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두와 수수께끼에 대하여

 

(밑줄긋기)

 

고상하고도 미묘한 내 세계로 진입하는 것은 비할 바 없는 영예

 

내 작품에 익숙해지면 사람들은 도대체 다른 책들을 더 이상은 견뎌낼 수 없게 된다. 철학 책이 가장 심하다. 고상하고도 미묘한 내 세계로 진입하는 것은 비할 바 없는 영예이고 ㅡ 그러려면 결코 독일인이어서는 안 된다 ;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누구든지 다 얻었어야만 하는 영예인 것이다. 자기의 의지의 높이에 의해 나와 비슷하게 되는 자는 그러면서 배움의 진정한 황홀경을 체험한다 : 나는 어떤 새도 이르러보지 못했던 높은 데서 왔고, 어떤 발도 길을 잃어보지 못한 심연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게 내 책 중 어느 하나를 잡으면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고 ㅡ 내가 밤의 휴식마저 설치게 한다고 말했다 ······ 내 책보다 더 긍지에 차 있으면서 동시에 더 세련된 종류의 책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 이 책들은 여기저기서 지상에서 이를 수 있는 최고의 것에, 냉소에 이른다 ; 내 책들은 가장 부드러운 손가락에 의해, 그리고 가장 용감한 주먹에 의해 정복되어야 한다. 영혼의 온갖 허약함은 관여하지 못하며, 온갖 소화불량증마저도 영원히 배제된다 : 사람들의 신경은 튼튼해야 하고, 문제 없는 아랫배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영혼의 빈곤이나 영혼에 있는 엉터리 공기도 관여하지 못할 뿐 아니라, 비겁이나 불결, 내장 속에 들어 있는 비밀스러운 복수욕은 더더욱 관여하지 못한다 : 내 말 한마디가 나쁜 본능을 죄다 쫓아낸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 책들에 대한 여러 반응들을, 아주 교훈적인 다양한 반응들을 나로 하여금 명백히 알게 하는 다양한 실험용 짐승 같은 면이 있다. (중략) 완벽하게 악습에 빠져 있는 '정신들', 철저하게 허위인 '아름다운 영혼들'은 내 책들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ㅡ 따라서 그들은 이 책들을 자기 밑에 있다고 얕잡아보며, 이런 일은 온갖 '아름다운 영혼들'의 그럴싸한 수미 일관함인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멍청이들은, 실례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이들은 죄다 독일인들인데, 내 의견에 항상 동의하지는 않지만, 어떤 경우에는 동의하기도 한다고 암시한다 ······ 《차라투스트라》에 대해서조차 이렇게 말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 ······ 마찬가지로 '페미니즘' 전부가, 남자들이 주장하는 페미니즘도 내게로 통하는 문을 닫아버린다 : 그것은 대담무쌍한 인식의 미궁 속으로 결코 진입할 수 없게 한다. 엄격하기만 한 진리들 속에서 기분 좋게 명랑함을 유지하려면 사람들은 결코 자기 자신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자기의 습관들을 엄격하게 대해야만 한다. 완벽한 독자의 모습을 내 머릿속에 그려보면, 용기와 호기심이 어우러진 하나의 괴물이 되고 만다. 게다가 그는 탄력 있으면서도 꾀가 많은 신중한 자이며, 타고난 모험가이자 발견자이기도 하다. 결국 : 내가 근본적으로 누구에게만 말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나는 차라투스트라가 말한 것보다 더 표현을 잘할 수는 없다 : 차라투스트라가 누구에게만 자기의 수수께끼를 던지는가?

 

 

너희, 대담한 탐험가, 모험가들. 그리고 언젠가 영민함의 돛을 달고 위험한 바다를 항해한 적이 있는 자들에게, ㅡ

 

너희, 수수께끼에 취해 있는 자들, 불투명함을 즐기는 자들, 피리 소리로도 온갖 미궁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그런 영혼의 소유자들에게 :

 

 ㅡ 그것은 너희가 겁먹은 손으로 한 가닥 실을 찾아보려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 너희는 추측할 수 있는 곳에서는 추론하려고 하지 않는다 ······

 

           

             * 역자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3부, <곡두와 수수께끼에 대하여>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쓰는지>, 제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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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3-1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도, 첫 문장에 빵 터졌습니다. 죄송해요, 그런데 니체의 이런 모습, 자신에 찬 모습이 너무 놀라우면서도 신기합니다.

˝내 작품에 익숙해지면 사람들은 도대체 다른 책들을 더 이상은 견뎌낼 수 없게 된다. 철학 책이 가장 심하다. 고상하고도 미묘한 내 세계로 진입하는 것은 비할 바 없는 영예이고..... ˝

저는 고병권님의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만 읽어보았고, 위의 원전은 아직 도전 생각은 못 하고 있어요. 그 책에서도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라는 제목을 보고 혼자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oren 2016-03-12 18:02   좋아요 0 | URL
니체의 책들에 재미를 붙이면 `다른 책들`은 너무 시시껄렁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요. ㅎㅎ

그가 소크라테스, 플라톤, 칸트, 쇼펜하우어 등등 무수한 `철학의 대가들`을 예리한 필봉으로 무참히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면 마치 `알파고의 바둑`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거든요. 마치 알파고가 `수천 년 동안 쌓아올린 바둑의 역사`를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뜨린 것처럼 말이지요. 플라톤의 이데아니, 칸트의 정언명령이니,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부정이니, 심지어 그리스도교의 온갖 신성한 교리들조차 니체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형국이었으니, 그가 토리노의 알베르토 광장에서 졸도하기 직전에 썼던 <이 사람을 보라>에서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내게 싸움을 걸어오지 않는다... 여러 해 동안 나는 무조건적인 발언의 자유를 만끽해왔다`고 자신에 차서 말했던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