담은 책이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와 있을 줄은 미처 몰랐네요.

 

혹시라도 누가 제게 '아토스'에 대해서 말해 보라고 하면, 저는 다른 어떤 인물보다도 가장 먼저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부터 제 옆에 불러낸 다음에, 그 사람이 전해준 놀라운 이야기부터 늘어놓기 시작할 것이 틀림없지 싶습니다. 물론 고대의 저명한 시인들 가운데 호메로스나 오비디우스와 같은 인물들도 자신의 작품 속에 '아토스'를 더러 언급한 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들은 그저 아토스를 '험상궂은 산의 대명사' 정도로만 여기고 자신의 문장을 더욱 아름답게 꾸밀 목적으로 '시적인 표현 속에' 스쳐 지나가듯 담았을 뿐이더군요. 그에 반해 헤로도토스는 아토스에 대해서라면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아주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더군요. 그래서 적어도 제가 아는 한에서는 아토스에 대해 헤로도토스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만한 인물은 일찌기 없었으리라는 판단을 내렸고,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그사람부터 여기로 불러내는 게 마땅하고 좋겠다고 여겼던 것이지요.

 

어쨌든 지금으로부터 대략 2,500년 전쯤에 '아토스'를 두고 벌어진 몇 가지 흥미로운 사건들을 살펴보자면 무엇보다도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저 유명한 <페르시아 전쟁>부터 들여다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봅니다. 물론 페르시아 전쟁을 통해 이미 우리에게조차 널리 알려진 가장 인상적인 장소들은 아마도 마라톤 평원이나 테르모펠레 협곡, 혹은 살라미스 항구 등일 수밖에 없을 테지만, 또 하나의 특별한 장소였던 '아토스' 또한 자세히 알고 보면 '페르시아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발견할 수도 있지 싶습니다. 헤로도토스가 쓴『역사』속에는 심지어 '전에 아토스 앞바다에서 그랬듯이'라는 표현이 마치 무슨 '관용구'처럼 자주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조금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아토스에 대한 이해' 없이는 페르시아 전쟁의 흐름을 온전히 살펴볼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라고나 할까요? 그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아래의 그림 속에 담겨져 있답니다.

 

 

위의 그림을 그냥 얼핏 봐서는 도대체 '아토스'가 3차에 걸친 페르시아 전쟁에서 무슨 역할을 떠맡았는지 쉽사리 파악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그림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덧보태기만 하더라도 누구나 금세 '아토스'에 얽힌 비밀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자, 그러면 우선 페르시아군의 침입로부터 먼저 차례대로 살펴보기로 할까요? 1차(BC492년) 전쟁에서는 결정적으로 '아토스 곶'에서 화살표가 되돌려집니다. 어디로? 다시 아시아 땅으로. 바로 그렇습니다. 기세등등하게 헬라스 땅을 삼키기 위해 나섰던 용맹무쌍하던 페르시아의 대군이 바로 '아토스' 앞에서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깨박살이 나고 맙니다. 어쩌면 1차 페르시아 전쟁은 '아토스'에게 대패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이지요. 바로 거기서 풍비박산이 난 페르시아 군대는 풀이 죽을대로 죽어 그리스 땅은 구경조차 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떠나왔던 고향인 페르시아로 서둘러 되돌아가고 맙니다.

 

