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17 01:07 작성)
책을 읽는 취향이 골라 보는 영화까지도 바꿀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제는 폭설이 예고되었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는 겨울비만 주룩주룩 내리는 바람에 여간 다행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를 보려다가, 너무 슬플 듯한 생각이 들어 느닷없이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로 바꿔서 봤다.
두 영화 사이에는 차마 헤아리기 어려운 '드넓은 간극'이 있음을 헤아리기 어렵지 않다. 주인공 두 사람만 해도 그렇다. 한 쪽 영화에는 신이나 마찬가지 신분인 이집트의 파라오와 모세가 주인공이다. 또다른 한 쪽은 지극히 평범한 이 땅에 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주인공이고. 한 쪽 영화는 무대 배경이 기원전 1,300년이다. 다른 한 쪽은 요즘이고.
어쩌면 두 영화가 다루는 주제 또한 이만큼 커다란 차이가 벌어지기도 어렵지 싶다. 한 쪽은 모세의 기적과 십계명을 다루는 이야기이고, 다른 한 쪽은 어느 노부부의 지극한 '부부애'를 다루는 것이니. 거기다가 여러 물리적 차이까지 보태자면 두 영화는 애초부터 비교하는 일 자체가 우습게 여겨진다. 내가 애초에 보려 했던 영화를 포기하고 금세 마음을 바꿔 실제로 보게 된 그 영화는 도대체 제작비가 얼마나 들었을지 궁금할 정도로 화면을 압도하는 '어머어마한 물량들'이 넘쳤다. 다른 한 쪽은 아직까지 보지도 못했으니 뭐라 말할 처지는 못되더라도 '물량 면에서' 어떤 영화일지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거기다 두 영화 사이에는 러닝 타임의 차이도 상당했다.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 영화보다 상영 시간이 '두 배나 길다'는 건 어쩌면 가장 사소한 차이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나는 영화를 보더라도 '고전적인' 영화를 대체로 좋아했던 듯하다. 원래(?)부터 그랬는지 아닌지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고대로마 시대로 대표되는 '영광스런 과거'에 대한 향수는 내가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좋아하게 된 '시대 배경'으로 은연중에 자리잡게 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듯하다. <벤허>니 <글레디에이터>니 <트로이>니 <300>이니 <제국의 부활>이니 하는 영화들을 내가 얼마나 조바심내며 기대했던가를 떠올려봐도 그렇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콘택트>니 <아바타>니 <그래비티>니 <인터스텔라>니 하는 흥미진진한 공상 과학 영화들을 반드시 그만큼 좋아하지 않는다고 선뜻 말하기도 어려운 게 솔직한 심정이다.
대학에 다닐 때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너무 좋아해서 그 가운데 단 한 편이라도 '대한극장'과 같은 멋진 개봉관을 떠날 때까지 미적거리다가 그런 가슴벅찬(?) 영화를 허름한 삼류극장에까지 찾아가서 투덜거리며(?) 보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듯하다. 그 무렵에 개봉된 고전 명화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본 것도 아마 '대형 스크린'을 자랑하던 대한극장에서였지 싶다. 그러고 보니 단성사, 피카디리극장, 허리우드극장, 서울극장, 명보극장 등에도 제법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피비 케이츠 주연의 <파라다이스>나 브룩 쉴즈 주연의 <끝없는 사랑>뿐 아니라 정윤희 주연의 <정사(情事)>,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의 <차타레 부인의 사랑>, <개인교수> 등을 깔끔한 개봉관에서 가슴을 두근거리며 보는 데에도 회수권(학생용 시내버스 승차권)을 아끼지 않았던 듯하다. 물론 <나인 하프 위크>,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원초적 본능> 등이 큼지막한 화면과 멋진 사운드를 자랑하는 개봉관을 떠날 때까지 놔둔 적도 별로 없었던 듯하고.
그렇다고 내가 무슨 영화광이었던 건 절대 아니다. 나는 그런 생각을 여태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사실 누구라도 다 웬만큼은 영화를 즐겨 보면서 살아갈 테고, 나 또한 그런 '막연한 평균'에서 어느 쪽으로든 크게 벗어나 있다는 생각을 할 만큼 영화에 크게 쏠렸던 적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
(2014-12-25 23:57 작성)
어쩌다 보니 이 글을 쓰다가 멈춘 지 어느새 열흘 가까운 시간이 훌쩍 흘렀다. 그동안 이 글을 이어서 쓰지 못할 정도로 특별히 바빴던 건 물론 아니었지만 그 반대로 이런 정도의 글을 두고 '기어이'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간절한 의욕이 계속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던 건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니 이 모양이고 이 꼴이다.
