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강상진.김재홍.이창우 옮김 / 길(도서출판)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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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지혜에 대한 사랑', 즉 '철학'은

 

행복이 탁월성에 따른 활동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최고의 탁월성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최고의 탁월성은 최선의 것에 대한 탁월성이다. 이것이 지성(nous)이건 혹은 다른 어떤 것이건, 이것은 본성상 우리를 지배하고 이끌며, 고귀하고 신적인 것들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 자체가 신적인 것이든 아니면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신적인 것이든, 자신의 고유한 탁월성에 따르는 이것의 활동이 완전한 행복일 것이다. 이 활동이 관조적인 것임은 이미 말한 바 있다. 이것은 이전에 논의했던 바에, 또 진리에 일치하는 것 같다. 이것이 최고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는 것들 중 지성이 최고이며, 지성이 상대하는 대상 또한 앎의 대상들 중 최고이니까. 게다가 이 활동이 가장 연속적이다. 우리는 어떤 것을 행위하는 것보다 더 연속적으로 관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행복에는 즐거움이 섞여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탁월성에 따르는 활동들 중 '지혜(sophia)'에 따르는 활동이, 동의되는 것처럼 가장 즐거운 것이다. 여하튼 '지혜에 대한 사랑', 즉 (철학(philosophia)'은 그 순수성이나 견실성에서 놀랄 만한 즐거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앎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앎을 추구하는 사람보다 그러한 관조에서 더 즐겁게 삶을 영위할 것이라는 점은 당연하다. 더욱이 우리가 논의하는 자족(自足)도 다른 무엇보다 관조적 활동과 관련한다. 철학적 지혜를 가진 사람이나 정의로운 사람, 다른 탁월성을 가진 사람 모두 삶을 위해 필수적인 것들을 필요로 하지만, 이것들이 충분히 갖춰졌을 경우, 정의로운 사람은 그가 그 사람에 대해 정의로운 행동을 하게 될 상대방, 혹은 그들과 더불어 정의로운 행동을 하게 될 동반자를 필요로 하며, 절제 있는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 또 그 밖의 탁월한 사람들 각각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철학적] 지혜를 가진 사람은 혼자 있어도 관조할 수 있으며, 그가 지혜로우면 지혜로울수록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가 동반자를 가지면 아마 더 잘 관조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가 가장 자족적이다.(370∼371쪽)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0권 제7장 <관조적 활동으로서의 행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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