제2차(BC490년) 전쟁에서는 어땠을까요? 두 번째 헬라스 원정에서 페르시아 군대는 아예 '아토스' 근처로는 얼씬도 하지 못합니다. '아토스'에 대한 엄청난 트라우마 때문에 그들은 로도스 섬, 낙소스 섬, 델로스 섬, 안드로스 섬 등을 거치는 온갖 난관이 도사린 '우회로'를 통해 간신히 아테네로 접근합니다. 그들에게 아토스는 생각만 해도 너무나 끔찍한 곳이기 때문이었지요. 페르시아 군대는 결국 마라톤 전투에서 뜻밖에 마주친 '헬라스의 용맹무쌍함' 앞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진 끝에 대패하면서 또다시 아시아로 물러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제3차(BC480년) 전쟁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그림이 나타납니다. 마지막 대전쟁을 준비하는 와중에 다레이오스 대왕은 이미 죽고(BC486년)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가 '일찌기 상상조차도 하기 힘든' 어머어마한 대군들을 끌고 헬라스를 집어삼키기 위해 나섰을 때, 그들은 아토스를 과연 어떻게 지나갔을까요?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들은 육군과 해군을 병행해서 이동시키는 이른바 '투트렉' 전략을 씁니다. 그런데 해군의 이동경로 가운데 결정적으로 흥미로운 점은 바로 '삼지창처럼' 바다를 향해 내뻗은 칼키디케 반도의 지협 가운데 아토스 산이 높이 솟아 있는 곶을 빙 둘러 돌아가지 않고, 지협을 '운하'를 뚫고 통과합니다. 결국 저 지협을 만나서, 헤로도토스의 말에 따르면 '배를 땅 위로 끌어올려' 건널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운하까지 뚫어서 건넌 페르시아의 함대들은 결국 살라미스 해전(BC480년)에서 대패하면서 거기서 대부분 수장되는 기구한 운명을 맞고 말지요.

 

자, 어떻습니까? '아토스'가 세 차례에 걸친 페르시아 전쟁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던지가 이로써 어느 정도는 해명된 셈이 아닐까요? 만약에 헤로도토스라는 인물이 없었더라면 이토록 흥미진진한 얘기를 우리는 과연 누구로부터 들을 수 있었을까요? 아토스에 얽힌 페르시아 군대의 이동 경로만 살펴봐도 몹시 흥미로운데, 여기에 더해서 그 전쟁에 직접 뛰어들었던 주역들 가운데 몇 사람의 얘기를 살짝 덧붙일 수 있다면 이야기는 또 얼마나 더 흥미로울까요? 그래서 이왕 내친 김에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이야기'의 몇몇 대목들을 여기서 다시 한번 인용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인물은 영화 〈300〉과 〈제국의 부활〉에서도 등장했던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대왕뿐만 아니라 그의 고종사촌이자 두 차례의 페르시아 전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떠맡았던 총사령관 마르도니오스입니다. 우선 1차 원정부터 살펴보지요. 그러니까 다음에 묘사된 시대적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인 BC492년입니다.

 

이듬해 봄 다레이오스는 다른 장군들은 모두 해임하고 고브뤼아스의 아들 마르도니오스가 육군과 해군의 대군을 이끌고 해안 지방으로 내려가게 했는데, 마르도니오스는 얼마 전에 다레이오스 왕의 딸 아르토조스트라와 결혼한 젊은이였다. 마르도니오스는 군대를 이끌고 킬리키아에 도착하자 다른 장수들이 헬레스폰토스로 육군을 이끌고 가게 하고, 자신은 함선에 올라 함대와 함께 나아갔다. ……

 

(중략)

 

함대는 타소스에서 대륙으로 건넌 다음 해안에 바싹 붙어 항해하며 아칸토스까지 나아갔고, 아칸토스에서는 아토스 곶을 우회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이 우회하는 동안 도저히 손쓸 수 없는 맹렬한 북풍이 덮쳐 그들을 거칠게 다루며 수많은 함선들을 아토스에 내동댕이쳤다. 300척의 함선이 파괴되고, 2만 명 이상의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더러는 아토스 주위의 바다에 득실대는 해수(海獸)들에게 잡아먹혔고, 더러는 바다에 내던져졌으며, 더러는 헤엄칠 줄 몰라 익사했으며, 더러는 동사했다. 함대는 그런 변고를 당했던 것이다.

 

2차 페르시아 전쟁에서 마르도니오스는 아쉽게도 전쟁에 참전하지 못하게 됩니다. 1차 헬라스 원정에서 실패한 책임을 물어 페르시아 왕이 그를 장군직에서 해임했기 때문이었지요. 새로이 임명된 장군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헬라스 원정을 나섰는지는 이미 앞에서 설명했지만, 여기서 다시 한번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 넘어가지요.

