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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ㅣ 책세상 니체전집 13
프리드리히 니체 / 책세상 / 2015년 12월
평점 :
* 곡두 : 눈앞에 없는 사람이나 물건의 모습이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가뭇없이 사라져버리는 현상.
환영, 신기루 따위 한자말에 갈음할 수 있는 우리말.
(출처 :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 말 풀이사전)
공격적인 용기야말로
용기, 그것이야말로 더없이 뛰어난 살해자다. 공격적인 용기야말로. 모든 공격 속에는 진군의 나팔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더없이 용기 있는 짐승이다. 바로 그 용기에 힘입어 그는 온갖 다른 짐승들을 극복할 수 있었다. 진군의 나팔소리로 모든 비통까지도 극복한 것이다. 사람이 겪고 있는 비통이 그 어느 것보다도 심오한 비통이었는데도 말이다.
용기는 죽음까지 죽인다
용기는 더없이 뛰어난 살해자다. 그것은 연민의 정까지도 없애준다. 연민의 정이야말로 더없이 깊은 심연이 아닌가. 생을 그토록 깊이 들여다보면, 고뇌까지도 그만큼 깊이 들여다보게 마련이다.
용기는 더없이 뛰어난 살해자다. 공격적인 용기는, "그것이 생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이렇게 말함으로써 용기는 죽음까지 죽인다.
이같은 말 속에는 많은 진군의 나팔소리가 들어 있다. 귀 있는 자, 들을지어다. ㅡ
그 위에 성문의 이름이 씌어 있구나. '순간'이라는.
"여기 성문을 보라! 난쟁이여!"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것은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두 개의 길이 이곳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 길들을 끝까지 가본 사람이 아직은 없다.
뒤로 나 있는 이 긴 골목길. 그 길은 영원으로 통한다. 그리고 저쪽 밖으로 나 있는 저 긴 골목길. 거기에 또다른 영원이 있다.
이들 길은 예서 맞부딪치고 있다.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여기, 바로 이 성문에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 위에 성문의 이름이 씌어 있구나. '순간'이라는.
난쟁이여, 그러나 누군가가 있어 이들 가운데 하나를 따라 앞으로, 더욱 앞으로, 그리고 더더욱 멀리 갈 경우, 그래도 이 길들이 영원히 맞부딪치고 있으리라고 보는가?"
그러자 난쟁이는 경멸조로 중얼거렸다. "곧바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리는 하나같이 굽어 있으며 시간 자체도 일종의 둥근 고리다."
우리는 영원히 되돌아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보라, 여기 순간이라는 것을!" 나는 말을 이어갔다. "여기 순간이라는 성문으로부터 길고 영원한 골목길 하나가 뒤로 내달리고 있다. 우리 뒤에 하나의 영원이 놓여 있는 것이다.
만물 가운데서 달릴 줄 아는 것이라면 이미 언젠가 이 골목길을 달렸을 것이 아닌가? 만물 가운데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 이미 일어났고, 행해졌고, 지나가버렸을 것이 아닌가?
그리고 만약 모든 것이 이미 존재했었다면, 난쟁이여, 여기 이 순간이라는 것을 어떻게 보는가? 이 성문 또한 이미 존재했었음에 틀림없지 않은가?
여기 이 순간으로 하여금 앞으로 일어날 모든 사물을 자기 자신에게 끌어당길 수 있게끔 모든 사물이 이처럼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그 자신까지도?
만물 가운데서 달릴 줄 아는 것이라면 언젠가 이 기나긴 골목길 저쪽으로도 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달빛 속에서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는 이 거미와 이 달빛 자체, 함께 속삭이며, 영원한 사물들에 대해 속삭이며 성문에 앉아 있는 나와 너, 우리 모두는 이미 존재했어야 하지 않은가?
그리고 되돌아와 우리 앞에 있는 또다른 저 골목길, 그 길고도 소름끼치는 골목길을 달려나가야 하지 않는가. 우리는 영원히 되돌아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수수께끼와 곡두
자, 내가 그때 본 수수께끼를 풀어달라. 더없이 고독한 자가 본 저 곡두를 설명해달라!
그것은 하나의 곡두, 하나의 예견이었으니 말이다. 나 그때 그 비유 속에서 본 것이 무엇이었지?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나타나야 하는 그 사람은 누구이고?
목구멍 속으로 뱀이 기어든 그 양치기는 누구지? 더없이 묵직하고 시커먼 온갖 것이 그 목구멍으로 기어 들어가게 될 그 사람은 누구인가?
양치기는 내가 고함을 쳐 분부한 대로 물어뜯었다. 단숨에 물어뜯었다! 뱀 대가리를 멀리 뱉어내고는 벌떡 일어났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양치기나 여느 사람이 아닌, 변화한 자, 빛으로 감싸인 자가 되어 웃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 땅에 그와 같이 웃어본 자는 없었으리라!
오, 형제들이여, 나 사람의 웃음소리가 아닌 그 어떤 웃음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이제 어떤 갈증이, 결코 잠재울 수 없는 어떤 동경이 나를 사로잡고 있구나.
그와 같은 웃음에 대한 동경이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아, 어떻게 나 나의 삶을 견뎌낼 것인가! 지금 죽는다면, 나 그것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