갑작스레 툭 끊어진 영화 얘기를 조금 더 억지스레 이어붙이자면 이렇다. 엊그제 '좋은 좌석'을 골라 예매해 놨던 <국제시장>은 갑작스레 날라든 친한 선배님의 장인상 부고 때문에 지방까지 문상을 다녀오느라 부랴부랴 취소할 수밖에 없었고, 크리스마스 이브에라도 보고 싶었던 그 <국제시장>은 예매 시점 기준으로는 '마땅한 좌석'이 거의 보이지 않아 또다시 나중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어젯밤 은근히 매섭던 겨울 날씨에 조금 지나치게 쏘다닌 덕분에 얻게 된 감기몸살 덕분에 하루 종일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거의 잠에만 빠져 지내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국제시장>이 염두에 있을 리 없는 형편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어젯밤 아내랑 둘이서 <본전 횟집>에서 참가자미 세꼬시를 안주 삼아 소주를 두 병씩이나 마시고 나서 제법 거나하게 술에 취한 끝에 나눴던 말도 떠오른다.
"여보, 국제시장은 빈 좌석이 거의 없으니 이참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나 보러 갑시다. 술도 좀 거나하게 취했으니 '눈물'을 와락 쏟아내기에는 더없이 좋은 형편이 아니겠소."
그런 객적은 소리에 아내가 옳커니 하고 맞장구를 치며 따라줄 가능성은 물론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그런 슬픈 영화'를 보며 눈물을 쏟아내게 되면 그게 또 새롭게 슬픈 감정을 자꾸만 지어내고 덧보태게 되어 며칠 씩이나 그 후유증을 겪을 게 뻔하니, 그 영화는 아예 나랑 같이 볼 생각을 말고 당신 혼자 가서 보란다. 그러는 사이에 그 영화는 어느새 관람객 수가 300만을 넘어섰다는 소식이다.
그런데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했던 연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었을까? 맞다. 영화《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을 봤더니 그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고대 이집트'가 정말로 아주 그럴 듯하게 펼쳐져 있더라는 것부터 말하고 싶었었다. 물론 그토록 웅장하고 멋진 배경을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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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은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을 보면서 내가 다시금 떠올리게 된 '실제 이집트 풍경들'이다. 어느새 저 아득한 곳을 다녀온 지도 7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흘렀지만 언제나 기회만 되면 꼭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 석양이 비추는 가운데 룩소르 신전 내부로 들어가는 우리 일행들 모습......
- 어마어마한 134개 열주의 숲이 하늘을 찌르는 카르낙 대신전. 이 신전은 이집트에서도 규모가 제일 큰 신전
- 돛단배를 능숙하게 조종하는 이집트인과 함께 나일강을 건너는 우리 일행들
- 호루스 신전, 죽음과 부활의 신 오시리스와 그의 아내인 이시스의 아들을 신으로 모신 곳
- 아부심벨 대신전. 람세스2세가 천연의 사암층(沙岩層)을 뚫어서 건립한 건축물
- 카프라왕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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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파라오가 사는 그 어마어마한 크기의 돌로 지어진 궁전이나 신전들이 영화 속에서는 모두 '가짜'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영화는 언제나 영화일 뿐'이라는 뻔한 생각을 좀처럼 떨치기 어렵다. 그래서 대체로 '고대'를 다룬 영화들은 그런 '떠올리지 말았으면 좋았을 불필요한 생각들'이 스며들 때마다 언제나 약간은 실망스럽다. 그래서 그런 영화를 볼 때는 늘 '가짜'를 '진짜'처럼 여길 수 있는 어린 아이와도 같은 억지스러운 순진무구함이 필요한 지도 모르겠다. 괜히 스크린에 비치는 웅장한 배경들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하고 '진짜'와 '가짜'의 차이를 발견하는 데 너무 지나치게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면 이내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내 자신이 스스로 훼방놓고 있다는 걸 깨닫고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다시금 영화에 몰입하려 애쓸 때가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그러고 보니 최근에 봤던 영화 가운데 아마도 <폼페이: 최후의 날>만큼 그런 '불편한 차이'가 도드라져 보이는 영화도 별로 없었던 듯하다. 나는 정말 그 영화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컸었다. 아주 어릴 때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책을 읽으며 생생하게 상상했던 풍경들이 실제로 스크린에 펼쳐지는 걸 보면서 '책과 영화 사이의 극적인 해후'에 환호작약하기도 했고, (그보다는 훨씬 덜 오래지만 그래도 꽤 오래 전에) 난생 처음으로 유럽 여행에 나섰을 때 잠시 들렀던 그 잿더미에 뒤덮힌 폼페이를 다시금 떠올리며 그 영화에 온전히 몰입하기 위해 은연중에 애를 쓰며 봤지만, 결국 영화 속 주인공들이 전차를 타고 그 불구덩을 헤치고 탈출하는 장면들이 너무나 극적인 상황들의 연속이어서 도리어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결국 그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내 나름대로는 적잖이 흡족스럽다며 애써 자기합리화에 골몰하고 있는 나를 쳐다보며 아내가 하는 말을 듣는 순간 그 영화의 사실성과 작품성(?)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듯해 가벼운 정신적 충격을 느낄 정도였다. 아내의 말인 즉슨, "무슨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진짜 너무 하더라"는 거였다. 지나친 과장이 결국은 폐단이 되고 만 셈이다. 그런데 '고대 영화'치고 그렇지 않은 영화가 정말 몇이나 되더란 말인가. 가만 생각해 보니〈노아〉를 보고 나오면서도 아내로부터 그런 소릴 들었던 것 같고, <헤라클레스:레전드 비긴즈>를 보고 나올 때도 그보다 더한 말을 들으면 들었지 덜했던 것 같지는 않았다.(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헤라클레스에 관한 신화'를 일부러 조금 더 뒤적거렸던 나로서도 정말 그토록 뛰어난 그리스 최고의 영웅을 고작 그 정도로밖에 다루지 못했나 싶어 크게 실망하긴 했다.)