 

그들은 말들을 이들 군마 수송선들에 싣고, 육군은 함선들에 태운 뒤 600척의 삼단노선을 이끌고 이오니아로 항해해 갔다. 거기서부터 그들은 곧장 헬레스폰토스와 트라케를 향해 이오니아 지방의 해안을 따라 항해하지 않고, 사모스에서 출발해 이카리오스 해로 가서 섬에서 섬으로 항해했다. 그들이 이 길을 택한 것은 지난해 아토스를 우회하다가 큰 손실을 입은 탓에 아마도 아토스를 우회하기가 심히 두려웠기 때문이리라.

 

2차 원정에서도 페르시아 군대는 저 유명한 마라톤 전투에서의 참패를 끝으로 결국 아시아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차례의 원정 실패를 맛본 페르시아의 다레이오스는 '아테나이 원정'을 위해 절치부심하던 중에(그는 시종 가운데 한 명에게 식사 시중을 들 때마다 "전하, 아테나이인들을 기억하소서!" 라고 세 번씩 외치도록 명령했다고 합니다) 재위 36년 만에 결국 세상을 떠나고, 뒤이어 왕위를 물려받은 크세르크세스가 '선친의 유업'을 떠맡아 결국 3차 원정에 나서게 됩니다. 크세르크세스는 처음엔 헬라스 원정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그를 전쟁에 나서도록 결정적으로 부추긴 인물이 바로 마르도니오스였다지요.

 

"전하, 페르시아인들에게 수많은 악행을 저지른 아테나이인들을 응징하지 않는다는 것은 옳지 못하옵니다. 지금 당장은 전하께서 시작하신 일을 계속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옵니다. 하오나 아이귑토스의 콧대를 꺾어놓으신 다음에는 아테나이로 진격하소서, 전하께서 후세에 길이 남을 명성을 얻으시고, 앞으로는 어느 누구도 전하의 나라로 침공할 엄두를 못 내도록 말이옵니다." 이것이 반드시 복수해야 한다는 그의 논리였다. 그러나 그는 에우로페에는 온갖 과수(果樹)들이 자라고 땅이 비옥한 더없이 아름다운 곳으로 인간들 중에서는 오직 페르시아 왕만이 소유할 자격이 있다는 말도 덧붙이곤 했다.

 

마르도니오스가 이렇게 말한 것은 자신이 새로운 모험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헬라스의 태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그렇게 하도록 크세르크세스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크세르크세스는 만 4년 동안이나 모병을 계속할 정도로 '3차 원정'을 위해 치밀한 준비를 갖췄다고 합니다.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페르시아 군대는 '우리가 아는 한 가장 규모가 큰 군대'였으며, 역사상 그 어떤 군대와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점에서는 전설에 나오는 아트레우스의 아들들의 일리온 원정군도, 뮈시아인들과 테우크로스 자손들이 모집하여 트로이아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보스포로스 해협을 건너 에우로페로 쳐들어가서 트라케의 모든 부족들을 정복하고는 이오니오스 해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페네이오스 강까지 내려갔던 군대도 마찬가지다.

 

이들 군대를 다 합치고 거기에 다른 군대들을 더해도 이번 군대 하나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크세르크세스가 아시아에서 헬라스로 이끌고 가지 않은 부족이 있었던가? 큰 강들을 제외하고 그들이 마셔버려 고갈되지 않은 물이 있었던가?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바로 '아토스'에 대한 상세한 얘기가 나오기 때문이지요. 헤로도토스의 말을 들어보시지요.

