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송은 아리스토텔레스에 특히 정통한 철학자이다. (그의 박사학위논문은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이었고, 부논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공간론」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이번에도 극히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는 건 '그만의 특징'이며 다른 곳에서도 늘 그런 식이다. 어쨌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엔 '희극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통째로 빠져있다.(아리스토텔레스가 '나중에 다루겠다'고 책에서 약속은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그뿐'이다. 그래서 '희극'에 대해서는 비극을 다루면서 곁다리로 잠깐씩 언급하는 설명만 있을 뿐, 구체적인 설명이 거의 없다.) 그 대신『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는 '웃음'과 연관해서 참고할 대목들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 일부는 '재치'를 다루는 대목에 담겨 있다.
삶에는 휴식이 있으며 휴식에는 놀이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있기에, 여기에도 또한 어떤 적절한 사귐이, 즉 마땅히 말해야 할 것을 마땅히 말해야 할 방식으로 말하고 듣는 그런 사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것들에 있어서 말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듣는 것인지 사이에서도 또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과 관련해서도 중간에 대한 지나침과 모자람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스갯소리를 하는 데 있어서 지나친 사람들은 '(저급) 익살꾼', '저속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웃기려고만 하며, 고상한 것을 이야기하거나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것보다는 폭소를 만들어 내는 것에 더 마음을 쓴다. 반면에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우스운 이야기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우스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못마땅해 하는 사람은 '촌스러운 사람', '경직된 사람'으로 보인다. 반면 적절하게 농담을 풀 수 있는 사람은 방향을 빨리 바꾸는 사람(eutropos)처럼(회전이 빠른 사람처럼) '재치 있는 사람(eutrapelos)'이라고 불린다. 이런 종류의 농담들은 품성상태의 움직임(kinēsis)으로 보여, 마치 신체가 신체의 움직임에 의해 판단되듯, 그렇게 품성상태 또한 이러한 움직임으로부터 판단되는 것이다.
그런데 웃을 만한 일은 도처에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땅한 것 이상으로 놀이나 조롱하는 일을 즐기기에, 사람들은 저속한 익살꾼마저 즐거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재치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양자는 엄연히 다르며, 그것도 적지 않게 다르다는 것은 지금까지 논의해 온 바를 보면 분명하다.
-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4권, <제8장 재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