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선생, 그는 정당하지 못하다
그런데 누가 저 슈트라우스의 사탕과자 베토벤일 수 있는가? 그는 아홉 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다는데, 그중에서 <전원 교향곡>은 "정신적 풍요로움이 가장 적은 곡"이라고 한다. 그는 교향곡 3번을 작곡할 때 "통상적인 규범을 벗어나서 과감하게 모험을 감행하고픈" 충동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사실에서 반은 말이고 반은 기사인 이중적 존재를 추론해볼 수 있다. <영웅>이라는 곡과 관련하여 "주제가 광활한 벌판에서의 싸움인지 아니면 인간의 가슴 속에서의 싸움인지"를 표현하는 데 실패했다는 이유로 저 반인반마(半人半 馬)의 괴물 켄타우로스는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 <전원>에는 "대단히 광란하는 폭풍"이 들어 있다고 하는데, 이 폭풍이 농부의 춤을 중단시키는 일쯤은 거의 무의미하다고 한다. 정확할 뿐만 아니라 재치 있는 어법에 따르면 이 교향곡은 "밑바탕에 깔려 있는 하찮은 동기에 자의적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정신적 풍요로움이 가장 적은 곡"이라고 한다 ㅡ 고전적 선생에게는 더욱 거친 말이 떠올랐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말하듯이 "아주 겸손하게" 표현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그래선 안 된다. 우리의 선생, 그는 정당하지 못하다. 여기서 그는 정말 너무 겸손하다. 사탕과자 베토벤을 알고 있을 것 같은 유일한 사람인 슈트라우스가 아니면 누가 우리에게 그러한 사탕과자 베토벤에 관하여 가르쳐주겠는가? 그 외에 지금 바로 적당히 불손하게 표현된 강력한 판결이 교향곡 9번에 내려진다. 이 교향곡은 "바로크 양식을 천재적인 것으로, 무형식적인 것을 숭고한 것으로 여기는"(359쪽) 사람들 사이에서만 애호된다는 것이다.
- 『반시대적 고찰 Ⅰ』, <다비드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저술가>, 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