 

크세르크세스는 지난번 원정군이 배를 타고 아토스를 우회하다가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기에 지난 3년 동안 특히 아토스에 미리 손을 써두었다. 말하자면 케르소네소스의 엘라이우스를 기지로 삼고 그 앞 바다에 삼단노선들을 정박시켜놓은 다음, 여러 부족들로 구성된 부대원들로 하여금 채찍질을 당하며 교대로 운하를 파게 했던 것이다. 아토스 주민들도 함께 파야 했다. ······ 아토스는 바다로 돌출한 크고 이름난 산으로, 사람이 살고 있다. 아토스는 육지와 이어지는 곳에서는 반도처럼 생겼고, 12스타디온 너비의 지협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아칸토스 해와 토로나 앞바다 사이에 있는 이 지협은 평야와 야트막한 언덕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토스 산이 끝나는 이 지협에 헬라스의 도시 사네가 자리 잡고 있다. 사네 남쪽 아토스 산 품안에는 디온, 올로퓍소스, 아크로토온, 튓소스, 클레오나이가 있는데, 페르시아 왕은 이 도시들을 육지 도시에서 섬도시로 만들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크세르크세스가 그토록 힘들게 '운하'를 파도록 명령한 건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 후세에 기념비로 남기고 싶어 순전히 과시욕에서' 그렇게 하도록 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왜냐하면 '함선들을 땅 위로 끌게 하면 힘들이지 않고 지협을 건널 수 있었는데도, 그는 삼단노선 2척이 나란히 노를 저으며 통과할 수 있는 너비의 운하를 파게' 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혹시라도 제가 훗날 언제쯤 그리스를 여행할 일이 있으면 2,500년 전 그 당시 페르시아 군함들이 노를 저으며 지나가도록 지협을 뚫은 '운하'가 아직도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지 꼭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여기까지 쓰고 난 뒤에, 혹시나 하고 '아토스 운하'로 검색해 보니, 아뿔사, 지금은 그 운하를 구경할 수 없다고 하네요. 네이버 지식인에 따르면 "이 운하는 결국 오늘날까지 남아있지 못하고 다시 땅 속에 파묻혔는데, 실제로 고고학자들이 지진파 등을 이용해서 이 고대의 운하를 조사해보니, 운하 단면의 윗쪽은 300m, 바닥은 150m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래 그림에서 빨간 점 두 개를 이은 것이 바로 '크세르크세스의 운하'라고 합니다.)

 

(고대 페르시아 사람들이 아토스 운하를 뚫었다는 바로 그 지협)

 

 

(아토스 산)

 

어쨌든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아토스'에 관한 이야기기는 아쉽긴 하지만 대략 이쯤에서 접어야 좋을 듯하군요.(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왕에 제 이야기가 페르시아 전쟁터까지 깊숙히 발을 들여놓은 마당이니만큼 여기서 이야기를 조금 더 길게 늘여서 '살라미스 해전을 둘러싼 이야기' 가운데 특히 마르도니우스에 얽힌 이야기를 조금만이라도 덧붙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도 잠시 품었더랬습니다만, 그랬다가는 제 얘기가 너무나 터무니없이 길어질게 불을 보듯 뻔하니까 이쯤에서 물러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물론 제가 예전에 미리 써놓은 글 속에서 '마르도니우스의 기묘한 행적들'을 일부러 찾아보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신다면 저로서는 여기서 글을 멈춘 보답을 온전히 다 돌려받는 셈이 되겠지만 말이지요..... http://blog.aladin.co.kr/oren/6934680)

 

'아토스'에 대한 이야기를 이처럼 터무니없이 길게 늘어놓다가 제가 갑자기 '아토스 운하'에 대한 이미지를 검색하기 위해 다른 창들을 띄워 봤더니 글쎄 어느새『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또다른 책까지 떠올리게 되지 뭡니까. 그래서 이참에 잘 됐다 싶어 마침 그 두꺼운 책까지도 펼쳐보게 되는군요. 거기엔 혹시 '아토스 운하'에 얽힌 무슨 재미난 이야기가 없을까 하는 기대도 있고 말이지요. 그러나 아쉽게도 그 책엔 오래된 '케케묵은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더군요. 그 대신 천 년에 가까운 수도원의 독특한 외양 뿐만 아니라, 수도원의 내부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프레스코화 정도는 생생하게 코앞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어서 참 좋더군요.

