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를 따라 만난 풍경 ①

 

사물들이 우리 시야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것들이 우리의 시선이 가는 경로에서 벗어나 있기보다는 우리의 정신과 눈을 그쪽으로 가져가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젤리(jelly)에도 보는 능력이 없는 것처럼, 우리 눈 그 자체에도 보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나 멀리 넓게, 혹은 얼마나 가까이 좁게 보아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한다. 자연현상의 아주 많은 부분을 이런 이유로 인해 사는 동안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정원사는 단지 자신의 정원만 본다. 정치경제학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공급은 수요에 응한다. 자연은 돼지 앞에다 진주를 던지지 않는다. 풍경은 우리가 소중히 여길 준비가 되어 있는 만큼-한 티끌의 더도 아니라-의 아름다움만을 우리에게 내보인다. 어떤 사람이 한 특정한 언덕 꼭대기에서 보게 될 실제 사물들은 다른 사람이 보게 될 사물과는 바라보는 사람이 다른 것만큼 상이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이 앞으로 나아갈 때 진홍참나무가 이미 당신 눈 속에 있어야 한다. 그것에 관한 생각에 사로잡혀 그것을 머릿속에 집어넣을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어떤 것을 볼 수 있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중에서

 

 * * *

 

올해 가을도 이번 주말에 내릴 비와 함께 영영 작별이지 싶다. 가을은 책만 붙잡고 지내기엔 너무 억울하다 싶을 만큼 풍경이 너무 다채롭다. 그래서 해마다 가을이 오면 누구라도 어딘들 단풍 구경이라도 좀 다녀와야 계절을 제대로 보낸 듯한 느낌마저 갖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늦여름 어느날, '언제 하루 좀 일찍 마치고 강화도로 장어 구이나 먹으러 가자'던 며칠 전 약속이 성급하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불쑥 실행에 옮겨졌었다. '그날' 뜨거운 숯불에 노릇노릇 구워진 장어구이를 안주 삼아 우리 다섯 사람이 소주를 얼마나 많이 마셔댔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좀 과했다 싶을 정도였다. 그날 따라 느닷없이 쏟아진 장대비 때문에 강화도 외포리 근처 장어집엔 손님이 드물었고, 우린 바깥 날씨가 비바람이 치든 말든 조금도 아랑곳 없이 오로지 장어를 얼마나 실컷 먹어야만 제대로 만족할 수 있을까에만 정신을 쏟고 있었다. 노릇노릇 구워진 장어가 연신 빠르게 석쇠에서 사라지는 그만큼 동시에 소주병들도 금세 제 속을 말끔히 비워내고 한켠으로 밀려나기 바빴다.

 

드문 드문 자리를 차지했던 손님들마저 어느새 다 떠나고 나자 우리 테이블에서 열심히 장어를 뒤집으며 더러 소주잔을 몇 차례 거들던 아줌마는 기어코 우리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는 술을 제법 마셔대고 있었다. 오십 대 후반쯤 된 듯한 그 여인은 적어도 겉보기엔 장어집에서 일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잠시 여기서 일하는 중'이라고 어설프게 말했지만 어쨌든 내가 보기엔 '식당 종업원 신분'일 뿐이었는데도 그 여인은 어느새 '반은 손님' 신세로 우리와 함께 하고 있었다. 아무튼 지나친 술기운이 일을 그렇게까지 이끈 모양이었다. 아마도 그날 함께 갔던 선배 부부가 이미 그 장어집을 여러 차례 드나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 싶다.

 

어쨌든 그날 제대로 발동이 걸려 거나하게 취한 분위기에서 선배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많은 얘기들 가운데 놓쳐선 안 될 게 바로 '늦가을쯤 남원으로 한 번 놀러 가자'는 거였다. 그 분의 고향이 남원이었고 이미 예전에도 선배 부부와 함께 남원·구례·하동·광양 등지로 두어 번 여행을 다녀온 터여서 아내도 얼씨구나 좋다고 즉답을 했다. 이번 여행은 그렇게 해서 늦여름 밤에 비가 내리는 강화도에서 그 싹을 틔웠던 셈이다. 그렇게 의기투합했으니 지난 주말에 '내내 비가 올 예정'이라는 일기 예보는 이번 늦가을 여행을 훼방놓을 구실이 조금도 되지 못했다. 그렇게 '늦가을 풍경'은 이미 늦여름부터 미리 마음 속에 꽉 자리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남원을 대표하는 건축물인 광한루.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

 

 

 - 광한루를 찾는 사람들의 옷차림마저 단풍처럼 울긋불긋하다.