글을 여기까지 쓰고 보니 대략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이 조금 더 떠오른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아무래도 내 독서 취향을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에 덧붙여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게 바로 '책과 영화 사이의 방향성'에 관한 생각이었다. 나로서는 책으로부터 비롯된 흥미가 영화를 보도록 이끄는 힘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는 경우가 많았던 듯하다. 그만큼 그 둘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끈'이 무척이나 강렬하다고 나는 자주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반대 방향으로 이어지는 끈은 (결국 똑같은 끈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언제나 느슨해 보인다. 마치 팽팽하게 당겨지던 줄이 갑자기 툭 끊어져 이러저리 축 늘어진 것처럼 보이는 그 어설픈 끈을 붙잡고 '영화에서 책으로' 거꾸로 난 길을 따라가고 싶은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가령 <까라마조프 형제들>이나 <레미제라블>을 읽었던 추억으로 말미암아 똑같은 제목의 영화가 만들어져 나오면 나는 그 영화를 어떻게든 봐야지 하면서 마음을 다잡기 시작하고 그 영화를 볼 날을 손꼽아 기다릴 만큼 조바심을 내지만, 그 반대는 아니다. 가령 <노예 12년>이나 <나를 찾아줘>와 같은 영화를 내가 아무리 감명깊게 봤다고 하더라도 그런 영화의 밑바탕이 되는 '원작 소설'까지 찾아서 읽는 일은 내게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이미 영화를 통해 '감동의 엑기스'를 거의 다 맛본 터에, 기껏해야 그 영화를 새삼스레 떠올리게 할 뿐인 데다가 자칫 따분해 보일 정도로까지 변해버린 듯한 '원작'을 다시금 '거꾸로' 찾아 읽는 일은 책을 읽기 전부터 뭔가 김이 좀 많이 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운 것이다. 영화까지 보고 난 뒤에 그 영화를 다룬 원작을 다시 바라보게 될 때면 언제나 떨치기 어려운 강한 선입견-도대체 무슨 재미가 더 있을까-이 그 '역주행'을 자꾸만 틀어막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물론 책이 지닌 엄청난 장점 가운데 하나인 '한계 없는 포용성'을 생각해 볼 때, 영화가 불가피하게 생략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수많은 멋진 장면들과 대화들'을 추가로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완전히 도외시할 수는 없다. 가령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라든가 <오만과 편견> 같은 작품만 하더라도 영화보다 원작이 훨씬 더 깊은 감동을 안겨줄 것만 같은 놀라운 예감을 누구든 쉽게 떠올릴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아마도 그래서 수많은 영화평론가들이 영화와 책, 그 둘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들을 찾아 온갖 미사여구를 잔뜩 늘어놓는지도 모르겠다.
(2014-12-27 23:47 작성)
이쯤에서 이 글을 마무리지어야겠다. 어젯밤도 오늘밤도 송년 모임 때문에 책과 영화와 글쓰기로부터 한참이나 떨어져 지냈다. 그저 만나면 반갑기만 한 수십 년지기 친구들과 어울려 떠들고 놀기 바빴다. 그래도 어쨌든 때는 바야흐로 틈틈이 짬을 내어 영화관을 찾기 좋은 연말연시다. 나로서는 차일피일 미뤄왔던 <국제시장>은 물론 눈물을 잔뜩 흘릴 각오로 덤벼야 할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도 마저 다 보고 올 한 해를 건넜으면 싶다. 잠시 되돌아 보니 올해는 이래저래 참으로 슬픈 한 해였구나 싶다. 눈물이 도대체 마를 날이 없었던 그 슬픈 봄이 그토록 힘겹게 지나가나 싶더니 어느새 문득 한 해의 마지막 주말에 다다랐다. 고작 며칠 밖에 남지 않은 한 해를 마저 건너기에도 이토록 벅차다. 왠지 '눈물' 없이는 이 해를 마저 건너기 어려울 듯하니. 결국 애써 이어가며 쓴 글이 이렇게 흐지부지 어설픈 결말을 보고 마는구나. '책과 영화 사이'를 터무니없이 갈라 놓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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