 

신화에 따르면 트라키아(Thracia)의 거인 아토스가 트라키아(Thracia)의 거인 포세이돈에게 던지려던 돌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 나가 생긴 산이라 아토스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로마인들의 속주가 되기 전까지 고전주의 시대에 호메로스, 헤로도토스, 스트라보는 그들의 작품 속에서 아토스산을 수차례 언급하였다.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중에서

 

제가 '성산 아토스'를 방문했던 인물을 아직도 한두 사람 더 떠올릴 수 있다고 한다면 그들은 바로 그리스인들입니다. 맞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바로 에게해로 둘러싸인 바다에 길게 누운 섬 크레타가 고향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입니다. 온갖 전설과 신화가 가득한 그리스에서도 특별한 섬 크레타에서 태어나 아테네에서 대학을 다닌 그가 아토스 산을 다녀온 일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그가 훗날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멋진 소설을 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토스'는 카잔차키스에게 정말 특별한 산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 또한 지우기 어렵더군요. 카잔차키스의 '작가 이력'은 워낙 파란만장한 면면들로 점철되어서 딱히 어느 한 해만 따로 떼어놓고 보더라도 결코 밋밋한 구석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토스 산'을 여행했던 '젋은 한 때'는 그에게 유난히 더 특별했던 듯합니다. 아토스를 여행했던 무렵의 작가 연보를 여기에 잠시 옮겨보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00년 전쯤에 있었던 이야기네요.

 

1914년(31세) 시인 앙겔로스 시켈리아노스와 함께 아토스 산을 여행함. 여러 수도원을 돌며 40일간 머무름. 이때 단테, 복음서, 불경을 읽음, 시켈리아노스와 함께 새로운 종교를 창시할 것을 몽상함.

 

1915년(32세) 시켈리아노스와 함께 다시 그리스를 여행함. 〈나의 위대한 스승 세 명은 호메로스, 단테, 베르그송〉이라고 일기에 적음. 수도원에 은거하며 책을 한 권 썼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음. 아마도 아토스 산에 대한 책인 듯함. 『오디세우스』,『그리스도』, 『니키포로스 포카스』의 초고를 씀. 10월 아토스 산의 벌목 계약을 위해 테살로니키로 여행함. 같은 달, 톨스토이를 읽고 문학보다 종교가 중요하다고 결심하며, 톨스토이가 멈춘 곳에서 시작하리라고 맹세함.

 

1917년(34세) 전쟁으로 석탄 연료가 부족해지자 기오르고스 조르바라는 일꾼을 고용하여 펠로폰네소스에서 갈탄을 캐려고 시도함. 이 경험은 1915년의 벌목 계획과 결합하여 뒷날 소설『그리스인 조르바』로 발전됨.

 

이쯤되면 '아토스 산'이 갑자기 카잔차키스에게 너무나 중요한(?) 산처럼 느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요? 사실이 그렇습니다. 작가는 실제로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도 '수도원 풍경'을 아주 자세히 묘사하고 있으니까 말이지요. 그런데 정작 '크레타 섬'을 배경으로 한 작가의 소설 속에서 이 글을 쓰기 위해 '아토스 산'의 흔적을 찾다가 가장 웃지 못할 일은 결국 '돼지'까지 찾아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속에서 '수도원 살인사건'까지도 꾸며낸 작가가 '아토스'와 함께 '돼지'를 언급했다는 사실이 제겐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랍더군요. 제 두 눈이 다 번쩍할 지경이었으니까요......

 

 수도승은 한동안 생각해 보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의 두 눈이 광채를 발했다.

「무얼 주시겠소?」그가 물었다.

「무얼 원하나?」

「절인 대구 1킬로그램하고 브랜디 한 병.」

 조르바가 허리를 구부리고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자네 속에 악마가 들어앉은 건 아닐까, 자하리아?」

「어떻게 아시지요?」찔끔하면서 그가 반문했다.