 

 

 - 원래 이곳은 조선 세종 원년(1419)에 황희가 광통루라는 누각을 짓고, 산수를 즐기던 곳이었다고. 1444년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가 광통루를 거닐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여 이곳을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라 칭한 후 ‘광한루’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광한루는 소설『춘향전』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인연을 맺은 장소로 더 유명한 곳이다. 광한루 앞 연못은 하늘나라 은하수를 상징한다고 하니 오작교가 빠질 수 없다. '애절한 그리움'을 가슴 속에 켜켜이 간직한 숱한 선남선녀들이 바로 저 '까마귀'와 '까치'를 간절히 쓰다듬으며 '다시 만날 그날'을 마음 속으로 빌었을지 모를 듯싶다.

 

 

 - 날씨도 꾸물꾸물한 늦가을 저녁 무렵이라 그런지 '빈 배' 한 척이 몹시도 처량하고 쓸쓸해 보인다.

 

 

 - 늦가을 오후는 이내 저물기 마련. 우리는 서둘러 남원에서 중화요리로 유명한 '동춘원'으로 이동했다.

 

 

 - 이번 여행을 기획(?)한 선배님의 초등학교 동창생이 마침 '동춘원'의 사장님이었다.

    쥔장이 알아서 내놓은 요리는 '유산슬'과 '자연송이 요리'였다. 넷이서 실컷 먹을 만큼 푸짐하고 맛있었다.

 

 

 - 여기에 숱하게 와 보신 선배님이 기어이 '찹쌀 탕수육'까지 시키셨다. 정말 부드럽고 감칠 맛이 난다.

 

 

 - 저녁을 마치고 나서 남원 시내 야경을 볼 수 있다는 '원각사 전망대 카페'에 들렀다.

    마침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하니 야경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

 

 

 - 이튿날 아침 목적지인 '지리산 칠선 계곡'으로 가는 길에 잠시 '황산벌'을 지나면서,

    판소리의 명인이었던 '가왕( 歌王) 송흥록과 국창(國唱) 박초월 생가'에 잠시 들렀다.

 

 

 - 목적지인 칠선계곡 초입에 도착했다. 천왕봉에서 시작되는 지리산 최대의 '칠선 계곡'이 바로 여기서 끝나고 작은 내를 이룬다. 저 멀리 산허리에 걸린 물안개가 마치 산불이 났을 때 일으키는 연기처럼 자욱하다.

 

 

 - 칠선계곡이 시작되는 초입에 자리잡은 산촌. 단풍으로 물든 지리산 산자락이 그림처럼 예쁘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칠선 계곡'도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맨 처음 칠선 계곡을 밟은 건 1991년 가을, 고교 친구들 셋이서 '지리산 종주 산행'을 했을 때이다.

    닷새 분량의 식량과 연료와 코펠, 버너, 텐트까지 갖춘 70리터짜리 배낭이 무려 35kg에 달했던 기억이 난다.

    '지리산 화엄사 → 노고단 → 뱀사골 → 연하천 → 세석평전 → 장터목 → 천왕봉 → 칠선계곡'으로 이어진

    고된 행군의 최종 종착지가 바로 아래 사진에 보이는 이곳 '마천 추성마을'이었음을 이번에 뒤늦게 알았다.

 

 

 - 칠선계곡의 등반로는 바로 여기 '마천면 추성마을'에서 시작하여 천왕봉까지 길게 이어진다. 1992년 여름에 '지리산 종주 산행'을 왔을 땐 '천왕봉 일출'을 본 뒤에 곧장 칠선계곡으로 하산했는데 계곡이 어찌나 험난하던지 배낭을 메고는 도저히 낭떠러지를 빠져 내려갈 수 없는 곳에선 '짐부터 먼저 내던지고 몸은 따로' 내려갔던 기억이 선하다.

