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2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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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여, 내가 세상에 편력 기사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고 믿는 잘못에 빠져 자네까지 거기로 끌어들이고, 자네마저 나와 같이 미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 것에 대해 나를 용서하기 바라네.」

 

「아아!」산초가 울면서 대답했다. 「나리, 돌아가시지 마세요, 제발. 제 충고 좀 들으시고 오래오래 사시라고요. 이 세상에 살면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고의 미친 짓은 생각 없이 그냥 죽어 버리는 겁니다요. 아무도, 어떤 손도 그를 죽이지 않는데 우울 때문에 죽다니요. 나리, 그렇게 게으름뱅이로 있지 마시고요. 그 침대에서 일어나셔서 우리가 약속한 대로 목동 옷을 입고 들판으로 같이 나갑시다요. 혹시 모르잖습니까요. 어느 덤불 뒤에서 마법에서 풀려난 도냐 둘시네아 귀부인을 발견하게 될는지도요. 꼭 보여야 하잖아요. 만약 패배한 것 때문에 고통스러워서 돌아가시는 거라면요, 제게 그 잘못을 돌리세요. 제가 로시난테의 뱃대끈을 제대로 매지 않아 나리를 쓰러뜨리게 만든 거라고 하시면 되잖아요. 더군다나 나리께서도 기사도에 대해 써놓은 책들에서 보셨을 거 아닙니까요. 기사들이 다른 기사들을 쓰러뜨리는 일은 흔한 일이고, 오늘 진 자가 내일은 이긴 자가 되기도 하는 것을 말입니다요.」

 

「그렇습니다.」삼손이 말했다. 「착한 산초 판사 말이 지극히 옳습니다.」

 

「여보시게들.」돈키호테가 말했다. 「좀 천천히 갑시다. 지난해의 둥지에는 이미 올해의 새가 없는 법이오. 나는 미치광이였지만 이제 제정신이라오. 돈키호테 데 라만차였지만, 지금은 아까도 말했듯이 착한 자 알론소 키하노라오. 나의 후회와 이러한 진심이 여러분들이 내게 가졌던 존경을 되돌려 주기를 바라오. ······

 

······

 

라만차의 기발한 이달고는 이렇게 임종을 맞이했으니, 시데 아메테는 라만차의 어느 곳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기록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스의 일곱 도시가 호메로스의 고향을 두고 서로 싸웠던 것처럼, 라만차의 모든 마을과 장소들이 돈키호테를 자기 고장의 사람이자 자기들의 사람으로 만들고자 서로 싸우도록 하고 싶어서였다.(882∼885쪽)

 

-『돈키호테 2』, <74, 어떻게 해서 돈키호테가 병들어 누웠는지와 그가 한 유언, 그리고 그의 죽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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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7 0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03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5-08-06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네요. 줄거리만 따라갈 게 아니라 대사 하나하나를 씹으며 음미해야 할 것 같은
책일 텐데, 저는 그렇게 읽지 못했어요.

이 여름 잘 지내고 계시죠?

oren 2015-08-06 21:59   좋아요 0 | URL
저는『돈키호테』라는 작품을 뒤늦게나마(?) `감명깊게` 읽고는 틈날 때마다 그 작가의 위대함을 가끔씩 곱씹어 보곤 한답니다. 그의 문장 속에 숨어 있는 놀라운 깊이, 그의 웃음이 자아내는 측량할 수 없는 깊이, 그의 입에서 술술 풀어져 나오는 이야기의 경이적인 짜임새 등을 뒤늦게라도 어렴풋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희열을 느낀 작품이었답니다. 페크 님도 `충분히 나이가 든 이후에`쓴 작가의 `나이`를 염두에 두고 이 작품을 다시금 만나신다면 분명 새로운 감동을 느끼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 *

한순간이나마

누군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는 마음 속으로 그 독서가의 신분의 색깔이 그 책과 독서가 이뤄지고 있는 분위기에 크게 좌우되는 듯한 야릇한 경험을 하게 된다. 호머에 나오는 영웅들과 여러 면에서 일맥상통하는 알렉산더 대제가 늘상 『일리아스』와 『오디세이』를 지니고 다녔다는 것은 그럴듯해 보인다. 셰익스피어의 명작 『햄릿』에서 폴로니어스가 ˝각하, 무엇을 읽고 계십니까?˝ 라고 묻자 햄릿이 ˝말, 말, 말˝ 이라는 대답으로 일축했을 때, 그의 손에 쥐어진 책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너무도 궁금하다. 손에 잡힐 듯도 한 그 책의 제목이야말로 울적한 왕자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게 해줄지도 모른다. 머리가 돌 정도로 어지러운 돈키호테의 서재를 불사르기 위해 쌓아 올린 장작더미에서 요왕 마르토렐의 소설을 구해 낸 그 사제는 미래 세대를 위해 출중한 기사도 소설을 구조해 낸 것이었다. 돈키호테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정확히 앎으로써 우리는 비탄에 빠진 기사를 그렇게 사로잡았던 세계가 어떤 것이었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독서를 통해 우리 또한 한순간이나마 돈키호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알베르토 망겔, 『독서의 역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