「나 역시 아토스 산에서 왔네. 그래서 그곳 물정은 좀 아는 편이지.」조르바가 대답했다.

 수도승은 머리를 떨구었다.

「그래요. 내 배 속에 악마가 한 마리 들어앉아 있어요.」

 

 

곧 고원이 나타났다. 고원 저쪽에서 바위와 소나무로 들러싸인 성모의 수도원이 보였다. 바깥 속세와는 담을 쌓고 이 녹색의 고원 위에 조용히 미소 지으며, 정상의 고결함과 평야의 부드러움을 깊이 있게 조화를 이루고 서 있는 수도원은 내 눈에 인간의 명상을 위해 고른 더없이 훌륭한 은신처로 보였다.

 

나는 생각했다. 〈여기에서라면 맑은 정신은 인간에게 걸맞은 종교적 광희(狂喜)로 가꿔 갈 수 있으리. 험하고 초인간적인 정상도, 게으르고 풍성한 평야도 아니다. 그러나 인간다운 맛을 잃지 않고 영혼을 고양시키는 곳으로는 더도 덜도 아닌, 최적의 장소가 아닌가! 이런 곳은 영웅에게도 돼지에게도 어울리지 않는다. 오직 인간에게 어울리는 곳이다.〉

 

이런 곳이니 고대 그리스 신전이나 최고의 사원이 있을 수밖에. ······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중에서

 

 

제 얘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덧붙일 게 한 가지 더 남았네요. 저도 이번에 붉은돼지 님의 재미난 글 덕분에『에게, 영원회귀의 바다』라는 책을, 그것도 이미 절판된 몹시도 희귀한(?) 책을 중고시장에서 기쁜 마음으로 서둘러 건져올렸답니다. 자칫 저 푸른 바다 밑으로 영영 잠겨버릴 뻔한 책을 이렇게 뒤늦게나마 발굴해서 좋은 글과 함께 소개해 주신 붉은돼지 님께 이 자리를 빌어 고맙다는 말씀을 다시금 전합니다.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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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4. 5 추가)

따라서 우리는 발작의 시작을 느끼기라도 한 양 가만있거나 달아나 평정 속으로 피신하는 것이 상책이라네. 우리가 넘어지거나 남들을 덮치지 않으려면 말일세. 우리는 십중팔구 친구들을 덮치기에 하는 말이네. 우리는 아무나 가리지 않고 사랑하거나 시기하거나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분노가 공격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우리는 적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자식과 부모에게도, 심지어 신과 들짐승과 무생물에게도 분노하는 것이라네. 예컨대 타뮈리스는

 

황금을 입힌 뤼라의 양쪽 팔을 부수고

잘 울리는 현들을 끊어버렸다.

 

판다로스는 자신의 활을 "손수 분질러" 불 속에 처넣지 않으면 자신이 저주받아도 좋다고 했네. 크세르크세스도 바다에 낙인을 찍고 채찍질했을 뿐 아니라, 아토스 산에 편지를 써 보냈네.26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신과 같은 아토스여, 다루기 힘든 큰 돌들로 내가 하는 일을 방해하지 말지어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그대를 베어 바다에 던지리라." 분노가 하는 짓들은 때로는 무섭기도 하고, 때로는 우습기도 하다네. 그래서 여러 격정 중에서도 분노가 가장 미움받고 멸시받는 것이라네.

 

주석 26 크세르크세스(Xerxes)는 기원전 480년 제2차 페르시아 전쟁 때 페르시아군을 이끌고 그리스로 침입한 페르시아 왕이다. 그는 헬레스폰토스 해협에 선교(船橋)를 놓고 아토스 산을 둘러가는 위험한 항해를 피하려고 반도의 지협에 운하를 건설하고 바다를 채찍질하는 등 오만의 극치를 보였다. 헤로도토스, 『역사』7권 22∼24장, 35장 참조. 크세르크세스가 아토스 산에 편지를 써 보냈다는 이야기는 『역사』에는 나오지 않는다.