 

 

 - 마치 여느 산골 마을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익숙한 풍경이다. 잠겨진 나무 대문 너머로 몰래 풍경을 담았다.

 

 

 - 골목길 옆으로 난 샛길을 따라 계곡으로 살짝 내려가 봤다. 비에 젖은 바위들이 축축하니 정겹다.

 

 

 - 무슨 풀인지는 이름조차 몰라도 새빨갛게 물든 대궁들이 예쁘기만 하다.

 

 

 - 주문한 음식이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홀로 비를 맞으면서도 부지런히 주변 풍경을 담는 재미가 쏠쏠하다.

 

 

 - 여기서 버스를 타면 동서울까지 곧바로 올라갈 수 있는 버스가 비를 맞으며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 늦가을 비가 나뭇가지마다 촉촉히 적셔주니 괜히 나조차 속시원하고 반갑다. 이 결실들이 채 다 떨어지기도 전에 찬바람이 쌩쌩 불 테고 하얀 눈이 나뭇가지마다 소복히 내려앉을 날도 이젠 그리 멀게 남지는 않았지 싶다.

 

 

칠선 계곡

 

지리산 최대의 계곡미를 자랑한다. 설악산의 천불동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계곡으로 손꼽힌다. 지리산의 대표적인 계곡이면서 험난한 산세와 수려한 경관, 그리고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을 끼고 있는 칠선계곡은 7개의 폭포수와 33개의 소()가 펼치는 선경이 마천면 의탕에서 천왕봉까지 장장 16㎞에 이른다. 들어가면 갈수록 골은 더욱 깊고 날카로워, 계곡은 그 험준함으로 인하여 숱한 생명들을 앗아가 "죽음의 골짜기"로 불린다. 그래서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이 칠선계곡을 등반하고 싶어하지만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칠선계곡의 등반로는 마천면 추성마을에서 시작하여 천왕봉까지 9.4㎞ 계곡 등반의 위험성 때문에 상당구간이 계곡과 동떨어져 있다. 이는 등반로를 벗어나서 마음놓고 발길을 둘 곳이 없을 정도의 험난한 산세 때문이다. 추성을 출발하여 처음 만나게 되는 용소에서부터 주지터, 추성망바위, 선녀탕, 옥녀탕, 비선담, 칠선폭포, 대륙폭포, 삼층폭포, 마폭포를 거쳐 천왕봉에 이르기까지 선경의 진수를 볼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 백과)

 

 - 우리가 아침 겸 점심을 먹었던 식당 바로 앞 '칠선계곡 풍경'. 네이버 지식백과에 나오는 이미지도 바로 '여기'였다.

 

 

 - 칠선계곡에서 두 번째로 맛보는 '흑염소 불고기'. 직접 먹어봐야 '별미'를 알 수 있다.

 

 

 - 반찬들이 하나같이 싱싱하고 맛이 진하다. '단풍깻잎' 한 접시만으로도 밥 한 공기는 먹을 수 있을 듯하다.

 

 

 - 지리산에서 나는 '석이버섯 요리'까지... 식당에서의 주문은 언제나 '결핍' 보다는 '과잉'으로 기울고 만다.

 

 

 - 아점을 먹고 나서 '실상사' 쪽으로 슬슬 이동하면서도 틈틈이 가을 풍경을 감상하느라 차를 세우기 일쑤였다.

 

 

 - 요즘엔 어딜 가나 '은행나무 천지'다. 지리산 자락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 그동안 '실상사'를 매번 지나쳐 다니다가 이번엔 '비'를 무릎쓰고 찾아봤다.

    천 년도 더 된 고찰이 그저 소박하고 단아하고 고즈녁하다.

 

 

 - 통일신라 시대인 828년(흥덕왕 3년)에 지어진 사찰이니 이 석탑이 여기서 지킨 세월이 그저 아득하기만 하다.

 

 

 - 까마득한 그 옛날 석공들이 이 석등을 다듬느라 흘렸을 땀과 정성을 생각하니 조각마다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 '실상사 보광전'. 단청이 되어 있지 않아 소박한 모습이지만 기둥으로 쓰인 나무들만은 아직도 꿋꿋하고 우람하다.