 

 - 플루타르코스, 『수다에 관하여』, <분노의 억제에 관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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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6-04-02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토스와 관련하여 저런 사연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오렌님은 희랍고전에 대하여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계시는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ㅎㅎㅎㅎ 대개는 그냥 한두번 봐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데 말입니다. ㅎㅎㅎ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예전부터 한번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오렌님의 페이퍼에 힘입어 저도 드디어 구입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주문넣었습니다. 로마제국쇠망사를 읽듯 우공이산의 정신으로 세월대로 읽어볼 요량입니다. 제가 아직 로마제국쇠망사를 읽고 있는데요.. 이런 대작들은 결국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ㅎㅎㅎㅎ..한 번 읽었다고 해도 뭐 기억나는 것도 거의 없지만서도 어쨋거나 읽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는 그런 한심한 생각합니다. ^^

oren 2016-04-04 16:51   좋아요 0 | URL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몹시 두툼한 책이긴 하지만, 한번 붙잡고 읽다 보면 `온갖 흥미로운 인물과 사건들`을 끊임없이 마주치는 재미 때문에 뜻밖에도 금세(?)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답니다. 물론 온갖 낯선 지명과 인명 때문에 처음엔 좀 곤란을 겪기도 하지만, 그런 어려움들만 어느 정도 참아내기만 하면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게 완독할 수 있는 책이랍니다. 아무려면 『로마제국쇠망사』보다 읽기 어렵기야 하겠습니까? 저도 『로마제국쇠망사』는 축약본만 읽었고, 완역본은 진작에 사 놓고도 `엄두가 나지 않아` 여태껏 읽을 생각을 못하고 있답니다. 물론 그 책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볼 작정이랍니다.

아, 참.. 다치바나 다카시의 『에게, 영원회귀의 바다』는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답니다. 순전히 붉은돼지 님 덕분에 말이지요. 아닌 게 아니라, 다치바나의 책 속에도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담긴 여러 흥미로운 얘기들이 여럿 인용되고 있어서 더욱 반갑더군요. 헤로도토스의 책 뿐만 아니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그리스 철학자 열전』등 제게 그리 낯설지 않은 책들도 짬짬이 소개되어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게다가 저도 늘 가 보기를 꿈꾸는 `에게 해를 둘러싼 숱한 고대의 유적들`을 코 앞에서 생생하게, 더군다나 아주 여러 곳을 둘러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답니다. 언젠가 제가 그 책 속에 담긴 풍경들과 직접 맞닥뜨리는 감격스런 날이 온다면 그건 아마도 틀림없이 바로 저 책 속에 담긴 `나를 끌어당기는 듯한 사진과 글들`을 이번 기회에 아주 제대로 만난 데 힘입은 바가 결코 적지 않았음을 다시금 상기할 게 틀림없지 싶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4-11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게, 영원회귀의 바다> 저도 무척 좋아하는 책입니다^^ 다치바나 다카시 책 중에 최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oren 2016-04-12 00:01   좋아요 1 | URL
오... 그렇군요. 저는 여태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었는데, 『에게, 영원회귀의 바다』라는 책만큼은 정말 좋더군요. 공감이 크게 느껴지는 글들도 참 많았고, 그리스와 터키 등지의 고대 유적지에서 저자가 홀로 느꼈던 `남다른 감회`와 마주할 때는 저도 마치 `그곳에서` 함께 머무는 듯한 착각까지 들 정도로 좋더군요.

고양이라디오 2016-04-11 23:58   좋아요 0 | URL
중고책으로 구입하셨다니 부럽습니다ㅎ 그리스와 지중해 꼭 가보고 싶어요ㅎ

oren 2016-04-12 00:03   좋아요 0 | URL
저도요.. 저는 이집트 쪽과 이탈리아 쪽은 두루 둘러봤는데, 정작 그리스와 터키 쪽은 가 보지를 못해서 이런 책들을 읽으면 아주 애가 탈 지경이랍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