 

 

 - 주말인데도 비가 와서 그런지 찾는 발길이 드물고 그저 적적하기만 하다.

 

 

 - 여기는 뱀사골 초입이다. 바기 제법 내리는데도 붉게 물든 지리산의 자태를 다 숨기지는 못하는 듯하다. 내가 맨 처음 지리산을 오르겠다고 대학 친구들과 함께 찾아온 곳도 이곳 뱀사골이었다. 그 때가 1982년 여름이었으니 어느새 강산이 세 번쯤 바뀔 만큼의 시간이 흘렀구나 싶고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도 든다.

 

 

 - 뱀사골을 조금 더 오르다가 다시 차를 세웠다. 나 홀로 계곡까지 내려가서 '山水'를 한꺼번에 담아봤다.

 

 

 - 잘 익은 감들이 이제 막 껍질을 벗고 '곶감'이 되기 위해 길 옆 산장마다 주렁주렁 매달렸다.

 

 

 - 산이 깊을수록 나뭇가지에 달린 감들도 '까치밥'만 남기고 대충 수확을 마친 듯하다.

 

 

 - 뱀사골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에 잠시 주차하고 빼꼼히 들여다본 '지리산 풍경'이 가히 환상적이다.

    그동안 지리산을 여러 번 찾아 왔지만 이토록 놀랍고 아름다운 풍경과 마주칠 줄은 상상도 못했다.

 

 

 - 이런 날씨도 마다하고 '능선'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도대체 얼마나 더 멋진 풍경들을 감상하고 있을까.

 

 

 - 노고단 '성삼재 휴게소'엔 바람이 몹시 거세다. 잠시 주차했다가 세찬 바람 때문에 곧바로 다시 차에 올랐다.

 

 

 - 노고단 너머 첫 휴게소에서 구례 쪽으로 내려다본 지리산 운무.

 

 

 - 구례를 그냥 지나쳐 '순천만 갈대 습지'까지 힘겹게 찾아 오니 예상 밖으로 사람들이 엄청 많다.

 

 

 - 사진으로만 봐 왔던 순천만 습지가 생각보다 훨씬 광활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석양에 빛나는 환상적인 'S 라인'을 만나기엔 날씨가 너무 엉망이다. 그저 우산 쓴 사람들의 행렬만 보일 뿐이다.

 

 

 - 비가 많이 내려 볼 게 아무 것도 없지 싶은데도 사람들은 정말 생각보다 엄청 많았다.

    이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를 거쳐서 여기까지 왔고 또 어디로 떠날 예정인지 그게 제일 궁금했다.

 

 

 - '갈대밭'은 누구에게나 꽤나 낭만적인가 보다. 깔깔거리며 마냥 신나 하는 나이 어린 처녀들도 참 많았다.

 

 

 - 시간이 여유롭다면 저 배도 한 번 타 봤으면 싶지만 우린 갈길이 바쁘다.

 

 

 - 순천까지 왔으니 벌교를 빠트릴 순 없다. 기어이 벌교까지 가서 '꼬막 정식'으로 저녁을 때우고 나서 '빗길'을 뚫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Tmap이 알려주는 딱 그만큼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무려 400km였으니 딱 '천리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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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11-13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oren 님 덕분에 구경 한번 잘 했습니다.
단풍든 광한루, 운무낀 지리산, 비내리는 순천만 모두모두 너무 멋집니다.
단청이 되어있지않고 또 다듬지 않은 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쓴 실상사 보광전은 참 단아하고 기품있어 보입니다.
지리산 산나물에 흑염소 불고기....침 넘어갑니다.^^

oren 2015-11-13 17:00   좋아요 0 | URL
`지리산 실상사`는 매번 지나치기만 했을 뿐 좀처럼 가 볼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 이번에 거길 둘러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답니다. 늦가을 지리산 풍경들은 미처 상상도 못할 만큼 너무 좋아서 다음에라도 꼭 다시 가보고 싶어지더군요. `흑염소 불고기` 잘하는 음식점은 이미 두 곳이나 알아뒀으니 `지리산 등반` 후에는 필수 코스로 들를지 모르겠다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